헬게이트 오픈 (2)
“혹시 촬영하셨어요?”
내가 고개를 돌려 리리를 담당하고 있던 카메라맨을 바라보자 그가 다 찍었다며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었지만 그도 뭔가 심상치 않은 장면이라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 확실히 전문 리얼리티 촬영팀이라 그런지 손발이 착착 맞았다.
‘오케이. 이거 프로야구 관계자가 보면 무조건 시구자로 쓸 거야.’
나는 리리를 돋보이게 하려고 완벽하게 다른 멤버를 물색했다.
“담희야. 잠시만 와 볼래?”
오전 산악 행군에서 나의 영혼의 맞수 역할을 했던 담희가 제물로 선정되었다. 담희는 아니나 다를까 어설픈 폼과 느린 구속으로 리리를 위한 불쏘시개가 되고 말았다. 몇 번은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며 공을 땅바닥에 패대기치는 어이없는 광경도 나왔다.
‘그렇지. 이게 정상이지. 극과 극 비교 체험 좋구요.’
“힝···. 난 왜 언니처럼 안 돼요?”
“응. 넌 절대 불가. 다시 태어나라.”
“왜요! 저도 연습할 거예요. 리리 언니처럼 던질 거라고요.”
“그럼 이번 기회에 여성 야구단에 넣어 줄까? 거긴 아마 일단 한 시간 정도는 운동장을 돌고 시작할 텐데···.”
“아, 아니에요. 됐습니다.”
내가 뻥을 좀 쳤더니 질색을 하면서 글러브를 벗는 담희였다.
“자자! 얘들아. 이제 벌써 4시가 다 됐다. 잠시 주변 관광을 좀 하고 어두워지기 전에 들어가야지.”
우리는 주변을 정리하고 텐트까지 해체한 후 차에 짐을 실었다.
“다음은 시장을 구경하고 인근 절에서 강의를 들을 예정입니다.”
다시 한번 힘을 내서 근처 시장을 돌며 웃긴 장면을 많이 뽑아냈고, 해가 질 무렵에는 인근 절에 들러 주지 스님께 행복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이 강의는 우리 멤버들의 멘탈 관리를 위해 특별히 수소문해서 기획한 코너였다.
이곳의 주지 스님은 강의로 유명하신 혜륜 스님이었다. 엄숙한 절의 분위기와 다르게 강의는 유쾌하게 진행됐다.
“스님. 어쩔 수 없이 댓글을 보게 되는데요. 가끔 악플을 발견하면 가슴이 뜨끔뜨끔 아픕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까요?”
“원래 세상이 그런 겁니다. 여러분들도 괜히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어요. 없어요? 본인에게 피해를 안 줬는데도 미운 사람이 있잖아요.”
“네.”
“거 보세요.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래요. 그걸 꼭 명심하시고 모든 사람 눈에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을 버리면 어떻다? 편안해진다.”
스님의 이야기는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일치했다. 그리고 멤버들은 처음 듣는 강의에 꽤 몰입하고 있었다. 스님이 워낙 말을 잘하시기도 하고 유쾌했으니까.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이 없으면 몸에 힘이 안 들어가죠? 긴장을 안 하는 거야. 그럼 여러분들이 매일 하는 춤이나 노래가 평소보다 어떨까? 잘할까 못할까? 잘해요.”
다섯···. 아니 여섯 명의 고개가 마치 록 콘서트에 온 것처럼 위아래로 헤드뱅잉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팬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을 안 하면 안 되겠죠? 팬들은 소중히 해라. 그러면 모든 일이 즐거울까? 힘들까? 즐거워요. 아까 질문하신 것처럼 악플을 다는 건 팬이 아니다. 그러니 그냥 읽고 너는 그리 생각하는가 보지, 하면서 치워 버리면 돼요. 아시겠어요?”
“네!!”
“저도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네. 해 보세요.”
“저희 대표님도 다른 회사 대표님들처럼 연애를 되도록 하지 말라고 하시는데요. 이런 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니···. 저···. 저 사고뭉치 김담희···. 저게 신인 아이돌 입에서 나올 소리야?’
내가 살짝 뚜껑이 열리려고 하는데 혜륜 스님이 그 모습을 보고 빙긋이 웃었다.
“연애를 하고 싶으면 하면 돼. 자기가 책임을 지면 되는 거지 뭐. 인기가 좀 떨어지고 옆에 친구들에게 좀 미안해하고, 그걸 감수하면 되지 뭐. 뭐가 문제야. 아무 문제 없어. 인기도 있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고 돈도 벌고 싶고···. 그런 건 다 뭐다? 욕심이다. 욕심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고 마음이 괴로워. 아시겠어요?
그런데···. 이런 건 있어요. 회사 대표님이 그런 소리를 하는 건 억지일까? 아니면 경험에서 나오는 걸까? 그리고 자기들 잘되라고 하는 소릴까, 아닐까?”
“잘되라고 하는 소리요.”
“그래. 대표님도 자기 생각이 있어. 대표님이 하는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으라는 게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이해는 가잖아. 조금만 참으면 팬들한테 사랑도 받고 돈도 벌고···. 그게 맞다는 게 아니라 이해는 간다. 그래도 연애가 하고 싶으면 그냥 인기 없는 거 감수하면 되는 거야. 뭐가 문제야. 연애할 거예요?”
“아니요.”
“내가 그러라고 시킨 건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역시 혜륜 스님이야. 통찰력 하나는 톱 오브 더 톱이라니까?’
감동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옆의 여섯 명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몇 년만 참으면 되잖아. 별것 아냐. 나는 지금 50년을 참았어요. 내가 힘들까? 여러분들이 힘들까?”
“푸하하···.”
스님의 드립에 멤버들이 허를 찔린 듯 빵 터지고 말았다.
“스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인기도 있고 연애도 잘되고 돈도 많고 그런 사람도 있는데요?”
이지령이 나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했고, 다른 멤버들도 전부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러분들 대표님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지 뭐. 세상에 예외는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 보이는 사람도 고민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사고치고 어떻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고민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여러분들의 대표님도 나름 고민이 많을 거예요. 단지 자기의 눈으로 좋은 것만 보인다고 속단을 하면 안 된다. 아시겠어요?”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 모든 일정을 통틀어 내가 가장 잘한 시간이 아닌가 싶었다.
“그쪽 언니는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요?”
스님이 갑자기 나유정을 지목했다. 유정 씨는 말을 할까 말까 주저하면서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말씀해 보세요.”
“네. 스님. 저는 몇 년 전 불행한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가슴 한쪽이 계속 무거운 상태입니다. 돌아가시기 전 거의 말도 안 하고 인연을 끊다시피 살아가다가 막상 일을 당하고 나니 왜 잘 지내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이 저를 괴롭게 합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속마음을 꺼냈다.
“쉽지 않은 고백이었을 거 같은데 그래도 잘하셨어요. 맺힌 건 풀어야 합니다. 몇 년 전이라면 시간이 좀 지나긴 했네. 그렇죠?”
“네”
“그때보다 지금 마음이 어때요? 좀 나아졌어요?”
“네. 지금은 좀 괜찮습니다. 그런데 가끔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랑 비교해서 많이 나아졌잖아. 한 10년 후, 아니 20년 후면 어떨까? 더 괜찮아질까? 아니면 더 생각날까?”
“더 괜찮아질 것 같아요.”
그녀는 나를 힐끔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 시간이 지나면 더 괜찮아져. 그런데 미래에 괜찮은 거하고, 지금 그냥 딱 그렇게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하고 다를 게 있나 없나?”
“···없습니다.”
“맞아. 그냥 그건 본인 핑계야. 그냥 딱 끊어 내면 돼. 아무것도 아냐. 그리고 부모님은 시주분이 괴로워하길 바랄까? 아닐까?”
“아닐 겁니다.”
“그래. 그런데 왜 그런 걱정을 하고 살아? 아무 문제 없어요.”
그녀는 뭔가 깨달은 사람처럼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내 뒤의 주빈 씨를 바라보았다. 그는 천장을 보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유정 씨의 질문은 그녀 혼자만의 질문이 아닌 듯했다. 그도 이제 해답을 찾았으려나···.
* * *
멘탈 상담 코너를 마치고 하산 준비를 했다. 나는 스님이 너무 고마워 유정 씨와 함께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둘이 잘 합심해서 살아. 아시겠어요?”
“네? 저희는 아직···.”
“아니긴 뭐가 아니야. 스님 눈에는 인연의 끈이 다 보여요. 미안한데 측간에 좀 가야겠네. 그럼 얼른 조심히 내려가세요.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혜륜 스님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유정 씨는 얼굴이 살짝 상기된 것 같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대표님! 이사님! 저희 얼른 내려가요. 제가 맛있는 거 해 드릴게요.”
“그, 그래···.”
뒤에서 예원이가 우리를 불렀고 그렇게 우리는 모두 숙소로 이동했다.
그다음부터는 예원이의 독무대였다. 냉장고를 열어 미리 손질해 온 재료를 꺼내 요리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주빈 씨도 자신의 주방이 신경 쓰이는지 계속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선배님 왜요? 저 혼자 해도 금방 할 수 있어요.”
“아···. 그냥 내가 할 일이 있나 싶어서···.”
“전혀요. 그런데 선배님! 반찬도 직접 해 드시나 봐요. 냉장고에 밑반찬이 많네요.”
“아저씨 친구인 이수현 씨라고 2주에 한 번씩 그런 걸 가져다줘서 감사히 먹고 있어.”
“아! 저도 알아요. 그분하고 친구셨구나.”
“원래 아내하고 친구였어. 그런데 이제는 뭐···. 알지?”
“···네. 죄송해요.”
“아니야. 아까 혜륜 스님 강의를 듣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
나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예원이가 요리하는 모습이 영화 ‘그린 포레스트’의 장면처럼 나오는지 체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음···. 이거 나와도 괜찮으려나? 주빈 씨는 오랜만에 방송이라 그런지 이 상황이 판단이 안 되는 모양인데···. 에이, 그냥 놔두지 뭐···. 이러다 수현 씨랑 이어지면 좋잖아?’
나는 이내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예원이의 영상이 잘 나오는지 계속 체크 중이었다. 이 장면은 내가 TVM 제작진들에게 특히 신경을 써 달라고 한 중요 장면이었다.
그리고 오디오도 마찬가지였다. 도마 위에 또각또각 채소를 써는 소리···. 보글보글 끓는 찌개 소리, 뭔가를 만들어 내는 소리까지 주의 깊게 담고 있었다.
정말 예원이는 황종원 대가에게 인정을 받은 것처럼 대단한 손놀림을 보여 주고 있었다. 다년간의 혼밥 생활, 그리고 식당에서 몰래 아르바이트를 한 결과 음식을 하는 일이 아주 자연스럽게 배 있었다.
본인의 영역이 아님에도 어느 정도 장비에 대한 스캔이 끝나자 마치 자기 집 주방처럼 능숙하게 요리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예원이가 차린 시골 밥상이 마루에 성대하게 펼쳐졌다.
“으아···. 대박! 배고파 죽겠어. 아까 콘치즈밖에 못 먹었잖아.”
나는 눈이 뒤집혀 상에 달려드는 담희와 리리를 말렸다.
“야 이 녀석들아. 진정해라. 난 탄 군만두를 먹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잖아! 질서를 지키자.”
“비, 비켜···.”
“그리고 이거 먹방 영상으로 나갈 거니까 게걸스럽게 먹지 마. 알았지? 예쁘게 좀 먹어.”
“네.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담희야. 너만 잘하면 돼.”
우리는 예원이가 차린 밥을 신나게 먹고 잠시 쉬었다가 밤에 내가 준비한 영상을 보기로 했다.
“대표님. 저희 흑역사 다 나오나요?”
“안 보면 안 돼요?”
“응 안돼. 깔끔하게 받아들여라.”
“악덕 대표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그래도 안 돼. 사람은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올챙이 적 생각을 해야 하는 거야.”
“올챙이는 너무 징그럽잖아요. 안 보고 싶어요.”
“아니야. 귀여워.”
“으악···.”
담희가 특히 안 보고 싶다고 발광을 했다. 그럴만한 게 예전 영상에서는 지금 이 청순한 얼굴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큰 스크린으로 예전 영상들을 보기 위해 지하실로 내려갔다. 분위기도 아늑해서 ‘즙 타임’을 하면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다.
‘새콤이들의 눈물을 짜내야 하니 즙 타임이다.’
오늘 마지막 이 장면과 나중에 헬게이트와의 만남을 넣으면 그림이 아주 좋을 것 같았다. 물론 헬게이트와는 아직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확실하진 않았지만, 내 머릿속으로는 이미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번 콜라보로 유럽과 북미의 팬들을 좀 끌어와야지.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