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게이트 오픈 (1)
“그, 그래요. 일단 끊어 보세요. 조 대리님.”
나는 부랴부랴 헬게이트의 존 리의 미튜브 채널로 들어가 해당 영상을 클릭했다.
[헤이! 안녕 여러분.]
지지지지지징···.
영상 속의 존 리는 붉은색 일렉 기타를 들고 간단한 속주를 들려 주고 있었다.
[오케이! 오늘은 내가 진짜 쌈박하고 놀라운 영상을 하나 소개해 줄게.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라고! 그게 뭐냐고? 그건 바로 케이팝이야. 너희들 케이팝이라고 알아? 아니 아니 게이 펍 말고! 케이팝! 요즘 핫하잖아? 물론 내 취향은 아니어서 별로 들어 보진 않았지. 그런데 내가 정말 미친 케이팝 아티스트를 찾아냈어.
바로 오라(Aura)라는 코리안 걸 밴드야. 되게 어리게 생겼는데 실제로도 나이가 어린 듯해. 그런데 말이지. 완전 미쳤다니까? 세상에 이런 건 처음 본다. 자! 이제 한번 살펴보자고!]
시퍼런 마스크를 쓰고 있는 존 리가 영상을 클릭했고 곧바로 뮤직비디오가 나오기 시작했다.
인트로는 ‘Aura’라는 글씨로 시작했다. 나는 예전부터 회사 브랜드 로고가 뮤비 처음에 나오면 거부감이 들었던지라 무조건 마지막에 배치하도록 지시했다.
시커먼 게이트가 나타나 리치가 기어 나오고 아우라 멤버들도 고시원이 밀집된 곳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음산한 기타 사운드와 함께 카랑카랑한 베이스가 일품인 ‘Return’이 헬게이트의 팬들에게 소개되고 있었다.
비트가 빨라지며 강력한 덥스텝 사운드가 이어지자 존 리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호우! 이거 봐. 충격적인 곡이야. 사운드가 유니크해. 이거 뭐지? 들었어? 이 소리 말이야. 지금 이건 기타로 만든 것 같아. EDM이 아니라고! 나 지금 쇼크 상태야.”
“그리고 한 멤버가 영어로 랩을 하는데, 이게 또 웬만한 미국 래퍼들보다 훨씬 나아. 뭐지? 발음이 고전적이고 엘레강트해. 더 들어보자고! 아 참 그렇다고 내가 미국 래퍼들을 무시하는 건 절대 아냐. 헤이! 날 총으로 쏘지 말라고 베이비! 아이 러브 힙합 맨!”
그는 정면을 보고 검지로 허공을 가리키며 정색하고 있었다.
다시 화면에서는 화염 마법사 정유리의 불꽃 쇼가 화려하게 펼쳐졌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플레임은 키메라의 몸에 닿자마자 살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유리 앞에 서 있는 탱커 장예원이 마나를 활용한 강체술로 키메라(좀비)를 빠르게 때려잡았다.
“크으···. 액션이 크레이지해. 오마이갓!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브릿지 부분에서 영상이 바뀌면서 넓은 스튜디오가 나타났다. 아우라는 화려하게 변하는 조명 속에서 다섯 명이 마치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영상이 바뀌며 흑마법사 리리가 등장했다. 리리는 절벽 위에 서 있었는데 눈이 완전히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에게서 후렴구 하이라이트 초고음이 터져 나오자 땅바닥에서 망자의 손이 튀어나와 키메라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러자 허공에 떠오른 바람 마법사 담희의 윈드 커터에 키메라의 사지가 잘리고, 얼음 마법사 이지령의 아이스 볼트에 머리가 퍽퍽 꿰뚫리며 무기력하게 쓰러졌다.
“으으으···.”
존 리는 소름이 돋는다며 몸을 부들부들 떠는 시늉까지 하고 있었다.
마침내 영상이 끝나며 존 리가 총평을 하는 것 같았다.
“휴···. 엄청나지? 도대체 뮤직비디오에 얼마나 예산을 때려 박은 거야? 이거 미친 회사네. 라이브 무대도 봤는데 막 불을 쏘고 그러니까 꼭 찾아서 보도록 해.”
“아무튼, 충격적이고 신선한 곡에 춤, 가창력, 랩, 쿨한 의상, 미친 카메라 연출, 세트 디자인, 영상미, 그리고 멋진 멤버들까지 정말이지 완벽하다고!”
그는 침을 마구 튀겨 가며 흥분한 상태였다.
“이 정도까지 수준을 끌어올리다니···. 케이팝이 다 이런 수준인지 다른 것도 봤더니 그건 아니더라. 물론 몇몇 아티스트는 아주 뛰어나. 하지만 내 취향을 저격한 건 바로 이 걸 밴드야. 앞으로 나는 이들의 팬이 될 거 같다. Damn! 너희들도 가서 얼른 감상해 보라고! 죽여 주니까!”
얼굴에 분칠하고 시퍼런 마스크를 쓰고 있던 존 리가 자세를 고쳐잡으며 두 손을 카메라 쪽으로 향하고 마치 읍소하는 듯한 자세로 말을 했다.
“헤이! 회사 관계자 여러분, 이 영상을 보면 꼭 연락을 줘. 같이 무대에 한번 서 보고 싶다. 물론 이건 내 희망 사항이야. 내 공손한 자세가 보이지?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니라고···. 바이 See you later!”
그렇게 영상이 끝났다.
‘존 리가 이렇게까지 해 주다니 고맙기 그지없군. 흐흐···.’
역시 훌륭하고 멋진 것은 가만히 있어도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법이다. 홍보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이 영상은 세계로 퍼져 나가며 메탈 헤드에게 충격을 주고 있을 것이다.
헬게이트가 누구던가. 거의 20년 이상 업계 톱으로 군림 중인 인기 메탈 밴드 아니던가?
더구나 최근 헤비메탈의 부흥이 심상치 않다. 헤비메탈은 최근 조사에서 R&B·솔, 케이팝, 월드 뮤직을 제치고 150% 이상의 성장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는 인기 래퍼들이 메탈의 음울한 이미지를 가사와 패션에 등장시키며 그들의 음악을 찬양했고 지속해서 협업을 하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큐트메탈’과 한국의 걸그룹도 메탈 사운드를 채용하고 있는 그룹이 있었지만, 우리는 아예 새로운 스타일의 장르를 개척하고 있었다. 덥스텝, EDM, 프로그레시브 록을 결합해서 신선한 사운드를 만들고 실사 영상을 추가했다.
헬게이트는 코어 팬들의 힘이 엄청났다. 업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코멘트가 매우 중요했다.
아우라의 곡은 헬게이트에 의해 케이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닌 헤비메탈 팬들에게까지 바이러스처럼 전파되고 있었다. 정말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어, 얼른 정규 앨범 준비를 하라고 해야겠는데···.”
공연하면서 곡이 부족하면 낭패였다. 뭔가 내가 너무 앞서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무슨 상관이랴. 미리 만들어서 나중에 써먹으면 되는 일 아닌가?
“저기요.”
누군가 생각에 잠겨 있는 나를 깨웠다. 그는 옆에서 나를 찍고 있는 스태프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일 때문에 잠시 한눈을 팔았네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도 코너 끝나고 쉬는 시간인데요. 그래도 휴대전화를 쳐다보시다가 계속 그러고 계시니 이상해서요.”
사실상 왜 넋 놓고 있냐는 뜻이었다.
‘일단 이 건에 대해서는 내일 처리하고 오늘은 촬영에 집중하자.’
나는 들고 있던 종이컵을 구겨서 휴지통에 던져 놓고 일행을 향해 걸어갔다.
“설거지 다 끝냈어요? 수고했어요. 커피 한 잔 줄까요?”
‘역시 나를 챙기는 건 소울메이트인 유정 씨뿐이군.’
“아니에요. 한잔 마셨어요.”
그녀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춥긴 한데 기분은 좋네요. 준형 씨는 어때요?”
“저야 뭐···. 좋네요.”
솔직히 고난의 행군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고 분위기를 깰 순 없었다. 어제 잠을 못 자고 등산까지 해서 그런지 몸이 너덜너덜해진 것 같았다.
“유정 씨 몸은 좀 괜찮아요?”
“전 괜찮은데···. 혹시 어디 아파요?”
“아니요. 괜찮아요.”
항상 글을 쓰느라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길다 보니 나만 체력이 쓰레기가 된 것 같았다. 건강 관리를 너무 안 한 것 같다는 자책이 들었다.
‘이제부터라도 운동 좀 해야지.’
하지만 이미 방송으로 흑역사가 만들어졌으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갑자기 유정 씨가 팔꿈치로 나를 툭툭 건드렸다.
“약속 지켜 줘서 고마워요.”
“뭐가요.”
“놀러 가기로 했었잖아요.”
“제대로 된 여행도 아니고 일인데···. 민망하네요.”
“전 이런 게 더 재밌는데요? 여러 명이 떠나는 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서···.”
나는 담담히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약간 쓸쓸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 아마도 이른 연예계 활동으로 제대로 된 여행을 다녀보지 못했을 확률이 높았다.
“나중에 많이 다니시죠. 이건 일이잖아요. 내가 아직 약속을 지켰다고 하기 힘들죠. 어떻게 보면 유정 씨를 이용한 건데요.”
“어차피 회사 일이 제 일이고 이런 것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껴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긍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면 서로 이용하는 게 맞죠. 우린 소울메이트잖아요?”
다시 그녀가 소울메이트를 언급하자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용하는 게 맞다?”
“이용이라기보다는 상부상조랄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런 면에서 남돌 뽑을 때 준형 씨 안목 좀 빌립시다?”
“어허···. 대표한테 말버릇이 좀···. 뭐 그 정도는 해 드려야죠. 제가 원석만 쏙쏙 골라 드릴게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웃으며 애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응? 어라? 야구 글러브하고 공이잖아? 이거 리리가 가져온 건가?’
옆을 보니 멤버들이 가져온 짐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고 리리 쪽으로 걸어갔다.
“리리야. 이거 네가 가져온 거야?”
“네. 대표님. 혹시 캐치볼 가능하세요?”
당연히 가능하다. 캐치볼은 골목에서 형이랑 자주 하던 놀이였다. 나는 글러브를 끼고 그녀에게 공과 여분의 글러브를 건넸다.
“혹시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거야?”
그녀의 아버지는 빠던으로 유명한 이재원 선수.
“네. 비시즌에 심심하실 때마다 야구를 같이 했죠. 지금도 가끔 해요.”
“그래. 그럼 한번 던져 볼래?”
“갑니닷!”
쉬익~ 퍽! 퍽!
말을 끝내자마자 무섭게 휙휙 던져 대는 리리였다.
“와! 공 한번 묵직하네. 대박인데? 확실히 영재 교육이라 다른가?”
“세게 던지는 것도 아닌데요?”
“응? 정말이야? 그럼 내가 포수처럼 앉아 있을 테니 힘껏 던져 봐.”
나는 리리에게 공을 휙 던져주고 주저앉아서 글러브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괜찮으니 힘껏 던져 봐. 나 포수 잘하거든?”
형이 어렸을 때는 투수가 꿈이어서 매일같이 포수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형은 지금 성형외과 의사가 되었지만···.
리리는 이내 자세를 잡고 와인드업을 했다. 적당한 다리 높이, 자연스럽게 휘둘러지는 팔의 각도···. 적당한 릴리스 포인트···.
퍼억···.
“헉!”
나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왜, 왜요. 대표님.”
“류, 류현준?”
“헤헤···.”
메이저리거인 투수 류현준의 폼과 흡사한 아주 자연스러운 폼이었다. 알고 보니 리리도 류현준과 같이 왼손잡이였다.
“와. 대박이다. 너 이거 속도 재 봤니?”
“글쎄요. 예전에 아빠랑 함께 구속 올리는 거에 맛 들여서 90km까지 나온 적이 있긴 한데···. 지금은 그 정도는 못 던져요. 80km 정도 나오려나?”
미친···.
일반 성인 남자가 훈련을 안 한 상태에서 나오는 구속이 평균 약 80km다. 리리는 평균 남성의 구속과 비슷하거나 상회한다는 결론인데···.
“그, 그렇다면 폼은 뭐야? 류현준 선수 영상을 보고 따라 한 거니?”
“아니요. 현준이 삼촌이 직접 가르쳐 준 건데···.”
오예···. 심지어 메이저리거 인맥까지 있다니. 이건 무조건 쏠쏠하게 홍보 영상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리리에게 공을 몇 번 더 던져 보게 했다.
퍽. 퍽. 퍽.
나는 글러브를 벗어서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아무래도 포수용 미트가 아니고 공을 글러브 끝으로 잡지를 못해서 그런지 손바닥이 찌릿찌릿했다.
나는 글러브를 들고 리리에게 다가갔다.
“리리야. 너 혹시 류현준 선수 한국 오면 혹시 우리 미튜브에 출연할 수 있냐고 물어 볼래?”
“왜, 왜 그러세요. 대표님. 삼촌 한국 들어오시면 물어는 볼게요.”
“그으래···. 꼭 그래 주겠니? 응? 약속할 수 있어? 무조건?”
광기가 흐르는 내 눈을 보고 겁을 살짝 먹었는지 리리는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나도 류현준 선수 팬이란 말이다!’
사심이 섞여서 그런지 리리도 흥분한 내 상태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아, 알았어요. 대표님. 진정하세요. 너무 흥분하신 거 같은데···.”
“아···. 쏘리. 내가 류현준 선수 팬이라···.”
리리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역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공감대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리리야. 미안한데 혹시 하나 파이어버드 시구도 가능할까?”
“그것도 아빠한테 한번 물어볼게요. 아빠가 구단에 물어보시겠죠.”
“고맙다. 리리야.”
그룹 홍보용으로 쓰일 카드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았다. 야구는 관객 동원 1위의 스포츠 아니던가? 일단 남성 팬들에겐 야구를 좋아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호감을 산다. 그런데 90km에 가까운 광속구를 뿌린다면? 그것도 걸그룹 멤버가?
나도 모르게 입가에 진한 미소가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