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83화 (183/263)

쭌쩡의 비밀 (1)

‘정주빈 씨가 내 드라마의 주인공이니 나올 수 있는 거고, 캠핑 마니아니까 흔쾌히 수락한 거지. 뭘 그렇게 놀라시나.’

“그럼 당장 기획에 들어가죠. 내가 TVM 관계자와 이야기를 해 보고 일정을 알려 드리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전무님.”

정주빈 이야기가 나오자 그냥 일이 일사천리였다. 당연하게도 대중들의 관심을 한 번에 끌 수 있는 강력한 소재였으니까.

“그런데요. 전무님. 이렇게 실무까지 뛰실 필요가 있으신가요? 그냥 좋은 뜻으로 여쭤보는 겁니다. 워낙 열심히 하셔서요.”

정말 의아해서 묻는 말이었다.

‘원래 재벌 3세들은 말만 하는 거 아니었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요즘 일하는 게 재미있습니다. 특히 이렇게 굉장한 건을 팍팍 물어와서 직원들에게 별것 아니라는 듯 넘겨줄 때의 그 쾌감이란···.”

“아···. 네···.”

음···. 이 양반도 워커홀릭이네. 아무래도 회사가 점점 자기 소유가 돼 간다는 뜻이겠지? 원래 자기 것으로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열심히 하게 되는 법이니까.

사실 고백하자면 나도 회사 경영하는 게 즐거웠다. 부끄럽구만.

* * *

아우라는 데뷔 후 활발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컨셉돌로 유명해져서 그런지 꽤 화제여서 여기저기서 불러 주는 방송이 많았다.

“확실히 어그로를 잘 끌어야 한다니까?”

투데이 아이돌을 필두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얼굴을 비치고 있었다. 물론 전부 인지도가 높은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시청률이 나오는 것도 있었다.

아우라는 멤버 수가 다섯 명이라 자매같이 친해서 그런지 방송에 출연해도 주눅 들지 않고 똘똘 뭉쳐 활약하고 있었고, 멤버마다 성격과 외모가 확실히 구분되어 개성이 도드라졌다.

가장 큰 활약을 보인 담희는 청순한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개그를 선보이면서 큰 웃음을 주고 있었는데, 그간 억눌려 왔던 끼를 해방하려는 듯 날아다니고 있었다. 말을 해 보면 머리 회전이 상당히 빨라서 상황 대처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았다. 물론 무대 경험이 많기도 했고···.

정이든의 동생으로 유명해진 유리는 갑자기 희한한 한국어를 말한다거나 단어 실수를 연발해서 주변을 웃기고 있었다. 하지만 귀여워서 용서되는 그런 사소한 수준!

거기에 메인 보컬 리리는 조용히 뜬금포를 날리는 스타일이었다. 감초와 같은 역할이랄까? 예능에서의 존재감보다는 출연 프로그램에서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돌 보컬 전쟁 시즌 2’가 시작하면서 꼽사리로 출전하게 된 리리는 파죽지세로 승리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리더 이지령은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다 보니 어딜 나가든 팀에 안정감을 주었다. 다른 멤버들이 예능감으로 활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리더의 안정감에 기인한 바가 컸다.

이지령은 ‘문제 푸는 미녀들’이라는 지적 유희 쇼에 나가서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이며 패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카이스트 출신 걸그룹으로 소개되며 또 한 번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원이는 ‘집중탐구 대박집의 비밀’이라는 생활 밀착형 프로그램에 나가서 요리도 하고 식당 일도 하며 성실한 모습을 보여 많은 시청자의 호감을 샀다.

프로그램 3주 차에 요식업계의 대부인 황종원의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며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였고,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황종원의 눈에 띄어 본인의 프로그램에 출연 제의까지 받은 상태였다.

물론 프로그램 대부분이 케이블이나 CA 미디어 계열이었지만, 이제 슬슬 공중파에서도 섭외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역시 낭중지추(囊中之錐)로군. 재능충들은 이런 게 무섭다니까? 누가 뽑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인재들이야.”

“저기요. 준형 씨. 자꾸 혼잣말할 거예요?”

“어우···. 깜짝이야. 거참 노크 좀 합시다.”

옆문을 막아 버리든지 해야지. 가끔이지만,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유정 씨 때문에 수명이 단축되는 느낌이었다.

“뭘 그렇게 보면서 헤벌쭉 웃고 있는 거예요?”

“헤벌쭉 아닙니다. 감동적인 미소예요.”

“뭐가 감동인데요?”

“홍보팀에서 우리 애들의 활약상을 모아 놓은 자료입니다. 누가 뽑았는지 정말 무서운 아이들입니다.”

“치···. 말하는 게 왜 이렇게 얄밉지? 내가 더 대단한 인재를 발굴해서 저 콧대를 확 꺾어 줘야 하는데···.”

“잘생긴 콧대는 왜 꺾는다고 난립니까?”

“······.”

내가 생각해도 살짝 능글맞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제 콧대가 꺾일 일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나유정은 내 농담에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농담은 그만하고요. 준비 다 됐어요?”

“무슨 준비요?”

“뭐예요. 우리 강원도 놀러 가야 하잖아요.”

그것도 까먹었냐는 듯 핀잔을 주는 듯한 말투다. 방송국 관계자와 협의를 하면서 나도 얼떨결에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고, 내가 출연하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말에 설득을 당하고 말았다.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촬영하러 가는 거죠. 말은 바로 해야···.”

“그냥 노는 거 잔잔하게 찍는 힐링 방송이라면서요. 그러면 놀러 가는 거 맞잖아요.”

“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애들은 긴장하고 있을 텐데요?”

“준형 씨가 뭘 모르시는 거 같은데요. 엄청 기대하고 있어요. 연말에 엄청 바쁘게 보내서 그런지 정초부터 캠핑하러 간다고 하니까 좋아 죽던데요?”

“본인들 이름을 달고 찍는 리얼리티인데 안 떨릴 리가···.”

“준형 씨는 본인이 직접 뽑은 아이들도 잘 모르시는구나. 걔들이 어떤 애들인데요.”

“겨울 캠핑이니 마냥 좋지만은 않을 겁니다. 고생도 좀 하고···.”

“역대급으로 안 추운 겨울인데 뭐가 걱정이에요. 걱정하지 마시고 놀러 갈 준비나 잘 하세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 퇴근을 한다며 내 사무실을 나갔다.

“허···. 이거야 원. 얼른 작품을 시키든지 해야지.”

우리, 그러니까 나와 유정 씨 그리고 아우라는 12월 31일에 출발해서 1월 1일 강원도에서 아침 해를 볼 예정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멤버들을 울릴 영상들을 찾아야 했다. 데뷔 전에 고생한 것들이 방송 영상으로 나가 줘야 이게 또 감동이 있는 법!

“내가 벌린 일이니, 누구한테 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아우라를 처음부터 발탁해서 키워 낸 사람이 일대기를 만들어야 해서 눈물을 머금고 일을 하고 있었다.

지이잉···.

[발신자: 문지인 PD]

눈이 빠져라 영상을 보고 있는데, 천외딸을 담당하고 있는 고당출판사의 문지인 PD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PD님?”

[작가님, 안녕하세요. 문지인입니다.]

“네. 어쩐 일로 연락을 다 주셨는지요?”

문 PD와는 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지 통화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천외딸 마지막 회 댓글 확인하셨나요?]

“아···. 아직 못 했습니다. 어제랑 오늘 좀 바빴거든요.”

[지금 난리 났습니다. 마지막까지 따라오던 독자님들이 정말 이준형 작가냐고 해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네? 해명이요? 쓰면 쓴 거지, 그걸 왜 해명을 해야 해요?”

[그, 그게···. 말이 안 된다는 소리가 많아서요.]

“뭐가 말이 안 되는데요? 제가 이래 봬도 최고작품상을 탄 작품의 작가입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자기들은 쭌쩡 작가가 무조건 여자라고 생각했었다고, 이게 말이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네? 언제는 무공이나 무협 설정을 너무 디테일하게 해서 남자 아니냐고 의심한다면서요?”

[그건 소수였어요. 골수팬들에게 그냥 묻혔다고 봐야죠. 아무래도 그간 너무 정체를 잘 숨기셔서 그런 거 같은데요. 주인공 심리도 그렇고···.]

“아니! 그건 유정 씨가 감수를 잘해 줘서···.”

[네? 유정 씨가 감수를 했다구요?]

아차···. 이건 우리 둘만 아는 비밀인데···.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솔직히 여주인공 캐릭터의 심리 상태를 너무 잘 쓰셔서 누군가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긴 했었어요.]

“그런데 굳이 해명해야 합니까?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맞다고 하면 되잖아요. 댓글에 가서 글을 남겨 봐야 분란만 더 일어날지도 모르고···.”

[하시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요. 뭐 일단 오늘까지만 지켜보도록 하시죠.]

“네. PD님 제가 일이 좀 바빠서요. 이만 끊겠습니다.”

[네. 작가님! 수고하세요.]

나는 문지인 PD와의 통화를 종료한 뒤 천외딸에 남겼던 작가의 말을 떠올려 봤다.

‘그냥 차기작인 나만 아는 세계멸망을 사랑해 달라고 한 것뿐인데···.’

그리고 원래 내가 웹소설 작가였잖아? 다들 내가 이쪽 출신인 거 모르나? 당연히 웹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지.

나는 속으로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아우라의 영상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웹소설 작가 커뮤니티에 천외딸 관련된 이야기가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이스에 연재 중이던 ‘천마의 외동딸이 되었습니다’의 작가가 ‘나만의 세계’를 쓴 이준형 작가였음. 두둥!

-저 그 작품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화를 보고 충격···. 작가가 이준형이라니···.ㅠ

-왜 충격임? 이준형 작가라면 나름 드라마계에서 유명하던데?

-바보야. 작품이 로맨스 판타지잖아. 당연히 작가가 여자인 줄 알았겠지.

-남자 작가가 로맨스를 쓰면 티가 난다던데 이준형 작가는 아닌가 보네.

-성별 숨기고 쓰는 사람 많음.

-그래도 사람들이 끝까지 몰랐던 거 보면 되게 잘 썼나 보네. 나도 한번 읽어 볼까?

-로맨스 무협에서는 상당 기간 원톱이었음. 카오스 포함해서···. 돈을 갈퀴로 쓸어 담았을 거임.

-이준형 이새퀴 뭐지? 드라마도 히트 쳐. 영화랑 전자책으로 돈을 쭉쭉 빨더니 이제는 여성향 로맨스 판타지라고? 돌았···.

-어이어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이놈들아. 쭌쩡 작가(이준형)는 대한민국 최고의 셀럽인 나유정을 매일 본다는 거지. 항간에 소문에는 결혼해서 애도 있다더라. 고로 너희랑은 다른 차원에 있는 작가님이시라는 거다.

-애는 무슨···. 미쳤냐ㅋㅋ

“후우···.”

이러다 말겠지 하면서 그냥 신경 끄고 있었지만, 커뮤니티 갤러리에 떡밥을 문 지망생들이 많아서 그런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급기야 누군가 예전에 달동네에서 썼던 ‘나만 아는 세계멸망’을 기억하며 내 필명인 연쇄폭참마를 언급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데일리노블의 작품인 ‘세상을 멸망시킬 나의 악인’과 달동네의 양판소 헌터물인 ‘찢어져야 사는 헌터’까지 공개되었다.

그렇게 지망생들이 앞장서고 그 후 네티즌 수사대가 총출동하기 시작했다.

‘제길···. 응?’

갑자기 여동생 주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무거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냐?”

[오빠 전화 좀 똑바로 받아라. 사랑스러운 동생이 오랜만에 전화했는데 그따위로 받을 거야?]

“나 지금 기분이 별로니까 용건만 간단히 해라. 용돈 내려가니깐!”

[와! 어이가 없네요. 뒤통수를 후려갈긴 사람이 누군데?]

“뭔 소리야? 누가 네 뒤통수를 후려쳐?”

[누구긴 누구야. 당신이잖아. 이 쭌쩡 작가야!]

“뭐, 뭐야 너도 그거 봤냐?”

[오빠는 식구 뒤통수치는 게 특기야? 뭐가 그렇게 비밀이 많아?]

“뒤통수를 치다니? 난 비폭력 주의자야. 그건 그렇고 넌 웹소설 안 보잖아? 어떻게 알았어?”

[유정 언니가 소개해줘서 봤다 왜! 하여간 둘이 똑같아. 어쩜 그러냐? 나한테는 말해주면 안 돼? 무슨 카이저 소제냐고!]

“너 카이저 소제도 아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흠흠···. 재미있게 봤으면 됐지. 왜 화를 내고 그래?”

[몰라! 그냥 짜증 나. 설마 쭌쩡 작가가 오빠였다니···. 울고 싶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될 것이다.”

[나 지금 심각하다고!!]

“재미있게 봤으면 됐지. 그깟 성별이 뭐가 중요하다고···.”

[됐어! 끊어.]

뚜루룽···.

“야! 야 인마! 이주리!”

그냥 끊어버리네? 그런데 쭌쩡이 남자인 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쓰읍···.

이해가 가질 않아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웹소설 커뮤니티에 비밀에 가장 근접한 글이 홀연히 올라왔다.

[천외딸 작가 이준형 선생의 필명 ‘쭌쩡’에 대한 고찰]

이준형 작가가 드라마나 남성향 소설을 쓰다가 갑자기 로맨스 판타지로 가서 필명을 하나 더 만들었다? 뭔가 구린내가 나지 않음?

내 추측은 바로 이거임. 이 ‘쭌쩡’이라는 게 이준형의 쭌, 나유정의 쩡을 붙여서 만든 필명 아니냐? 쭌&쩡이라고···. J&J 엔터테인먼트도 그렇게 지은 거 같던데?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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