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82화 (182/263)

드디어 데뷔 (4)

“첫 번째로 그 귀환소녀라는 작품에 저희가 투자를 하고 싶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나는 초조해하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왠지 뒤에 나올 이야기가 대략 상상이 간다고 할까? 사실 드라마 계약 관련한 내용이면 이렇게 굳이 만나야 할 이유가 없는 게 사실이다. 아마도 지분 투자나 뭐 그런 거겠지.

“J&J 엔터테인먼트 지분을 CA 미디어의 자회사인 D-Studio의 주식으로 교환하고 싶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래도 내가 지분을 팔 생각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차선책을 내놓은 것 같았다. 교환이라고? 대주주 중에 누군가가 주식을 팔고 싶어 모양이지? 우호지분이라도 만들려고?

“저희 회사 지분을요?”

나는 동요하지 않고 조용히 머리를 갸웃거렸다.

“네.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전략적 제휴 관계가 되는 거죠.”

“갑자기 뜬금없군요. 지분 관련해서는 제가 저번에도 거절의 말씀을 드렸던 거 같은데요? 그래서 파트너십도 체결한 거고···.”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시면···.”

“관심 없습니다. 저는 최대한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려고 회사를 만든 거지, 누군가와 얽혀서 간섭받기는 싫습니다.”

“단호하시군요.”

“필요가 없으니까요,”

“후우···. 그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작가님을 잡았어야 했는데···.”

흔들리지 않는 내 말에 곧바로 푸념을 늘어놓는 이기훈 전무였다.

이 양반아. 그거 교환해서 뭐하게? 시가인 D-Studio하고 나중에 몇 배가 될지 모르는 우리 회사 지분하고 교환하자고? 딴에는 호의로 그러는지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는 이제 시작이라고!

나는 한숨을 쉬는 이기훈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미 후계 구도를 굳히신 것 같은데 그렇게 성과에 목매실 필요가 없지 않으십니까?”

“그렇긴 한데 작가님이 자꾸 눈에 걸리는군요.”

“제가 걸린다고요?”

그는 잠시 잔에 있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작가님이 독립하시고 어려워지면 다시 모시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제 오산이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제가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니까요.”

“...그건 좀 과장이신 거 같은데요?”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첫 작품부터 천만 영화를 만들더니 넷플릭 오리지널을 따내시더군요. 넷플릭의 눈먼 돈을 얻기 쉽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글쎄요. D-Studio를 통해 보고받기론 거기 책임자들도 작품을 보는 눈이 상당히 까다롭다고 하더군요.”

“으음···.”

“그리고 이번에 아이돌을 데뷔시키는 걸 보고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작가님의 강점은 작가로서의 재능도 뛰어나지만, 콘텐츠를 이용한 사업 수완이 더 훌륭하시다는 걸요. 아마도 이게 다가 아니겠지요.”

“글쎄요. 그다음은 잘 생각해 보질 않아서요. 그런데 너무 저를 높게 평가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제 전무님은 사장님도 되실 거고···. 가업을 이어받으셔야죠. 저 같은 잔챙이를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정말 관심 없으십니까?”

“계속 말씀드리지만, 전혀 관심 없습니다.”

이기훈 전무가 내 단호한 눈빛을 읽었는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한번 과감하게 질러 본 건데 역시 무리군요.”

그는 아무래도 지분 교환이 불가능할 것 같아 보이자 일단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명색이 다이아몬드 수저인 이기훈 전무가 이렇게까지 질척거리다니···.

그래도 이 양반은 촉이 무척 좋은 것 같았다. 내 주변의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다니···.

“농담으로 알아듣겠습니다. 흠흠···.”

“그럼 드라마 이야기나 마저 해볼까요?”

“그러시죠. 그런데 이야기에 앞서 갑자기 저희 차기작을 원하시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사실 이런 드라마는 TVM과 그다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그건 아니죠. 단지 이런 드라마가 없었을 뿐이죠.”

“설마 주 시청자층인 여성이 아니라 남성층도 공략하기로 한 건가요?”

“하하···. 정확합니다. 요즘 점유율이 답보 상태거나 오히려 빠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뭔가 기존과는 다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랄까요?”

“그 전환점을 귀환소녀로 보고 계시는 건가요?”

“꽤 새로운 시도긴 하죠.”

“소유하고 계신 제작사도 많으신데 굳이 저희 작품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하군요.”

“몰라서 물으십니까?”

“네. 궁금합니다.”

이기훈 전무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멋쩍게 물었다.

“실패가 없는 작가님의 실력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에 출연할 아우라(Aura)라는 신인 그룹도 놀라웠습니다. 딱 보는 순간 그림이 그려졌다고 할까요? 거기다 스토리도 제 흥미를 자극했습니다.”

“스토리요?”

“네. 제 생각엔 OSMU에 아주 적합한 소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드라마, 웹툰, 영화, 그리고 공연까지···. 실제 그룹인 아우라가 있기 때문에 온, 오프라인을 망라하고 콘서트까지 할 수도 있고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뭐···. 그렇다고 해 두죠.”

흐음···. 역시 이 양반 날카롭다. 당연히 리치가 끝일 리가 있나? 게이트에서 쏟아질 게 무궁무진하다. 국내 웹소설 시장에서 쏟아낸 헌터물은 수백, 수천 종을 넘어섰다.

게이트에서 터져 나오는 몬스터 웨이브 하나만 가지고도 재난 영화를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제자를 가르쳐서 새로운 히어로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몬스터를 잡고 도축을 하는 천재 셰프 같은 캐릭터 말이다. 특수 기술로 ‘몬스터 고기 중화’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웹소설 독자들에게는 식상하지만, 이게 전 세계 사람들에게도 식상한 내용일까?

물론 유치하게 만들면 망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미 우리나라의 영상 제작 능력은 할리우드와 동급이다. 제작비도 어디서든 충분히 끌어올 수 있다. 거기에 수준 높은 케이팝 콘서트까지 가능하니 일거양득이다.

“하하···. 인정하시는군요. 저는 J&J와 CA 미디어가 함께 공고한 파트너십을 체결하길 원합니다. 첫 번째 주춧돌이 될 작품이 바로 귀환소녀지요.”

“사실 그 작품은 넷플릭이나 다른 OTT 업체와 협상을 하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먹힐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전무님이 그리 말씀을 하시니 살짝 고민이 되는군요.”

내 말을 들은 이기훈 전무가 살짝 기대되는지 두 손을 잡고 비비는 시늉을 했다.

“밤 11시에 시간을 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주일에 한 편 정도로 해서 그간 저희가 소홀했던 남성 시청자층도 끌어들일 작정이고요.”

“넷플릭에도 공개할 겁니다. 물론 첫 방송은 TVM이 되겠지만요.”

“그거야 물론이죠. 저희가 만든 것도 다 그렇게 하는데요.”

그는 이제야 한숨을 돌린 모양으로 넥타이를 살짝 풀고 있었다. 아무래도 현실적인 목표를 이 정도로 생각하고 온 모양이었다. 아까 지분 인수 어쩌고 한 말은 그냥 자신의 바람이었나 보다.

나는 이기훈 전무와 대략적인 큰 틀에 대해서 구두로 협의를 맺었다. 그는 작품에 대한 투자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솔직히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는 거였지만 위험은 분산할수록 좋은 거니까.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은 없으니 이런 아군 하나쯤은 필요한 법이었다. 내 돈이 많은 거지 회사가 보유한 자금으로는 아직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 힘들었다.

지금 최선의 전략은 ROE(Return On Equity), 즉 자기자본이익률을 극대화하는 방법이었다. 이른바 경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다.

내 통장의 돈은 내 개인 자산이고, 회사의 자본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는 거다. 물론 거기에다 CA 미디어의 투자로 리스크를 회피하면서 규모를 키우는 전략이었다.

“뭐 이 정도면 대략 가닥이 잡혔군요. 역시 작가님···. 아니 대표님과는 이야기가 잘 통해서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이기훈 전무는 사업 파트너로 삼기에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든든한 배경에 재벌 3세 답지 않게 억지를 부리지 않으며 최대한 이성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결정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작가님이 아니라 대표님이라고 하시는군요.”

“아···. 제가 그랬나요?”

그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야 인정이라도 해 주겠다는 건가? 마치 국왕처럼 변경백의 작위를 인정이라도 하겠다는 모양이다.

살짝 웃기긴 했지만, 이왕 협력하기로 한 거 그냥 장단에 맞춰 주기로 했다.

“혹시 프로그램이 비는 시간이 있을까요? 협력하는 기념으로 제가 좋은 제안을 하나 할까 싶습니다.”

“오···. 제안이라···. 저번 나뮤스 같은 거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기존 걸 빼더라도 시간을 만들어야죠.”

“뭐 꼭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아닙니다. 말씀해 보세요. 경청하겠습니다.”

이기훈 전무는 적극적인 자세로 내 의견을 들으려 했다.

“어차피 내년에 방영해야 할 드라마 때문에라도 저희 아우라의 인지도를 더 높여야 할 것 같은데요. 리얼리티 쇼를 하나 할까 싶습니다.”

“아···. 리얼리티요.”

이기훈 전무의 반응을 보니 뭔가 새로운 걸 생각한 모양인데 리얼리티라고 하니 살짝 실망한 것 같았다.

“원래는 미튜브 채널에서 하려고 했던 건데, 드라마 방영 전 뮤직넷이나 TVM에서 리얼리티쇼를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뭐···. 도움이 되긴 하겠지요. 미디어에 노출될수록 대중들이 친근하게 느끼니까요.”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찍은 아우라의 영상 기록을 바탕으로 그룹의 일대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거기에 각 멤버별 특기를 살린 코너까지···. 이를테면 예원이의 힐링 먹방 ASMR 같은 거 말이다.

“지금도 신인치고는 대단한 기록을 세우고 있는데 굳이 그게 필요할까 싶긴 합니다.”

“말씀 잘하셨습니다. 전무님. 신인치고는 괜찮지만 이대로라면 다른 1티어 그룹들과 경쟁하기엔 무리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팬덤 규모가 다르거든요.”

“음···.”

“탐탁지 않으신 거 같군요.”

“탐탁지 않다기보단 요즘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워낙 저조해서···.”

이거였군. 하긴 요즘 아이돌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너무 범람해서 시청률이 바닥을 쳤지. 하지만 나는 비장의 카드가 있지 않은가?

“그거라면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나 보군요.”

“네. 있습니다. 제 생각엔 괜찮은데 전무님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군요.”

“말씀해 보세요. 경청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기훈 전무에게 나와 정주빈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와 그가 흔쾌히 출연해 주기로 약속한 캠핑에 대해 말해 주었다.

이른바 ‘어색한 캠핑’ 말이다. 그러자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이기훈 전무가 입을 꽉 다물고 나를 쳐다봤다.

“왜요? 별로 안 끌리세요?”

“아, 아니, 아닙니다.”

“그럼 왜···.”

“지금 하신 말이 사실입니까? 정주빈 씨를 섭외하실 수 있다고요?”

후후···. 왜 이리 놀라시나. 정주빈 씨는 캠핑 마니아예요. 서바이벌 마니아이자 자연인처럼 생활하시는 분이시죠.

의외로 그는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섭외가 갔으면 출연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미 미튜브용 영상을 제작하기로 양해를 구한 상태입니다. 아주 멋진 힐링용 영상을 만들기로 했죠.”

“허···.”

이기훈 전무는 질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정주빈이 누구던가. 대한민국 최고의 미남이자 많은 이들을 가슴 아프게 만들었던 주인공이다. 그런 그를 섭외할 수 있다고 하니 당황스럽겠지. 더구나 그는 영화와 CF 이외에는 어떤 공식 활동도 하지 않는 배우로 유명했으니까.

“거기다 아우라의 보호자로 저희 회사의 나 이사님도 출연할 예정입니다.”

“네? 나 이사님이라면 유정 씨 말인가요?”

“맞습니다. 벌써 장소도 다 구해 놨습니다.”

“장소요? 거기가 어딥니까?”

“정주빈 씨가 사는 강원도 정선의 집입니다.”

“네? 지, 진짜요?”

이기훈 전무는 계속 보여주던 평정심이 깨진 모양인지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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