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데뷔 (2)
미튜브 ‘Return’ 뮤직비디오 코멘트 창에는 몇 초 단위로 댓글들이 주르륵 달리고 있었다.
[댓글 정렬: 인기순]
-테리우스 팬클럽에서 왔습니다. 이든이 동생이 센터? 얼굴도 귀엽고 의상이 제일 눈에 띄네요. 신인상 가즈아! [좋아요] 254 [싫어요] 2 ▷답글 45개
-M/V 미쳤는데? 퀄리티 뭐냐? 이거 영화야?
-이거 영화가 아니라 나중에 드라마로 나온다고 함. 쇼케이스에서 밝혀짐.
-뭔가 코스프레 같은 병맛인데 시간 순삭이네. 이거 드라마로 잘 만들면 괜찮을 거 같은데?
-4대 기획사 귀싸대기를 후려치는 외모 수준 무엇?
-여기 3대장 미모 진심으로 미쳤네요.
-이게 데뷔곡이라고? 돌았···.
-평균 키가 167.8cm이네. 오랜만에 보는 자이언트 걸그룹이다. 최근으로 따지면 ‘소나기’ 이후 최고 평균 키 아닌가?
-근데 노래가 좋긴 한데 너무 강한 거 아니냐?
-케이 프로듀서가 진짜 칼을 갈았나 봄. 회사랑 불화로 친하던 슈퍼노바랑 헤어지고 질색하던 오디션 방송까지 나오더니 걸그룹을 준비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런데 확실히 음악이 신선하긴 함. 역시 믿고 듣는 케이 프로듀서답다.
-그런데 이거 메이저 기획사도 아닌데 조회수가 왜 이리 높은 거야? 조작 들어갔나?
-조작이 아니라 테리우스와 슈퍼노바 팬덤에서 움직이는 거 같음. 붉은 옷을 입은 멤버가 테리우스 정이든 동생이래.
-이런 컨셉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님. 열에 아홉은 망하는데 이건 엣지 있게 잘 만들어짐. 아무래도 수준 높은 영상과 독특한 노래 때문인 것 같다. 특이한 거 좋아하는 사람이면 열광할 듯! 왠지 모르겠는데 일본이나 서구권에서 컬트적 인기가 생길 것 같다.
-오히려 퍼포먼스가 대박인데? 이렇게 격렬하게 추면서 라이브 가능하냐? 무대에서 헉헉대는 거 아닐까?
-J&J 좀 이상하지 않음? 드라마 제작사가 어떻게 이런 애들을 모았지? 혹시 CA 미디어 자회사 아님? 비주얼 센터도 XM Ent. 출신이고, SG 뉴비즈 출신이라는 담희도 뮤직넷 ‘나뮤스’ 오디션에 나왔었잖아. 그런데 메인 보컬도 전(前) 빅샷 연습생이네? 빅샷이 출자한 인피니티 드림즈에서 테리우스를 케어하고 있잖아? 이거 뭔가 연결되는 거 같지 않냐?
-이준형 작가가 드라마 만든다고 거기랑 협력해서 뽑았나 보지.
나는 집중해서 댓글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음모 이론 신봉자인가? 무슨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고 있어? CA 자회사라니···.’
그런 상상력으로 작가를 하면 대성할 것 같은 댓글을 다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진짜 테리우스 팬덤이 움직였나 보네? 인기 댓글도 테리우스 팬에게서 나온 거고···.’
현재 테리우스가 슈퍼노바와 회사는 다르지만, 자회사 같은 개념으로 친척 취급을 받고 있어서 슈퍼노바 팬덤에서도 ‘아우라’를 주시하는 것 같았다.
이건 솔직히 얻어걸린 면이 있었다. 그냥 동생이라고 살짝 홍보만 한 건데 이렇게까지 초반에 도움이 될지 전혀 예측을 못 했으니까.
“초반에 유리가 캐리하네. 진짜 생각지도 못했다.”
도움을 주는 팬덤이 강력해서인지 같은 날 데뷔한 그룹 중에서는 제일 앞으로 치고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오케이!”
나는 댓글을 읽다가 점점 영어와 외국어가 늘어나자 머리가 어지러워 잠시 창을 닫았다.
“이쯤 해서 다른 회사 뮤비도 한번 감상해 볼까?”
나는 먼저 SG ‘글로리’의 뮤직비디오를 검색했다.
‘음···. 조회수가 괜찮네.’
글로리는 확실히 아이돌 명가, 국내 최고의 대형 기획사 출신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상당한 조회수를 기록하며 아우라의 뒤를 따라붙고 있었다.
일단 뮤직비디오를 감상해 보니 역시나 SG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련된 노래와 모던한 팝댄스곡에, 컨셉은 예상대로 걸크러시였다. 물론 SG의 전형적인 이미지에 살짝 맛만 준 거라 타 그룹처럼 완전한 걸크러시는 아니었다.
‘역시 노래가 좋네. 외국 작곡가가 썼겠지? 그런데 뮤비가 살짝 이상하네. 차리라 우리처럼 대놓고 컨셉으로 가든지···. 애매하군. 사이버 펑크인가?’
나는 미튜브 검색창에 다른 걸그룹인 ‘타니아’를 검색해 봤다. 이름만 보면 무슨 완벽한 걸크러시 혹은 섹시 컨셉 같았는데, 의외로 스쿨룩을 입고 발랄한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들고나온 것 같았다.
“어? 뭐야? 의외인데?”
그래도 소녀소녀한 감성은 아니고 인싸 말괄량이 컨셉이랄까? 내 여동생 주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뭔가 살짝 어정쩡한데? 노래도 그렇고···.”
멤버들은 전부 괜찮은데, 회사에서 뭔가 상황 판단을 잘못한 게 아닌가 싶었다. 몇 년 전에 유행하던 스타일을 그대로 들고나온 것 같았다.
‘쓰읍···. 여긴 이만하면 됐고···.’
나는 인터넷 브라우저를 끄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아무래도 3사 신인 걸그룹 중에서는 가장 좋은 기록을 남길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왠지 오늘은 꿀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다음 날 회사로 출근해 보니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음원 반응, 뮤직비디오 조회수, 화제성에서 다른 그룹들을 완벽하게 눌러 버린 것이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하하···. 다들 수고하셨어요.”
웃고 지나가는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며 5층 사무실로 들어갔다.
“대표님 오셨어요?”
“하 실장님. 애들은 스케줄 때문에 나갔나요?”
“네. 오늘 뮤직넷에서 처음으로 음악 방송이 있어서 미리 준비를 시켜 놨습니다. 숍에 들렀다가 조금 있으면 방송국으로 출발할 겁니다. 저도 오늘은 현장에 가 보려고요.”
“실장님이 고생이 많으시네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그래도 제가 그쪽에 인맥이 좀 있으니 가 보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럼 좀 수고해 주세요. 실장님.”
그렇게 하 실장을 뒤로하고 홍보팀에 들러 조아린 대리를 찾았다.
“조 대리. 어제 자료 다 정리됐나요?”
“넵! 대표님.”
조 대리는 이미 아침부터 준비했는지 손에 패드를 들고 바로 일어서고 있었다. 우리는 옆 회의실로 가서 밤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초반 분위기가 좋은데요?”
“네. 대표님. 초반 쇼케이스를 성공적으로 치러서 반응이 상당히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일등공신은 테리우스 팬덤이었습니다. 대표님 지시로 아우라 채널에 테리우스에 관련된 배너를 걸어 놨던 게 잘 먹히지 않았나 하는 분석인데요.”
“그건 누가 분석한 겁니까?”
“그냥 제가···.”
“조 대리님도 아부가 좀 늘었어요. 제가 잠깐 SNS를 뒤져 보니 이든이 녀석이 자기 동생 데뷔한다고 광고를 했던데요. 그 무뚝뚝한 녀석이 말이죠. 그걸로 테리우스와 슈퍼노바 팬들이 관심을 가져 준 것 같던데···.”
“죄송합니다. 기분이라도 좋으시라고···. 사실은 그게 맞죠.”
“어허···.”
우리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그냥 농담을 주고받는 것처럼 실실거리고 있었다.
“아무튼, 아직은 긴장을 늦출 때가 아닙니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죠. 흐흐···.”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충고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커흠···. 중요한 기사나 반응 같은 건 뭐가 있었나요?”
“넵. 제가 이슈가 된 것을 몇 개 뽑아 놨습니다. 보여 드릴까요?”
“그러시죠.”
“첫 번째로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화제성을 살펴볼 수 있는 게 바로 뮤직비디오입니다. 음원 성적은 아직 판단하기 이르고요. 현재 뮤직비디오 조회수를 보시면 아우라가 거의 더블 스코어로 글로리를 눌러 버렸습니다.”
“네. 그건 봤어요. 지금 조회수가 9백만 뷰네요.”
“확정된 건 아니지만 케이팝 데뷔 그룹 중 거의 역대급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지금 아직 올라온 지 10시간밖에 안 됐거든요.”
“그리고요?”
“그리고 기사에서는 ‘언더독의 반란’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만큼 기대를 안 했는데 여러 가지 사유로 압승을 해 버렸다는 거죠. 뮤직비디오, 외모, 의상, 퍼포먼스, 노래···. 그리고 머리를 쓴 쇼케이스까지···. SG와 카오스는 그야말로 허를 찔린 모습입니다.”
“SG는 몰라도 카오스는 뭐 신경 안 써도 되겠던데요?”
내 이야기를 듣고 조아린 대리가 피식 웃고 말았다.
“네. 실제로 아이돌 커뮤니티에서도 철 지난 컨셉을 잡았다며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나마 SG가 요즘 트랜드에 맞게 컨셉을 바꿨다며 신기해하고 있습니다.”
“그러게요. 유정 씨하고 SG에서 글로리를 봤을 때 그런 느낌이 들긴 했어요. 분명 걸크러시를 좀 넣을 것 같더라고요.”
“뭐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요즘에는 걸그룹이라도 여성 팬을 확보해야 하니까요.”
“그렇죠. 뭐 다른 건 없나요?”
“뮤직비디오를 보니 드라마도 기대가 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역시 J&J 스튜디오를 다 투입해서 영상을 제작한 보람이 있었다. 뮤직비디오는 쇼케이스에서 보여준 영상의 확장판이었다. 스토리 영상의 뒷부분과 퍼포먼스 영상을 더해서 만들었는데 편집은 엄태민 감독의 후배인 뮤직비디오 감독이 많이 도와줬다.
‘그 후배분에겐 감사의 의미로 나중에 정상적인 다른 뮤직비디오 촬영을 의뢰해야겠어.’
같이 일해 보니 실력도 출중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대표님 기사도 좀 있었습니다.”
“크흠···.”
“투데이연예 기사인데요. ‘불패의 성공 신화를 이어가는 J&J 이준형 대표. 이번엔 걸그룹까지 대박?’이라는 기사가 있었고···.”
“허 참···. 이거야 원···. 하여간 김 기자님은 부끄럽게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네. 흠흠···.”
“기분 좋으신가 보네요. 대표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세요.”
“에이···. 그런 거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조 대리님. 혹시 언론으로 특종을 터트릴 게 있으면 항상 투데이연예에 먼저 소스를 주도록 하세요.”
“······.”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원래 제 신조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예요.”
“아···. 네···. 그리고 이걸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괜찮습니다. 뭐 객관적인 숫자로 압도한 상황인데요. 뭘···.”
“데일리 연예서치 기사인데요. ‘병맛 컨셉 걸그룹? J&J는 돈이 남아도는가?’라는 글도 꽤 화제가 되었습니다.”
뿌득···.
“···그거 강기남 기자죠? 쓴 사람이요.”
“마, 맞습니다. 강기남 기자네요.”
“하···. 이 인간을 어떻게 혼내 주지? 나랑 전생에 무슨 원수가 졌다고 자꾸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 거야? 매일 우거지상을 하고 다니는 것도 맘에 안 들고···.”
“원래 전생의 부부가 현생에 원수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
조아린 대리가 내 따가운 시선을 받고 하던 말을 급히 멈췄다.
“상상만으로도 토할 거 같으니 앞으론 절대 그런 말을 하지 마세요.”
“죄송합니다. 대표님.”
잘 나가다가 데일리 연예서치 때문에 기분을 잡치고 말았다. 이럴 때 대인배처럼 쿨하게 넘겨야 하는데 아직 수양이 부족한 듯싶었다.
‘누가 그랬던가? 아무리 꽃밭에 서 있다고 해도 거기서 못을 하나라도 밟으면 아픈 건 똑같다고···.’
갑자기 회의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지이잉···. 지이잉···.
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기를 꺼내 보니 발신자가 CA 미디어 이기훈 전무였다.
‘어? 이 사람이 어쩐 일이지?’
“전무님.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이기훈입니다. 잘 계셨는지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업은 잘되고 계시는 거죠?”
[그럭저럭 잘해 나가고 있습니다. 요즘 TVM이 약간 주춤한 걸 빼면요···.]
요즘 이기훈 전무는 CA 미디어의 거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개혁을 이끌고 있고 성과도 상당히 좋아서 회장의 신임을 받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TVM이라고?
“엄살이 심하시네요. 요즘 승승장구 중이시라고 하던데요.”
[작가님만큼은 아니죠. 역시 작가님은 제가 품기에 너무 커다란 존재였나 봅니다.]
“하하···. 아직 2류 기획사입니다. 많이 부족하죠.”
[엄살은 작가님이 더 심하신 거 같은데요? 처음부터 천만 영화를 떡하니 만드시질 않나···. 최근에는 단독으로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만드신다는 소식도 있고···. 또 어제는 아이돌 그룹까지 성공적으로 데뷔시키셨다죠?]
“아이돌 그룹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요즘 쟁쟁한 일류 그룹들도 너무 많구요.”
[에이···. 저도 그 뮤직비디오 봤습니다. 귀환소녀라···. 흥미롭더군요. 혹시 그 드라마 다른 곳이랑 계약이라도 돼 있나요?]
‘헉···. 설마 CA 쪽으로 가져가려고 하는 건가? 너무 웹소설 감성이라 TVM하고 안 맞을 텐데···.’
솔직히 귀환소녀도 넷플릭 오리지널 시리즈로 생각하면서 기획하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설마 이기훈 전무가 이 시리즈를 원하다니···.
“계약은 아직입니다. 그냥 기획 단계라서요.”
[그럼 잘됐군요. 조만간 한번 만나서 작품에 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시죠. 우리가 남입니까? 금전적으로 엮이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친척 같은 사이 아닙니까?]
“네? 친척이요?”
이 양반이···. 아무래도 우리 아우라가 잘될 거 같으니 숟가락을 얹어 볼 심산인 것 같은데 말이지. 흐음···. 이를 어쩐다? 아!!
[꼭 그게 아니더라도 다른 일로 겸사겸사 안부 인사라도 하면 좋죠.]
“일단 이 자리에서 뭘 약속드릴 순 없지만 언제 한번 식사라도 하시죠.”
[좋습니다. 편한 시간을 말씀해 주세요. 바쁘실 테니 제가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이기훈 전무의 전화를 끊었다. 그와 전화를 하다가 귀환소녀를 빌미로 그룹을 홍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힘들게 미튜브를 시작할 게 아니라 아예 리얼리티 방송에서부터 시작할까?’
나는 아우라가 정주빈과 함께 캠핑을 떠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오케이. 제목은 아주 어색한 캠핑이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