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79화 (179/263)

드디어 데뷔 (1)

내 차기작이 하나 더 있다는 게 밝혀지자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 벌써 포탈에 기사들이 속보로 전해지고 있었다.

아우라에 대한 소식이 기사로 뜨고 있는 가운데, 내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앞으로 나갔다.

“자리가 세팅되면 바로 대본 리딩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배우분들은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우라의 쇼케이스가 끝나고 곧바로 ‘나만 아는 세계멸망’ 대본 리딩이 이어졌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대본 리딩을 하는 게 어색한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점점 적응되는 듯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먼저 김호진 PD가 소감과 포부를 말하고, 나는 그냥 차분하게 배우들에게 인사하며 가벼운 농담을 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후유···. 제가 요즘 일이 많아서 꼭 좀비가 된 거 같네요. 얼굴 보이시죠? 저 뺨이 이렇게 홀쭉해졌습니다. 아무래도 드라마 촬영 때 좀비 엑스트라로 참여해야 할 것 같은데요?”

하하하···.

“만약 출연하시면 제가 작가님 뚝배기를 깨는 영광을 가져도 되겠습니까?”

김형탁이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툭툭 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는 손을 들어 검지로 그를 가리켰다.

“돌머리라 힘드실걸요?”

“그럼 오함마로 깨질 때까지···.”

“언제든 대본이 변경될 수 있다는 거 다들 아시죠? 제가 대본 고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릅니다. 정말입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헛···. 방금 한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저 대신 건호 씨가 하겠답니다.”

“억···. 명백한 음해입니다. 저는 그냥 작가님께 물려서 노예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건호 씨 그건 뱀파이어고요. 좀비는 그냥 같은 괴물이 되는 겁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제가 작가님을 생각한다는 거죠.”

“아주 재미있게 노시는군요.”

이건호가 말을 마치자 정주빈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파바바박 하며 기자들의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그는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위와 무대 앞을 향해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복귀한 정주빈입니다. 요즘은 대본 리딩 현장이 이런가 보군요. 제가 하도 드라마를 안 한 지 오래돼서···.”

하하하···.

그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대본을 읽어 봤지만 제가 아무래도 인생작을 만난 것 같습니다. 작품에 누가 안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염을 밀고 예전의 깔끔한 모습으로 돌아온 정주빈은 외모부터 남들과 차원이 달랐다.

‘진짜 잘생겼다.’

남자인 나도 그저 멍하니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정주빈에 대한 기자들의 취재 경쟁이 아주 치열했다. 멋진 사진을 얻기 위해 좋은 위치로 카메라를 계속 들이밀었다.

‘저거 저러다 줄 무너지는 거 아냐?’

그 정도로 취재 열기가 아주 뜨거웠다. 도시 전설이 될 정도로 비밀스러운 행보를 취했던 그였기에 이렇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정주빈이 자리에 앉고, 이희진이 일어나 인사를 하고, 그다음으로 이수현과 정혜성 등 조연 배우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모두 인사를 마친 뒤 차분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대본 리딩이 시작됐다. 다들 베테랑이라 그런지 마음에 쏙쏙 드는 연기를 보여 줬다.

특히 주인공인 정주빈은 그냥 작품 속 캐릭터가 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여주인공인 이희진의 발암 돋는 연기까지···.

‘참···. 내가 배우 하나는 기가 막히게 뽑았다.’

정말 만족스러운 대본 리딩이었다. 촬영만 잘하면 흥행은 무리가 없을 정도로 합도 잘 맞고 배우들의 연기력도 훌륭했다.

대본 리딩이 끝나고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역시나 질문의 70~80%는 정주빈에게 집중됐다.

[은둔 생활을 마치고 이제 정식 복귀인 겁니까?]

“일단 이 작품만 촬영할 계획입니다. 다른 계획은 없습니다.”

[대본도 안 보신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준형 작가의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요?]

“평소에 관심이 있던 장르였고 대본이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이 작가님의 전작도 너무 재미있게 봤고요.”

내가 어떤 짓을 해서 주빈 씨를 꾀었는지 밝힐 순 없었다. 수현 씨 매니저로 위장하고 강원도 정선의 집까지 찾아가서 강제 컴백을 시켜 놓은 건데···.

‘주빈 씨가 이대로 은퇴했으면 본인은 물론 우리나라 연예계의 손실이야. 암···.’

그 뒤로 많은 질문이 이어졌고, 정주빈은 무덤덤하고 담백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역시나 민감한 질문도 나왔다.

[조심스럽지만 복귀하셨으니 질문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힘들었던 과거를 다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미 일 년 전부터 상태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등산도 다니고 목공예도 하고 캠핑도 했습니다. 자연과 부대끼며 살았었죠.”

‘암요···. 완전히 벙커에 틀어박혀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찍고 계셨죠.’

“어제 세아를 찾아가 새 작품에 출연한다고 알려 줬습니다. 아마 하늘에 있는 세아도 제가 작품 활동을 하는 걸 바라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과감히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가 좋아하는 작품으로 복귀하자는 생각을 했고, 그게 바로 이준형 작가님의 신작이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이수현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정주빈을 촉촉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아직도 짝사랑만 하는 듯했다.

‘수현 씨도 참···.’

하지만 내가 둘 사이에 끼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조용히 응원만 할 수밖에···.

그리고 다음으로 이희진에게 질문이 이어졌는데 특히나 연기 논란에 대한 질문이 있어서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졌다.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소감이 궁금하고, 전작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 주고 싶으신지요?]

“···작가님께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셔서 정말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제 본모습을 유감없이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작년 드라마 신인상 수상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녀의 굳은 의지가 보이는 인터뷰였다. 이후로도 여러 질문이 오가고 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그렇게 저녁이 되어서야 행사가 끝이 났다.

“어우···. 피곤하다.”

온종일 긴장해서 그런지 온몸이 뻐근했다. 나는 아우라가 있던 대기실로 들어갔다. 멤버들은 이미 편한 사복으로 갈아입고 조용히 소파와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얘들아, 뭘 그리 열심히 보고 있니?”

“어? 대표님! 저희 쇼케이스 기사랑 반응 살펴보고 있었어요.”

“그게 그렇게 궁금하니? 잘했으면 칭찬받고 못했으면 욕먹고 그러는 거지.”

“욕은 안 먹을 것 같아요.”

“분위기는 좋은가 보지? 그런 건 이제 그만 쳐다봐. 일단 쇼케이스를 잘 끝냈으니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와!!”

아우라 멤버들은 배가 고팠는지 큰 소리를 질렀다.

“나 이사님이 가게 예약해 놨으니 얼른 짐 챙겨서 나가자.”

“왜, 왠지 마지막 만찬인 거 같은 느낌이 들어.”

이런 건 아주 촉이 날카로운 리리였다. 최대한 스케줄을 잡으라고 지시했으니 오늘 쇼케이스를 하고 반응이 오면 상당히 바빠질 게 뻔했다.

* * *

이곳은 예전에 내 동창회가 있었던 고깃집이다. 음식도 깔끔하고 방을 잡기도 수월했다.

“와! 맛있겠다.”

나유정과 나는 소고기를 구워 멤버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오늘 수고했다. 많이들 먹고 힘내라.”

“감사합니다. 대표님, 이사님.”

모두 정신없이 고기를 폭풍 흡입하고 있었다. 유정 씨와 나는 그 모습을 부모의 마음으로 빙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는데 서로 피식 웃고 말았다.

어느 정도 고기를 배부르게 먹은 뒤 후식으로 밥이나 면을 먹는 중이었다.

“이제 밥도 거의 다 먹은 거 같으니 내가 한마디 해도 될까?”

“네! 대표님.”

오늘은 회식하면서 각자 어떤 콘텐츠를 할 건지 아이디어를 들어 보려고 했다. 이미 유정 씨와도 이야기한 사항이었다.

“대표님. 시작에 앞서 제가 당부의 말을 전하고 싶어요.”

갑자기 유정 씨가 먼저 말을 한다고 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가 말을 시작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네. 그렇지? 그런데 앞으로 많은 힘든 일들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내가 아이돌은 아니지만 옆에서 본 것도 있고, 블랙소울의 이야기도 들어 보니 활동 중에는 거의 극한 직업이더라.”

맞는 이야기였다. 내가 그런 사생활이 하나도 없는 지옥 같은 생활을 테리우스와 같이 해 왔으니까.

아우라 멤버들은 나유정의 얼굴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딱 한 가지만 부탁할게. 아무리 바쁘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야 해. 주변 사람이란 너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말해. 팬들까지 포함해서 말이야. 아까 봤는지 모르겠지만, 대표님이 기자님들 상대하는 거 봤니? 직접 홀 앞에서 일일이 인사하고, 너희들 홍보하고, 악수하고···.”

갑자기 내 이야기를 하다니···. 살짝 민망해지려고 한다.

“나도 예전엔 이런 걸 잘 하지 못했어. 그래서 사고가 있었을 때 별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더라.”

그녀는 조곤조곤 자신의 예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오직 연기만 하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했다. 물론 그 당시 나유정은 모친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었기 때문에 정서가 불안한 상태였다는 걸 고려해야 했지만, 많은 부분을 자기 탓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대표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저 그런 연예인인 중 한 명이었어. 아주 외로웠고 또래 친구들도 하나도 없었지. 그렇게 차갑게 구는데 누가 옆에 있었겠니. 나라도 안 거들떠봤을 거야. 그런데 우리 대표님은 다르더라. 너희들도 느꼈겠지만, 너무 따뜻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야. 같이 있으면 감화가 된다고 해야 하나? 내가 오랫동안 지켜봐 와서 알아.”

그녀는 나를 살짝 쳐다보고 다시 아우라를 바라보았다.

‘허어···. 왜 이러지. 느낌이 좀···. 나를 너무 띄워 주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간단해. 대표님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잘할 것! 딱 한 가지야. 알았니?”

“네! 이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흰 인성 빼면 시체거든요.”

“담희야. 진짜 너만 잘하면 된다. 그런 얼굴로 밑도 끝도 없는 농담 좀 그만하고···.”

“힝···. 대표님은 나만 미워하셔.”

갑자기 우는 시늉을 하며 상 위에 엎어지는 담희였다.

“담희야. 너 불판에 머리카락 탄다.”

“악! 안 돼!”

담희가 기겁을 하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뻥이야···.”

“큭큭큭···.”

갑자기 개그 콘서트 분위기가 되며 분위기가 다시 가벼워졌다.

“내가 나 이사님 말씀처럼 좋은 사람인 줄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야 한다. 나만 잘나서 잘나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 그걸 무조건 명심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미튜브 채널 컨텐츠에 대해서야. 내가 저번에 생각해 보라고 했는데 좋은 아이디어 있니?”

“······.”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하는 걸 보니 아직 결정을 못 내린 것 같았다.

“저기···.”

“어. 그래, 예원아. 생각 좀 해 봤어?”

“제가 아무래도 요리가 특기다 보니 그런 걸 해 보면 어떨까 싶어서요.”

‘오호! 역시···.’

예원이의 컨텐츠는 내 아이디어와 일치했다. 나는 예원이가 직접 요리를 하면서 먹기도 하는 힐링 먹방 ASMR을 상상하고 있었다. 어차피 촬영과 편집은 회사의 전문가들이 있으니 이용을 하면 되고···.

“좋은 생각이야. 구체적으로 말해 볼래?”

“제가 평소에도 멤버들에게 요리를 해 주니 그걸 찍으면 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이사님과 대표님에게 음식을 해 주는 컨텐츠를 해도 되고···.”

“어디서?”

“글쎄요. 나 이사님 댁이 좋지 않을까요?”

헉···. 뭔가 그림이 이상하다. 잘못하면 또 스캔들이 날 수도 있는···.

“그거 꽤 괜찮은 아이디어인데?”

고개를 돌려서 유정 씨를 쳐다보니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니···. 무슨 부모님 식사 차려 주는 것도 아니고···.”

“뭘 그렇게까지 생각해요? 그냥 예원이가 해 주는 요리를 맛있게 먹으면 되지.”

이 사람이 아이돌 굿즈 다 정리했다고 이제 너무 당당한 거 아냐? 그녀는 사무실에 입주하면서 집에 있던 아이돌 관련 물품들을 회사 창고에 보관하는 중이었다.

“이, 일단 알았어. 생각해 보자. 당분간은 그룹 홍보하느라 방송 출연을 많이 해야 할 테니 정신이 없을 거야.”

일단 말 그대로 방송을 돌린 후 활동을 마무리할 때쯤, 정주빈 씨와 캠핑을 하는 영상을 하나 제작하고 멤버별 컨텐츠를 해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회식을 마친 후 애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와 시계를 보니 12시였다. 음원은 저녁 6시에 공개됐고 이제 뮤직비디오가 올라올 차례였다. 쇼케이스도 3사가 같이 했으니 뮤직비디오도 같이 올라와 조회 수 경쟁이 시작될 거 같았다.

“일단 좀 씻고···.”

나는 따뜻한 물로 길게 샤워를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뮤직비디오 조회 수를 클릭했다.

“헉! 벌써 100만?”

1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100만이라니···. 케이팝 데뷔그룹의 24시간 뮤직비디오 조회 수 신기록이 아마 1,400만 뷰 정도 될 텐데 그에 근접하는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댓글들도 하나같이 미쳤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세계 각국 팬들의 코멘트까지 주르륵 달리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