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78화 (178/263)

쇼케이스 (2)

스크린에 나타난 붉은색의 귀환소녀(歸還少女)라는 글씨가 피처럼 흘러내리며 사라지고 있었다.

‘오! CG 효과 좋다.’

어두워졌던 조명이 살짝 밝아지자 다섯 명의 실루엣이 무대 위에 나타났다.

음산한 일렉 기타 사운드가 홀에 울려 퍼지자, 아우라의 멤버들이 포메이션을 형성하고 마치 롤러코스터와 같은 움직임으로 멋진 안무를 펼쳤다.

강렬한 인트로가 나오다 갑자기 음이 뚝 떨어지며 벌스 부분이 시작됐다.

먼저 장예원이 스타트를 끊었다. 대중들의 시선을 한눈에 모으는 얼굴 천재가 멋진 표정으로 앞으로 치고 나왔다.

[힘든 시간 동안 너를 위해 버텨 왔어

텅 빈 허무를 건너 겨우 돌아온 이곳]

지구로의 귀환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 두 가지 의미를 담은 가사였다.

‘역시 우리 센터야. 나이스!’

꽉 쥔 주먹에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후우우···.’

스크린에 클로즈업된 예원이의 얼굴을 보니 마치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아름다움과 카리스마가 공존하는 표정으로 눈빛이 아주 강렬했다.

‘와···. 역시 연기력은 예원이가 압도적이네.’

그다음으로 리드 보컬인 담희의 파트가 이어졌다. 스크린에 비친 담희에게서 청순함과 신비로움이 느껴졌는데, 마치 예전 홍콩 영화 ‘천녀혼’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

‘어우···. 미쳤다.’

벌스 부분이 끝나면서 곧바로 정유리의 랩 파트가 이어졌다. 우선 1절은 한국어로 하는 랩이었는데 톤이 좋고 플로우가 독특해서 가사가 귀에 팍팍 꽂혔다.

오오!!

특이한 형태의 랩이 나오자 사람들이 입을 벌리며 놀라워했다. 유리는 평소엔 귀여운데 랩을 할 때는 괴물처럼 돌변했다.

‘음···. 랩을 이렇게 잘할 줄은···.’

그렇게 랩이 끝나자 갑자기 음이 변하며 다시 벌스 부분이 이어졌다. 곧바로 이지령이 시크한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과시했다.

정말이지 뼛속까지 얼려 버릴 듯한 시린 표정이었다.

‘다들 표정도 좋고 춤도 잘 추고 라이브도 잘하고···.’

사실 타이틀곡 ‘Return’은 후렴구를 제외하고는 아주 뛰어난 가창력을 요구하는 곡이 아니었다. 하지만 격렬한 댄스 때문에 라이브가 힘든 곡임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로 라이브 무대를 소화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었다.

드디어 1절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시작됐다.

그 강렬한 덥스텝 사운드와 함께 리리의 엄청난 성량의 고음이 마이크를 타고 스피커로 퍼져나갔다. 정말 또래에서는 노래로 진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라이브 실력이었다.

‘와···. 홀에서 라이브로 들으니 장난 없구나. 건물이 흔들리는 거 같네.’

옆에 앉아 있는 SG 출신의 희진 씨도 손으로 입을 가리고 무대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뭐지 하는 표정이었다.

2절의 첫 타자는 정유리였다. 이번엔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 랩이 시작되었는데, 랩을 잘 모르는 나도 유리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옆에 앉은 김형탁이 끝내준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Yeah!!”

유리는 영어 랩이 끝나 갈 무렵, 갑자기 손을 들어 검지와 중지를 허공으로 향했다. 그러자 무대 스크린에서 작은 불덩이가 나타나더니 화르르 불씨가 커지기 시작했다.

“오오!! 대박!!”

화려한 CG 연출로 주위가 불타오르는 신기한 장면이 펼쳐졌다. 정유리는 관객석을 보고 그 불덩이를 던지는 포즈를 취했다. 그 불덩이는 갑자기 거대해지며 마치 앞으로 쏘아지는 듯한 효과를 냈다.

CG를 이용하니 확실히 불 마법사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었다. 핏빛 위저드 의상을 입은 유리가 다시 손을 들자 이번엔 여러 개의 불꽃이 춤을 췄다.

‘플레임이군···.’

플레임이 허공에서 불타오르자 정유리의 의상에 있는 기하학적 무늬가 살짝 드러났다. 조명이 강하게 비치면 자연적으로 숨겨진 무늬가 드러나도록 고안된 의상이었다.

‘확실히 이번 타이틀곡에서 유리의 임팩트가 크군. 테리우스 팬덤이 좋아하겠는데?’

유리가 보여 준 화려한 마법 영상과 능숙한 랩이 큰 화제가 될 것 같았다. 심지어 아우라 다섯 명 중 네 명이 어두운 색 계열의 의상인데, 혼자만 핏빛 의상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유독 돋보이고 있었다.

‘음···. 센터는 예원이인데···. 왠지 그 자리를 빼앗겨 버린 거 같네. 뭐 어쩔 수 없지. 현재 최고의 이슈는 유리가 맞으니까.’

철저히 반응까지 계산해서 만든 CG였다. 공연 중 어떤 영상이 나와야 가장 큰 효과를 볼 것인지 토론 끝에 나온 결과물이었다.

멤버마다 특수 효과가 다 나오면 좋을 텐데, 뮤직비디오도 CG 작업이 급하다 보니 하나만 등장시킨 것이다.

그다음 리드 보컬들의 브릿지가 나왔다가 다시 비트가 빨라지며 강력한 덥스텝 사운드의 폭격이 이어졌다.

거기에 터지는 리리의 초고음!

‘크으···. 소름 돋아.’

다섯 명의 그레고리오 성가 같은 웅장한 합창이 이어지며 고조됐던 음이 갑자기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마무리됐다.

노래가 끝난 악수홀에 정적이 찾아왔다.

배우들과 기자들은 전부 넋을 놓고 무대를 쳐다보고 있었고, 기자들의 카메라만 돌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는데, 쇼케이스가 이런 식으로 화려하게 진행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자칫 잘못하면 병맛으로 보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퍼포먼스에 공들인 게 주요했다. 최고의 곡, 안무, 의상, 멤버가 완벽하게 조합되니, 마치 예술로 승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정도 수준의 공연을 펼친 아우라 멤버들이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이건 레전드다.’

내가 슬며시 눈치를 보면서 박수를 치자 홀에 모여 있던 사람들도 따라서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

휘이익~

감동을 한 나머지 휘슬을 부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김형탁!

“이 대표님. 아니, 준형아. 뭐냐 이거? 완전히 약 빨았는데?”

“왜요. 좋았어요?”

“미쳤어. 그냥 내 취향 저격이야. 노래, 안무, 외모, 컨셉 모두 완벽해! 무슨 게임 속에서 튀어나온 그룹 같아.”

‘아···. 맞다. 이 형 원래 게임광이었지? 요즘 개인 방송도 엄청나게 잘나간다고 하던데···.’

“그럼 홍보 좀 잘 해 주세요. 하하···.”

“아우라(Aura)는 이제 내 원픽이다! 이거 앨범 언제 나오니?”

“에이···. 형은 나중에 공짜로 드릴게요.”

“아냐. 내가 너 때문에 집안을 다시 일으켰는데 앨범은 사 줘야지.”

“그거보다는 홍보 좀···.”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무대에서는 나유정이 쇼케이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어떠셨나요? 충격적이시죠? 저도 이렇게 큰 무대에서 보니 감회가 남다르네요. 우리 아우라 멤버들 수고 많이 하셨어요. 이쪽으로 좀 오세요. 자···. 리더. 오늘 무대를 펼친 소감 한마디 해 주세요. 지금 숨이 너무 찬 거 같은데 심호흡 좀 하시고···.”

나유정은 격렬한 안무를 마친 뒤 숨을 가다듬고 있는 리더 이지령에게 소감을 물었다.

“네.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찾아와 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얘들아. 인사하자. 하나 둘 셋!”

“감사합니다!”

리더도 살짝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신인치고는 꽤 능숙하게 대답을 하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데뷔를 이뤘기 때문에 이 자리가 더욱 값집니다. 열심히 해서 점점 더 사랑받는 아우라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잘 들었습니다. 옆에 불 마법사 정유리 씨. 아까 무대에서 불덩이를 막 쏘던데요.”

“넵! 불 마법사 정유리입니다.”

“컴퓨터 그래픽과 안무 싱크로가 아주 잘 맞던데요?”

“영상과 동작을 맞추기 힘들었는데요. 오늘은 꽤 잘 맞춘 거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유리 씨는 테리우스 정이든 씨의 친동생으로 알려졌는데요. 혹시 지금 오빠가 보고 있을까요?”

“제가 어제 스트리밍으로 꼭 보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럼 보고 있을 오빠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오빠! 지금 보고 있지? 나 잘했어? 더 열심히 해서 자랑스러운 동생이 되도록 할게. 나중에 봐. 아 참. 곡은 언제 써 줄 거야? 잊어버리면 안 돼. 안녕~”

정유리는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뭔가 현실성이 없는 캐릭터랄까? 최근 미튜브 게임방송을 한다며 방구석 폐인이 된 내 여동생 주리와는 아주 상반된 모습이었다.

“네. 잘 들었습니다. 정이든 씨, 이거 보고 계시면 곡을 꼭 주셔야겠네요. 하지만 우리 천재 프로듀서인 케이 작곡가님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거 명심하시고요.”

“아앗···. 죄송합니다. 프로듀서님.”

으하하···.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천진난만한 정유리의 매력에 취한 아재들의 너털웃음이었다.

“케이 프로듀서에게 불만 있으면 저에게 따로 말을 해 주세요. 제가 조치해 드리겠습니다.”

“아, 아니에요.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

당황하는 유리를 보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나유정은 자연스럽게 멤버 한 명씩을 기자들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예원이는 권사로서 화려한 태권도 발차기를 선보였으며 담희의 애교와 리리의 솔로 커버 곡도 소개되었다.

그렇게 멤버 소개가 끝나고 커플링곡과 커버곡까지 부른 뒤 무대가 끝났다. 그야말로 100% 연습한 것을 모두 다 보여 준 무대였다.

* * *

그 후 나는 유정 씨의 소개로 무대에 올라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녕하십니까? 주간연예의 성진원 기자입니다. 오늘 공연 아주 잘 봤습니다. 솔직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멤버들도 뛰어나고 케이 프로듀서의 곡도 좋았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준비를 하셨는지 궁금하고, 이렇게까지 예산을 쏟아부어서 영상과 컨셉을 만드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 먼저 칭찬 감사드립니다. 답변하자면 우리 아우라는 메인 보컬 한 명을 빼고는 제가 예전부터 눈여겨보던 인재들이었고, 회사를 세우자마자 계약을 해서 1년간 철저한 트레이닝을 받았습니다. 이미 회사를 세우기 전부터 계획이 있었다는 소리죠.”

나는 잠시 뜸을 들이며 좌중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투자를 해서 영상과 컨셉을 만든 이유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다른 그룹과 경쟁하더라도 괜찮겠다는 자신감입니다.”

계속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그들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을 이어 갔다.

“안녕하십니까? 데일리 연예서치의 강기남 기자입니다.”

“네. 강 기자 님, 오랜만입니다. 질문해 주시죠.”

데일리 연예서치!

항상 기사로 내 작품에 딴지를 걸고 유정 씨와 나에 대해 열애설을 자꾸 퍼트리는 짜증 나는 매체였다.

“인지도가 부족하다는 걸 아주 잘 아시는지 대표님이 머리를 잘 쓰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쇼케이스는 잘 봤고요. 곡이나 실력은 뭐···. 괜찮은 거 같네요. 그런데 말이죠.”

강기남 기자가 질문하다 말고 손가락으로 코를 긁고 있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왜 이런 마이너한 컨셉을 잡으셨는지 궁금하고···. 귀환소녀라고 했나요? 아까 글씨가 나오던데···. 과연 이런 스타일이 통할 거라고 보시는지 대표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말은 그럴듯하게 했는데 왜 마니아들이나 좋아할 컨셉으로 데뷔를 시키느냐는 뜻이었다.

“기자님. 최근에는 유정 씨와 제 기사를 별로 안 쓰시던데요. 그건 일단 감사드리고요.”

하하하···.

내 가벼운 농담에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질문에 대해 답변드리겠습니다. 아까 보신 스크린에서 나온 영상은 단순한 뮤직비디오 인트로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아까 영상으로 나왔던 귀환소녀(歸還少女)는 저희가 차기작으로 제작을 준비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네?”

웅성웅성···.

내 폭탄 선언에 기자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아니···. 지금 넷플릭 7부작을 제작하신다던데···.”

“물론 그것도 만들고, 이 작품도 조만간 제작에 들어갈 작정입니다. 연출해 주실 감독님도 구했고 제작팀도 계속 충원을 하는 상황입니다.”

“허···.”

“그리고 아우라 멤버 다섯 명은 전원 연기가 가능한 연기돌입니다.”

“호, 혹시···. 이 작품도 작가님께서 직접 쓰신 건가요?”

“네···. 맞습니다. 이 작품은 제작을 마치고 추후 드라마로 공개될 예정입니다.”

내 말에 카메라의 플래시가 팡팡 터지며, 노트북을 두드리는 기자들의 타이핑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흐음··· 이 정도면 성공적이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