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력전 (2)
아우라 데뷔 준비 TFT 회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사전에 인지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물꼬를 터 주자, 회의 분위기가 한결 편안해지면서 팀별 안건이 순조롭게 토의되고 있었다.
“곡이 나왔으니 안무 시안을 만들어야 하는데요. 제가 직접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 유 팀장님. 감사합니다. 바쁘신데 안무 시안까지···.”
“아무래도 제가 데뷔시키는 팀이라 그런지 애착이 큽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하···.”
유상준 트레이너라면 오래전부터 인기 있는 팀의 안무를 만드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아이돌 메이커에 나와서 활약을 했기 때문에 인지도가 상당히 높았다.
“안무는 우리 팀장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다고 하시니 마음이 놓이네요.”
다음은 매니지먼트 팀 차례였다.
“일단 매니저를 더 충원해야 합니다. 경력직으로 더 채용할 예정이며, 헤어/메이크업 담당은 이미 채용한 상태라 스타일리스트만 충원하면 됩니다.”
“스타일리스트라.”
아이돌의 완성도에 방점을 찍는 패션 혹은 아웃핏!
현재 케이팝의 정점을 달리고 있는 그룹은 곡, 보컬,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헤어, 메이크업, 의상, 액세서리 하나하나까지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모든 것이 최고의 상태로 조합된 이들이 바로 1티어 아이돌이었다.
컨셉이 독특한 아우라의 경우 의상의 세부적인 설정이 매우 중요했다.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한 모습과 판타지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춰 나가려면 감각 있는 인재가 필요했다.
‘으음···. 아무나 함부로 쓸 수 없겠는데? 컨셉의 난이도가 일반 아이돌보다 어려우니 의상 선택이 상당히 까다롭겠는걸?’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옆에 있던 유정 씨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외부 활동을 하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입고 있었다.
‘역시 우리 유정 씨는 꾸미면 최강이야. 오늘 의상도 아주 훌륭···. 응?’
나는 유정 씨가 입고 있는 의상을 보다가 그녀가 이용하는 숍인 Jung's gallery에서 봤던 막내를 문득 떠올렸다.
‘이름이 김규빈이였던가? 보라색 아우라가 장난 아니었는데···. 지금도 거기서 일하려나?’
“나 이사님. 혹시 Jung's gallery의 막내 직원이 아직도 일하고 있나요?”
“막내요?”
“예전에 시상식에 하고 갈 귀걸이를 빠트렸던 그 막내요.”
“그 막내는 왜요?”
“글쎄요. 패션 디자인을 배운 것 같고, 옷도 느낌 있게 잘 입고 다녔던 게 기억이 나서요.”
“하긴···. 하고 다니는 거 보면 범상치 않았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그만둔 것 같던데요. 자주 혼났나 봐요. 그쪽 업계가 원래 처음에는 좌충우돌하면서 크거든요. 많이들 그만두더라고요.”
“혹시 Jung's gallery에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없을까요?”
“당연히 있겠죠. 채용하시려구요?”
“일단 포트폴리오나 면접을 보고 결정해 봐야죠.”
나는 아직도 그 숍에서 봤던 보라색 아우라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정도라면 대단한 창의력을 가지고 있을 게 뻔하니 우리 ‘아우라’의 독특한 스타일과 의상 컨셉을 창조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스타일리스트 월급이 아주 적다죠? 저희는 무조건 2배 드린다고 하세요. 능력이 검증되면 더 드릴 용의도 있고.”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뭐 물론 본인의 의사가 더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그 후로 차량 문제라든지 이런저런 자잘한 이슈들이 나왔고,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제 거의 모든 사항이 논의된 거 같은데요? 혹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
“없으면 이만 TFT 회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우르르···.
장장 두 시간 동안 이루어진 회의가 끝나고 직원들이 회의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조 대리님? 오늘 나왔던 내용은 진행이 잘 되는지 정리해서 주마다 보고해 주세요. 한 달 안에 준비가 모두 완료되어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주차별로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아린 대리와 케이까지 회의실을 빠져나가며 나와 나유정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그녀는 유인물을 챙기다 말고 나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거예요?”
나유정이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원래 이때쯤 데뷔시키려고 했어요. 준비가 거의 다 된 거 같기도 하고···.”
“언제 그런 걸 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전 아까 설명해 준 컨셉이 맘에 들었어요. 준형 씨다운 그런 거요. 거기다 노래하고 매치가 되니 뭔가 설득된다고 할까?”
‘나다운 거라···.’
“괜찮았죠?”
“네. 전 좋았어요.”
“걸그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유정 씨가 괜찮다고 할 정도면 성공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치···. 또 남자 아이돌만 좋아한다고 디스하는 거예요?”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그런데 SG랑 정면 승부를 해도 괜찮을까요?”
“괜찮아요. 저를 믿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글로리보다 성적이 좋지 못해도 괜찮아요. 우린 드라마가 있잖아요.”
“그렇긴 하죠.”
“그리고 아이돌 시장에는 좋은 경쟁자가 필요해요. 서로의 팬덤이 경쟁하면서 시장의 파이를 키우거든요.”
“아···. 하긴···. 예전에도 라이벌 그룹끼리 경쟁이 장난 아니었죠.”
“언제요? 10년 전에? 그때 누구 팬이었어요? 미국에 있을 때 아닌가?”
“비밀입니다. 후후···.”
나는 싱그럽게 웃고 있는 유정 씨의 미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당시 그녀는 누구를 좋아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얼굴을 보니 오늘은 차분히 앉아서 타이틀곡의 가사를 써야 할 것 같았다.
* * *
나와 케이는 아우라를 녹음실로 호출했다. 갑작스러운 호출로 멤버들은 긴장을 하는 눈치였다.
“긴장할 필요 없어. 데뷔곡이 나왔기 때문에 너희를 불렀다.”
“와!”
“Yes!”
케이가 옆에서 출력된 악보를 나눠 주었다. 아우라 멤버들은 악보를 조심스럽게 받아들고 자신의 파트를 확인하고 있었다.
“먼저 곡을 한번 쭉 들어 볼 거야. 가이드 보컬 녹음은 안 했으니 악보를 보면서 들어 봐. 알았지?”
“네!”
다들 기대감에 찬 얼굴이었다.
“대표님. 저번에 말해 주신 컨셉으로 계속 가는 건가요?”
막내인 예원이가 손을 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왜? 싫으니?”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대표님! 컨셉 설명을 듣고 예원이가 집에서 울었어요.”
“야! 김담희. 넌 말을 어떻게 그렇게 지어내니? 아니에요. 대표님. 그냥 걱정만 살짝 했어요. 그런데 쟤가 자꾸 울었다고 말을 날조해요. 믿지 마세요.”
“아닌데···. 누구랑 전화하면서 막 울던데···.”
“바보냐! 아빠랑 전화했다. 왜!”
“아···. 그래? 난 또 컨셉이 너무 싫어서 우는 줄 알고. 히히···.”
“이게 확!”
내가 손을 들어 둘의 폭주를 제지했다.
“쉿···. 다들 조용히 해라. 곡 제목은 ‘Return’이야. 한국말로는 귀환인데···. 드라마하고 이어지기도 하고, ‘사랑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어.”
“오!”
“일단 들어 보자.”
케이가 마우스를 움직여 노래를 재생시켰다.
3분 50초의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듯한 곡을 들은 멤버들은 그냥 얼이 빠진 모습이었다. 하긴 나도 처음에 엄청 놀랐으니까···.
“저, 정말 이게 저희 데뷔곡이 맞나요?”
리리가 엄청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나에게 질문했다.
“그럼 맞지. 왜 그래? 마음에 안 들어? 다른 곳에다 팔아 버릴까?”
“아, 아니요. 죄송합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그냥 딱 제 취향이라···.”
하긴 리리가 약간 이런 스타일을 선호하긴 했다.
“대표님. 다른 가수에게 이 곡을 팔면 절대 안 돼요!”
“예원이는 하기 싫어서 울었다며?”
“아니라니까요. 그건 담희의 모함이에요. 노래를 들어보니 뭔가 이미지가 잡히긴 해요. 독특하고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장예원. 아주 배가 불렀네. 지금 노래를 들어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니? 곡이 그냥 미쳤잖아!”
“누, 누가 싫대? 생각보다 강한 음악이 나와서 그냥 놀란 것뿐이라고!”
예원이와 담희는 동갑이라 상당히 편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자! 리더. 어땠어? 곡이 맘에 드니?”
“이거 케이 작곡가님이 쓰신 거예요?”
“어, 제자들하고 공동 작업이긴 하지만 주로 내가 거의 했다고 봐야지. 왜?”
케이가 의자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돌려 이지령을 쳐다보았다.
“이거 도대체 악기를 몇 개나 쓴 거예요? 음역과 비트가 바뀌는 것을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잘 만들었어요. 수학적으로 상당히 완벽한 곡이에요. 후렴구는 중독성도 강하구요.”
“와우. 역시 리더는 리더네. 어떻게 내 의도까지 다 파악했지?”
역시 다재다능한 리더다운 발언이었다. 수학적이라니···.
“다들 만족해하는 거 같아 다행이다. 일단 이 곡의 핵심은 유치하지 않게, 최대한 진지하고 세련되게 곡을 표현해야 하는 거야. 나중에 드라마에서도 그런 감성이 이어질 테니까 고민 많이 해야 해.”
“네!!”
“그런데 노래를 계속 들어 보면 안 되나요?”
“그러든지···. 아 참. 한 가지 더···. 곧 이 곡에 대한 안무 시안이 나올 거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퍼포먼스 난도가 엄청 높을 거거든.”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유 실장님께 몇 달간 지옥 훈련을 받았다고요.”
정유리가 걱정도 하지 말라며 콧방귀를 끼고 있었다.
“그래. 아무튼, 데뷔곡이니만큼 최대한 퀄리티를 끌어올려야 할 거다.”
아우라 멤버들은 그렇게 반복해서 곡을 듣고 있었다.
‘이제 열심히 연습해서 100% 소화를 해내는 수밖에 없지. 물론 잘해 낼 거라 믿는다. 너희는 아우라의 여신이니까.’
* * *
며칠 후 2차 TFT 회의가 열렸다. 우리는 회의실에 모여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우선 아우라가 시안에 맞춰 퍼포먼스를 하며 라이브를 하는 영상을 체크 중이었다.
“정말 대단한 게, 가창력이 다들 괜찮은 편입니다. 특히 리리는 뭐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퍼포먼스는 좀 더 합을 맞춰 봐야겠네요. 안무가 너무 힘든 거 아닌가요? 살짝 걱정스러운데요?”
“괜찮습니다. 처음에만 이렇지, 익숙해지면 아무렇지도 않게 해낼 겁니다.”
그렇게 리스트에 있던 업무 진행 상황들이 하나둘씩 점검되고 있었다. 조직 전체가 합심해서 몰두하니 안 될 것 같던 일들도 술술 풀려나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중간에 잠시 쉬었다가 다시 회의를 재개하려는데 조아린 대리가 헐레벌떡 회의실로 뛰어 들어왔다.
“대, 대표님. 지금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숨넘어가겠습니다. 어디 떡볶이 가게에 불이라도 났답니까?”
“헉헉···. 그, 그게 아니라···. 카오스 엔터테인먼트에서도 신인 걸그룹이 나오는데요. 그 일정이 12월 초라고 합니다.”
“어휴···.”
직원들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게 정말입니까?”
나는 황급히 휴대전화를 들어 기사를 검색했다.
[카오스 엔터. SG와 신규 걸그룹 맞불 작전! 우리도 데뷔한다!]
[새로운 신인들의 등장? 카오스 엔터의 비밀 병기 ‘타니아’ 12월 데뷔 확정!]
카오스 엔터?
몇 해 전 IT 기업인 카오스가 꽤 오래된 중견 기획사를 인수해서 이름을 바꾼 회사였다. 1티어 아이돌은 없었지만 1.5티어에 준하는 보이그룹과 걸그룹을 보유하고 있었다.
돈은 많아서 이것저것 많이 하는데 성적은 신통치 않은 편이어서 평가가 그리 높지 않은 회사였다.
그래도 자금이 무한대라는 카오스 아니던가! 그들의 움직임도 주시해야 할 것 같았다.
‘젠장! 아무리 이제 신인들이 하나둘 데뷔할 시기가 되긴 했다지만, 카오스도 비수기인 12월에 데뷔를 시키다니···.’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딱 봐도 SG의 새로운 걸그룹 데뷔에 같이 업혀 가려는 심산인 듯했다.
우리와 같은 전략을 쓰려고 하다니···.
‘차라리 잘됐어. SG나 카오스가 더 황당하겠지. 기획사라고 생각도 못 한 J&J에서 걸그룹이 나온다니···.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그냥 정면 돌파를 하는 수밖에···.’
“자···. 다들 조용히 좀 해 주십시오. 조 대리가 들고 온 기사를 보면 카오스도 걸그룹을 동시에 데뷔시킨다고 합니다. 살짝 걱정되긴 하지만, 이미 데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으니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일단 우리도 기사를 내보내도록 하죠. 홍보팀은 언론에 기삿거리를 써서 돌리도록 하세요.”
“그리고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루빨리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나 이사님. 혹시 스타일리스트 연락이 되었나요?”
“네. 오늘 오후에 회사로 찾아오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관심이 많은 모양이더군요.”
“좋습니다. 데뷔 일정은 같은 식으로 따라가되, 압도적인 퀄리티로 경쟁자들을 물리치기로 하죠. 당분간은 우리 모두 역량을 여기에 집중합시다.”
그렇게 J&J의 첫 번째 걸그룹 데뷔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