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력전 (1)
응? 뭐라고? 12월 1일이 데뷔라고? 그럼 안 되는데?
우리 아우라도 그때쯤을 D-DAY로 잡고 데뷔시킬 예정이었단 말이다!
“나 이사님, 그게 정말인가요? 분명 SG에 갔을 때는 10월 말, 늦어도 11월 초라고 했던 거 같은데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기사에 자세한 사항은 안 나오는데 아마도 내부 사정으로 연기가 된 거 아닐까요?”
“대표님. 제가 인맥을 통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아린 대리가 실수했다는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는 황급히 휴대전화를 들어 기사를 검색해 봤다.
[SG의 새로운 걸그룹 드디어 나온다! 그룹명은 글로리(Glory)!]
[6년 만에 걸그룹을 내놓는 아이돌 명가 SG, 12월 1일 데뷔!]
“진짜네.”
“진짜라니까요. 왜요. 묻힐까 봐 겁나요?”
옆에서 유정 씨가 나를 쳐다보며 내 옆구리에 팔꿈치를 들이밀었다.
“그럴 리가요. 그냥 SG가 불쌍해서요.”
“풋···. 무슨 소리예요.”
“농담도 못 하나요? 그냥 제 바람입니다.”
“어차피 데뷔가 비슷한 시기였잖아요. 11월이나 12월이나 거기서 거기죠.”
허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시는구만. 원래 가랑비는 맞아도 소나기는 피해야 하는 법이다. 상대는 유서 깊은 3대 기획사에서 자신 있게 선보이는 그룹인데···.
“나 이사님. 저번에 SG에 같이 가서 데뷔조 멤버들을 다 보지 않았습니까?”
“네. 봤죠. 기본기가 대단한 그룹이었습니다. 연습도 오래 한 것 같았어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SG의 정수가 담긴 그룹입니다. 거기다 걸크러시까지 살짝 겸비했죠.”
“대표님의 평가는 어떠세요? 저희가 대전을 피해야 할 정도입니까?”
그래도 공식 석상이라고 존댓말을 하는 케이였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글쎄? 외모는 아우라가 우위고, 전반적인 실력은 비슷비슷?
당연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내 새끼들이라는 고슴도치 이론을 감안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우위를 가리기 쉽지 않다고 할까?
의외로 승패는 다른 곳에서 갈릴 가능성이 컸다.
바로 소속사 인지도와 데뷔곡!
대형 3사 출신들은 데뷔 시 무조건적인 프리미엄이 존재하니, 이런 면에서는 아우라가 압도적으로 밀릴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데뷔곡은 절대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 정도로 굉장한 곡이라는 거지.’
그리고 컨셉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없던 첫인상이니만큼 병맛일 수도 있지만 특이하고 신선하다.
거기에 더해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준다면?
팬이 아니더라도 쉽게 빠져들지 않을까?
내가 유상준 트레이너에게 힘든 안무를 소화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라고 지시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제 평가에 앞서 일단 아우라에 대한 컨셉과 곡을 자세히 검토해 보고 이야기해 보도록 하시죠.”
나는 직원들에게 귀환소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했다. 설명이 끝나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양상이었다.
잘못하면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의견과 잘만 연출하면 신선하고 특이한 컨셉의 그룹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었다.
“의견들은 잘 들었습니다. 이제 프로듀서팀에서 만든 곡을 듣고 이야기해 봅시다. 귀환소녀의 이미지를 떠올린 후 곡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케이 프로듀서?”
케이가 노트북을 조작해 곡을 재생했고, 회의실 스피커로 회심의 타이틀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으음···.”
음산하고 강력한 기타 리프와 덥스텝 EDM 사운드가 절묘하게 조합된 복잡한 구성의 곡은 직원들을 충격으로 몰고 갔다.
“허어···.”
소름이 돋는지 팔을 움켜쥐고 몸을 부르르 떠는 사람도 나왔다. 후크가 있는 후렴구가 이어질 때는 대다수가 박자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Yeh~~ Nasty! Dirty synth sound! 와우!”
유상준 신인개발팀장이 영어 감탄사를 써 가며 환호성을 질렀다.
“뭐예요. 곡이 엄청난데요? 보컬을 추가하면 충격적인 데뷔곡이 될 거 같아요.”
유정 씨가 몸을 기울여 귓속말로 속삭였다.
끄덕끄덕···.
그랬다. 신인 걸그룹 치고는 역대급 데뷔곡이 아닌가 싶은 굉장한 곡이었다.
격렬한 비트로 높아지던 하이톤이 씻은 듯 사라지고 곡이 순식간에 끝나자 모두의 입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후···. 곡이 미쳤는데요?”
“그룹 이미지와 곡의 싱크로가 장난 아닙니다. 뇌리에 콱 박히는데요?”
“와···. 저 소름 돋았어요. 노래가···. 와···.”
다들 처음 들은 것 치고는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음···. 이 정도 반응이면 할 만하겠는데?’
나만 좋게 느끼는 게 아닌 거 같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케이를 쳐다봤고, 그도 기분이 좋은지 내 눈을 보고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잘났다 이거냐? 흐흐···.’
그도 내 눈빛을 읽은 모양인지 양어깨를 으쓱했다.
“자···. 프로듀서팀의 노래를 들어 봤습니다. 곡의 퀄리티나 그룹의 능력으로만 본다면 저는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인지도에서 워낙 차이가 크니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그, 그렇죠.”
업계 관계자라면 항상 뼈저리게 느끼는 고질적인 문제였으니, 아무도 섣불리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대표님. 그럼 다른 전략을 짜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으세요? 얼굴을 보니 생각이 있으신 거 같은데요?”
나유정이 내가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자못 궁금한 모양이었다.
‘흐음···.’
“저는 개인적으로 피할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의 경쟁자가 SG의 글로리뿐입니까? 기존 1티어 그룹도 있고 그 저변에 포진해 있는 1.5티어나 2티어 그룹들도 많습니다. 처음부터 피해서는 승산이 없으니 정면 돌파를 할 예정입니다.”
“그럼 어떻게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써 보려고 합니다.”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요?”
“네. 추격자 전략이라고도 하죠. SG를 따라서 똑같은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겁니다. 같은 날 멤버들을 차례로 공개하고, 뮤직비디오, 쇼케이스, 데뷔까지 같이 하는 겁니다.”
“유일한 경쟁자가 되겠다는 전략이군요. 선도자의 인지도를 빌려오는 개념인가요?”
“뭐···. 비슷합니다. 제가 이런 전략을 제시한 것은 우리가 절대 밀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지도를 제외하고 능력에서 밀리지 않는다면 충분히 써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마케팅 전략을 펼치면 어그로도 많이 끌리긴 할 겁니다.”
“그건 감수해야죠. 제가 멤버들 멘탈을 적극적으로 케어하겠습니다.”
“흐음···. 그러면 뭐···.”
회의실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직원들 모두 가능성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문제가 있습니다.”
정적을 깨고 갑자기 손을 번쩍 드는 조아린 대리였다.
“네. 조 대리님. 하실 말씀이라도?”
“다른 건 이해하겠는데 쇼케이스는 어떻게 하실 작정이신가요? 같은 날에 하면 언론인들이 SG 쪽으로 대거 움직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경험상 같은 날짜에 시간까지 같으면 동종업계에서 욕을 먹기도 합니다.”
“그럼 두세 시간 먼저 하겠습니다.”
“음···. 가까운 곳이 아니면 애매한 시간입니다. 기자들이 그냥 안 올 수도 있어요.”
“그것에 대해서는 나름의 해결책이 있습니다.”
“······??”
“진 과장님. ‘나만 아는 세계멸망’은 언제 촬영에 들어갈 예정인가요?”
내 뜬금없는 질문에 J&J 스튜디오 제작팀의 과장이 눈을 끔벅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하, 한 달 내로 촬영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럼 11월 중순이나 하순이 되겠군요?”
“맞습니다. 날이 추워지니 겨울 신을 찍고 날이 풀리면 봄에 본격적으로 촬영할 예정입니다.”
“지금 슈퍼 셸터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 공정률이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이 일정을 잠시 늦춰도 되지 않을까요?”
“늦추신다면 얼마나···?”
“딱 2주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촬영을 늦추자는 사유를 알 수 있을까요? 이번 걸그룹 데뷔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
“두 가지 사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회의실 직원의 시선이 전부 내 얼굴에 집중되고 있었다.
“아우라의 뮤직비디오를 2주간 촬영할 생각입니다. 그것도 예산을 아주 많이 투입할 예정이죠. 일반적인 아이돌 뮤직비디오 예산의 몇 배를 쓰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J&J 스튜디오의 인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탕탕!
“와우! 이거지! 대표님! FLEX!”
케이가 내 의견을 듣고 있다가 마음에 드는지 책상을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역시 상상을 불허하는 사나이!”
다른 직원들도 상당히 놀랐는지 눈만 멀뚱멀뚱 뜨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뮤직비디오에 들어가는 비용은 드라마의 사전 제작비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듯하고요.”
“그렇겠네요. 의상이나 세트, 외부 장소 등을 미리 섭외한다는 개념이니···.”
스튜디오에서 나온 진 과장도 이해가 가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외부 장소는 ‘나만 아는 세계멸망’의 로케이션을 이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귀환소녀의 걸그룹 파트 말고 리치를 추적하는 부분은 약간 다크한 분위기로 갈 예정이라, 세트와 장소를 공유했으면 하네요. 엄 감독님께서는 장소를 미리 체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전작의 경험을 살려서 아이디어를 많이 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독님.”
나는 귀환소녀를 유치하게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걸그룹 파트는 흙수저의 고뇌와 성공 스토리를 보여 줄 생각이며, 사악한 리치와 대결을 하는 장면은 최소 ‘나만 아는 세계멸망’에 나오는 좀비 수준의 영상으로 제작할 예정이었다.
컨셉을 들어보면 황당한 것 같지만, 정작 영상을 봤을 때 깜짝 놀라게 할 작정이었다.
“제작비 절감도 되고 괜찮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2주 정도 늦어지는 것은 내년에 인원을 더 충원하여 보강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김호진 PD님께는 제가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될까요?”
“네. 그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와···. 일반 뮤직비디오 예산의 몇 배라···. 대박이다.”
나는 중얼거리고 있는 케이와 시선을 교환하면서 손가락 두 개를 폈다.
“두 번째는···.”
꿀꺽···.
좌중의 시선이 단번에 내게로 쏠렸다.
“아우라의 쇼케이스와 나만 아는 세계멸망의 대본 리딩을 같은 날 동시에 진행하겠습니다. 아우라가 먼저 쇼케이스를 하고, 그다음에 대본 리딩을 했으면 합니다. 물론 적당한 장소를 골라야겠죠?”
“오!! 아이디어 좋다!”
“대표님. 그러면 거기에 정주빈 씨와 이희진 씨도 오는 거 맞죠?”
“네. 맞습니다. 이수현 씨와 정혜성 씨, 그리고 이건호, 심형탁 씨까지 모두 모이는 자리입니다.”
“만약 일부 기자들이 SG 쪽으로 가더라도 대본 리딩 현장으로 오는 기자들이 아우라를 덤으로 취재할 수도 있으니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일단 그렇게 하면서 SG의 신규 걸그룹과 경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그 인지도를 메꿀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해볼 만하겠는데요?”
"아우라에 회사의 총 역량을 집중할 생각입니다. 당분간이니 모두 합심해서 업무 계획대로 일을 추진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조아린 대리는 회의에서 나오는 안건을 정리하고 담당 부서를 정해서 완료 일정을 보고하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자···. 이제 아우라 데뷔에 대해 팀별 안건 및 추진 계획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옆을 살짝 보니 유정 씨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엄지 척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