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곡을 만들다 (2)
곡의 초반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이 갑자기 로우 영역을 찍고 점차 미들을 거쳐 하이톤으로 높아졌다.
작곡팀이 만든 노래는 대중적인 음악을 선호하는 나에게 아주 세련되고 트렌디하면서 독특하게 느껴졌다.
카랑카랑한 베이스 음과 수많은 악기의 전환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하지훈의 독특한 사운드와 김관중의 중독성 있는 멜로디, 그리고 노련한 케이의 완벽한 프로듀싱까지···.
‘와···. 소름 돋네. 멋지다. 멋져. 이건 대박이다!’
1절의 후렴구에 음산하고 긴장감 있는 EDM과 건반, 그리고 독특한 전자음과 덥스텝 사운드가 이어졌다.
‘우와! 내가 원한 게 바로 이거였어. 이거야말로 그룹 이미지에 제격이야.’
노래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케이와 카이시브 멤버들을 쳐다보았다.
카이시브 멤버들은 이제야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노래가 나오면 그냥 자동 반사같이 눈이 떠지는 모양.
‘이 귀여운 천재들을 봤나···. 이런 명곡을 만들어 내다니···.’
아우라는 이 곡으로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게 분명했다. 추측건대 한국의 팬들, 서구권의 메탈헤드와 일본의 마니아층에 두루 알려질 것 같았다.
나는 귀로 2절을 듣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곡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마왕과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계를 뒤로하며 시커먼 차원의 문을 넘어 지구로 귀환하는 소녀들···.
리치에 의한 지구의 변고를 막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차원을 이동한, 카리스마가 흘러넘치는 다섯 소녀···.
몸에서 피어오르는 아우라처럼 마나의 움직임에 따라 곡의 음역대가 점차 하이톤으로 높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응?’
나는 2절을 들으면서 이 곡에 랩 파트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1절에도 있었을 테지만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살짝 놓친 것이다.
‘랩 파트가 꽤 많네?’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끝까지 들어 보기로 했다.
긴장을 최고로 고조시키기 위해 갑자기 변조가 일어나며 음이 뚝 떨어졌다. 보컬의 잔잔한 브릿지 부분이 나왔다가 바로 비트가 빨라지며 1절 후렴구에서 나왔던 사운드보다 더 강력한 하지훈 표 덥스텝 사운드의 폭격이 이어졌다.
“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지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들으면서 감정이 끓어오른달까?
폭풍처럼 몰아치며 이어지던 사운드가 갑자기 씻은 듯 사라지며 갑작스럽게 마무리돼 버리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끝인가?’
잠시 녹음실에 정적이 찾아들었다.
“어때?”
케이는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묻고 있었다.
“···미쳤어. 이 곡은 미쳤다고! 내 팔 좀 봐봐. 소름 돋았다.”
“흐흐···. 그렇지? 만든 노래 중에서 제일 잘 빠진 곡이야.”
“다른 곡도 있어?”
“당연하지.”
“아무튼, 이건 100%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곡이야. 안 들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어 본 사람은 없는 그런 곡이랄까?”
“다행이네. 그런데 형 의견은 어때? 드라마와도 잘 어울릴 거 같아?”
“Good! 진짜 잘 어울려. OST로 써도 될 거 같아.”
“그래? 하는 김에 만들어 놓은 여분의 곡으로 드라마 OST까지 해 버릴까?”
“그럼 땡큐지.”
데뷔곡이 드라마 분위기에 너무 잘 어울려서 내친김에 케이에게 OST까지 일임해 버렸다.
“케이야. 그런데 아까 들어 보니 랩 파트가 꽤 되는 거 같던데, 유리 혼자 가능하겠어?”
“형. 너무 무심한 거 아냐? 지령이도 랩을 잘해. 알고 보니 영어 능통자더라고.”
“응? 진짜? 난 전혀 몰랐는데?”
“나도 몰랐어. 아버지가 미국에서 교환 교수 생활을 하셨나 봐. 거의 원어민 수준이야. 그래서 데뷔곡의 랩을 영어로 넣어도 될 것 같아.”
“그···. 그러든지.”
그룹에 외국어를 하는 멤버가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한 법이다. 요즘 외국인 멤버를 괜히 넣는 게 아니다. 지령이가 랩을 잘한다는 것은 꽤나 긍정적인 신호였다.
‘좀 더 다듬는다고 하지만 데뷔곡은 이제 얼추 해결한 거 같고···.’
컨셉과 타이틀곡이 나왔으니 이제 후속 업무를 서둘러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런데 드라마 제작은 언제 시작하려고?”
“아무래도 일정이 겹쳐서 데뷔 후에 가능할 거 같아.”
“그게 좋을 게 같은데? 솔직히 우리 회사에서 현재 상태로 이것저것 다 하기는 버겁긴 하지.”
“인마, 그런 건 네가 신경 안 써도 돼. 일단 우리는 아우라 데뷔에 집중하자고···.”
“알았어요.”
“그리고···. 지훈 씨, 관중 씨 수고하셨어요.”
나는 우리 대화를 듣고 있는 카이시브에게 고생했다며 따뜻한 말을 건네 주었다.
“도, 도움이 돼서 저희가 영광이죠.”
하지훈은 내 말에 화들짝 놀라 어찌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여러분들의 이름은 작곡가에 포함될 겁니다.”
“감, 감사합니다.”
“와···. 나도 작곡가라니···.”
두 명의 천재는 자신의 이름이 작곡가 리스트에 포함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이나 신기한 모양이었다.
“얘들아. 너희가 작곡가라고 하기엔 아직 멀었어. 어디 가서 괜히 자랑하고 그러지 마. 알았지?”
옆에서 케이가 웃으며 말을 했다.
“네. 아직 멀었죠.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프로듀서님.”
“그래. 그래. 좋은 자세야!”
그게 사실이긴 하지만 좋은 말 좀 해 주면 덧나나? 하여간···.
“너희들 저녁에 약속 없지? 나랑 술이나 한잔하자.”
“네, 네···.”
불쌍한 녀석들. 괴작 판독기의 수하가 되다니···.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내 사무실로 돌아와 엄태민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엄태민입니다.]
“네. 감독님. 영화는 다 끝나셨나요?”
[네. 어제 다 끝났습니다.]
물론 일정을 맞춰서 전화하는 거라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럼 제가 말씀드린 제안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지금쯤이면 입장 정리가 되셨을 것 같은데요.”
[일단 대표님 말씀대로 해 볼 생각입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후회가 없도록 제가 지원을 잘하겠습니다.”
[네.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감독님. 혹시 제가 보내 드렸던 원고는 읽어 보셨나요?”
[다 읽었습니다. 재밌더군요. 이걸 드라마로 만들면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똑같이 시공을 건너오는 스토리인데 제 영화와 뭐가 다른지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후후···.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원작을 잘 살려서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도록 연구해 보겠습니다.]
“감독님···. 그러실 게 아니라 얼른 회사에 방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저희가 시간이 촉박하거든요.”
[알겠습니다. 촬영도 끝났으니 내일 오전에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내일 뵙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 내가 감독까지만 섭외해 준다. 이제부터는 직원들이 움직여야지.”
조아린 대리를 호출해 내일 오후에 아우라의 데뷔 관련 TFT 회의를 하겠다는 지시를 내렸다.
* * *
다음 날 오전 10시.
엄태민 감독이 회사로 찾아왔다. 오랜만에 보는 그는 머리를 자르고 면도를 해서 그런지 사람이 달라 보였다.
“감독님. 그렇게 나타나시니 무슨 모델 같으십니다.”
“하하···. 처음 뵀을 때는 제가 좀 상태가 안 좋았죠. 배역이 원래 그런 스타일이었거든요.”
“나름 그런 모습도 괜찮았습니다. 야생에 사는 남자 같은 느낌이랄까요?”
“거기 영화 찍을 때도 감독이 저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고 했었죠. 아···. 그 영화감독이 제 친구입니다.”
우리는 잠시 차를 마시며 본격적인 대화를 해 나갔다.
“현재 귀환소녀에 출연할 주연 배우들이 조만간 데뷔해야 하기 때문에 바로 촬영 준비에 들어가야 합니다.”
“네? 주연 배우들이 진짜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거라고요? 그냥 드라마상 설정이 아니고요?”
“네. 드라마는 프리프로덕션 기간이 필요하니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테고, 그사이에 먼저 뮤직비디오를 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허···.”
엄태민 감독은 급작스러운 전개에 상당히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굳히고 있자 농담이 아님을 깨달았는지 자세를 고쳐잡았다.
“험험···. 이거 진심이시군요.”
“네. 어제도 통화하면서 시간이 없다고 말씀을 드렸었고, 한 달 안으로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상황이 상당히 급하군요. 일단 뮤직비디오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죠? 제가 그냥 만들어도 됩니까? 아무래도 영화와 뮤직비디오는 다른 영역이긴 한데요?”
“일단 다른 케이팝 아이돌과는 다르게 드라마 시리즈로 홍보할 예정이라, 요즘 나오는 뮤직비디오와 형식이 조금 달라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기존에 유행하는 뮤직비디오의 공식을 깨 버리고 싶거든요. 혹시 가능하시겠습니까? 아니다 싶으시면 제가 따로 섭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를 담담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요. 그거 제가 하겠습니다. 어차피 뮤직비디오 감독을 하는 후배 녀석도 있으니 오라고 해서 같이 하죠. 뭐.”
“하하···. 감독님이 은근히 인맥이 넓으시군요.”
“그냥 원체 돌아다니고 술을 좋아하다 보니···.”
“제가 찾아보니 영화감독님 중에서도 뮤직비디오를 연출해 보신 분이 많더군요. 그러니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부담 같은 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필요하신 거 있으면 다 말씀해 주세요. 저희 스튜디오에서 도와드릴 겁니다. 감독님은 전작 영화처럼 독특하고 신비한 느낌을 살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더 궁금하신 게 있나요?”
“일단 해 봐야 알 거 같습니다. 혹시 곡도 확정됐나요? 연출하려면 그게 제일 중요할 거 같은데···.”
“네. 감독님이 물어보실 것 같아서 회의를 잡아 놨습니다. 점심을 먹고 시작할 예정인데 그때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죠.”
나는 엄태민 감독과 점심을 먹으며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들었다. 특히 영화를 말아먹고 폐인처럼 전국 일주를 감행한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엄 감독은 상남자 같았는데 의외로 말이 많았고, 물어보지도 않은 것들을 전부 말해 줬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그는 능력도 뛰어났지만, 친화력이 정말 좋은 것 같았다. 인맥이 넓다고 했는데 괜한 소리가 아닌 듯했다.
식사 후, 드디어 걸그룹 데뷔 준비 관련 TFT 회의가 열렸다. 회의는 홍보팀과 매니지먼트팀, 그리고 프로듀서팀과 신인개발팀, 마지막으로 스튜디오 측에서 과장급 인원 한 명이 참석했다.
나는 먼저 엄태민 감독을 직원들에게 소개했다.
“엄태민 감독님은 ‘시공을 건너’라는 작품을 연출하셨고 독립영화제에서 많은 수상 경력이 있으신 유능한 분입니다. 아무래도 뮤직비디오를 드라마의 컨셉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이번 회의부터 참여하실 예정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드라마 연출을 맡게 된 엄태민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짝짝짝···.
“감독님. 제작진과는 나중에 자리를 마련해 드릴 테니, 일단 오늘은 데뷔 컨셉과 전략에 대해 설명을 들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조 대리님? 회의 시작하시죠.”
“네. 안녕하십니까? 홍보팀 조아린 대리입니다. 아우라 데뷔 관련 TFT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목차를 보시기 바랍니다.”
스르륵. 스르륵.
회의실에 프로젝터가 돌아가고, 사람들은 화면을 보거나 유인물을 살피고 있었다.
“첫 번째로 아우라의 전체적인 컨셉에 대해 대표님께서 약 15분간 이야기하시고, 다음으로 프로듀서팀의 타이틀곡 발표가 있겠습니다. 그 후 부문별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며, 과제가 도출되면 타임 스케줄을 작성해서 진도 체크를 해 나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음···. 역시···.’
이래서 유능한 직원이 있으면 편한가 보다. 조아린 대리는 아무래도 과장을 시켜야 할 것 같았다. 회의를 대비해 이미 내 지시를 철저히 분석해서 효율적인 방식으로 정리를 해 온 것이다.
먼저 아우라에 대한 컨셉 설명이 시작되었다.
“네. 이준형입니다. 예···. 아우라는···.”
벌컥!
갑자기 회의실 문이 열리며 나유정 이사가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인터뷰가 늦게 끝났네요.”
유정 씨가 안으로 들어와 앉자 회의실의 분위기가 확 살아났다. 확실히 일반인과 다른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하여튼 존재감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대표님. 어서 진행하세요.”
내 옆에 앉은 나유정 이사는 나를 보며 살짝 윙크를 날렸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표시였다.
“방금 막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지금부터 들으시면 돼요.”
그녀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유인물을 챙겼다. 그러더니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아! 다들 혹시 그 뉴스 보셨어요?”
“어떤 뉴스요?”
“방금 차를 타고 들어오면서 뉴스를 봤는데, SG 신인 걸그룹이 12월에 데뷔한다고 하네요.”
‘응? 11월이 아니라 12월이라고?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