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70화 (170/263)

데뷔곡을 만들다 (1)

“그게 말이지···.”

나는 이들을 만났던 스토리를 간략히 설명했다. 처음 이지령을 봤던 학교 축제, 그리고 가이드 보컬이었던 리리를 찾으러 갔다가 홍대에서 만났던 이야기까지도···.

일부러 트러블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거참 인연이네. 형이 보기에 음악적 재능이 있는 것 같아서 데려왔다는 거잖아?”

“맞아. 네가 보기엔 아마추어라 어설플 수도 있겠지만.”

케이는 고개만 묵묵히 끄덕이며 다시 하지훈과 김관중을 쳐다보았다.

“지훈 씨라고 했던가요?”

“네. 그렇습니다.”

“방금 곡에 넣었던 사운드 말인데요. 샘플링 아니죠? 직접 만드셨어요?”

“네. 제가 기타로 만든 겁니다. 이펙터 5개로 만들죠.”

“기타로 별의별 소리를 다 내는군요.”

“제가 그렇게 하는 걸 좋아해서요.”

“그렇죠. 좋아하지 않으면 못 하죠. 샘플링 사운드는 CD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데 이렇게 직접 하면 번거롭기도 하고···.”

“하하···. 돈은 없고 재미는 있고, 그래서 그냥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 같습니다. 그리고 직접 만들어서 곡에 넣으면 뭔가 날것 느낌이 강해진달까? 기타도 수제로 커스텀 주문 제작했고···.”

하지훈은 일류 프로듀서가 자신을 칭찬하자 신이 났는지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갑자기 케이가 손을 들더니 그의 말을 멈추게 했다.

“죄송한데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군요. 솔직히 그거 빼고는 다 별로예요.”

“으윽···.”

또다시 작렬하는 케이의 묵직한 돌직구!

하지훈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내상을 입은 듯 얼굴을 찡그리며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세요. 대표님하고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네. 편하게 다녀오세요. 저희는 녹음실 구경 좀 하고 있겠습니다.”

케이는 나에게 고개를 까딱이며 밖으로 나가자는 시늉을 했다. 우리는 녹음실을 나서서 잠시 휴게실로 들어갔다.

“쟤들 계약할 거야?”

“해야 하지 않겠냐? 아무리 봐도 재능이 괜찮아 보이던데···. 전문가인 네 의견은 어떠냐?”

“음···. 솔직히 팀을 하나 만들어 보고 싶긴 해.”

“팀? 작곡팀 같은 건가?”

“어···. 요즘은 다들 팀으로 활동하거든. 보니까 관중 씨는 탑라이너, 하지훈 씨는 트랙메이커로 키우면 되겠어. 감각이 있는 거 같더라고···.”

“그러는 너는?”

“난 당연히 총괄이지. 프로듀서팀 수장!”

“뭐···. 그러든지···. 근데 걔들도 너만큼 능력 있는 애들이야. 신경 써서 잘 가르쳐.”

“······.”

갑자기 케이가 대답은 하지 않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보는데?”

“평소에 궁금한 게 있었는데···. 왜 그렇게 확신을 해? 진짜 형 눈에는 사람들 능력이라도 보이는 거야?”

“그럼 인마! 너한테 시커먼 음의 아우라가 막 뿜어져 나와. 장난 아니야.”

“풋···. 뭐래? 아무튼, 나 지금 느낌 왔거든? 하지훈 씨가 들려준 사운드를 내 곡에 적용하면 우리 애들 컨셉에 맞게 기가 막힌 곡이 나올 거 같아.”

허···. 이 녀석 느낌 오면 또 저번 영화 OST처럼 대박일 건데···.

“저, 정말이냐?”

“당연하지. 내가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낮에는 천재 프로듀서, 밤에는 음습한 괴작 판독기잖아. 영락없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아, 이건 아니네. 원래 지킬 박사는 괜찮고 하이드만 나쁜 놈인데 넌 둘 다 나쁜 놈이잖아.”

“나쁜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괜히 능력 있는 애들 잡지 마라. 나처럼 대했다가는 멘탈이 가루가 돼서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

“흐흐···. 걱정하지 마세요. 예전처럼 철없던 제가 아니라고요.”

음산하게 웃고 있는 케이를 보니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났다.

‘이, 이 사악한 놈···.’

“아무튼, 형이 쟤들한테 뭘 봤는지 모르겠지만, 곁에 두고 나도 확인을 좀 해 봐야겠어.”

“맘대로 해라.”

나는 케이와 함께 다시 녹음실로 들어갔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대표님.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럴까요? 혹시 두 분 작곡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네.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밴드 음악 위주로 하다 보니 아직 미디를 이용한 작곡은 서투른 게 사실입니다.”

의외로 먼저 말을 한 것은 하지훈이었다.

“관중 씨는요?”

“저도 지훈이를 따라서 같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어쨌건 관심이 있는 거로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제가 한 말씀 드리죠. 배운지 얼마 안 됐는데 이 정도 곡을 쓰는 건 분명 재능이 있는 겁니다. 자부심을 느끼셔도 됩니다.”

케이가 갑자기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칭찬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들을 데리고 음악을 가르칠 모양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가증스러운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일단 저희 회사와 계약하시죠.”

“가, 감사합니다. 대표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뭐···. 감사할 것까지야···.”

“저희는 계약하면 뭐를 하면 되나요?”

김관중이 순진한 얼굴로 자신의 역할을 묻고 있었다.

“이제부터 청소하시면 됩니다.”

“네?”

“워워···. 놀라지 마세요. 농담입니다. 두 분은 저희와 아티스트 계약을 맺게 될 겁니다. 따로 전속 작곡가 계약 이런 건 아니고요.”

“그럼 케이 님은···.”

“아! 전 그냥 직원입니다. 프로듀서팀 소속이요.”

“하하하···. 얘가 농담도 참···. 케이 프로듀서는 앞으로 회사의 음악 부문을 모두 총괄할 예정입니다. 두 분은 케이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하시면 됩니다.”

“네. 그렇군요.”

“함께 작업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고, 배운다고 생각해요.”

케이가 옆에서 쓸데없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멤버를 충원하든지, 아니면 객원 보컬을 쓰거나 콜라보를 해서 앨범을 낼 수도 있겠죠.”

가수에 대한 언급을 살짝 했더니 카이시브 멤버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 충고를 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단! 기존의 형식으로는 힘들 것 같아요.”

“당연히 팀도 해체된 마당이라 저희도 기존처럼은 못 합니다.”

“네. 그러니 스타일을 바꿔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일단은 작곡을 하면서 듀오를 하되,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네···. 저희에겐 그게 베스트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훈 씨?”

“네. 대표님.”

훈남처럼 깔끔하게 생긴 하지훈이 머리를 만지며 나를 쳐다봤다.

“혹시 보컬에 욕심이 있나요? 제가 봤을 땐 꼭 그런 것도 아닌 거 같은데요?”

그의 아우라에 노래 재능은 별반 보이지 않아서 하는 말이었다.

“아···. 솔직히 말하면 보컬이 그만두는 바람에 그냥 제가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가 하는 음악이 가창력이 크게 요구되지 않아서 별 무리가 없기도 했고, 하다 보니 재미도 있는 것 같아서···.”

“그렇군요. 케이. 네 생각은 어때?”

나는 옆에서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던 케이를 쳐다보았다.

“난 노래하는 걸 안 들어 봤는데···.”

“아···. 그렇지? 지훈 씨. 부스에 들어가서 노래 한번 해 볼래요?”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솔직히 보컬은 작곡에 비해서 큰 욕심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지훈 씨 가창력은 평범한 수준입니다.”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만약 메이저에서 활동하고 싶다면 괜찮은 보컬이 필요할 거 같아요. 사실 대한민국에 노래 잘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거든요. 잘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우선 작곡팀으로 케이 프로듀서에게 열심히 배우고 도움도 주면서, 같이하고 싶은 보컬이나 멤버를 찾는다면 가수로도 활동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아티스트 계약을 권유하는 거고요.”

물론 보컬을 못 찾으면 내가 찾아 줄 의향도 있었다. 말했다시피 대한민국은 보컬이 차고 넘치는 나라이고, 나에겐 아우라 스카우터라는 사기적인 능력이 있었으니까.

“계약하겠습니다. 대표님.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드디어 나는 그렇게 카이시브와 계약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당장 가용 전력이라고 하기엔 무리지만, 케이와 팀을 이룬다면 어떤 시너지가 날지 사뭇 기대되었다.

“자···. 제군들? 우리 깊이 있는 이야기를 좀 해 봐야지?”

계약서에 서명을 끝내자마자 케이가 두 명과 어깨동무를 하더니 식사를 하러 간다고 했다. 부디 살살해야 할 텐데···.

얼떨떨한 표정으로 거의 끌려나가다시피 사라지는 카이시브의 표정을 보니 살짝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천재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지 않을까? 둘 다 작곡에 재능이 충분하기 때문에 일반인의 상식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케이가 가르치는 것을 쭉쭉 흡수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혹시 알아? 카이시브가 작곡 말고 가수로도 대박을 터트릴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계약서를 들고 5층 사무실로 내려갔다. 매니지먼트팀 하석우 실장이 계약서를 받아들고 미소를 지었다.

“하나둘씩 모이고 있군요.”

“아···. 이 사람들은 장기로 봐야 하는 인재들이에요.”

“네. 대표님이 하시는 일인데 어련하시겠습니까?”

“저 너무 띄워 주지 마세요. 이러다 망하면 어쩌려구요.”

“하하···. 그럴 리가요?”

“지금 계속 회사 인원을 늘려 가고 있으니 내년 초에 조직을 제대로 짜 보도록 하시죠. 기대해도 좋으실 겁니다. 실장님.”

“어이쿠···. 저는 그냥 이대로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회사 창립 멤버로서 적은 인원으로도 회사를 잘 이끌고 있는 하석우 실장이었다. 하 실장은 XM Ent.에서 하던 파벌 싸움에서 벗어나서인지 한결 편해진 얼굴이었다.

“바쁘시지 않나요?”

“전혀요. 안식년 같은 해랄까요?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렸었는데, 이제 저 자신을 돌아보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족이 최고죠.”

“아무튼, 우리 회사에서 제일 바쁘신 건 저보단 대표님 아니십니까? 좀 일을 줄이셔야 될 텐데 말이죠.”

“당분간은 어쩔 수 없어요. 어느 정도 틀을 갖춰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상적인 회사라고는 볼 수 없으니까요.”

하석우 실장이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몸 생각하시면서 하세요.”

“알겠습니다.”

말은 알았다고 했지만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쉴 수가 없었다. J&J 스튜디오 인력도 충원해야지, 귀환소녀의 대본도 써야지, 후반부로 달려가는 웹소설 천외딸도 마무리 지어야지, 나만 아는 세계멸망 드라마 촬영도 신경 써야지, 아우라도 데뷔시켜야지···. 와···. 정말 할 일이 그냥···.

‘쯧···. 정말 일을 벌이긴 엄청나게 벌려 놨네. 하···.’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이 수습해야 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준형, 조금만 힘내자.’

* * *

며칠 후 나는 일단 천외딸을 마무리하기 위해 사무실에서 열심히 스퍼트를 내고 있었다. 천외딸은 장장 500화에 가까운 분량으로 플랫폼 나이스의 로맨스 판타지 카테고리에서 3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들인 노력에 비해서는 조금 아깝구만. 그래도 무시 못 할 금액을 벌어들이긴 했어.’

살짝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오세요.”

방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케이였다. 세 명이 함께 녹음실에 틀어박혀 굴을 파고 숙식을 해결하며 보낸 지 어언 3일!

드디어 머리를 짜낸 곡이 완성된 모양이었다.

“형···. 드, 드디어···.”

“곡 나왔다고?”

“에이···. 뭐야. 김빠져. 극적으로 말하려고 했더니···.”

“네 얼굴만 봐도 딱 쓰여 있는데 모를 것 같냐?”

“센스가 없는 대표님이네. 쩝···.”

“궁금하니 가서 들어 보자. 안 그래도 곡이 나와야 애들 뮤비도 찍고 데뷔시키지.”

케이와 함께 녹음실에 들어가 보니 카이시브 멤버들이 자고 있었다. 김관중은 간이침대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하지훈은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는 상태였다.

“어제 잠 안 잤니? 지금 해가 중천인데···.”

“내버려 둬 봐. 노래 틀면 다들 일어날 거야.”

비릿하게 웃고 있는 케이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애들을 도대체 얼마나 굴린 거니.’

“잠 좀 자면서 하지. 꼭 이래야 하냐? 나 좀 본받아 봐. 12시 이전에는 무조건 잠을 자잖아.”

“꼰대 같은 이야기 그만하시고요. 노래나 들어 보세요.”

케이는 퀭한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노래를 재생했다. 스피커에서 미드엄 템포의 댄스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

인트로에서 하지훈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강력하고 특이한 기타 사운드가 음산하게 울려 퍼지더니, 갑자기 로우 영역으로 음이 뚝 떨어지며 벌스가 이어졌다.

‘하···. 소름···.’

첫 소절부터 팔뚝에 소름이 쫙 돋아났다. 그야말로 강렬한 전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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