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69화 (169/263)

인재가 부족해 (3)

“갑자기 죄송합니다. 제가 저번에 쏭포유에서 실례했던 일을 사과도 할 겸 연락드렸습니다.”

[벼, 별일도 아니었는데요. 그때 제가 좀 까칠하게 반응한 것도 있었고···.]

어라? 이 하지훈이라는 학생···. 예전처럼 까칠하지 않네?

“아···. 그러시구나. 그럼 제가 괜한 오해를 하고 있었네요.”

[야! 누구야? 누군데 그렇게 공손하게 받아?]

갑자기 전화기 너머에서 들어 본 적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그 관중이라는 학생이야. 목소리가 특이해서 기억이 나.’

[좀 조용히 해 봐 인마.]

“옆에 친구분이랑 같이 있나 보네요?”

[아···. 저번에 같이 있던···.]

“기억납니다. 관중 씨라고 했던가요?”

[와···. 기억력 좋으시네요.]

“직업병이라 그렇습니다. 예전 매니저 할 때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악착같이 익힌 노하우거든요.”

[아···. 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라 제가 예전에 쏭포유에서 들었던 음악이 계속 생각나서요. 그래서 이렇게 연락드렸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죄송한데 스피커폰으로 통화해도 될까요? 친구가 옆에서 하도 귀찮게 해서···.]

“저는 상관없습니다.”

[잠시만요.]

하지훈의 목소리가 잦아지는 것 같더니 이내 잡음이 섞이며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김관중입니다! 저 기억하시죠?]

“네. 이름이 하도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허허···. 진성 인싸네.’

참 성격이 좋은 친구인 것 같았다.

[혹시 저희 밴드를 캐스팅하시게요? 그런데 죄송해서 어쩌죠? 저희 벌써 해체했습니다.]

“꼭 그런 목적으로 전화한 건 아닙니다만···.”

얘가 너무 급발진하는 것 같아 살짝 브레이크를 밟아 줬다.

[그렇죠? 그럴 리가 없죠. J&J가 저희랑 연관성이 없잖아요. 아! 기사 보니까 대표님 새로운 작품 제작하신다던데요?]

음···. 이 녀석 싹싹하긴 한데 말이 너무 많다. 살짝 흥분 상태인 것 같기도 하고···.

“지금 뭐 하고 있나요? 기분이 되게 좋아 보이는데요.”

[아하하···. 지훈이랑 제가 기숙사 룸메이트인데 지금 방에서 낮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역시 카이스트 학생들도 기숙사에서 술을 마시는구나.

“좋을 때네요.”

[대표님. 혹시 그거 아세요? 그때 제가 이 녀석하고 J&J 건물 앞까지 갔었어요.]

“건물 앞요? 진짜입니까? 그냥 들어오시지 그러셨어요.”

[지훈이가 자꾸 갈팡질팡해서요. 어차피 망했는데 집에 가는 김에 한번 들러 보자고 했는데 거기서 싸우고 그냥 집으로 내려갔거든요.]

“아직 음악에 미련이 남아 있군요?”

[뭐···. 일단 공부나 하기로 맘을 먹었는데 잘 안 되네요. 왜 이렇게 공부하기 싫은지···.]

내가 진로상담사는 아니지만 인생 상담을 좀 해 줘야 하나?

“공부도 좋지만, 사람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에 후회가 없죠.”

[그렇죠? 거봐 인마. 그때 용기 내서 들어갔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잖아.]

뭔지 모르겠지만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하지훈입니다. 횡설수설해서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원체 술이 약해서요.]

‘이러다간 끝이 없겠는데?’

아무래도 슬슬 본론을 꺼내야 할 것 같았다.

“제가 연락드린 이유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여러분들의 곡에 흥미를 느껴서입니다. 혹시 시간이 되면 한번 뵐 수 있을까요?”

[저희 곡이요?]

“네. 그 곡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도네요.”

사실 곡보다는 이들의 능력이 필요했지만, 전화로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그럼요. 저희가 술 좀 깨고 올라가서 뵙겠습니다.]

“그래요. 시간 나면 꼭 찾아오시고,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시죠.”

설득하는 데 애를 먹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쉽게 해결이 됐다. 아무래도 홍대 생활을 하면서 인디밴드의 실상을 깨달은 게 아닌가 싶었다.

‘몇 명이나 올라올지 모르겠지만, 오면 자세히 물어봐야겠네.’

* * *

카이시브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회사를 방문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로비로 내려가 그들을 맞이했다. 회사로 찾아온 이들은 역시나 강력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던 두 명의 멤버였다. 아무래도 무의식중에 자신의 능력을 인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키가 큰 긴 머리의 사내가 하지훈이었고, 그 옆의 싹싹하고 말이 많았던 친구가 바로 김관중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씩씩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어서 오세요. 일찍 오셨네요. 공부가 그렇게 싫었어요?”

“공부는 언제나 하기 싫죠.”

“하하···. 이쪽으로 올라가시죠.”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내 사무실로 안내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와···. 대표님 회사가 너무 좋은데요?”

“들어온 지 1년도 안 돼서 그래요. 건물도 신축한 지 얼마 안 된 거고···.”

나는 그들을 내 작업실로 데려가는 중이었다. 도중에 연습실과 녹음실이 있었는데 김관중이 그것을 보고 살짝 놀라는 것 같았다.

“어? 음악 소리···. 혹시 여기가 연습실인가요?”

“맞아요. 그런데 들어가면 안 됩니다. 지금 멤버들이 연습을 하고 있어요. 데뷔가 코앞이라···.”

“데, 데뷔요? 혹시 아이돌?”

“맞아요. 걸그룹을 먼저 데뷔시킬 예정이에요.”

하지훈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김관중은 흥미롭다는 얼굴이었다.

“대표님. 죄송한데요. 저희가 춤은 준비를 못 했습니다.”

“예?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나는 갑작스러운 김관중의 말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 아닌가요? 하하하···. 다행이네요. 걸그룹 먼저 데뷔시키신다길래···.”

‘이 녀석들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거야? 황당하네.’

나는 잠시 그들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제가 전화로 곡에 관심이 많다고 한 거 같은데요?”

“아···.”

“그리고 지금 몇 살이에요? 군대도 갔다 온 거 아니에요?”

“예···. 23살입니다. 저희 둘 다 1학년 마치고 바로 갔다 왔어요.”

카이스트라면 전문 연구 요원으로 복무하고 그러던데···.

그들은 공부에 정말 미련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 군대를 다녀와서도 밴드를 하고 있었겠지. 그래도 아이돌이라니? 착각도 가지가지다.

“아이돌이라뇨.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 그렇겠죠?”

담담하게 그들의 외모를 살펴보니 김관중은 귀엽고 성격이 좋은 초롱이 같은 이미지였고, 하지훈은 그나마 괜찮게 생긴 편이긴 했다. 그래도 아이돌급으로 봐주기엔 무리였다.

“왜, 왜 그렇게 보세요?”

매의 눈을 영접한 그들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외모를 스캔하는 직업병 같은 버릇이 무의식중에 나와 버린 것이다.

“아···. 그냥 습관 같은 겁니다. 불편하셨으면 죄송합니다. 이제 움직이시죠.”

“······.”

“여기가 녹음실입니다.”

“어라? 음악 소리가 또 들리네요? 여기도 누가 있는 모양인데요?”

녹음실에서 음악이 들려오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묻는 김관중이었다.

“음···. 케이가 출근해서 작업하는 거 같은데···. 들어가 보실래요?”

“케, 케이 님이요?”

“네! 전문가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보고 싶지 않으세요?”

“네···. 그렇긴 한데 방해가 될까 봐서요.”

“후후···. 괜찮습니다. 궁금하신 게 있으면 바로바로 풀어야죠.”

일이 아주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녹음실에는 케이가 다리를 꼬고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서 소리를 이리저리 바꿔 보고 있었다.

“어우···. 맘에 안 들어···. 응?”

“아직도 작업하니?”

“형 왔어요? 어? 뒤에 분들은 누구세요?”

나는 케이에게 카이시브를 간단히 소개했다.

“그러니까 홍대에서 인디밴드를 하셨다고요?”

“네! 케이 프로듀서님.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노래는 아주 잘 듣고 있습니다.”

“남자 아이돌 노래도 들어요?”

“아···. 식당에서 자주 흘러나오다 보니···.”

카이시브가 케이의 공격적이고 퇴폐적인 카리스마에 살짝 억눌린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케이에게 다가가 그와 어깨동무를 했다.

“우리 회사의 천재 작곡가님께서 지금 작곡 중이시라 조금 날카롭습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욱···.”

나는 어깨동무를 하면서 팔뚝에 살짝 힘을 주고 작은 소리로 이야기했다.

‘잘 좀 해라.’

‘갑자기 뭔데?’

‘얘들 좀 잘 가르쳐 봐. 재능 있는 애들이야.’

케이는 뭔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무슨 짓이냐는 뜻일 거다. 하지만 분명 이들을 가르치고 같이 작업하면서 케이가 한 단계 더 진화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관중 씨. 혹시 만들어 놓은 곡 없나요? 록 말고···.”

나는 정신이 없어 보이는 하지훈보다는 김관중에게 작업해 놓은 곡을 한번 들려줘 보라고 했다.

“미디를 공부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좀 창피한데요?”

“관중 씨. 걱정하지 마세요. 주 종목인 록에서 여러분들의 실력을 알고 있습니다. 다른 부분은 취약할 수 있다는 거 이해합니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마시고 들려주셔도 됩니다.”

그는 주저하면서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써도 되나요?”

“네···. 뭐 그러세요.”

케이가 내 팔뚝에서 빠져나온 뒤 목을 으쓱하며 건조하게 대답했다.

김관중은 사운드 클라우드에 접속해서 오디오 파일을 내려받은 후 큐베이스를 열어 곡을 플레이했다.

스피커를 통해 빠른 비트의 EDM 댄스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미디를 얼마 하지 않은 것 치고는 꽤 괜찮은 사운드 같았다. 듣다 보니 왠지 모르게 그룹 하나가 생각났다.

R&B 팝댄스 기반의 음악을 추구하는 블루밍이었다. 특이한 곡들을 많이 하는 그들의 분위기에 어느 정도 맞는 곡이랄까?

약 1분 30초가량의 곡이 끝나고 녹음실에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어떠냐?”

“전형적인 아마추어.”

그냥 잔인할 정도로 직설적으로 말해 버리는 케이였다.

“······.”

그 말을 들은 김관중의 표정이 급격히 썩어 갔다.

‘하···. 저놈의 독설 진짜···. 아마추어 치고는 감각이 있는 것 같은데···.’

“조, 좀 자세히 설명을 해 줘야 알아듣지. 장점이나 단점 같은 거 말이야.”

“단점이라···. 먼저 사운드가 너무 많이 비어. 아마추어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지. 그리고 최근에 작업한 것 같은데 사운드가 약간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 있어. 촌스럽다 이거지. 마지막으로 드럼하고 킥을 잘못 썼어. 전체적으로 어울리지 않아.”

“그, 그렇습니까?”

김관중은 정말로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상대는 빌보드 1위를 찍은 작곡가 아니겠는가? 무게감이 남다른 것이다.

“장점은 없냐? 단점만 있는 건 아닐 거 아냐?”

그러자 케이가 김관중의 얼굴을 무심히 쳐다보았다.

꿀꺽···.

“멜로디는 상당히 좋아. 괜찮은 탑라이너의 자질이 보이네. 혹시 어렸을 때 클래식을 배웠나요?”

“아···. 네. 피아노를 오랫동안 배웠습니다. 그래서 밴드에서 키보드를 맡고 있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근데 탑라이너가 뭐냐?”

전문용어가 나와서 나도 모르게 끼어들고 말았다.

“멜로디 쓰는 사람. 반대로 비트메이커 혹은 트랙메이커도 있지.”

“아···. 그런 게 있구나. 그럼 케이 너는 뭔데?”

“나? 나는 그냥 다 하지 뭐. 전천후야.”

“잘났다 이거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나는 혼자 작업하는 게 좋아서 그렇게 했던 거고···. 정답은 없어. 그냥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지. 혼자 하건 따로 하건, 중요한 건 좋은 곡을 만들면 된다는 거야. 그걸 고민해야지.”

“으음···. 그렇구나. 그거참 좋은 말이다.”

케이의 말을 듣고 나도 깨닫는 게 있었다. 뭘 쓰든 재미를 줘야 한다는 것 말이다. 물론 항상 그렇게 할 순 없겠지만···.

“그쪽은 뭐 없나요? 그냥 친구 따라온 거 아니죠?”

“아, 아닙니다. 저도 있습니다.”

하지훈은 케이의 말을 듣고 컴퓨터로 걸어가 자신의 오디오 파일을 내려받았다. 머리가 치렁거리자 잠시 손으로 긴 머리를 쓱 쓸어 넘겼다. 그 모습에서 살짝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얘는 은근히 분위기가 있네.’

드디어 하지훈의 곡이 스피커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 이거다!’

카이시브에서 내가 신선하게 들었던 게 바로 이 독특한 전자음이었다. 하지훈이 만든 트랙이었을 줄이야. 나는 무심코 그 소리를 키보드가 내는 거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신선한 퓨처사운드에 깜짝 놀라 케이를 쳐다보니 그의 표정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케이는 눈을 부릅뜨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어디서 이런 애들을 찾아왔는지 묻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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