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68화 (168/263)

인재가 부족해 (2)

“잘하는 것만 하라고요?”

엄태민 감독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다 화가 나는지 얼굴이 살짝 상기되는 것 같았다. 원래 사람이라는 게 갑자기 진실을 마주하게 되면 화가 나는 법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나는 엄연한 사실을 말하고 있으니 꿀릴 게 없었다. 하지만 대화는 밀어붙여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살짝 분위기를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감각이 전혀 없으신 건 아닙니다만···.”

눈썹을 꿈틀거리던 그가 내 말을 듣고 심호흡을 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저도 압니다. 사람이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으니까요.”

살짝 힘을 빼는 엄태민이었다.

“감독님. 저라고 연기나 연출을 하고 싶지 않을까요?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감독을 한다거나 배우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요.”

“..........”

솔직히 글 쓰고 사업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별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다. 자꾸 사기꾼이 되는 것 같아 살짝 걱정됐다.

“감독님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글 쓰는 것은 하루에 얼마나 투자를 하시는 건가요?”

“..........”

말문이 막히겠지. 하루에 30분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아마 요즘엔 연기하느라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저는 사업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하루에 최소한 3시간 이상, 만자 정도는 씁니다.”

엄태민이 내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물론 저는 웹소설도 쓰기 때문에 분량이 많은 편입니다. 작가 대다수가 꾸준히 생각하고 정보를 모으고 글을 쓰고 퇴고하고···. 이런 일들을 매일매일 하고 있습니다.”

“크흠···. 그러니까 저보고 시나리오는 쓰지 말라고 하시는 거 아니십니까?”

너무나 직설적으로 말을 하는 엄태민이 눈을 들어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잘하는 것에 집중하자는 뜻입니다.”

“저는 그렇게 들립니다. 그런데···. 대표님 말을 들어보니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래도 다행히 꽉 막힌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만약 더 고집을 피웠으면 나도 손절하려고 했는데 다행이었다.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좀 있습니다. 감독님은 연기력이 있으세요. 차라리 감독 겸 배우로 가닥을 잡아보시는 게···.”

그는 손을 들어서 내 말을 제지하더니 내 앞에 있는 아메리카노를 원샷 해버렸다.

어허···. 아저씨 그거 아직 좀 뜨거운데···.

“크···. 시나리오나 한번 보여주시죠.”

“대본은 아직 없고 소설 형식으로 만든 내용이 있습니다.”

“그거라도 일단 주세요. 저도 대표님 작품들을 봤기 때문에 스타일은 대충 알고 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톡으로 보냈으니 돌아가셔서 확인해보시고 연락주세요. 아마 감독님 전작하고 느낌이 비슷해서 감을 빨리 잡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읽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는 쿨하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감독님. 혹시 조건은 안 물어보십니까?”

“호진이 형한테 대충 전해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잘 생각해보라고 꼬시더군요.”

하하···. 김호진 PD 이 고마운 사람을 봤나. 미리 이야기를 안 듣고 왔으면 파투날 뻔했잖아?

“아무튼, 연락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감독님.”

“네. 살펴 가세요.”

그렇게 엄태민 감독과의 만남이 끝났다.

‘만약 내 작품을 읽어보고 관심이 없다고 하면 신인을 발굴할 수밖에···.’

* * *

오랜만에 케이의 아지트인 녹음실을 방문했다.

그는 의자에 앉아 이상한 자세로 다리를 꼬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흠흠···.”

“형···. 왔어요?”

“어. 근데 너 자세 좀 똑바로 하고 있어라. 그러다 허리 나간다.”

“왜 보자마자 시비예요?”

“시비가 아니라 네 허리를 걱정하는 거야. 맨날 구부정하게 해파리처럼 하고 다니니까 그러지.”

“형 허리나 걱정하셔!”

“나는 짱이지.”

나와 케이는 마치 친형제처럼 농담을 주고받았는데 오늘따라 그의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왜 그렇게 죽을상이냐. 곡 만드는 거 진도가 잘 안 나가?”

“아니 만들긴 했는데···. 맘에 안 들어.”

“어떤데 그래? 나 한번 들려줘 봐. 완벽하게 대중적인 귀로 평가해주겠어.”

“그냥 만들다 만 거라 감안을 좀 해줘야 해.”

“괜찮아 인마. 내가 빌보드 1위 작곡가 곡을 까서 뭐하게. 내 글을 깔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야.”

“나한테 많이 까인 주제에 큰 소리는···.”

나는 일부러 케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농담을 하고 있었다.

“한번 들어봐.”

케이는 마우스를 움직여 곡을 플레이시켰다. 녹음실 고가의 스피커로 강력한 베이스음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오···.”

초반 강력한 비트와 하이 음역대인 리듬감 있는 브라스가 특징인 신나는 업템포 댄스곡이었다. 약간 R&B 감성이 묻어있는 느낌이랄까?

‘음···. 여름에 어울릴만한 시원하고 신나는 곡이네.’

중간중간 레트로한 퍼커션과 게임에서나 쓰일 법한 전자음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상당한 완성도의 곡이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들어보니 꽤 훌륭한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때?”

“음···. 좋은데? 트렌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너만의 그 뭐냐···. 감성 같은 게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애들 타이틀곡으로 어울리냐고!”

“...중간에 신비한 느낌을 주려고 한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는 그냥 요즘 유행하는 곡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

“아이 씨···.”

케이는 성질을 내더니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고개를 처박았다.

“아이 씨는 무슨···. 곡은 진짜 좋았어. 괜히 빌보드 1위 작곡가가 아니네. 일단 이건 킵하자.”

“짜증 난다. 뭔가 신선한 걸 만들어보고 싶은데 맘대로 안돼.”

나는 괴로워하는 케이를 보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완벽주의자의 표본 같은 사람이랄까?

“괜찮아. 언젠가는 나오겠지.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안되면 지금 곡으로 가도 되고···. 1티어 그룹들이 부르는 곡하고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 뭐···.”

“후우···. 그게 문제야. 그 다를 게 없다는 거···. 우리는 메이저가 아니잖아.”

“아!”

명색이 중형 기획사에서 매니저로 일했다는 놈이 그 사실을 간과하다니!

만약 가수 분야로 따진다면 소형 기획사라고 해도 무방한 XM Ent.에서 신인이 데뷔한다면? 4대 기획사가 아닌 이상 단순히 곡만 좋아서는 그냥 괜찮은 신인이 나왔네 하는 정도로만 인식될 뿐이다.

그리고 짧게는 2년 길게는 3, 4년쯤 이어지는 인지도와의 전쟁.

이게 바로 중소형 기획사 출신 아이돌들의 숙명이었다. 라이벌과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인지도를 얻기 위해서 고군분투를 해야 하는 상황.

천신만고 끝에 데뷔하더라도 기다리고 있는 건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며 수치심을 느끼더라도 길거리에서 공연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실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방송국이 찾아주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진정한 원인은 대중들의 무관심···.

그래서 데뷔를 하고 그 생활을 못 견딘 나머지 탈퇴를 하는 멤버들도 많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우라는 내 드라마가 있잖아. 그걸로 인지도를 키우면 되잖아.”

“그건 데뷔하고 찍는다며?”

“그렇지. 멤버들의 나이도 있고 먼저 데뷔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러면 이 곡을 들고 데뷔하면 안 돼. 차트라도 들려면 더 좋은 곡이거나 충격적인 곡이어야 한다고! 데뷔하고 그저 그런 아이돌이 되는 건 내 자존심이 절대로 용납 못 해.”

케이 이 녀석도 빌보드 1위 작곡가라는 자존심이 있어서 그런지 기준점이 상당히 높았다. 나는 그냥 일단 천천히 가려고 했는데···.

‘내가 그저 그런 상태의 테리우스를 2년간 봐와서 그게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해버렸구나.’

“그래서 어쩌려고? 무슨 영감이라도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거야? 이렇게 온종일 녹음실에 처박혀서?”

“원래 작곡이라는 게 이런 거야. 영감이 안 떠오르면 수십 번을 뒤엎고 나무를 깎듯이 계속 수정하고 고치는 수밖에 없어.”

하긴···. 웹소설을 생각해보니 마찬가지였다. 정식 유료연재를 하기 전에 유명한 작가들도 무료에서 몇 번을 갈아엎는다. 어디든 정보가 넘쳐나서 경쟁자들이 즐비한 시대니까.

머리를 싸매고 있는 케이를 보니 나도 답답하긴 한데 약간 짠하기도 했다. 이 녀석도 이렇게 고민을 하는데···.

“그러면 콜라보라도 하는 게 어때?”

“누구랑?”

“유명한 작곡가들 많잖아?”

케이는 잠시 기대를 하다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보이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면 마이너한 장르를 좀 섞던지?”

“이를테면?”

“이를테면 록이나 메탈같은 거···. 아직 북미나 유럽은 메탈헤드(마니아)가 많잖아.”

“흐음···. 괜찮은 생각인데 그쪽은 내가 잘 몰라서···.”

하긴 이 녀석은 클래식 쪽에서 넘어온 인재라서 그런지 그런 쪽으로는 약한 것 같았다.

“너도 모르는 게 있었냐?”

“나라고 다 아는 줄 알아? 하아···. 덥스뎁이나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같은 EDM을 좀 과하게 써 볼까?”

“음···.”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프로그레시브 록?’

푸념을 늘어놓는 케이의 혼잣말을 듣다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뭔가가 팍하고 떠올랐다. 불현듯 홍대 쏭포유에서 공연을 하던 카이스트 출신의 밴드가 생각난 것이다.

나름 한때나마 록 마니아였던 내가 상당히 인상 깊게 들었던 밴드 ‘카이시브’가 떠오를 줄이야.

“형 왜 그래? 누구한테 빌려준 돈이라도 생각난 거야?”

“..........”

분명 카이시브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와 키보드를 치는 멤버가 케이와 비슷한 수준의 보라색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다.

그들이 하던 프로그레시브 록은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퓨처리스틱한 사운드였으니 ‘아우라’의 신비 컨셉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형!”

“자, 잠시만···.”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연락처 앱을 눌러보려다가 내 명함만 주고 그들의 전화번호를 받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다.

“이런 젠장!”

“진짜 누구한테 돈이라도 떼였나 보네. 쯧쯧···.”

“조용히 좀 해 인마. 일단 작곡이나 열심히 하고 있어 봐. 나 잠시 일 좀 보고 올 테니까···.”

나는 급하게 녹음실 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쏭포유에 전화를 걸었다.

[네. 쏭포유입니다.]

전화 너머로 굵직한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녕하세요. 혹시 사람을 하나 찾을 수 있을까요?”

[사람이요?]

“아···. 정확하게 말하면 거기서 공연을 했던 뮤지션인데···.”

[네. 말씀하세요.]

“몇 개월 전쯤에 카이시브라고 하는 록밴드가 있었는데요.”

[아! 카이시브요? 알죠. 알다마다요. 대단한 녀석들이죠. 천재들이랄까···. 제가 음악을 들어보고 바로 공연을 승낙했던 팀이었죠.]

“아···. 그렇군요.”

나는 갑자기 음악성 운운하는 아저씨의 말을 듣고 말문이 막힐 뻔했다.

[그런데 카이시브는 왜 찾으세요? 혹시 연락해보시게요?]

“예···. 뭐 그렇습니다만···.”

[흐음···. 카이시브가 하는 음악이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다 보니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을 텐데···. 안타깝지만, 지금은 해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혹시 연락처를 얻을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일은 아니겠죠? 빚을 독촉한다거나···.]

“좋은 일입니다. 절대 해가 되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흠···. 잠시만요. 연락처가 있을 거예요. 제가 찾아서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하하···. 제가 사장인 거 어떻게 아셨어요? 그럼 끊습니다.]

“네네···. 감사합니다.”

휴···. 다행이었다. 또 카이스트까지 내려가서 생쇼를 할 뻔했는데···.

띠링···.

[카이시브 하지훈 010-XXXX-XXXX]

하지훈이라···. 맞네.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기타리스트였나? 그리고 옆에 싹싹하던 키보디스트 이름이 되게 특이했었는데 뭐였더라? 아! 맞다! 김관중? 박관중? 성이 헛갈리긴 하는데 분명 관중이라는 이름의 학생이었다.

‘그 관중이라는 학생의 전화번호였으면 좋았을걸.’

보컬 겸 기타리스트 하지훈과 나는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다. 나를 너무 경계하는 바람에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해버린 창피한 기억이 떠올랐다.

‘하아···. 어쩔 수 없지.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나는 휴대전화를 들어 쏭포유 사장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발신음이 나오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드디어 까칠했던 그 하지훈이라는 녀석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저 이준형이라고 합니다.”

[네? 누구시라고요?]

“흠흠···. 이준형이라고 J&J 엔터테인먼트 대표입니다.”

[네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