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67화 (167/263)

인재가 부족해 (1)

아우라(Aura).

우리 회사 첫 번째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었다. 살짝 평범한 느낌도 있지만, 편안하고 발음하기 좋고, 천재 요리사의 아우라, 천재 보컬의 아우라, 진짜 천재의 아우라, 언어 천재의 아우라 등등···. 여러 가지로 쓰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나는 멤버들에게 각자 미튜브에 올릴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각해 보라는 숙제를 주었다.

“와···. 저희가 아이디어를 내는 거예요?”

“그래. 촬영, 편집은 J&J 스튜디오에서 할 테니까 너희들은 좋은 아이디어만 내 봐. 6층에 촬영 스튜디오 봤지?”

“아···. 거기서 해도 되는구나. 대박!”

“맞아. 그러니까 이것저것 생각 많이 해 보라고! 알았어?”

“네! 맡겨만 주세요.”

멤버들은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야단법석이었다. 옆에서 보고 있으니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가 전달되는 느낌이랄까?

“자···. 곧 데뷔 준비를 해야 할 테니까 연습 잘 하고, 각자 콘텐츠도 생각해 봐. 알았지?”

“네! 대표님!”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는 잠시 밀렸던 결재를 마치고 관련 기사를 인터넷으로 훑어봤다.

“음?”

[J&J 넷플릭 오리지널 시리즈 ‘나만 아는 세계멸망’ 캐스팅 확정!]

[이준형 작가의 차기작 ‘나만 아는 세계멸망’의 여주인공은 이희진으로 결정되었다. 여배우 오디션을 마친 J&J 측은 최종적으로 이희진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가수에서 배우로 전향한 이희진은 훌륭한 작품을 하게 돼 기쁘다며 좋은 연기를 펼칠 거라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그리고 조연급 배우로 이준형 사단으로 알려진 심형탁과 정혜성, 이수현이 나란히 출연해 호화로운 캐스팅을 자랑한다. 이준형 작가의 전작인 ‘나만의 세계’를 재미있게 본 시청자라면 기대해 봄 직하다.

그러나 이희진은 작년 드라마로 신인상을 수상 후 영화에 출연하여 연기력 논란을 겪은 바 있다. 과연 그녀가 어떤 연기를 보여 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중략>]

“흠···. 벌써 부정적인 기사가 올라왔네.”

나는 기사를 읽다가 브라우저를 꺼 버렸다. 커뮤니티에서도 연기력 논란이 된 배우를 왜 캐스팅했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희진은 S급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대단한 배우였다. 다만 아직 그것을 완벽하게 발휘하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져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내 작품에서 제 모습을 찾는다면···.’

오디션을 하며 여배우들을 몇 명 더 만나 봤지만, 이희진만큼 배역에 잘 어울리는 배우를 찾을 수 없었다.

‘뭐 잘하겠지. 잠재력이 대단한 배우니까···.’

그건 그렇고, 문제는 우리 회사의 첫 아이돌인 아우라였다. 일단 급한 대로 외주 인력과 수시 채용으로 스튜디오의 인원을 늘리고 있었지만, 드라마를 연출할 능력 있는 감독이 부족했다.

“PD님 저 좀 보실까요?”

나는 전화로 김호진 PD를 호출했다.

“대표님 부르셨어요?”

“이리 와서 앉으세요. PD님.”

의아해하는 표정의 김 PD를 보고 지금 처한 상황을 차분히 설명했다.

“네? 드라마를 하나 더 찍어야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1시즌부터 겹치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나만 아는 세계멸망’이 최소한 3시즌까지 계약이 되어 있으니 동시에 진행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요즘 직원들도 충원하라고 하셨고···.”

“네. 제작팀은 좋은 조건으로 경력자들을 채용해서 차근차근 충원해 나가고 있는데, 문제는 감독입니다. PD님 같은 유능한 감독이 필요한데 혹시 아시는 분이라든지···.”

“으음···. 제가 그 작품도 하고 싶긴 한데···.”

“PD님이 무슨 공간 이동 능력자라도 되나요? 지금 준비하는 거는 어떡하고요? 무려 7시즌짜리입니다.”

“하하···. 그냥 해 본 말입니다. 혹시 그 드라마 내용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일단 제목은 ‘귀환소녀(歸還小女)’인데요. 이세계에서 넘어온 리치를 잡는 걸그룹이라는 현대판타지 드라마예요.”

“허허허···.”

“왜 웃으세요?”

“참···. 대표님을 보면 신기한 게, 스토리들이 하나같이 평범하지가 않네요.”

“평범하지 않으니 영상으로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유능한 감독이 필요한 겁니다. 자칫 잘못하면 유치해져 버릴 수 있거든요. 이 ‘귀환소녀’는 흙수저 걸그룹의 애환을 다룰 예정인데, 코믹하면서도 약간 묵직하고 다크하게 진행될 거라 그런 디테일을 잘 살려야 하거든요.”

“흐음···. 혹시 대본을 좀 볼 수 있을까요? 그걸 봐야 적당한 인물을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본은 없고 소설처럼 좀 끄적여 놓은 게 있는데 괜찮으실까요?”

“네. 그냥 이미지만 보려고 합니다.”

“그럼 링크를 바로 보내 드릴게요. 클라우드에 올려 놨거든요.”

“네.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 날.

“대표님. 저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PD님. 소설은 좀 보셨어요?”

“네. 재밌더군요. 사실 제가 그 소설을 읽다가 어울리는 감독이 딱 생각났습니다. 제 후배인데요···.”

오! 역시 동종업계의 인맥을 이용하는 게 편하긴 하군. 적합한 사람까지 생각해서 알려 주다니···.

“그게 누군가요?”

“엄태민 감독이라고, ‘시공을 건너’라는 영화를 만든 감독입니다.”

“시공을 건너?”

“네. 아마 모르실 수도 있어요. 3년 전에 워낙 크게 망해서···.”

황급히 포탈에서 찾아 보니 포스터는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았다.

‘손익분기점 300만인 영화가 30만을 찍었네.’

그야말로 폭삭 망한 수준이었다.

“음···. 성적이 부진했군요.”

“부진이 아니라 그냥 쫄딱 망했습니다. 엄태민 감독 프로필을 보시면 그 이후에 작품이 없지 않습니까?”

“그, 그러네요.”

“그래도 능력은 뛰어난 녀석이에요. 성적은 처참했지만, 신인감독상도 받고 전문가들에게 호평도 받고 그랬습니다. 물론 관객들에게는 철저히 외면받았지만요.”

“왜 그렇게 성적이 부진했던 거죠?”

“영화를 봤는데 호불호가 심했습니다. 특히나 중반부터는 너무 지루하고···. 그게 아마 입소문을 탄 거 같습니다. 그런데 화면과 연출은 정말 멋지더군요.”

“PD님이 그렇다고 하시면 그렇겠죠. 저도 작품을 한번 봐야겠지만···.”

이건 분명히 내가 확인을 해 봐야 하는 사항이었다.

“대표님 각본하고 태민이의 연출이면 굉장한 작품이 나올 거 같습니다.”

“혹시 연락되나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냥 근황만이라도 물어봤으면 좋겠는데요. 만약 다른 작품을 하고 있으면 그냥 말짱 도루묵이잖아요.”

“네. 그냥 전화를 해 보죠. 뭐. 오랜만이긴 하지만 친한 녀석이니까요.”

김호진 PD는 휴대전화를 꺼내 엄태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이게 누구세요. 천만 감독 아니십니까?]

“천백만 인마. 왜 백만 명을 빼냐?”

[와···. 백만 명만 빼서 나 좀 주지.]

“그래 봐야 백삼십만 명이잖아. 손익분기점은 택도 없지.”

[오랜만에 전화해서 팩트로 조지기 있어요? 그래도 백만 명만 더 들어왔으면 내가 다음 작품 정도는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직도 작품 계획 없냐?”

[계획은 있는데 작품을 못 하고 있지. 그렇게 심하게 망했는데 섣불리 나서는 사람도 없고···.]

“그래도 독립영화계에서 천재 소리를 듣고 데뷔해서 신인감독상도 받았는데, 하나 망했다고 투자가 안 된다고?”

[있긴 한데요. 나도 좀 조심스럽네. 차기작까지 망하면 진짜 나락이라···.]

“너도 고민이 많구나.”

[드라마 히트 치고 영화도 천백만 관객 찍고 하신 분이 제 심정을 어떻게 알겠어요.]

“왜 몰라. 나도 회사 나오고 힘들었어. 지금이야 괜찮지만···.”

[형···. 다음 주에 술 한잔할까? 나 지금 뭐 해야 하는데···.]

“지금 뭐 하는데?”

[그게···. 나 요즘 영화 찍어. 비중 작은 조연 캐릭터로 캐스팅됐거든.]

“아···.”

[형! 나중에 내가 연락할게.]

“그래. 끊는다.”

김호진 PD는 전화를 끊으며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렇다네요.”

“배우··· 도 해요?”

“네. 배우 겸 감독이에요. 작품을 못 들어가니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배우도 하나 보네요.”

나는 황급히 포털에서 엄태민 감독의 사진을 찾아봤다.

“아! 이분이구나···.”

나도 이 사람의 얼굴이 기억났다. 약간 나쁜 남자 스타일이었는데 안경 너머 눈빛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뭐랄까 약간 나이 든 래퍼 같은?

느낌이 괜찮은 사람이었다.

“일단 영화를 좀 보고 말씀드릴게요.”

“네. 대표님. 제가 연락처를 알려드릴 테니 마음에 들면 전화해 보시죠. 저는 촬영 준비를 해야 해서요.”

“그러셔야죠. 알겠습니다. 이후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 * *

경기도 인근의 한 카페.

나는 엄태민 감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한 영화의 조연으로 출연하여 이번 주까지 이곳 파주에서 촬영을 한다고 했다.

어제 김호진 PD가 나가고 그의 필모그래피를 쭉 훑어보았다. 독립 영화 세 작품과 상업 영화인 ‘시공을 건너’를 살펴본 후 나와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의 첫 상업 영화인 ‘시공을 건너’는 ‘귀환소녀’와 유사성도 일부 있었다. 특히 나는 그가 연출한 영상미에 반해 버리고 말았는데, 고풍스럽고 아련한 느낌의 화면 질감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왜 이 영화가 망했을까? 단순한 이유였다. 너무 어렵고 지루했으니까. 이것은 전적으로 각본의 문제였다. 즉 스토리의 전개가 안 좋았다는 뜻이었다.

‘이러니 나랑 하면 딱 맞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으니 멀리에서 키가 큰 한 사내가 껄렁껄렁한 걸음걸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에게서 탁한 흙색의 아우라가 포착되었다. 그것도 김호진 PD와 비슷한 크기로 말이다.

“이준형 대표님?”

“아···. 엄태민 감독님 반갑습니다. 이준형입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엄태민 감독은 내가 찾아와서 연락하자 당황한 표정이었다. 김호진 PD가 오기 전에 미리 그에 대한 정보를 일러 줬다. 그는 상남자 스타일이었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타입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하고 뭔가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보였다.

“수염이 많으시네요.”

“아···. 이거 일부러 길렀습니다. 지금 산골 마을 동네 주민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그렇군요. 감독님이 연기까지 하신다니···. 대단하시네요.”

“아···. 감독 겸 배우가 한둘이 아닌데요. 뭐···.”

그는 내 칭찬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그렇죠.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조지 클루니, 로베르토 베니니도 감독 겸 배우였죠.”

“그나저나 저를 왜 보자고 하셨는지···.”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딱 봐도 상남자 같은 성격인데 빙빙 돌려 가면서 말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제가 드라마를 제작하려고 하는데 감독님 같은 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연락을 드린 거고요.”

엄태민 감독은 내 말을 듣고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혹시 제 영화를 보셨나요?”

“네. 다 봤습니다.”

“그게 얼마나 쫄딱 망했는지도 아시겠네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분명 관객들의 외면을 받은 요인이 있지만 그것 빼고는 다 좋았으니까요. 누구나 첫 작품부터 천만을 찍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 실패를 하고 대작을 만들곤 하죠.”

“호진이 형은···.”

“아···. 김호진 PD님은 능력이 아주 대단하니까요.”

나는 일부러 그를 도발하고 있었다. 김호진 PD와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먼저 두각을 나타내고 천재 소리를 들은 게 바로 이 엄태민 감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프로듀서를 하던 선배가 영화를 찍더니 자기가 꿈꾸던 천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 형 능력이 대단하긴 대단하죠. 워낙 뭔가를 파고드는 스타일이라···.”

“아니요.”

“네?”

“김호진 PD의 대단한 점은 그게 아닙니다.”

“그럼 그게 뭔데요?”

“가성비를 따져 가며 최상의 퍼포먼스를 내는 능력과 빠른 촬영, 그리고 자기 자신의 스토리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자기 자신의 스토리를 고집하지 않는다?”

“네. 철저히 자기가 잘하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엄태민 감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모든 작품의 시나리오를 전부 다 자신이 쓰고 있었다. 글쓰기 능력과 영화감독의 재능은 아우라 색깔로 구별이 되지 않았지만, 각본을 읽어 본 결과 그에게서 큰 재능을 발견할 수 없었다.

“설마 제가 쓴 각본이 별로라는 건가요?”

“그런 뜻은 아닙니다만···.”

“그럼 저에게 전화하신 이유가 뭔가요?”

나는 잠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한 박자를 쉬었다.

“···당연히 제가 제작하려는 드라마의 감독 자리를 의뢰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리고요?”

“그리고 거기에 출연도 해 주십시오.”

“네? 그게 무슨···.”

이 양반아, 뭘 그리 놀라나? 당신은 감독에 대한 재능뿐만 아니라 배우로도 꽤 괜찮은 능력을 갖추고 있는 거 같은데.

이 아우라의 색으로 볼 때 그는 연기력을 겸비한 감독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잘하는 것만 하시라고요. 스토리는 저에게 맡기고 연기와 감독만 하시라는 겁니다. 혹시 압니까? 배우와 연출로 동시에 수상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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