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64화 (164/263)

빌드 업의 정석 (2)

나는 유정 씨와 함께 SG 견학을 마치고 마포로 향했다.

“아까는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말을 안 했는데요. SG에서 연습생이라도 빼내 오실 생각이에요?”

역시나 우리 유정 씨는 이게 제일 궁금한 모양이다.

“빼내 오긴 뭘 빼내 와요? SG랑 척질 일 있어요? 큰일 납니다.”

“그런데 뭐 하러 거기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데리고 가고 싶다고 막 그랬잖아요.”

“그냥 한 소리예요. 보니까 다 데뷔하지도 못하고 그만둘 연습생들 천지던데···. 걔들 경쟁이 얼마나 심한지 모르죠? 진짜 무섭고 냉정한 곳이 바로 아이돌 연습생 시장입니다. 저는 그냥 뇌관을 심어 놓은 거예요. 이적이나 관둘 때 우리 회사도 한번 생각해 보라고···.”

“치···. 잔머리는 진짜 좋다니까?”

“저기요. 잔머리라뇨. 그냥 경영 철학입니다. 인애(仁愛)라고 아십니까? 그 좋은 인재들이 대부분 데뷔도 못 하고 사라져 간다는 게 안타깝잖아요.”

“음···. 진짜 깜짝 놀랐어요. 와···. 어쩜 그런 애들이 수십 명이나 있고 대다수는 데뷔를 못 한다니···.”

“인재가 다 대형 기획사에 몰려 있어서 그래요.”

“공고를 내도 좋은 연습생들이 왜 한 명도 안 오는지 알겠어요.”

“하하···. 정말 올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죠?”

“······.”

“그리고 한 가지 더요. 제가 이런 걸 해야겠습니까? 엄연히 남자 아이돌은 나 이사님 업무입니다만?”

나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나유정을 쳐다보았다.

“에이···. 저한테 노하우도 풀고 하면 좋잖아요. 걸그룹 멤버는 진짜 잘 뽑아 놨으면서···. 그 안목 좀 빌려주세요. 솔직히 제가 애들 연기도 열심히 가르치잖아요. 우리 그걸로 퉁치죠?”

“흐음···. 기업 비밀인데···.”

“됐고요. 오늘 진짜 엄청 자극받았어요.”

“하하···. 꼭 데뷔라도 하는 사람 같습니다. 하긴 저도 살짝 긴장되긴 하더라고요.”

“곧 데뷔한다는 걸그룹 때문인 거죠? 우리랑 겹칠까 봐?”

나유정도 그들의 뛰어난 능력을 알아차린 걸까?

“맞아요. 그래도 다행히 시기가 겹치진 않네요. 차기작도 대략 구도가 잡혀 가고 있으니 우리 애들도 이제 슬슬 알릴 준비를 해야죠.”

* * *

며칠 후 나는 다섯 명의 멤버들을 연습실로 불러모았다. 갑자기 소집해서 그런지 살짝 긴장한 눈치였다.

몇 달 동안 관리를 잘 받아서 이제는 걸그룹으로서 틀이 갖춰진 것 같았다. 일단 피부 관리, 철저한 식단 및 운동으로 체질이 확 바뀐 것이다.

멤버들은 유상준 팀장이 음악을 틀자 블랙소울의 노래에 맞춰 단체 군무를 추고 있었고, 그 모습을 나와 케이 그리고 유정 씨가 함께 점검하고 있었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우리 걸그룹의 장신 센터인 러블리 큐트 장예원(18세). 밝은 골드 아우라를 소유하고 있는데 꾸준한 필라테스 및 근력 운동으로 거의 모델처럼 우아하게 변해 있었다. 긴 팔과 다리를 이용해 춤을 추고 있으니 시선이 한 번에 집중됐다.

‘와···. 천상 센터네. 눈에 확 들어온다. 내가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어?’

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미녀라고 일컬어지는 나유정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이런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어쩜 이렇게 시선을 강탈하는지···.

그리고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멤버는 정이든의 친동생인 리드보컬 겸 댄서 정유리(19세). 귀엽고 신비롭게 생긴 외모로 젖살이 싹 빠진 상태였다. 얼굴이 작고 누가 봐도 사기적인 비율의 소유자였다.

키도 커서 전체적으로 장예원과 비슷한데, 장예원이 나유정처럼 화려한 얼굴이라면 정유리는 오밀조밀한 귀여운 느낌이랄까? 밝은 오렌지 계열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어서 춤과 노래, 그리고 연기가 골고루 균형 잡힌 멤버였다. 또 놀랍게도 영어 랩을 상당히 잘하는 편이었다.

화려한 예원이에게 시선을 사로잡혔다가 옆을 보면 자꾸만 눈에 밟히는 그런 귀여운 외모의 소유자다. 입덕 요정 원투 펀치를 맡게 될 밸런스형 인재!

그리고 건강을 완벽하게 되찾은 SG 출신의 담희(18세)가 있었다. 갑상선 항진증을 치료한 후 그녀의 얼굴에 보조개가 다시 피어났다. SG뉴비즈에서 레전드를 찍었던 청순한 외모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녀도 균형감 있는 밝은 오렌지 계열의 아우라를 가진 인재였다.

이렇게 중앙에 삼각 편대가 버티고 서니 헛웃음만 나왔다. 세 명의 센터를 박아 놓은 느낌이랄까?

그다음으로 왼쪽 날개인 팀의 리더 이지령(19세)! 카이스트의 영재이자 메인 댄서 역할을 해줄 브라운 계열 아우라를 가진 멤버였다. 팀에서 키가 가장 작았으나 놀랍게도 166cm였다.

어차피 키들이 비슷비슷해서 깔창만 좀 조절하면 같은 키로 보이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팀의 메인 보컬인 리리(20세)가 윙의 오른쪽을 맡고 있었다. 그녀는 메이크업을 살짝 강하게 해서 강렬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었다. 팀에 살짝 부족한 걸크러시 느낌을 금발로 보완해 주고 있었다.

그들은 무슨 일심동체라도 되는 듯 각을 정확하게 맞춰 가며 칼군무를 추고 있었다. 키까지 비슷하니 누가 보면 군무를 위해 골라 뽑은 듯한 인상을 주기까지 했다.

‘와···. 진짜 많이 변했다. 어쩜 이렇게 무시무시한 괴물로 변했지? 다들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춤도 잘 맞고···.’

격렬한 안무가 끝나고 멤버들이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짝짝짝···.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고 멤버들의 얼굴이 미소가 피어났다.

“잘했다. 이제 데뷔를 준비해도 손색이 없겠어.”

“감사합니다!!”

그들은 내 말에 감격했는지 서로 껴안고 하이파이브를 날렸다.

“유상준 팀장님, 수고 많으셨어요. 이렇게 단시간 내에 어려운 칼군무까지 소화하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뭘요. 애들이 불평 없이 묵묵히 잘 따라와 줬습니다.”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데뷔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은데, 컨셉이나 그룹명을 슬슬 정해야 하지 않겠니?”

“네!”

“까악! 너무 좋아!”

“와! 데뷔다! 엄마야!”

“어휴···. 고막 찢어지겠다. 그만 좀 하고···. 그렇게 좋니?”

“네! 당연하죠.”

“그래. 다들 오늘 연습 끝나고 그룹명에 대해서 생각해 봐. 내일 이야기해 보자.”

“네! 대표님!”

“알겠습니다!”

다섯 명은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왁자지껄 떠들며 좋아했다. 마치 다섯 명의 다 큰 자매를 보는 느낌이랄까? 좋은 환경에서 구김살 없이 자란 자매 말이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멤버들은 그룹명에 대해 생각해 놓은 것이 많은지 끊임없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저기요. 대표님! 질문 있습니다.”

“어 그래, 리더. 편하게 말해 봐.”

“대략적인 컨셉 같은 게 있나요? 아무래도 그걸 알아야 적절하게 생각해 올 것 같아요.”

역시 리더다운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요즘은 노선을 정하고 데뷔를 하기 때문에 초반 컨셉을 잘 잡는 게 매우 중요했다.

“음···. 기존에 없는 약간 다른 신비로운 컨셉이야. 마법적인 그 무언가랄까?”

“신비? 마법? 대표님 지금 뭘 하시려는 거예요?”

“해리포터 느낌인가? 헤헤···.”

다들 벙찐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해리포터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오오! 하면서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얘들아, 오후에 연습하고 집에 가서 잘 생각해 봐. 난 드라마 제작 회의가 있어서 이만 가 본다.”

“네. 들어가세요. 대표님!”

“안녕히 가세요!”

나는 연습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내 뒤로 케이와 유정 씨가 뒤따라 나왔다.

“형. 쟤들 데뷔시키게?”

“시켜야지. 이제 거의 다 완성된 것 같은데?”

“맞아요. 더 이상 트레이닝 받아 봐야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연기도 다들 괜찮은 수준까지 올라왔어요. 리리가 약간 어색해하긴 하지만···.”

“음···. 좋은 징조네요. 케이야. 너 곡은 좀 만들어 놨냐?”

“곡이야 컨셉만 주면 금방 만들지.”

“무슨 자판기냐? 그게 금방 뚝딱 하고 나와?”

“다 여기에 있잖아.”

케이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가볍게 치고 있었다.

“무슨 햄스터도 아니고 곡을 머릿속에 넣어 두는 거냐?”

나는 다 알면서 일부러 짓궂게 농담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잘생긴 햄스터 봤어요? 그건 그렇고, 아까는 애들한테 대충 말한 거 같은데 컨셉에 대해 자세히 좀 말해 줘요. 그래야 제대로 된 곡이 나오는 거 아시죠?”

“후후···. 컨셉은 게이트를 넘어 귀환한 소녀들의 걸크러시랄까?”

나는 별다른 설명 없이 딱 한마디만 했다. 케이라면 쉽사리 알아들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헉···. 웹소설 스타일이구나. 큭큭···. 미쳤다.”

케이는 너무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리고 있었다.

“후···. 일단 그 컨셉으로 한번 생각해 볼게. 그런데 최신 트렌드는 반영해야겠지? 댄스 쪽이고?”

“빙고! 역시 넌 척하면 척이구나?”

“당신 취향쯤은 꿰뚫고 있다고···.”

“어쭈! 아무튼, 천재 프로듀서의 위상에 걸맞은 곡을 가져올 거라 믿는다.”

“맡겨만 주시라니까요.”

역시 든든한 녀석이다. 이 녀석은 작곡도 모자라 자기가 눈여겨보고 있던 작가들까지 계약해서 작업실에 두 명 정도를 데려다 놨다.

“그리고 인마. 초보 작가들 군만두 그만 먹여. 맛있는 거 좀 사주고 그래. 조련하냐?”

“밥값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혹독하게 굴려야지.”

“어이구···. 누가 괴작 판독기 아니랄까 봐. 너 인마 그러지 마. 나니까 버텼지. 다른 사람은 네 녀석 악플에 못 견딘다고···.”

“괜찮아. 그때 형의 실패를 교훈 삼아서 적당히 완급조절할 테니까···.”

“·········.”

갑자기 그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회의 있다며? 안 가요?”

“간다!”

* * *

나는 드라마 제작팀과 회의를 하기 위해 6층으로 향했다. 사무실에는 J&J 스튜디오 미술감독과 연출팀, 그리고 김호진 PD가 참석해 있었다.

오늘은 그간 진행되고 있던 프리 프로덕션에 대한 진행 상황을 체크할 예정이었다.

일단 초반 촬영이 시작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설정은 장소 섭외를 거의 끝마친 상황이었고, 좀비 떼를 뚫고 탈출하는 장소도 폐공장을 섭외하고 필요한 세트를 계룡시와 협의하여 짓는 중이었다.

“작업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군요. 모두 수고가 많습니다. 사전 작업이 일정보다 빨라서 일찍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나는 일 진행 상황에 꽤 만족했다. 역시나 연륜이 있는 전문 제작팀다웠다.

“크흠···. 그런데 어제 다녀오신 곳에 정말 세트를 직접 지으실 건가요?”

“왜요? 문제 있나요?”

“그게 아니라 세트를 너무 과하게 짓는 게 아닌가 해서요.”

미술감독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어제 김호진 PD, 전기수 미술감독과 함께 계룡산 인근의 땅을 보고 온 후였다. 근처에 도로가 인접해서 외부에서 접근이 쉽지만 뒤로는 커다란 산과 절벽이 보이는 절묘한 위치의 땅이었는데, 내가 거기에 슈퍼 셸터를 지으라는 지시를 내려놓은 상태였다.

전기수 미술감독은 드라마 예산의 너무 많은 부분을 세트를 짓는 데 사용하는 게 아닌가 걱정을 하는 모양이었다. 이 슈퍼 셸터는 최대한 실제 건물처럼 설계해 지을 예정이었다.

“그래도 세트를 지을 땅은 제가 사비로 사지 않았습니까?”

“지시하신 수준으로 세트장을 건설하려면 비용이 수십억은 들 겁니다. 셸터의 모양을 제대로 재현하려면 토목 공사도 크게 해야 하니 최소한으로 잡더라도 50억은 넘어갑니다.”

“괜찮습니다. 그냥 진행하십시오.”

“네? 진심이십니까?”

“네. 진심입니다.”

내 빠른 결정에 김호진 PD조차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간단하게 스케치한 건물을 이미 설계 사무소를 통해 의뢰해 놓았는데 50억 정도의 비용이 나온 모양이었다.

“한 번 쓰고 말 건데···. 셸터가 나오는 게 3시즌 초반까지 아닌가요? 너무 과한 거 같은데요. 이렇게까지 안 해도 제가 영상은 신경을 써서 잘 뽑도록 하겠습니다.”

김호진 PD도 내 눈치를 보면서 너무 과하지 않냐고 걱정하고 있었다.

J&J 스튜디오 스태프들은 대체로 나를 살짝 말리는 모양새였다. 어렵게 회사 생활을 하다가 이제 좀 안정되는가 싶은데 대표가 이상한 짓을 하니 말리고 싶을 수밖에···.

“제작비에서 일부분, 회사 유보금에서 일부분, 그리고 제가 사비로 절반 정도를 투자하도록 하겠습니다.”

“허어···. 뭐 그렇게까지 하시겠다면야···. 영상은 잘 나오긴 하겠지만···.”

전기수 감독이 어이가 없는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그렇게 합시다. 대표님이 알아서 투자해 주시겠다는데요. 우리는 제작만 잘 합시다.”

뭔가 말을 하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이 양반들이 나를 무슨 미친놈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 아냐?’

이들은 내 계획을 모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 슈퍼 셸터를 한국 최초의 좀비 테마파크로 만들 예정이었다. 그래서 내 사비를 털고 있는 거다.

‘테마파크에 좀비가 몰려오면 관광객들이 슈퍼 셸터로 도망치는 프로그램도 구상해 볼까?’

영상도 실감 나게 촬영하고 기념관도 건설하고 돈도 버는 일석삼조의 아이디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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