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62화 (162/263)

경쟁자의 출현 (1)

나와 나유정은 이희진과 함께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희진 씨도 평가위원입니까?”

“아···. 제가 아이돌 육성이나 제작에 관심이 많아서 해 보겠다고 대표님께 부탁드렸거든요. 그래서 SG 트레이닝팀에 참여하고 있어요.”

“와! 대단하시네요. 저는 연기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연기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미래를 생각해야죠. 저도 나름대로 고민이 많아요.”

그녀는 말과는 다르게 밝고 에너지 넘치는 얼굴로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희진은 주위에서 천생 귀여움만 받고 자랐을 것 같은 이미지였다. 고민이 없을 것 같은 아름다운 외모에, 주위에서 ‘넌 진짜 예뻐서 좋겠다’라는 소리를 귀찮을 정도로 들어 왔을 것 같았는데···.

“열심히 사시네요.”

“아이돌 출신 선배님들 중에 트레이닝팀에서 일하는 분도 계시고 임원진도 계셔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긴 한데···.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나중에 뭐라도 하려면 열심히 배워야죠.”

허···.

희진 씨는 보기보다 야망이 큰 것 같았다. 그냥 연기 재능을 타고나서 아무 생각 없이 배우를 하는 그런 타입은 아닌 모양.

“아! 그런데 SG에는 주간 평가라는 것도 있나요? 제가 있던 XM에서는 월말 평가만 있었거든요.”

“저희도 월말 평가가 제일 중요하긴 한데, 필요할 경우 주간 평가도 합니다. 전부 다 모여서 하는 그런 공식적인 자리는 아니고, 이번 주에 배운 내용을 정리하면서 중간 평가를 하는 자리예요. 제 기억엔 아마 오늘 남자 연습생들 평가가 있을 거예요. 아! 맞네요.”

그녀는 휴대전화에서 일정 앱을 켜서 내용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드디어 연습실에 가까워졌는지 강렬한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저희가 좀 일찍 온 것 같아요. 마침 여자 데뷔조가 연습을 하고 있나 보네요. 잠시만요. 견학이 가능한지 제가 이사님께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이희진은 문 앞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허락 없이 보여 주면 안 되는 일인 것 같았다.

‘오···. 여자 데뷔조라고?’

우리 회사에서 연습생이 된 담희가 떨어졌던 그 데뷔조인 것 같았다.

SG도 내외부 요인으로 데뷔가 살짝 늦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네. 네네. 알겠습니다. 이사님.”

이희진은 전화 통화를 끊고 우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두 분께는 보여 드려도 괜찮다고 하시네요.”

“아! 정말이요? 원래 이런 건 극비 아닌가요?”

“아직 모르셨구나. 데뷔조 멤버들은 이미 언론에 공개가 됐습니다. 짤막한 노래나 댄스 영상이 미튜브로 공개되기도 했구요. 물론 컨셉이나 데뷔곡 정보는 극비이긴 해요.”

“어떻게 보면 저희를 약간 배려해 주신 거네요?”

“아···. 그렇게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드디어 그녀가 연습실 문을 열었다. 방 안에서는 4명의 멤버가 그루브 감이 있는 댄스곡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었다.

댄스를 봐주고 있던 트레이너가 이희진을 보고 음악을 멈추려 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이희진은 손사래를 치며 그냥 놔두라고 신호했다. 나와 나유정은 그녀의 옆에서 그 데뷔조의 군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후···. 이거야 원···.’

이미 나는 이 4명의 SG 걸그룹 데뷔조를 보자마자 스카우터를 가동한 상태였고, 그녀들의 아우라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대단하네.’

하긴 SG가 ‘블루밍’ 이후 걸그룹을 더 이상 데뷔시키지 않고 있으니 여자 연습생 적체가 심각한 지경일 텐데, 그중에서 최고의 멤버 4명이라면 보나 마나 굉장한 실력을 갖추고 있을 게 뻔했다.

최근 나이가 꽉 차서 어쩔 수 없이 다른 회사로 옮기거나 제풀에 지쳐 그만둬 버린 연습생들이 많아져 SG의 여자 연습생 풀이 박살 났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지만,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 같았다.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더니···.’

이 정도의 아우라를 가진 데뷔조라면 SG는 사실상 코어 연습생들을 주의 깊게 관리해 왔던 게 틀림없었다.

아이돌 지망생들에게는 SG가 아직까지 최고였으니 좋은 신인들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공급되는 것 같았다.

나는 놀란 눈으로 멤버들을 한명 한명 쓰윽 훑어보았다.

‘어?’

이제까지 SG 연습생 하면 딱 떠오르는 모범생 같은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 데뷔조는 살짝 다른 것 같았다.

‘걸크러시? SG도 대세에 따르려는 건가?’

최근 걸그룹의 판도는 걸크러시 또는 귀엽더라도 당당함을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컨셉이 대세였다.

‘하긴 어쩔 수 없겠지. 두 경쟁사에서 톱을 찍고 있는 그룹의 컨셉이기도 하고, 아시아권뿐만 아니라 서구권까지 염두에 두려면 경쟁사와 같은 노선을 밟는 게 논리에 맞으니까.’

만약 여성 팬덤을 얻지 못한다면 초반에 빠르게 자리 잡는 게 힘들 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댄스 실력이 엄청나네. 거기다 가창력이 평균적으로 다 높다. 특히 저 시뻘건 아우라를 뿜어 대고 있는 갈색 머리 소녀···. ’

크흠···. 살짝 긴장된다. 우리 메인 보컬인 리리와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는 것 같았다.

‘썩어도 준치라 이건가? 역시 SG네.’

드디어 곡이 끝나고 이희진이 데뷔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다들 열심히 하네? 고생한다. 얘들아.”

“어?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4명의 소녀는 이희진을 보고 땀도 닦지 않은 채 크게 인사했다. 비록 풀메이크업 상태는 아니었지만, 다들 외모가 꽤 훌륭했다. 걸크러시 느낌이 있었지만 역시나 외모가 어느 정도는 SG가 원하는 상이었다.

“얘들아, 인사해. 유정 씨하고 이준형 작가님이셔.”

“와! 안녕하세요. 저 팬이에요. 언니···. 아니 선배님!”

4명의 소녀는 모두 나유정 주위로 몰려갔다.

허허···. 역시 나는 쩌리였군.

“안녕하세요. 춤 잘 봤어요. 나유정입니다.”

“와! 대박!”

“너무 신기해요.”

그녀들은 연신 꺅꺅거리면서 우리를 반겨 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유정 씨였지만···.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 작가님 팬이에요.”

아까 내가 유심히 보던 메인 보컬이 나를 보며 꾸벅 인사했다. 그래도 내 얼굴이 알려지긴 한 모양이다.

‘그래도 한 명은 알아봐 주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오셨나요?”

키가 아담하고 그나마 가장 SG 스타일로 생긴 멤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아···. 그게 사실은 내가 지금 드라마 관련해서 논의하고 있거든. 아차···. 죄송해요. 이거 말하면 안 되는 건가요?”

이희진이 나를 돌아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뭐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여러 명이 이 사실을 알게끔 일부러 말한 것 같은데···.

뭐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 정도로 배역에 열의가 있다는 거고···. 사실 기사로 여배우를 캐스팅하고 있다는 게 다 공개된 사실이니 아무 상관 없었다. 오늘 일이 기사가 나가더라도 그냥 얼굴 한번 봤다고 하면 되는 문제니까.

“오···. 선배님! 이제 이 작가님 작품에 출연하는 거예요?”

“아, 아니야. 그런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어. 그냥 오디션 정도지 뭐.”

그렇게 잠시 선후배 사이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고 나는 이들의 데뷔 시기가 궁금해졌다.

“혹시 정식 데뷔가 언제죠?”

“이번 달까지 최종 준비를 마치고 10월에 녹음하고 뮤직비디오 찍고···. 아마 11월쯤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렇구나. 우리 애들보다는 확실히 데뷔가 빠르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니 좋은 라이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돌 판에서는 항상 좋은 맞수가 있는 게 서로 흥하는 길이었다. 아무래도 팬덤 간 경쟁이 있다 보니 회사 수익에도 더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니까.

‘SG가 회사 프리미엄이 있다고 하면 우리는 내 드라마가 있으니까···.’

자리에 앉아서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으니 데뷔조가 나가고 트레이너로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와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후 주간 평가를 하는 것을 지켜보기로 했다.

우루루···.

주간 평가를 받을 남자 연습생들이 연습실 안으로 인사를 하면서 들어왔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 다른 점을 알아챘는지 연습생들이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며 입을 틀어막았다.

“얘들아. 오늘은 외부에서 특별히 참관하러 오셨으니 긴장들 좀 해야겠다.”

“······.”

안무 트레이너 선생님이 애들을 보고 살짝 겁을 줬다.

“아니야. 얘들아, 편하게 해. 편하게···. 나 보러 왔다가 그냥 구경 오신 거야. 알았지?”

“넵!!”

이희진이 연습생들의 긴장을 풀어 주고 있었다.

나는 예의 바르게 대답하는 십 대 후반의 연습생들을 바라보았다.

‘와···. 진짜···. 대한민국에서 잘생기고 끼 있는 애들은 죄다 여기 모아 놓은 거 같네. 이런 연습생들이 수십 명이라고? 헐···.’

이런 반짝이는 인재들을 모아 놓고 피 튀기는 경쟁을 시키고 월말 평가를 꾸준히 진행해서 실력이 늘지 않는 사람은 가차 없이 퇴출하는 냉정하고 무서운 세계,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

‘이러니 실패한 그룹이 거의 없지.’

옆을 슬쩍 보니 나유정이 입을 씰룩이고 있었다. 저건 나유정이 웃음을 참고 있다는 증거였는데, 뭔가 보물상자를 찾은 어린아이와 같은 표정이었다.

‘그렇게 좋습니까?’

‘조, 조용히 해요. 신기하잖아요. 어디서 이런 걸 보겠냐구요.’

‘쯧쯧···.’

그래요. 한번 잘 보세요. 이게 바로 우리나라 아이돌 시스템을 확립한 회사의 오리지널 육성 시스템입니다.

“자, 얘들아. 너희들 월말 평가 준비 잘 하고 있지? 대표님하고 피디님들도 다 오시는 자리니까 철저하게 준비해야 해. 오늘은 이번 주에 배운 거 다 익혔는지 유심히 볼 거야. 연습 안 되고 엉망인 사람들은 내 직권으로 월말 평가 못 보게 할 수도 있어. 알았니, 다들?”

“넵!”

“네···.”

자신감을 보이는 연습생도 있었고 약간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연습생도 보였다.

그렇게 평가가 시작됐다. 남자 연습생들은 개인 안무, 보컬, 그룹 안무를 펼치며 자신의 기량을 선보였다.

SG의 트레이닝팀은 매의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며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아무래도 피드백을 해 주기 위해서 자세한 코멘트를 적는 것 같았다.

‘뭐가 이렇게 진지해? 내 눈에는 그냥 다 보이는데?’

아우라 스카우터를 켜니 형형색색의 아우라가 보였다.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능력들도 출중했다.

‘허···. 이러니 망하려고 해도 망할 수가 있나···. 이런 수십 명의 최상급 인재 중에서 최상위 몇 명만 뽑아 버리니···.’

브라질이나 유럽이 축구를 잘하는 이유는 유소년 축구 시스템이 잘 되어 있고 인재 풀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e-스포츠 최강대국인 이유는 유소년 클럽인 PC방과 엄청난 수의 프로게이머 지망생이 있기 때문이다.

3대 기획사의 실력이 좋은 이유는? 아마도 가장 큰 요인은 이렇게 고르고 고른 최상의 인재가 아닌가 싶었다.

나는 그렇게 형형색색의 아우라의 향연을 보고 있노라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걸그룹 멤버들은 겨우 어찌어찌해서 눈물겹게 모았지만, 남자 아이돌은 어떻게 하지? 만들고 싶은 유정 씨가 알아서 잘 해야 할 텐데···.’

나는 아우라와 얼굴, 그리고 현재 실력을 매치시키며 일종의 유희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한 5분 정도 지켜보니 재미가 슬슬 없어져 갔다.

‘역시 나한텐 남자 아이돌은 아닌가 봐···.’

주간 평가라 그런지 약간은 편안한 분위기인 것 같았다. 실력이 다들 좋았고 아우라가 강한 인재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모든 평가가 끝나고 트레이너들의 피드백 시간이 이어졌다.

“먼저 우민아, 너는 보컬 연습 안 했니? 왜 이렇게 흔들려? 복식 호흡 연습 좀 해. 목에 힘주지 말란 말이야. 자연스럽게 해. 자연스럽게···. 춤은 괜찮았어.”

연습생 개인마다 피드백이 이루어지는지라 시간이 꽤 걸렸는데 나는 그 평가를 들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트레이너들의 피드백은 대체로 정확했지만, 연습생들의 숨겨진 잠재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뭐 어쩌면 당연한 걸까?

실례로 바로 내 앞에 서 있는, 키는 엄청 큰데 얼굴은 귀염상인 녀석···. 이 연습생은 노래가 별로였는데 붉은색 기운이 상당히 강하고, 그 옆에 있는 샤프하게 생긴 인상의 소년은 아우라가 별로였는데도 칭찬을 많이 받았다.

‘뭔가 갭이 있어. 아···. 그렇군. 트레이너들이 현재 실력만 평가하고 있어서 그런 거야!’

간단히 설명하면 이랬다. 축구 게임하고 비슷한데···.

어빌(현재능력) / 포텐(잠재능력)이라고 보면 된다. 저 귀염상인 연습생은 어빌이 100 / 포텐이 180인데 샤프한 연습생은 어빌이 120 / 포텐이 125 정도 되는 거다.

이런 상태라면 후자인 연습생이 칭찬을 받게 된다. 물론 날카로운 트레이너라면 잠재력을 알아볼 테지만···. 여긴 SG다. 날고 기는 인재들이 넘쳐나는 곳.

트레이너들이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거다. 그냥 현재 실력만 파악해 줘도 그들의 일은 끝이 난다.

‘그것만 해도 아마 시간이 없을걸?’

나는 갑자기 불순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포텐을 보는 능력으로 여기서 뭔가를 얻게 된다면?

물론 상도덕에 어긋나는 짓은 전혀 할 생각이 없었다.

‘후후···. 그렇다면 설계···. 아니 빌드 업을 한번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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