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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60화 (160/263)

당신이 필요한 이유 (2)

열애설 오보와 정주빈의 컴백 소식에 회사로 엄청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다. 기자들은 내 차기작 소식을 취재하기 위해 지속해서 접근해 왔다.

J&J 엔터테인먼트 회의실 안.

우리는 현재 차기작 제작을 위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맞은편에 앉은 김호진 PD의 얼굴을 살폈다. 이제는 천만 감독 반열에 들었지만, 그는 항상 좋은 작품에 목말라했다.

방송국 시절에 좀 놀았어야지.

그래서 그런지 천만 감독이 된 후로도 태도가 겸손하고 일관적이었다.

“김 PD님. 대본은 읽어 보셨나요?”

“네. 어제 다 읽었습니다.”

그는 그제 보내 준 대본을 모두 다 보았는지 퀭한 얼굴이었다. 도대체 몇 번을 읽은 걸까?

“어떻습니까? 이번 작품도 맡아 보시겠습니까?”

“맡겨만 주세요. 이번에도 멋지게 영상을 뽑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D님. 그런데 내용은 괜찮던가요?”

“제 얼굴 보면 아시겠지만, 벌써 세 번째 읽었습니다. 지금 머릿속에 이 내용을 어떤 식으로 찍을지 고민 중입니다. 잠이 잘 안 올 정도예요.”

“잠은 주무셔야죠. 건강이 최곱니다.”

“왜 은둔하고 있던 정주빈 씨가 기어 나···. 아니 컴백을 했는지 알겠더군요.”

“그 정도만 하셔도 됩니다. 맘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약속된 대로 제작비만 확보된다면 제가 책임지고 최강의 가성비로 뽑아 드리겠습니다.”

역시···. 든든하다. 가성비까지 챙기는 영상 제작의 장인 김 PD! 괜히 드라마계의 봉 감독이 아니라니까?

“그간 영화 촬영하시느라 피곤하실 거 같아서 다른 감독님께 부탁할까 싶었는데···. ‘나만의 세계’ 이준환 PD님 아시죠?”

“하하···. 제가 영화 촬영을 겨우 한 달이나 했나요? 그 뒤로 아주 푹 쉬었습니다. 인터뷰나 슬슬 다니고 그래서 그런지 에너지 충전이 완벽하게 된 상태입니다만···.”

김호진 PD가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도 연달아서 작업하면 힘들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대표님이 불러 줘서 좋은데요? 만약 이걸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신다면···. 저 진짜 회사 뛰쳐나갑니다.”

“하하···. 그러진 마시고요. 여력이 있으면 당연히 PD님이 하셔야죠. 엄연히 J&J 스튜디오의 간판인데요.”

김호진 PD는 내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다른 사람에게 맡길 생각도 안 했는데···.

“그런데 넷플릭의 이민영 총괄 디렉터는 약간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이더군요.”

“네? 저 때문에요?”

“별것은 아닌데요. 아무래도 PD님께서 트렌디한 드라마나 영화 쪽만 연출하셔서 그런 거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김호진 PD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음···. 제가 그 사람들의 우려를 깔끔하게 날려 버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PD님의 능력을 아주 잘 알고 있어서 그냥 밀어붙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김호진 PD가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듯 눈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자신감은 좋지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PD님은 어떻게 하면 재밌는 작품을 만들까 그것만 신경 써 주시면 됩니다.”

“네···.”

굳이 아우라 스카우터를 켜지 않더라도 전의에 불타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일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가끔 기분 전환을 시켜 줘야겠군.’

계속해서 안건들이 토의되고 있었다.

“그나저나 여주인공은 누구를 염두에 두고 계신가요?”

“미정이긴 한데요···.”

아니, 사실 생각하고 있는 배우가 있긴 했다.

“요즘 사무실로 대표님을 찾아오거나 만나자는 연락을 해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석우 실장이 여주인공 이야기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주인공 자리가 비어 있다는 기사가 나가서 그런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여배우들이 거의 다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아···. 정말요?”

“대표님 차기작이 넷플릭 대작이라는 소문이 돌았나 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일하기 힘들 정도로 연락이 많이 옵니다. 조금 과장해서요.”

“와! 우리 대표님 인기 좋으시네요. 드디어 모두가 다 같이하고 싶어 하는 갓 작가님이 되셨네요.”

유정 씨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그런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부끄럽네요.”

“좋아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여배우들이 대표님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서 줄을 선다는데요? 아! 혹시···.”

“혹시 뭐요?”

“저번에 시상식에서 캐스팅할 배우를 찾으신 거 아니에요?”

“······!!”

역시 귀신은 속여도 나유정은 못 속인다고···.

맞다. 내가 눈여겨본 배우는 바로 SG의 이희진이었다.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배우로 장래가 아주 밝았다.

‘그 정도의 아우라를 가진 배우는 거의 드물지.’

“혹시 그 사람이 슈퍼걸즈의 이희진 아닌가요?”

유정 씨가 갑자기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이름을 언급하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엇?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그때 제가 같이 있었잖아요. 미튜브에 십상예술대상 시상식 영상이 올라왔던데 한번 훑어보세요. 대표님 표정이 어땠는지···.”

생각해 보니 희진 씨 아우라를 볼 때 멍하니 입을 벌리며 바라보고 있었던 게 생각났다. 다행히 종편 중계라 거의 본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다.

“험험···. 그때는 넋 놓고 있어서···. 아무튼 희진 씨를 한번 만나 보고 싶더군요.”

“감이 왔나요? 우리 대표님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신비한 눈이 발동한 건가요?”

“하하···. 신비한 눈이라···.”

“저···.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홍보팀의 김정웅 팀장이었다.

“네, 김 팀장님. 편하게 말씀하세요.”

“네. 제가 알기론 이희진 씨가 작년 드라마에서 여자 신인상을 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요. 이번에 영화에 출연하면서 아주 욕을 많이 먹고 있습니다.”

“어떤 영화였죠?”

“그게 아마 ‘리얼하게 잔혹하게’라는 작품이었을 겁니다.”

“흐음···. 일단 한번 체크를 해 봐야겠네요. 신인상을 받고 다음 작품에서 그렇게 욕을 먹는 경우가 흔치 않을 텐데요.”

“흔치는 않지만, 아예 없는 경우는 아닙니다.”

그럴 순 있겠지만 이희진은 그럴 리가 없었다. 나유정에 육박하는 그 아우라를 본 이상 그냥 가볍게 무시할 순 없는 노릇!

“개별적으로 출연하고 싶다고 연락 온 다른 배우들은 누구죠?”

“너무 많은데요. 일단 정리해서 이메일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유명한 배우만 말씀드린다면 수진, 주아라, 정세경, 이선경, 한채연, 김유빈, 이소현···.”

“그, 그만하셔도 됩니다.”

“와···. 진짜 또래 여배우들은 죄다 하고 싶다고 손을 든 거 같은데요?”

“일단 괜찮아 보이는 대상을 추려서 보고해 주세요. 제 마음대로 할 순 없으니까요. 일단 정리를 해 주시면 배우별로 불러서 한번 자리를 갖도록 하죠.”

“오디션은 하지 않을 작정이신가요?”

“네. 오디션은 피곤하더군요. 어차피 연기 초보들도 아니고···.”

“그렇게 하시죠.”

“그리고 앞으로 조직을 좀 개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회사가 초기라 여러분들께서 겸직을 많이 하셨는데요. 인원을 좀 더 채용해서 조직을 보강하는 거로 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사실 아직까지는 너무 중구난방으로 일을 하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로 회사 내 유보금이 넉넉해졌으니 인원 충원을 해서 제대로 된 기획사처럼 운영할 필요가 있었다.

“아! 그리고 혹시 지원한 배우 중에 이희진 씨도 있었나요?”

“없었습니다. 제가 지인을 통해서 연락을 넣어 볼까요?”

“SG에 아시는 분이 있으세요?”

“네. 있습니다.”

“그럼 그분에게도 연락하시고 공식적으로도 요청해 주세요. 일정 잡히면 꼭 알려 주시구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하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차기작에 대한 회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 * *

다음 날.

나와 나유정 이사는 SG 엔터테인먼트로 이희진을 보기 위해 가는 중이었다. 궁금한 것은 제일 먼저 해결해야 직성이 풀렸다.

“준형 씨. SG는 처음이시죠?”

“네. 대형 기획사를 탐방할 좋은 기회네요. 캐스팅 운을 띄우면서 자세히 물어봅시다.”

“지금 우리 회사 연습생 애들이라면 거의 완성형인데···. 굳이···.”

“겸사겸사 가는 겁니다. 유정 씨도 이럴 때 한번 봐 두면 좋잖아요. 다른 회사 남자 아이돌을 어떻게 트레이닝 시키는지 자세히 물어보고요.”

“또 또···. 제가 무슨 남자 아이돌만 파는 사람처럼 말씀하시네. 준형 씨가 SG 시스템이 궁금해서 그러는 거 제가 모를 줄 알아요?”

“노노! 지금 데뷔 준비 중인 우리 애들에 대한 계획은 이미 제 머릿속에 완벽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거짓말!”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나중에 놀라지나 마시고···.”

“하여튼 요즘 계속 줄줄이 성공했다고 너무 자만심에 빠진 거 아닌가요?”

“뭐···. 보시면 압니다.”

“······.”

정말이었다. 이미 신규 걸 그룹에 대한 계획은 거의 끝난 상태였다. 솔직히 말하면 굉장한 재능을 보유한 인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드라마에도 출연시킬 거고···. 지금은 ‘나만 아는 세계멸망’ 제작 때문에 살짝 밀린 형국이었다.

‘스튜디오에 2팀도 만들어야겠어. 능력 있는 PD가 필요한데 이준환 PD를 스카우트해야 하나?’

머리가 복잡한 가운데 드디어 SG 엔터테인먼트에 도착했다. 최근 신축을 거쳐 아주 새로워진 사옥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우···. 대단하네. ’

나는 주차를 마치고 나유정과 함께 1층으로 올라갔다. 관계자들이 우리를 봤는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멀리서 한 명의 남자가 헐레벌떡 우리에게 뛰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희진이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 이영상 실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준형입니다.”

“나유정입니다.”

“네네···. 반갑습니다. 오시는 길은 안 막히셨는지 모르겠네요. 저희가 찾아봬야 했는데 말이죠.”

“저희가 SG 구경을 좀 하고 싶어서 오겠다고 한 겁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이 실장이 사무실 문을 여니 한 여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이희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선배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예상대로 그녀는 이희진이었다. 전 슈퍼걸즈의 센터이자 뭇 남성들을 설레게 했던 톱 아이돌···. 그런 이희진이 나에게 90도에 가깝게 인사를 하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참 많이 컸구나. 이준형!’

쿡쿡···.

나유정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때리고 있었다.

‘왜요.’

‘그만 좀 웃어요.’

음? 내가 그랬나? 커험···.

나는 급히 표정 관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먼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차를 마셨다. 대화는 주로 나와 이영상 실장이 주도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 실장은 보통 키에 꽤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제가 말이죠. 진짜 길몽을 꾸었습니다. 용이 여의주를 물고 먹구름을 뚫더니 하늘로 승천하지 않겠습니까? 어우···. 정말···.”

“로또 사셔야겠네요.”

“하하하···. 이미 샀습니다. 아무튼, 갑자기 작가님께서 우리 희진이를 한번 보자고 하시길래 이마를 ‘탁’ 쳤죠. 아하! 이거였구나. 이거였어.”

허허···. 참 말 많으시네.

그나저나 이희진은 시상식 때와 분위기가 조금 다른데? 사슴같이 선하고 맑은 외모는 예전과 변함이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한 표정과 초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요즘 들어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다는 그녀였다. 그래서 그런지 뭔가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인 걸까?

하지만 나는 그녀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SG에 오기 전에 왜 그녀가 논란에 휩싸였는지 분석까지 완벽하게 마친 상태였다. 이제 이희진을 궁지에 몰아넣은 그 문제점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며 그녀를 설득하면 된다.

‘희진 씨. 저한테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 지금부터 문제가 뭔지 확실하게 설명해 드리도록 하죠.’

나는 말 없이 고개 숙인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내 눈을 쳐다봤다.

“희진 씨는 정말 예전하고 변함이 없으시네요. 얼굴도 좋으신 것 같고···. 흠···. 그런데 눈은 좀 나빠지셨나 보네요.”

“네? 눈이요? 그게 무슨···.”

이희진은 내 칭찬인지 뭔지 모를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별 뜻은 없고요. 작품을 보는 눈이요. 그게 나빠지신 거 같아요. 어쩜 그런 쓰레기 같은 작품을 골랐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가는 게, 왜 그런 배역을 연기해서 논란에 휩싸이셨냐는 말입니다. 누가 뭐래도 작년에 신인상까지 탄 분이 말이죠.”

“······.”

내 말을 들은 이희진은 뭔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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