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필요한 이유 (1)
“매니저님이 작가님이시라고요?”
“네···. 속여서 죄송합니다.”
“······.”
그는 내가 작가라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주빈 씨를 캐스팅하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주빈 씨가 연예계를 은퇴할 생각을 하고 계신 것도 알고 있구요. 제 욕심이라고 욕해도 좋습니다. 정말 제 작품에는 주빈 씨가 필요합니다. 애초부터 주빈 씨를 생각하면서 썼거든요.”
“그게 정말입니까? 저를 처음부터 생각하고 쓰신 거라고요?”
“네. 그리고 오늘 직접 만나 보니 그 생각이 더 확실해졌습니다. 이 배역은 주빈 씨가 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음···. 조금 감동이네요. 저도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서 기쁩니다. 뭐랄까···. 취향 저격이랄까요? 작가님이 직접 저를 설득하러 오신 것도 기쁘구요. 이런 나를 아직까지 잊지 않고 찾아 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음···. 주빈 씨는 아직도 자기의 인지도를 모르는 건가?’
그는 아직도 대중들에게 신비로운 이미지로 동경의 대상인 배우였다.
분위기가 훈훈해지자 이수현의 얼굴도 풀린 것 같았다. 그녀는 나를 향해 윙크를 날려 보냈다.
‘두 분이 잘해 보세요. 전 멀리서 응원하겠습니다.’
그렇게 정주빈의 캐스팅을 무사히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정주빈은 전 소속사와 다시 재계약을 하고 빠른 시일 내에 J&J를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오랜 잠적으로 이전 소속사에 미안한 감정이 있는 듯했다. 그의 소속사가 ‘정인기획’이었던가? 그의 복귀 소식에 그 누구보다 기뻐할 것 같았다.
‘소속사 대표가 나한테 절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뭐 어쨌든···.’
나는 가장 먼저 나유정에게 전화를 걸어 정주빈의 캐스팅 소식을 알렸다. 그녀에게 강원도 정선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니 무척 재밌어했다.
[저도 갈 걸 그랬어요. 자연을 즐기면서 고구마도 먹고···.]
“나중에 언제 한번 가죠.”
[네? 언제요?]
“이번 드라마 끝나고?”
[아···. 뭐예요. 7시즌짜리잖아요. 몇 년이 걸릴 줄 알고···.]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게 아니라 쉴 때 가는 거죠.”
[진짜죠? 그거 잊으시면 안 돼요. 머릿속에 꼭 기억할 테니까···.]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통화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일요일이 지나 월요일 아침이었다.
아침 출근을 하면서 조아린 대리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대표님?]
“조 대리? 저 출근 중이에요.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어요?”
[지금 대표님 열애 기사 떴어요.]
“하하···. 제 열애 기사요? 설마요. 그걸 누가 궁금해한답니까?”
나는 또 지나가는 바람이겠거니 했다.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제 놀랍지도 않다. 기레기님들이 열애 기사를 쓰든 말든 맘대로 하라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유정 씨도 알고 있나요? 뭐래요?”
[그, 그게···. 열애설 기사를 한번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상대방이 유정 씨가 아니거든요.]
“네? 유정 씨가 아니라고요? 그게 무슨···.”
나는 깜짝 놀라서 차를 갓길에 세우고 휴대전화로 기사를 검색했다.
“아니 이게 뭐야!”
[배우 이수현, 작가 이준형과 열애?]
드라마 ‘나만의 세계’로 최우수 여자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이수현이 해당 드라마 작가인 이준형 씨와 열애설에 휩싸였다.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한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여러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사진을 올린 사람은 친구와 함께 강원도로 여행을 가는 도중이었는데 화장실에서 이수현을 알아보고 사진을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철저히 따로 움직였다고 하는데, 사진에는 이준형 작가가 이수현에게 다정하게 커피를 건네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주위에는 매니저도 없었으며 차에는 오직 둘만 타고 휴게소를 빠져나갔다는 후문이다.
이수현은 이준형 작가의 ‘나만의 세계’로 연기력을 인정받고 다수의 CF에 출연하였으며 각종 드라마의 주연으로 활약하고 있다.
한 소식통에 의하면 ‘나만의 세계’ 여주인공으로 이수현이 캐스팅될 때 이준형 작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알려졌다. 그 당시 배역 경쟁을 벌이던 배우는 한류 스타로 유명한 최소윤이며, 막판에 물밑 협상이 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현재 누리꾼들은 해당 게시물을 보고 이준형 작가의 연인으로 열애설이 났던 배우 나유정을 걱정하는 분위기로···. <중략>
“아···. 진짜. 짜증 나네. 이제는 유정 씨도 아니고 수현 씨냐? 미치겠네! 정말.”
띠링···.
갑자기 유정 씨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ㅋㅋㅋ···.]
짧지만 함축적인 내용!
나는 혀를 차며 다시 차를 몰아 회사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들어와 책상에 앉자마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네. 들어와요. 조 대리.”
“기사 보셨죠?”
“네. 봤습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왜 그렇게 정색하시는지···.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표님은 이사님이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조아린 대리는 혼잣말을 하며 말끝을 점점 흐리고 있었다.
“저기요. 조 대리? 자꾸 혼잣말할 거예요?”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회사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것 같아요. 사실은 아니지만, 대표님이 바람피운 것처럼 여론이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요? 한국 최고의 일류 배우들을 사이에 두고 간을 본다고요? 그걸 누가 믿겠어요? 말도 안 돼.”
어처구니없어하는 내 말을 들은 조아린 대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대표님. 죄송한데요. 대표님 돈 많이 버신 거 사람들이 다 알아요. 드라마 원고료 최고 대우에 소설도 전 세계적으로 히트 치시고요. 당연히 그럴 능력 있다고 생각한다니까요?”
“어, 어쨌든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이상한 소문이 더 퍼지기 전에 해명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해명하는 것보다 사실 관계가 중요해요. 왜 거기서 사진이 찍혔냐는 거죠.”
음···. 이건 애매하다. 말을 해 말아?
“제 차기작 주인공을 캐스팅하러 강원도에 다녀왔습니다. 바로 그분과 친분이 있던 게 수현 씨였구요.”
“차기작···. 캐스팅요?”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조 대리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줬다. 넷플릭 차기작을 위해 거의 은퇴 코스를 밟고 있는 배우를 잡으러 간 거라고 말이다.
“호, 혹시 그 배우가···. 정···.”
“딩동댕! 정주빈 씨예요.”
“꺄아악!”
“깜짝이야! 고막 찢어질 뻔했잖아요. 돌고래야 뭐야. 어휴···.”
“대표님! 정말 정주빈 씨 캐스팅하신 거예요?”
“네. 정주빈 씨는 이제 곧 복귀할 겁니다. 왜요? 거짓말 같아요?”
“거짓말이라뇨? 당연히 아니죠. 호호···.”
똑똑한 조 대리가 왜 그럴까? 왜 저렇게 실없이 웃고 있는 거지?
“혹시 조 대리도 정주빈 씨 팬입니까?”
“네! 찐 팬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배우였어요. 그리고 최애 가수는 역시나 슈퍼노바죠.”
“남자 외모만 보시네. 쩝···.”
“어, 어쨌든 대강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제 홍보팀에서 언론 대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초안 작성해서 보고드릴게요.”
그녀는 인사를 꾸벅하더니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
“잠시만요. 조 대리.”
“네. 대표님. 말씀하세요.”
“아직 대응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여러 곳에 협조를 구해야 할 것 같아요.”
조아린 대리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더는 묻지 않고 알았다고 대답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수현은 1인 기획사에 SNS도 하지 않는 거로 알고 있기 때문에 언론 대응이 힘들 거고···. 아무래도 정주빈의 전 기획사인 정인기획이 이번 사태를 해결해 줘야 할 것 같았다.
‘내가 해명하는 것보다 정주빈의 소속사가 깜짝 등장해서 해명하는 게 좋겠지? 그렇게 하면 차기작 홍보도 쏠쏠할 거고···.’
“오케이!”
나는 먼저 정주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고선 자신이 자발적으로 해명을 해 주겠다고까지 말했다.
“괜찮습니다. 주빈 씨. 그냥 정인기획에서 해명 기사를 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이런 일에 굳이 주빈 씨까지 나설 필요 없습니다.”
[네. 그럼 제가 말을 잘 해 놓을게요. 조금 있다가 작가님께 전화드리라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와 통화를 종료한 후 정인기획과 협의할 내용을 정리했다.
똑똑···.
어떤 식으로 발표할 것인지 생각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뭐해요? 바람둥이 씨? 킥킥···.”
나유정은 들어오자마자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계속 웃고 있었다.
“바람둥이라뇨? 지금 몇 년째 솔로인 사람한테 그게 할 말입니까?”
“기레기들이 준형 씨를 아주 잡아먹으려고 날뛰고 있어요. 대형 커뮤니티에서 저는 무슨 배신을 당한 여자처럼 취급되고 준형 씨는 완전 쓰레기처럼···. 큭큭···.”
“그게 재밌습니까? 어이없네요.”
“왜요! 재밌잖아요.”
“곧 드라마 관련해서 정주빈 씨 캐스팅을 발표할 거라 곧 잠잠해질 겁니다.”
“쳇! 좀 더 오해받고 싶었는데···.”
“죄송하네요. 그 부탁을 들어드리지 못해서···.”
“그런데요. 준형 씨. 왜 일부러 주빈 씨 소속사를 통해서 발표하시는 거예요? 혹시 마케팅?”
“맞아요. 짜증은 나지만 이런 이슈에 묻어 가는 거죠. 예전에 이런 거로 덕 많이 보지 않았습니까?”
“후후···.”
“왜요? 왜 그렇게 음흉하게 웃습니까?”
나는 손으로 입을 막고 웃고 있는 나유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러면 어때요? 좀 더 군불을 지피는 거죠.”
“뭘 어쩌시려고···.”
“잠깐만 기다려요.”
나유정은 휴대전화로 뭔가를 작성하더니 그것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한번 보세요. 이슈는 더 키워야 한다면서요.”
그녀가 보여 준 것은 그녀의 SNS 계정이었다. 비 내리는 배경 사진 밑으로 의미심장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왜 나만···.]
그 게시물은 삽시간에 사람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뭡니까? 뭐가 나만이에요? 이거 피해자 코스프레예요?”
“피해자 코스프레가 아니라 왜 나만 강원도 못 가게 했냐 그런 거죠. 그러니까 제가 강원도 같이 간다고 했어요 안 했어요? 그럼 이런 사달이 안 났을 거 아니에요.”
“유정 씨랑 같이 갔으면 스캔들은 안 났을 수도 있지만, 주빈 씨 캐스팅이 안 됐을 수도 있죠.”
“뭐래. 나랑 갔으면 더 쉽게 캐스팅됐어요. 왜 이러세요···.”
“그래도 사람들이 오해할 수도 있는데 괜찮아요?”
“나중에 정인기획에서 사실을 발표하면 그냥 흐지부지되는 거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사태가 좀 더 무르익길 기다렸다.
그리고 다음 날 정인기획에서 정주빈 복귀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정주빈! 드라마 복귀 선언!]
[드디어 4천왕으로 복귀하나? 4년 만에 화려한 컴백!]
[배우 정주빈, 나만의 세계 작가의 차기작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다.]
[지인으로 알려진 이수현은 이준형 작가와 정주빈을 직접 만나기 위해 강원도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작품을 하지 않은 지 4년이나 흘렀지만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호불호 없는 미남으로 항상 순위권에 랭크되는 전설적인 존재인 정주빈이 복귀를 선언했다. 그의 소속사 정인기획 윤정훈 대표는 지금 방송가에서 가장 핫한 작가인 이준형의 신작 ‘나만 아는 세계멸망’에 남주인공으로 정주빈이 캐스팅됐다고 밝혔다. 여주인공은 아직 캐스팅되지 않은 상태로···. <중략>
기사가 뜨자 각종 커뮤니티에는 온통 정주빈의 복귀 이야기뿐이었다. 나와 이수현의 열애설은 쏙 들어가고 말았고 어떤 언론사는 슬며시 기사를 내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차 내 차기작인 ‘나만 아는 세계멸망’에 대해 궁금증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나만 아는 세계멸망이라고? 아포칼립스물인가?]
[이거 혹시 좀비 나오는 거 아냐? 왠지 느낌이 오네?]
[믿고 보는 이준형 작가! 이번에도 재미있는 작품 부탁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유정 안 나오겠지? 이수현이랑 찾아간 거 보면 왠지 아닐 거 같다.]
[계속 나와서 좀 그렇긴 한데···. 안 나오면 또 아쉬울 것 같음.]
그렇게 내 차기작은 열애설 오보와 정주빈 복귀 소식으로 강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