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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56화 (156/263)

나는 자연인이다 (2)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다시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수현 씨에게 듣던 대로 정주빈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딱 한 가지! 그가 순수한 자연인의 상태라는 것을 빼면 말이다.

수현 씨는 정주빈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김치랑 반찬 좀 가져왔어요.”

“매번 감사합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요.”

정주빈은 수건을 목에 걸치며 미안한 표정으로 내가 내려놓은 이수현의 짐을 들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거 갖다 놓고 차를 좀 내올게요.”

그는 짐을 번쩍 들고 집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돌려 이수현을 바라보았다.

“으음···. 말씀대로 크게 이상은 없으신 것 같은데 첫인상이 뭔가···.”

“조, 좀 변했죠?”

“네. 그렇네요.”

나는 이수현과 함께 정주빈의 집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집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넓은 마당과 뒤뜰을 거닐었다.

“예전 어렸을 때 시골 외갓집이 생각나네요.”

“저도 처음 와보는데 뭔가 정겨운 느낌이 드네요.”

“아무래도 귀촌 준비를 오래 하신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이사 오기 전부터 이곳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마당에 감나무가 여러 그루 심어져 있었고 작은 텃밭과 이름 모를 풀이 자라나고 있었다. 새것으로 보이는 장독도 눈에 들어왔다.

장이라도 담그려는 걸까? 아무래도 직접 작물을 재배해서 자급자족이라도 할 모양이다. 텃밭을 지나 집 뒤편으로 가보니 장작을 패던 공간이 나왔다. 영화에서나 보던 도끼가 통나무에 꽂혀 있었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 도낏자루를 움켜쥐었다.

“장작 한번 패 보실래요?”

정주빈이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는지 제법 깔끔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 그냥 신기해서요. 저도 이런 거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하하···. 제가 알려드릴게요. 제가 하는 걸 잘 지켜보세요.”

그는 쟁반을 내려놓더니 박혀있던 도끼를 쥐었다.

“장작을 팰 때 힘을 주는 게 아니라 그냥 몸의 무게 중심을 내리면서 직선으로 내려찍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크게 원으로 내려치시면 안 됩니다. 잘못하면 자기 발이나 정강이를 찍을 수 있거든요.”

정주빈은 설명과 동시에 도끼를 들어 장작을 내려찍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장작이 두 동강 나서 옆으로 튕겨 나갔다.

“와! 한 번에 성공하셨네요. 무슨 전문가 같으세요!”

내 입에서 살짝 과장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모르는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칭찬을 해라! 나는 이미 정주빈을 캐스팅할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그와 먼저 친해지기로 했다. 드디어 내 특기인 인싸력을 발휘할 시간이었다.

칭찬의 핵심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표시하면서 가볍게 칭찬을 하는 것이다. 물론 있지도 않은 사실을 들먹이며 칭찬을 하면 역효과가 나니 조심해야 한다.

매니저 생활을 할 때 방송국 사람들을 만나며 터득한 방법이었다.

“어때요. 쉽죠?”

정주빈은 멋진 미소를 보이며 별 것 아니라는 포즈를 취했다.

“저도 한번 해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제가 말씀드린 것만 주의하시면 됩니다.”

나는 곧바로 도끼를 들고 장작 위로 내려찍었다. 퍽 하는 소리가 나며 나무가 두 동강 났다.

“오우! 잘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아까 주빈 씨가 하신 동작을 눈여겨봤거든요.”

“하하···. 눈썰미가 대단하시네요. 운동 좀 하셨어요? 피지컬이 아주 좋으신데요?”

“그냥 평범하게 헬스장에 가끔 다닙니다.”

“타고 나셨군요. 부럽네요.”

내가 부럽다고? 어이가 없다. 완벽한 외모로 아직까지 추앙받고 있는 정주빈이 이런 소리를 하다니!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질 뻔했다.

다행히도 그는 나를 모르는 모양이다. 지금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집도 좋고 경치도 좋네요. 아···. 이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하려니 살짝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경치가 좋긴 하지만 굳이 살고 싶지는 않다고 할까?

우리는 자리를 옮겨 마루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을 살펴보니 구조가 상당히 특이했다.

겉으로 보기엔 한옥 느낌이 나는 시골 단독주택 같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일단 벽이 엄청 두껍고 집 안쪽에 웬만한 살림살이들이 다 갖춰져 있었다.

‘어라? 특이한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꺼운 벽을 만져보고 지붕을 쳐다보았다. 역시나 태양광 패널이 지붕 위에 설치돼있었다.

“이거 혹시 패시브 하우스입니까?”

“어? 패시브 하우스를 아세요? 맞아요. 거의 에너지 제로하우스로 지었어요.”

“오호!”

패시브 하우스란 외부에서 에너지를 끌어들여 쓰는 집과는 달리 집안의 열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최대한 차단함으로써 실내 온도를 유지하게 하는 주거 형태였다.

남향은 필수고 3중 유리창에 일반 주택보다 훨씬 두꺼운 단열재를 써서 20~26도 정도를 유지하게 하는 집이었다.

“멋지네요. 겉으로 보기엔 평범했는데 꽤나 실속있는 집이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근처에 마을이 있어서 전기도 들어오긴 하는데 최대한 안 쓰고 자급자족하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그래도 너무 문명을 도외시하고 하드코어 하게 살진 않아요. 사실 집에 있을 건 다 있죠.”

생각해보니 산의 초입이긴 하지만 근처에 작은 마을이 있다 보니 전기나 수도 시설이 들어와 있는 모양이었다.

“대단하시네요. 저도 한 번쯤은 이렇게 살아보고 싶네요.”

나에게 한 번쯤이라 함은 일 년에 하루 이틀 정도를 뜻하는 거지만···.

그는 내 관심에 어느 정도 마음의 문이 열린 모습이었다. 누가 정주빈이 낯을 가린다고 했나! 이렇게나 다정한 사람인데!

솔직히 나는 패시브 하우스 같은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단지 ‘나만 아는 세계멸망’을 쓰면서 주인공의 아지트인 슈퍼 쉘터를 묘사하기 위해 인터넷이나 자료를 뒤지다 보니 알게 된 지식이었다.

“주빈 씨. 그래도 이런 곳에 살면 사람이 그립거나 그러지 않나요? 위치도 그렇고 근처 마을하고도 약간 떨어져 있던데···.”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수현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은 괜찮아요. 심심하면 뒷산에 올라가서 야영도 하고 산에서 더덕도 캐고···. 아! 제가 집 뒤편의 산을 사들였는데요 거기에 가면 캠핑장으로 쓰이던 곳도 있어요. 조금 더 나가면 낚시할 곳도 있고···.”

“캠핑장!”

“왜요. 관심 있으십니까?”

“물론이죠. 관심 많죠. 꼭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나야 말이죠.”

“저랑 캠핑하려면 좀 힘드실 텐데요. 진짜 캠핑이 뭔지 보여드립니다. 하하···.”

패시브 하우스는 관심이 없지만, 캠핑은 살짝 관심이 있었다. 거기다 낚시까지 할 수 있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 양반은 진짜다!’

“그나저나 요즘 수현 씨 스케줄이 많은 모양이군요. 매니저님도 힘드시겠어요. 담당 연예인이 바쁘면 같이 힘들잖아요.”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바쁜 게 바로 인기의 척도 아니겠습니까?”

“긍정적인 마인드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살며시 미소를 짓는 정주빈의 빛나는 얼굴을 보니 왠지 모르게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와···. 얼굴이 탓어도 진짜 존잘이다.’

남녀 모두 호불호 없이 미남으로 칭해지는 남자 아니던가?

‘아차! 이제 아우라를 한번 체크할 시간이다.’

나는 바로 아우라 스카우터를 가동시켰다.

‘헉···!’

역시 남우주연상 정도는 탈 정도라는 건가? 정주빈의 아우라는 S급에 가까웠다. 이수현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충분히 강렬했다.

‘이 정도면 엄청난 수준이야.’

어느 기자가 했던 ‘잘생긴 얼굴로 연기력이 디스카운트 되는 배우’라는 말이 생각났다. 나조차 정주빈하면 제일 첫 번째로 외모가 떠올랐으니까···.

“아무튼, 담당 연예인이 잘나가면 저도 좋은 거죠. 아! 얼마 전에 수현 씨가 최우수 여자 연기자상을 받았는데 혹시 보셨어요?”

“아···. 정말요? 축하합니다. 수현 씨.”

“뭐, 뭘요···.”

이수현은 그의 축하 인사를 받고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정주빈은 진짜 TV도 안 보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캐스팅하기로 한 이상 계속해서 관심을 표시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는 이런 자연 친화적, 미니멀 라이프를 나에게 장장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설명하고 있었다.

“식사하는 것과 텃밭 일을 마치면 서재에서 독서를 합니다.”

“...TV는 잘 안 보시나 봐요?”

“네. 수행하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허허···. 수행이라···. 이 양반 점점 마음에 드는데?

“혹시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은 보세요?”

“아!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크···. 역시!

정주빈은 아재들의 최애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를 즐겨 봤다고 했다. 요즘은 젊은 층까지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여서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평온한 삶에 로망이 있으셨군요.”

“후후···.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집안에 조그맣게 걸려 있는 웨딩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잘 어울리셨어요.”

정주빈과 임세아! 그 당시 정말 세기의 커플이었다. 워낙 반향이 뜨거워서 기자들이 그들을 가만 놔두지 않았으니까. 극성 파파라치까지 따라다닐 정도였다.

물론 그로 인해 비극적인 사고까지 났으니···.

살짝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눈으로 안 보셔도 됩니다.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요. 저도 사람인가 봐요. 정말 죽을 것 같았는데···.”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잖아요.”

“그렇죠. 모든 게 그렇습니다. 기억하고···. 잊혀지고···.”

그는 뭔가 번뇌를 초월한 사람 같았다.

“그래도 많이 평온해지신 것 같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죠. 제가 계속 슬퍼하고 있는 건 세아도 바라지 않을 거에요.”

그건 맞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배우는 연기로 밥을 먹고 사는 거다. 임세아 씨도 남편이 연기로 인정받고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이때다!’

나는 눈빛으로 이수현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멍하니 정주빈을 쳐다보고 있다가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숄더백을 뒤적거리며 대본을 꺼냈다.

여기 도착하기 전 어떻게 자연스럽게 대본 이야기를 꺼낼 것인지 상황 설정을 하고 이수현과 맞춰보기까지 했다.

그녀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 옆에서 대본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수현 씨 뭐 하세요? 책 보십니까? 조용하고 풍경이 좋아서 독서 하기도 좋죠?”

대본을 읽는 그녀의 모습이 정주빈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아! 독서는 아니고 대본이에요. 출연하게 될 캐릭터를 연구하고 있거든요.”

이수현은 정주빈에게 말을 하면서도 내 눈치를 살짝 살피는 중이었다.

‘오케이! 잘하고 계십니다.’

나는 그녀만 알아볼 수 있도록 눈을 감으며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너무 계속 일에만 파묻혀 있으면 스트레스가 클 텐데···.”

“전 연기하는 게 스트레스를 푸는 거라니까요?”

“하하···. 그런 말은 또 처음 들어보네요.”

“..........”

이수현은 정주빈의 말에 약간 당황을 한 것 같았다. 맥락이 끊어지려는 찰나, 내가 대화에 살짝 끼어들었다.

“수현 씨. 배역에 고민이 많으시다면서요.”

정주빈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그냥 던진 말이었다. 이수현은 그 말을 듣고 감을 잡았는지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게요. 워낙 대작이고 제가 몸을 쓰는 역할은 해본 지 오래됐잖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너무 괜찮은 작품이라 꼭 출연하고 싶거든요. 상대 배우가 연하라 그런 포인트를 잘 살려야 되기도 하고···.”

“걱정하지 마세요. 최우수 여자 연기상 아닙니까? 전 수현 씨가 잘 해낼 거라고 믿습니다.”

“열심히는 할거에요. 그런데 좀 까다롭긴 하네요. 군인 출신인데 연상연하 커플이고 임신까지 했는데 좀비까지 신나게 죽여야 하니···.”

“음···. 좀비요?”

대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정주빈이 드디어 호기심을 나타냈다.

“네. 제 차기작이 한국의 좀비 블록버스터 드라마거든요.”

“좀비 블록버스터?”

옳거니! 바로 이때다!

나는 이수현을 지원 사격하기로 했다.

“수현 씨! 연하인 상대 역과 감정선이 잘 살지 않는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주빈 씨에게 도움을 좀 받아보는 게 어떠세요? 동갑이긴 한데 주빈 씨가 워낙 동안이라···.”

“그, 그러면 좋겠지만 부담될까 봐···.”

극도로 조심스러운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잘만 하면 왠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만약 그가 내 대본을 읽어보기만 한다면···. 그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내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 캐릭터가 지금의 정주빈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흠···. 그거 한번 줘 보세요. 김치랑 반찬을 싸서 여기까지 오셨는데 제가 뭔가 도움을 드리긴 해야겠네요. 그게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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