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54화 (154/263)

시상식에서 생긴 일 (2)

[이건호 씨는 드라마 ‘나만의 세계’에서 사이코패스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했으며···.]

사회자가 남자 신인상 수상자를 호명하며 화면에는 이건호가 나왔던 드라마의 한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소감 한 말씀 듣겠습니다.]

[저, 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으흑···. 저에게 이렇게 과분한 상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실 제가 작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수상으로 더 겸손하고···. 흑흑···.]

이건호의 눈물의 수상 소감이 이어졌다. 펑펑 우는 모습을 보니 아무리 나라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사이코패스 연기는 진짜 잘하긴 했어. 저 녀석 그래도 A급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인재인데···.’

사실 나는 사람은 본래 크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문제를 터트릴 거라는 굳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저렇게 울면서 참회하는 소감은 연기가 아니야.’

그는 진심으로 대중들에게 사죄하고 반성하고 있었다. 듣기론 CA 그룹에 고위 임원이었던 아버지도 그 사건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퇴직했다고 한다. 얼마든지 억울함을 토로하고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시상식이 끝나고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나저나 시상식 소감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배우 이희진의 모습이 다시 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하게 드라마로 데뷔해서 신인상까지 거머쥔 그녀가 왜 올해는 상반된 평가를 받으며 욕을 먹고 있을까? 저렇게 아우라가 강렬한데 말이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아직 그녀의 최근 영화조차 보지 않은 상태라 뭐라 말하기 힘들었다.

이희진은 2세대 대표 걸그룹의 부동의 센터였던 만큼 미모 하나 만큼은 출중했다. 날씬하게 쭉 뻗은 키에 차분하지만 상큼한 이미지랄까? 왠지 눈망울이 큰 사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예쁘긴 진짜 예쁘다. 내 차기작의 히로인의 이미지에 딱 맞는 거 같기도 하고···.’

그녀를 보고 있으니 예전 슈퍼걸즈가 활동하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정말 그때는 인지도 최상이었는데···.

지금은 뭐···. 누구도 세월에 장사가 없나 보다.

이희진은 이제 소녀다운 풋풋함보다는 고급스러운 여인의 품격으로 승부하고 있었다. 나이는 나랑 동갑인 서른 살이었던가?

그녀는 그룹 해체 후 원래 소속사였던 SG와 재계약을 한 거로 알고 있었다.

‘아직도 소속사가 SG겠지? 연락 한번 해봐야겠군.’

계속해서 시상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일단 뜬금없이 남자 신인상을 이건호가 타는 바람에 첫 단추를 아주 잘 끼운 것 같았지만, 극본상에서 내가 물을 먹고 연출상에서 이준환 PD가 미끄러졌다. 이준환 PD야 작년에 부부의 비밀로 연출상을 탔기 때문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사실 크게 기대는 안 하고 있었지만, 막상 상을 못 타니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다음으로 남, 여 최우수 연기상이 발표되었다. 남자 부문에서 성우 형이 후보로 올랐지만 역시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수상한 후보에게 박수를 친 후 우리 둘은 눈을 마주치고 머쓱하게 웃고 말았다. 탈락자들끼리 위안 삼아야지 어쩌겠는가?

다음으로 여자 최우수 연기상 차례였다. 이 부분에 이수현과 나유정이 동시에 올라 있었는데 승자는 이수현이었다. 확실히 드라마에서 불안한 심리를 가진 내면 연기를 완벽하게 수행해낸 그녀였다.

이수현은 환한 미소로 우리들의 축하를 받으며 무대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옆을 슬쩍 보니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있는 나유정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 떨어진 사람들끼리 한잔해야겠네요.”

나는 귓속말로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왜요. 상 욕심은 버렸다면서요? 아쉬워요?’

“그럴 리가요. 욕심은 없는데 기뻐할 순 없군요. 저 옆에 성우 형 좀 보세요. 우리랑 다르게 약간 표정이 굳어있지 않습니까?”

“저 오빠는 원래 저런 표정이에요. 항상 진지하고 심각하죠.”

한성우도 우리의 시선을 느꼈는지 손을 들어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이수현은 오랜만에 주연상을 타서 그런지 소감을 말할 때 아주 살짝 울먹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저를 과감하게 캐스팅해주신 이준형 작가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녀의 소감에서도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마음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요. 우리 오래오래 같이 갑시다. 이준형 사단 아닙니까?’

그리고 마지막 대망의 TV 부문 대상이 발표되었다.

[TV 부문 대상! JTVC의 나만의 세계]

나만의 세계팀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얼싸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대표로 이준환 PD가 나가서 상을 시상하고 소감을 발표했다.

‘하아···. 됐다. 대상 탔으면 됐지. 뭐···.’

대상을 받으니 모든 게 용서되고 이해가 되는 기분이었다. 주최측은 대상을 주기 위해 다른 상을 주지 않은 것이다.

‘이건호는 그냥 얻어걸린 거 아냐? 다른 상을 안 주려고 남자 신인상을 줬나? 흐흐···.’

뒷이야기는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대상을 탔기 때문에 기분은 좋았다. 어쨌거나 1년간 TV 드라마를 놓고 봤을 때 최고의 작품이라는 소리였으니까.

시청률, 화제성, 연기, 극본, 연출 등등···. 모든 걸 감안해서 최고라는 평가였다.

시상식이 끝난 후 나만의 세계 팀이 오랜만에 다시 뭉쳤다. 장소는 근처의 한 소고기 전문점이었다.

심형탁이 마치 전문 MC처럼 행사를 매끄럽게 진행하고 있었다.

“오늘, 이 소고기는 천만 영화 제작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J&J의 이준형 대표가 쏘는 겁니다. 떼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있으니 최고급 한우를 주문하는데 어려워하지 마세요. 배 터지게 드셔도 됩니다.”

“하하하···.”

“이준형! 이준형! 이준형!”

누군가가 내 이름을 외치니 방에 모인 사람들이 다들 한쪽 팔을 들고 따라 외치고 있었다.

“그, 그만 하세요. 민망합니다.”

“오늘 극본상 떨어졌다고 준형이 기를 살려주는 건가?”

한성우가 농담처럼 툭 하고 말을 건넸다.

“남자 최우수 연기상에서 미끄러지신 분이 할 말씀은 아닌 거 같은데요?”

“나는 예전에 받은 적이 있어서 괜찮지.”

“큭···.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대상을 받았잖아요. 전 그게 제일 기쁘네요.”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여자들끼리도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유정아 나만 상 타서 미안해. 같이 고생했는데···.”

“아니에요. 전 언니가 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한 살이라도 젊은 제가 양보해야죠.”

“하하하···.”

“여러분들 막내도 상을 탔네요. 모두 축하해 줍시다.”

심형탁이 잔을 들며 모두에게 외쳤다.

“축하한다. 건호야.”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이건호는 아직도 가슴이 벅차오르는지 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래도 오늘 시상식 메인 기사가 너로 나갈 거 같더라. 제목은 역대급 눈물의 수상 소감 어떠냐?”

“내 살다 살다 그렇게 질질 짜는 수상 소감은 처음 본다 인마.”

여기저기서 이건호를 놀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시 일어나 그를 밖으로 불러냈다.

“네. 작가님. 말씀하세요.”

그는 붉어진 얼굴로 내 얼굴을 주시했다.

“제가 차기작을 준비 중인데요···.”

“시, 시켜만 주십시오. 아무거나 다 하겠습니다. 작가님.”

갑자기 큰 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숙이는 이건호였다. 나는 딱 그 말만 했을 뿐이었는데···.

“아이고···. 그러지 마세요. 누가 보면 조폭인 줄 압니다.”

“죄송합니다.”

“요즘 힘들죠?”

“네. 사실 많이 힘듭니다. 작가님.”

이건호는 정말 힘든 모양이었다. 물어보자마자 힘들다는 답변이 튀어나왔다.

“지난 일은···.”

“지난 일에 대해서는 정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성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간 못되게 굴었던 사람들에게도 전부 다 찾아가서 사과하고 있습니다. 역지사지랄까요? 제가 그런 처지가 되니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이 보이더군요.”

“그렇군요.”

“네. 그분들께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음···. 힘들었을 텐데 일단 잘하신 거 같네요. 아! 그건 그렇고 아까 말씀드렸던 차기작 말인데요. 연기해줄 조연 배우를 찾고 있습니다. 배역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정의감에 가득 차 있는 열혈 형사 역인데 가능하겠습니까? 전작하고 완전 반대의 역할인데요.”

“저, 정의감···.”

이건호는 내가 말한 배역을 듣고 얼굴이 환해져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 감사합니다. 작가님. 작은 역할이라도 최선을 다해 연기하겠습니다.”

“뭐 작은 역할은 아니고···.”

그 말을 듣고 입술을 꽉 깨무는 이건호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작가님.”

나는 그와 같이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음···. 확실히 아직도 살짝 어색하긴 해.’

지이잉··· 지이잉···

갑자기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건호를 먼저 들여보낸 뒤 전화를 꺼냈다.

발신자는 이민영 총괄 디렉터였다.

‘응? 이 시간에 웬일이지?’

“음? 디렉터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지금까지 방송 봤습니다. 드라마 부문 대상 축하드리려고요.]

“감사합니다. 차기작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같이 잘해야죠. 저희도 물심양면으로 돕겠습니다.]

“당연하죠. 협력만 잘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대표님. 한가지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하기 애매한 말인데···.]

“네.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주인공 역할로 검토하고 있던 정주빈이요. 아무래도 캐스팅이 불가능할 것 같아서요.]

“네? 왜요? 컨택하는 루트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네. 작년까지는 있었어요. 저희가 주빈 씨 담당 소속사 직원과 인맥이 좀 있었거든요. 그런데 올해 계약이 만료되면서 해지가 됐나 봐요.]

“계약 해지요?”

[네. 재계약을 아무리 권유해도 응할 생각이 없었다고 하네요.]

“정말입니까? 은퇴라도 하려고 한답니까?”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요. 전 소속사는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언론에 알리지도 못하고 있나 봐요.]

“그, 그렇군요. 처음부터 악재를 만났군요.”

[그래서 조만간 캐스팅 관련해서 회의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나중에 연락 주세요.”

나는 이민영과 통화를 종료하고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젠장! 처음부터 제1순위로 정주빈을 생각하고 쓴 건데···.’

처음부터 계획이 어긋나는 게 왠지 조짐이 좋지 않았다.

나는 회식 장소로 다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건호 씨랑 무슨 이야기 했어요?”

“그냥요. 차기작에 배역을 하나 줘 볼까 하고요.”

“흐음···. 그렇구나.”

원래 이때쯤이면 술을 마시고 취했어야 할 유정 씨가 멀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술 안 마셨어요? 왜 이렇게 멀쩡해요?”

“오늘은 조금만 마셨어요. 저번에 술 마시지 말라고 했잖아요. 이상한 짓 한다고···.”

“아아···.”

나유정이 어쩐 일로 맘에 드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

하지만 이내 뭔가 맘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으니 그녀가 고개를 빼고 내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닙니다. 나중에 회사 가서 말해줄게요.”

“에이···. 궁금하게 뭔데 그래요? 말해봐요.”

“그게···.”

나는 그녀에게 정주빈 캐스팅이 난항에 빠졌다고 말해줬다.

“아예 은둔 생활을 하려는지 소속사와 재계약도 거부하고 연락을 안 받고 있다고 하네요.”

“주빈 씨가 좀 그런 면이 있긴 했었죠.”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언제 만나 본 적 있어요?”

“예전에 같이 CF를 촬영한 적 있었어요. 물론 둘 다 낯을 많이 가려서 전혀 친해지지 못했지만요.”

아···. 맞다. 유정 씨도 예전엔 낯가림이 장난 아니었다고 했지? 그런데 주빈 씨도 그렇다니···.

‘원래 이런 조짐이 있었나? 심각하구만.’

“아무래도 주연배우 캐스팅을 다시 생각해봐야겠어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기 한 점을 소금에 찍어 입안에 넣었다.

“으음···. 최고급이라 그런지 진짜 맛있네.”

“아! 맞다. 수현이 언니가 정주빈 씨를 잘 안다고 하던데요?”

“네? 수현 씨가요?”

나는 유정 씨의 말에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며 이수현을 찾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수현 언니! 잠시만!”

나유정이 심형탁의 개그를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던 이수현을 소리쳐 불렀다.

“우리 예쁜 유정이···. 나 왜 불렀어?”

이수현은 술을 좀 마셨는지 나유정 옆으로 가서 팔짱을 꼈다.

“언니. 저번에 정주빈 씨랑 친하다고 하지 않았어?”

“응? 갑자기 주빈 씨는 왜?”

정주빈의 이름이 나오자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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