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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53화 (153/263)

시상식에서 생긴 일 (1)

전년도 시상식으로부터 1년간 방영되거나 상영된 TV와 영화를 대상으로 시상하는 십상예술대상은 그 역사가 무려 50년이 넘은 유서가 깊은 행사였다.

작년에 TV 부문에서 나유정이 TVM ‘슬기로운 덕질 생활’로 여자 최우수 연기상 후보에 오른 바 있었다. 상은 다른 배우가 수상했는데 아무래도 작품 자체가 가벼운 트랜디 드라마라 묵직한 연기력을 보였던 다른 작품에 밀린 경향이 있었다.

대신 그녀는 한연준과 함께 인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올해 그녀는 또다시 ‘나만의 세계’로 이수현과 함께 여자 최우수 연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어때요? 저 괜찮아요? ”

“오! 그거 진짜 예쁘네요.”

나는 샵에서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던 그녀를 보고 박수를 치고 있었다.

“정말이에요? 이거 너무 신경 쓰고 나가는 거 같은 옷이라···.”

나는 아무 말 없이 엄지척을 날려주었다.

저 드레스는 유정 씨가 고르고 골라서 최종 선택한 드레스였다. 시스루 소재로 여신 느낌을 극대화한 천사 강림룩으로 공주풍의 심플한 흰 드레스로 순백의 고결함과 섹시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다.

러플 장식이 돋보이는 드레스였는데 목을 감싸는 시스루 소재 위에 검은색 롱리본을 달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판타지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 같아 보였다. 머리 모양도 귀족 풍으로 단아하게 묶고 앞머리를 살짝 내려서 포인트를 줬다. 거기에 기하학적 모양의 검은색 귀걸이까지···.

“정 선생님! 저 어때요?”

“어머, 어머 유정아. 너무 예쁘다. 난 이럴 때가 제일 보람 있더라.”

살짝 몸집이 있으신 디자이너 선생님께서 나유정의 자태를 보며 호들갑을 떨고 계셨다.

솔직히 예쁘긴 미치게 예뻤다.

원래 내가 이런 스타일을 좋아해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꾸며놓은 나유정은 최강이었다. 타고난 완벽한 비율과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 그리고 그 패션을 최종적으로 완성해버리는 화려한 얼굴까지···.

‘하여간 꾸며놓으면 천상의 미모긴 하지. 물론 반전 매력도 엄청나지만···.’

“우리 매니저님도 깜짝 놀라셨나 봐. 입을 그냥 헤벌리고 계시는데요?”

정지아는 Jung’s gallery의 사장으로 국내에서 아주 유명한 패션디자이너였다. 나유정의 몇 안 되는 지인 중의 하나로 그녀의 의상을 담당해주는 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작년 내가 매니저일 때부터 봐서 그런지 나를 꼭 매니저님이라고 불렀다.

“눈이 부셔서 입이 다물어지질 않네요.”

“준형 씨. 눈이 부시면 눈을 감아야지, 왜 입을 벌리고 있어요? 지금 거짓말하는 거 아네요?”

“어허···. 눈을 감으면 우리 대배우님을 볼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입을 벌리는 게 낫죠.”

“어휴···. 아재 개그 극혐!”

그녀는 질색하면서도 내 칭찬이 듣기 좋은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진짜 우리 유정이 성격 밝아졌다.”

“선생님도 참···. 제가 언제는 어두웠어요?”

“응? 아니···. 아니야.”

정지아 디자이너는 그녀에게 한마디 해주려다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작년만 해도 매니저에게 말도 안 하고 찬바람만 씽씽 날렸으면서···.

정 선생님도 어이가 없는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그냥 흘려들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 참! 준형 씨 무슨 선글라스 산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그게···.”

아우라 스카우터용으로 시상식에 쓰고 가도 될 단정한 선글라스를 알아봤는데 뭘 쓰더라도 이상했다. 시상식장에 선글라스라니···.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찾은 아이템이 바로 선글라스 기능이 첨가된 콘택트렌즈였다.

떠올리긴 쉽지 않았지만,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이 아이템은 겨우 2년 전에야 FDA 승인이 난 제품이었다. 빛에 노출되었을 때 렌즈에 자동으로 어두운 색상이 나타나는 신제품이었다.

와우!

써봤을 때의 그 기쁨이란!

아우라의 크기와 색상은 확실히 구분되었지만, 눈은 부시지 않았다.

이제 유정 씨의 고강도 황금색 아우라는 더 이상 나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물론 평상시에는 끄고 다니면 되는데 휘황찬란한 아우라가 넘치는 곳에서 잠재력이 높은 배우를 찾으려면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크흠···. 시상식에 무슨 선글라스를 낍니까. 그냥 하던 말입니다. 나중에 놀러 갈 때 운전하면서 쓰려고 찾던 거에요.”

“아···. 난 또 뭐라고···.”

굳이 이런 기능성 렌즈를 차고 있다고 홍보할 필요가 없어서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다.

“선생님···. 이거 귀걸이 다른 색깔도 있다고 했죠? 혹시 도착했어요?”

“응···. 잠시만 기다려봐. 규빈아! 김규빈!”

갑자기 정지아가 누군가의 이름을 크게 부르기 시작했다.

“네! 여기 있습니다.”

우리 앞에 헐레벌떡 나타난 사람은 아무래도 이 가게에서 잡일을 하는 막내 같았다. 단정한 외모에 패션 안경을 살짝 걸치고 옷은 평범하게 입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나름 포인트를 줘서 잘 차려입었다는 게 느껴졌다.

나이는 이십 대 중반? 이름이 들었던 대로 김규빈이라고 했나? 나는 그녀를 보면서 미간을 심하게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서 강렬한 보라색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쩌면 내 앞에 서 있는 정지아 디자이너보다 더 강하게 말이다.

“너 그제 주문해 놓으라고 했던 다른 색 버전 귀걸이 어쨌니?”

“네? 아앗! 그, 그게···.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깜빡해버려서···.”

그녀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몇 번이고 조아렸다.

“야! 너 정신을 어디다 빼놓고 다니는 거야? 적어놓고 꼭 주문하라고 했어 안 했어? 아이···. 어떻게 할거얏!”

“죄, 죄송···.”

정지아가 큰소리를 지르니 가게가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휴···. 무섭다.’

“정 선생님! 다른 거 없으면 그냥 이거로 하죠. 뭐. 검은색도 은근히 멋있네요.”

보다 못한 나유정이 정지아를 말리고 있었다.

“미안하다. 유정아. 얘가 최근에 들어온 막낸데 정신을 어디다 빼놓고 다니는지 맨날 실수하네. 능력 있다고 소개받았는데 자꾸 사고나 치고···. 확 잘라버리든지 해야지. 어휴!”

화가 난 정지아는 무서웠다. 안 그래도 인상이 강한데 화를 내니, 보는 나도 살짝 공포심이 들었다. 혼나는 막내는 오죽하겠는가? 그냥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이 정도는 정말 약과야.’

매니저 활동할 때 이런 샵을 많이 다녀봤다. 만약 톱스타가 시상식에서 걸칠 뭔가를 빼먹었다? 정말 사달이 난다.

어쩌면 정지아 선생님이 의도적으로 막내를 혼내는 걸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연예인들의 히스테리가 심하기 때문에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다.

“너 짜증 나니까 오늘 내 눈에 띄지 마. 경고야!”

김규빈이라는 막내가 죽을상을 하고 쫑쫑 거리며 황급히 뒤편으로 사라졌다.

‘지금은 혼이 나고 있지만, 잠재력은 장난 아닌데? 나중에 대성할지도?'

나는 미래라도 내다보는 양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준형 씨. 우리 이제 갈까요?”

“그러시죠. 시상식이 다섯 시니 지금은 출발해야 할 것 같아요.”

나는 그녀를 밴에 태우고 시상식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매니저가 된 느낌이었다.

‘뭔가 느낌이 새롭네.’

* * *

올해 십상예술대상은 코엑스에서 열렸다. 많은 영화 관계자와 배우들이 모인 축제의 장이었다.

웹소설 작가 출신인 나는 이런 시상식이 정말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정식으로 코스를 밟고 작가가 된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다른 루트로 들어온 터라 나 자신도 업계의 소속감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뜬금포로 터진 나 같은 작가들은 은근히 업계에서 평가절하를 당하거나 하는 일도 있었고 다른 작가들을 만나다 보면 겉으로는 좋은 말을 하지만 뒤에서는 어떤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오기 싫었지만, 예전에 같이 작업했던 배우와 JTVC 스튜디오 제작팀도 만나 보고 싶었고 겸사겸사 좋은 배우를 찾아보겠다는 심산도 있었다.

“오! 준형아! 여기야. 여기!”

형탁이 형이 가운데 부근 테이블에 나만의 세계팀이 모여 있었다. 이준환 PD와 한성우, 심형탁, 이수현, 정혜성 그리고 놀랍게도 이건호의 얼굴도 보였다.

‘쟤는 완전히 매장될 줄 알았는데···.’

“안녕하세요. 다들 오랜만입니다.”

“그래 준형아. 유정이도 어서 오고···.”

“성우 오빠. 오랜만이네요. 잘 계셨죠?”

정말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오랜만에 보는지라 자리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다들 드라마 촬영 이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각종 CF나 예능, 새로운 작품에서 맹활약하고 있었다.

“다들 오늘 저녁 이후 일정 비워놓으셨죠? 오늘 우리 이준형 작가 선생님께서 최고급 한우를 쏜다고 하니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기사를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이번 영화가 대박 나서 단번에 돈방석에 앉으신 거 아시죠?”

“작가님. 야구로 따지면 프로 데뷔하는 날 3연타석 홈런을 치신 거예요.”

“와! 그렇게 비유를 하니 느낌이 확 오네요.”

이준환 PD의 말을 들은 심형탁이 진짜 놀랍다며 감탄하고 있었다.

“다 여러분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가벼운 농담이 오고 갔다.

“건호 씨 오랜만이네요.”

나는 내 옆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눈치만 보고 있는 이건호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작가님 소식은 기사로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뭐···. 그냥 연기 연습하고···. 운동도 다니고···. 책도 보고···. 잘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잘 살긴···. 딱 봐도 백수 신세구만. 그래도 목소리 하나는 여전히 끝내주네.’

내가 알기론 XM Ent.가 없어지면서 아무 곳에서도 데려가지 않아 소속사도 없는 걸로 알고 있었다.

겉멋만 잔뜩 들고 건방을 떨며 매니저를 우습게 알던 이건호는 최근 살이 쭉 빠진 상태로 아주 겸손해진 것 같았다.

그는 희한하게 십상예술대상 남자 신인상 후보에 올라 있는 상태였다. 폭행 사건 당시 유정 씨 말고도 누군가가 그 상황을 녹음했는지 사건 이후 파일이 공개되며 이건호의 이미지가 극적으로 회복되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살짝 안쓰러운데 이거?’

옆에서 누군가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하는 통에 그에 대한 관심이 눈 녹듯 사 그러 들었다.

조명이 들어오고 드디어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나만의 세계’는 각각 남자 신인상, 남, 여 최우수 연기상, 연출상, 극본상, 대상 부분에 후보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식은 아주 지루하게 진행이 됐지만 나는 배우들의 아우라를 관찰하느라 아주 재미있었다. 옆에서 나유정이 왜 그렇게 자꾸 두리번거리냐고 핀잔을 줄 정도로 말이다.

[나유정 전투력 S급!]

나는 그렇게 아우라를 측정하며 렌즈 안 끼고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을 했다.

내 눈에는 비친 시상식장은 온통 아우라의 향연이었다. 그런데도 나유정과 같은 S급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한 손에 꼽을 정도?

그중 한 명이 이수현이었다. 나유정과 백중세였고 나머지 3명은 남자 최우수 연기상 후보 중 2명과 조연 후보상 중 1명이었다.

‘의외로 S급이 별로 없구나. 대부분 A, B급이네.’

거물급 배우 중에 B급 아우라를 가진 사람도 있어서 살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자! 다음은 남자, 여자 신인연기상을 시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상해주실 분은 전년도 수상자죠···?]

나는 사회자의 진행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관두고 무대 위를 주시했다.

“헉···.”

S급의 아우라가 가진 사람이 무대 위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희진!

지금은 해체한 2세대 걸그룹 슈퍼걸즈의 센터이자 배우였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 그녀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툭툭···.

누군가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쑤시고 있었다.

‘뭐해요. 준형 씨 얼굴 방금 엄청 크게 나왔어요. 입을 왜 그렇게 벌리고 있어요? 혹시 슈퍼걸즈 팬이었어요?’

‘제, 제 얼굴이요?’

순간적으로 무방비한 상태인 내 얼굴이 카메라에 잡힌 모양이었다. 나는 황급히 입을 다물고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늦었어요.’

젠장! 모처럼 멋지게 차려입고 나왔는데 하필 처음 카메라에 잡힌 모습이···.

괜찮다. 내가 뭐 연예인도 아니고···.

그나저나 이희진의 저 거대한 아우라는 뭐지? 작년 드라마에 나와서 신인상을 받았지만 올해 영화에서 연기력 논란이 크게 있지 않았나?

내가 상념에 빠진 사이 갑자기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드럼 소리가 홀에 울려 퍼지며 내가 아는 이름이 호명됐다.

[축하드립니다. 이건호 씨!]

“으흐흐흑···.”

내 옆에 앉은 이건호는 호명을 받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폭풍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정말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깜짝 놀란 나머지 엉겁결에 그를 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물론 그 모습을 방송국 카메라가 빠짐없이 찍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우린 친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서로를 밀어냈다. 이건호는 눈물을 훔치며 무대로 천천히 올라갔다.

‘젠장!’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이 상황 뭔데? 인육 살인마 이건호가 진짜 신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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