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52화 (152/263)

넷플릭 드라마 준비 (2)

“저랑 같이하면 망하지 않을 여배우가 누구죠?”

“대충 눈치채셨겠지만, 나유정 씨입니다!”

“..........”

으흠···. 뭐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쩜 빅데이터까지 팩트로 뼈를 때려버리다니···.

“대표님과 나유정 씨에 대한 압도적인 긍정의 시그널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2위 이고운과 압도적인 차이예요.”

“그, 그렇습니까?”

“왜요? 왜 갑자기 대표님 얼굴이 어두워지는 걸까요?”

“준형 씨 얼굴이 어두워졌다고요?”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내 이름을 언급했다. 나와 이민영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았다.

“헉! 유정 씨···.”

“와, 왔어요?”

나는 너무 예쁘게 하고 나타난 그녀를 보고 살짝 움찔했다.

“뭔데 우리 대표님 얼굴이 어두워지셨을까?”

“지금 대표님 차기작 주연 여배우 선정···.”

나는 황급히 손을 들고 휘저으며 이민영의 말을 가로막았다.

“크흠···. 날이 어두워졌네요. 밖에 벌써 해가 졌나.”

나유정은 피식 웃더니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총괄 디렉터님. 배우 나유정입니다.”

“아···. 네.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제 마음속에 항상 넘버원이에요.”

“호호.. 감사합니다. 그런데 뭐가 넘버원이죠? 캐스팅 순위요?”

“아하하···. 아니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 1순위요.

“아. 감사합니다. 이민영 총괄 디렉터님.”

그녀는 팬이라고 밝힌 이민영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감격스럽네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제 이름을 알고 있다니요.”

“준형 씨가 자주 이야기했었거든요. 일 진짜 잘하신다고···.”

그렇게 나유정과 이민영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유정 씨 혹시 식사하셨나요? 어쩌죠? 저희 것만 시켰는데···.”

“전 촬영장에서 간단하게 먹고 왔어요. 요즘 식단관리를 좀 하는지라 이런 푸짐한 저녁은 잘 안 먹거든요.”

“오! 역시 그렇게 열심히 하니 그런 외모가 유지되는 거군요.”

“과찬이십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둘의 수다에 잠시 질려갈 때쯤···.

“아무튼, 빅데이터 분석 결과 그렇게 나왔다는 거죠?”

“네. 맞아요.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하지만 절대적으로 맹신할 필요는 없어요.”

“뭐가요? 두 분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얼마 전에 제가 이야기했던 거요. 넷플릭은 빅데이터로 가장 효과적인 배우를 찾는다고요.”

“아···. 그거요?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데요?”

“대표님 차기작에 남자배우는 정주빈, 여자배우는 유정 씨가 가장 적합할 것 같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내가 눈치를 보며 아무 말을 하지 않자 눈치를 살피던 이민영이 나 대신 대답을 해줬다.

그 말을 들은 나유정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민영은 내심 좋은 반응을 기대하는 것 같았는데 정작 당사자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당황을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나와 유정 씨의 표정을 살피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왜, 왜 그러시는지···.”

이민영 총괄 디렉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준형 작.가.님께 물어보세요. 왜 제가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요.”

“대, 대표 아, 아니 작가님?”

나는 하는 수 없이 유정 씨와 했던 이야기를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유정 씨 후광을 벗어나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시청자들의 피로도가 있지 않겠냐는 추측까지 함께 곁들여서 말이다.

“그건 뭔가 작가님이 오해하고 계신 것 같아요. 이런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할리우드에도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여배우가 작품을 연달아서 하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예를 들면 우디 앨런과 다이안 키튼 커플과 헬레나 본햄 카터와 팀 버튼, 린다 해밀턴과 제임스 카메론, 비비안 리와 로렌스 올리비에 등 제가 아는 커플만 해도 열 쌍이 넘는걸요?”

“저흰 커플이 아닙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했네요.”

내가 불편하다는 표정을 내비치자 급히 말을 수습하는 이민영이었다.

“여, 여하튼, 사람들이 새롭고 신선한 것도 좋아하지만 익숙한 걸 좋아하기도 합니다. 작가님 전작들은 다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에 기존 팬들을 데리고 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요. 굳이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요?”

아마 웹소설 보는 사람들의 심정하고 비슷하겠지? 기존 공식에 너무 많이 엇나가도 독자들이 외면하곤 하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출연을 아예 배제한다는 건 아니니까요.”

“그럼요?”

“그래서 중간부터 출연시키려고 합니다. 3시즌 말미나 4시즌부터요.”

“네? 어떤 캐릭터로요?”

이민영은 아직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한 표정으로 내게 반문을 해왔다. 곧은 길이 있는데 왜 굳이 돌아가냐는 생각인 듯했다.

“레이첼 역할로 출연시킬까 생각 중입니다.”

“네? 레이첼요? 그 흉악하기 그지없는 최강의 인간 병기···.”

내 말을 들은 이민영은 급히 입을 다물더니 시나리오를 떠올려보는 듯했다. 그녀와 7시즌 계약을 하면서 일단 3시즌까지 대본을 보여줬지만 이후 독촉 때문에 4시즌부터 써 놓은 스토리를 보내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도 전반적인 내용을 알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디렉터님.”

톡톡톡···.

이민영은 생각에 잠겨 들고 있던 포크를 뒤집어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좋은 의견인데요?”

“그렇죠? 역시···. 디렉터님은 척하면 척이셔.”

다행이었다. 그녀는 딱지치기로 총괄 디렉터에 오른 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읽고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도출한 결론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 보니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중반부에 등장하는 레이첼이 사실 비중으로 따진다면 거의 주연에 육박할 정도지 않습니까? 거기다 임팩트가 강한 캐릭터기도 하고요. 누구보다도 그 강렬한 배역에 어울릴 것 같고 만약 유정 씨가 갑자기 서프라이즈로 나온다면 다음 시즌에 대한 긴장감도 유지가 되고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을 상쇄해줄 수 있을 것 같네요.”

“바로 그걸 노린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문제는 그 배역에 사람들이 공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요. 흐으음···.”

나는 그녀의 전문가적인 식견에 감탄하며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레이첼에 대해 서사를 좀 더 추가하려고 합니다. 시청자들이 그녀에게 빠져들 수 있도록 말이죠.”

“그렇다면 괜찮습니다. 오히려 스토리가 더 풍성해지고 끝까지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될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레이첼의 존재로 인해 주인공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맞습니다.”

“전 무조건 찬성입니다.”

슬쩍 옆으로 시선을 옮겼더니 유정 씨가 무표정하게 우리 둘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보셨죠? 총괄 디렉터님도 좋은 의견이라고 하시네요.”

“후우···. 뭐 그럼 세 명이 그럭저럭 의견 일치를 이뤘네요.”

“아! 유정 씨도 이미 레이첼 역으로 출연하는 데 동의를 하신 거군요. 괜히 제가 눈치를 보고 있었네요. 호호···.”

확실히 나유정이라는 이름이 압박인 모양이었다. 넷플릭 총괄 디렉터라는 분도 눈치를 보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럼 다른 배우들 캐스팅은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각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유정도 J&J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의 이사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 보니 이러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자기 일처럼 작품을 생각하고 있었다.

남자배우인 정주빈에 대해서는 셋 중 누구도 반대의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직접 찾아가서 제발 좀 출연해달라고 읍소를 해야 하는 그런 존재였다.

“일단 주연배우는 정주빈은 세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캐스팅되면 좋고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 가야겠죠.”

“만약에 주빈 씨 캐스팅이 불발되면 ‘나만의 세계’에 나왔던 한성우 씨 어떨까요? 연기도 잘하시고 덩치도 크시고요.”

“그건 디렉터님 사심 같은데요? 나잇대가 안 맞잖아요. 주인공이 삼십 대 초반인데요?”

“죄송합니다. 그냥 해본 소리예요.”

“저는 ‘사랑의 불시착륙’의 백현 씨가 어울릴 것 같은데요?”

“오! 괜찮네요. 이미지도 비슷하게 맞아떨어지고요. 일단 리스트에 올렸습니다.”

나는 나유정의 말에 격하게 동의하며 수첩에 그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솔직히 주연배우 캐스팅 후보자 중 한 명이기도 했다.

“혹시 다른 사람 생각나시는 분 있으신가요?”

“아···. 정주빈, 백현···. 둘 다 강력하네요. 이 두 명 이름이 나오니 다른 사람 생각이 별로 안 드는데요?”

“흐음···. 그럼 일단 남자 주연배우는 일단 이 두 사람만 리스트에 올려놓을게요. 혹시 괜찮은 배우가 생각나시면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다음은 주연 여배우인데요···.”

“일단 빅데이터 분석으로 도출된 1위인 유정 씨를 제외한다면···. 2위는 이고운 씨입니다.”

이민영 총괄 디렉터가 깍지를 끼며 나와 나유정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고운이요? 왠지 어울릴 거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하네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정주빈의 이미지가 너무 화려하고 묵직하다 보니 여주인공은 이고운처럼 수수한 매력의 상대가 잘 어울리긴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캐릭터죠. 통통 튀는 발랄한 외동딸 느낌이 나야 하거든요.”

나는 캐릭터를 떠올려보고 살짝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느낌은 아니죠.”

“뭐 시키면 못하실 분은 아닌데···. 아무래도 이미지가 좀 다르긴 하죠. 물론 초반에 욕먹는 캐릭터니까 감안을 해야 하지만 고운 씨라면 연기력으로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긴 하겠네요.”

“정나래는 어때요? 요즘 인기 많잖아요?”

갑자기 조용하던 유정 씨의 입에서 배우 정나래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정나래.

내가 좋아했던 걸그룹 텐뮤지스의 멤버로 현재는 배우로 전향해서 각고의 노력 끝에 주연급 배역을 할 정도로 성장했다. 170cm가 넘는 키에 압도적인 비율로 한국의 엘프라고 칭해지는 존재였다.

“오! 정나래요?”

의외의 배우 이름이 나와서 잠시 생각해보니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괜찮은 거 같기도 하지만···.”

“이거 봐. 그저 텐뮤지스라면 사족을 못 쓰네요. 그냥 한 말인데 미끼를 그냥 덥석 물어버리네. 팬클럽이셨어요?”

“크흠! 어허···.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 겁니다. 괜찮은 거 같기도 하지만···. 같기도 하지만이라고 했습니다. 아직 우리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기에는 연기력이 완벽하게 검증되지 않았죠.”

“하여간 말은 그럴싸하게 하시네요. 임기응변의 달인이세요. 작가님.”

“임기응변이 아니라···. 그게 제 생각입니다.”

“그럼 작가님은 누가 좋을 것 같아요?”

“저요? 저는 음···. 정유리나 김우희, 김세경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오호···.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하셨군요. 꽤 괜찮은 30대 초반의 배우들을 골라 놓으셨네. 생각을 예전부터 하셨나 봐요?”

“..........”

‘뭐지···. 아직도 마음에 앙금이 남아있는 건가?’

이민영 총괄 디렉터도 나와 유정 씨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것 같았다.

“전혀 아닙니다. 지금 방금 생각한 겁니다. 솔직히 제가 웹소설 작가라 이런 히로인은 싫어하는 편입니다. 발암 캐릭터라고 욕먹는 캐릭터거든요. 거기에 우리 회사의 간판인 유정 씨를 도저히 쓸 순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중후반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캐릭터인 레이첼을 생각했었고···.”

발뺌을 할 때는 확실히 하는 게 좋았다.

단호한 어조와 담담한 표정!

어쨌거나 레이첼은 흥미로운 캐릭터였고 히로인이 초반에 짜증 나는 건 팩트였으니까···.

‘잘했어. 이준형. 넌 역시 작가가 천직인 놈이야.’

방금 지어낸 말이지만 임기응변이 괜찮았다. 그 말을 들은 유정 씨가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일단 오늘은 이 정도로 하시죠.”

이민영 총괄 디렉터가 분위기를 살피며 적절히 대화를 끊어주었다. 확실히 인재는 인재였다. 눈치 하나로 대강 흘러가는 스토리를 파악한 모양.

우리는 캐스팅 말고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헤어졌다.

“정주빈 씨를 직접 만날 순 없지만 저희가 컨택을 하는 루트를 알고 있거든요? 그분의 반응이 있으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네. 디렉터님. 꼭 캐스팅됐으면 좋겠네요.”

“네···. 그럼 이마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유정과 나는 식당의 지하로 내려갔다.

“대성이는 집에 갔어요?”

“네. 미리 들어가라고 했어요. 오늘 자리가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운전 조심히 해서 들어가세요.”

“얼마 멀지도 않은데요. 뭐.”

“그래요. 이제 가보세요. 유정 씨 가는 거 보고 저도 갈게요.”

“알았어요. 그럼 내일 봐요. 아···! 맞다. 우리 이번 주에 십상예술대상 시상식 있잖아요. 거기서 여배우 캐스팅하면 되겠네요.”

“에?”

“준형 씨의 그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으로 딱딱! 오케이?”

“..........”

“얼른 들어가기나 해요.”

“헤헤···.”

그녀는 이상한 웃음소리를 남기고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쩝···. 그렇구만. 그것도 한 방법이네. 그나저나 시상식에 스타들이 즐비할 텐데 선글라스라도 쓰고 가야 하나?”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듯싶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