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50화 (150/263)

히로인은 아니 되오 (2)

“누, 누구세요.”

나는 졸리는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보니 내 앞에 서 있는 건 다름 아닌 나유정이었다.

“무, 무슨 일이에요.”

“잠시 이야기 좀 해요. 이거 드라마화 하려는 거 맞아요?”

“쉿! 잠깐 안으로 들어와요. 부모님 잠에서 깨시겠어요. 아니 잠도 안 자고 뭐 하는 거예요?”

그렇게 졸지에 나유정이 내 방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것도 새벽 4시에 말이다. 그녀의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있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을 읽고 있었나 보다.

그녀는 잠을 자지 않아서 그런지 약간은 초췌한 모습이었다.

“유정 씨! 미쳤어요? 도대체 왜 그래요? 뭐 하나 잡았다 하면 잠을 안 자네. 어휴!”

“이거 영화에요? 드라마에요?”

“영화는 아닙니다. 분량을 보면 알겠지만, 드라마 시리즈로 만들려고 글까지 내린 거예요.”

“이걸 어떻게 드라마로 만들어요? 혹시 이거 넷플릭 전용 시리즈에요?”

“그럴걸요? 아마도?”

“뭐에요. 자세히 좀 말해봐요. 애매하게 말하지 말고요.”

“별로 할 말이 없는데···.”

나는 그녀의 재촉에도 계속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아니! 1시즌은 긴가민가했는데 2시즌은 이거 가능하겠어요?”

“몰라요. 재미있으면 넷플릭이 투자해서 만들겠죠.”

“이거 세트장이랑 제작비는 어떻게 할건데요? 2시즌은 웬만한 블록버스터급 영화 수준인데요? 더구나 스토리가 7시즌까지 있던데···.”

“그거야 넷플릭에서 알아서 돈을 주든지 하겠죠. 저야 뭐 글만 썼으니···.”

“뭔가 이상한데···.”

나유정은 내 대책 없는 말에 어이가 없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내 표정을 관찰하고 있었다.

“봉 감독님이 넷플릭이랑 영화도 만들었잖아요. 제작비가 6천만 달러였던가? 우리는 그거 반만 줘도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흐음···. 이거 벌써 계약된 거죠? 얼마 받았어요?”

역시 어설프게 나유정을 속일 순 없었다. 나는 그녀의 추궁에 하는 수 없이 열 손가락을 다 펴서 그녀에게 쭉 내밀었다.

“십억?”

도리도리···.

“에? 백억?”

끄덕끄덕···.

그녀는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사실은 제작은 3시즌까지고 그 후로는 상황 봐서 찍기로 했습니다. 성적 안 좋으면 못 찍는 거고요.”

“이, 이걸 넷플릭에서 투자하겠데요?”

“하겠다고 하니까 소설을 내린 거죠. 거기 총괄 디렉터가 찾아왔더라고요. 조선 킹덤도 이런 식으로 제작했다던데요?”

“대박!”

그녀는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런데 이거 세트 제작에 돈이 엄청나게 들어갈 거 같은데요?”

“유정 씨. 자꾸 왜 돈 이야기만 해요? 돈은 관심 없다면서요. 될 것 같으면 투자하겠죠. 뭐 그런 걸 걱정하는지 모르겠네. 그냥 예산에 맞춰서 좋은 작품만 제작하면 되는 거죠.”

“걱정되니까 그러죠.”

“괜찮아요. 나만의 세계도 잘만 찍었는데요 뭘···.”

“그거랑 이거랑 같아요? 그거보다 몇 배는 힘들 것 같은데요?”

“그래도 최대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장소를 많이 줄였어요.”

“음···.”

나는 걱정하고 있는 유정 씨의 모습이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그녀는 왜 이런 걸 걱정하고 있단 말인가? 살짝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유정 씨. 제작비는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왜요? 넷플릭도 돈 벌자고 하는 짓인데요? 수익을 못 내면 준형 씨 명성에도 안 좋을 거고···.”

“그게 아니에요. 넷플릭은 일단 몇 년간 작품 제작에 돈을 쏟아부어서 킬러 콘텐츠를 만들어야 해요.”

“킬러 콘텐츠요?”

나는 차근차근 그녀에게 현 상황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앞으로 스트리밍 플랫폼 간에 시장점유율 경쟁이 벌어질 것이고 그 승자는 킬러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업체가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실제로 기존 콘텐츠 업체들이 넷플릭에서 자사 영상을 내릴지 모른다는 소리도 있었다.

“그러니까 디플러스나, 아마조네스 프라임 등하고 경쟁하기 위해서는 손해를 무릅쓰고서라도 콘텐츠를 구매할 거다? 그런 말이군요.”

“맞아요. 물론 저는 손해 볼 생각이 전혀 없지만요. 제2의 조선 킹덤, 아니 그것을 능가하는 작품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 그렇군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그렇고 작품은 좀 어때요? 재미있었어요?”

“네. 엄청요. 박진감 넘치던데요? 잘만 만들면 대박일 거 같은데···.”

“뭐. 나름 공들인 건데 다행이네요. 그래도 촬영할 때 엄청 힘들 거에요.”

나는 그녀의 눈치를 살살 봐가며 바람을 잡기 시작했다.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던데···.”

“아포칼립스라 엄청 꾀죄죄하게 나와야 할거에요.”

“2시즌까지 괜찮은 거 같은데요? 거지처럼 헤매는 것도 아니고 슈퍼 셀터에서 좀비를 상대하는 건데 무슨 얼굴이 더럽게 나와요?”

“3시즌부터 좀 거시기 할 거에요.”

“거시기?”

“네. 점점 지저분해질 거예요. 진짜 멸망으로 치닫거든요.”

“히히···. 재밌겠다. 멸망한 암울한 세상이라···.”

아차! 유정 씨는 이런 거 좋아한다고 했지.

“멸망한 세상이 뭐가 재밌어요?”

“이거 누구누구 캐스팅됐어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내게 강하게 압박을 해왔다.

“저, 저리 좀 가요. 왜 그런 옷차림으로 자꾸 가까이 오는 거예요?”

“뭐가 어쨌다고? 어맛!”

나유정은 현재 주리가 즐겨 입는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 돌핀 팬츠라던가?

“거봐요. 뭔데 야밤중에 사내 방에 몰래 찾아와서는···. 쯧쯧···. 하여간 하나에 꽂히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건 진짜 못 말린다니까?”

“제가 이러는 거 뭐 보태준 거 있어요? 그러게 누가 몰래 이런 걸 쓰냐고요.”

“몰래 쓰긴 누가 몰래 써요. 그냥 말을 안 한 거지.”

“아무튼, 이거 누구 캐스팅 됐냐구요.”

“캐스팅 안 됐어요. 대본 이제 나왔으니 지금부터 고민해봐야죠.”

“인물들이 꽤 많이 나와서 캐스팅하기도 쉽지 않을 거 같은데요?”

“일단 정혜성 씨는 무조건 넣을 거예요. 생각해 놓은 배역이 있거든요.”

“아···. 그 정도만 생각하고 있는 거군요. 아예 초기 단계네.”

“맞아요. 일단 조만간 캐스팅 때문에 넷플릭 이민영 총괄 디렉터하고 만나기로 했어요.”

“잘됐네요. 언제 만나는데요?”

“왜요. 거기 가시려고요?”

“저도 출연하기로 했는데 가면 안 되는 거예요?”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가도 되긴 하는데 무슨 배역으로 나올지 결정을 안 했잖아요.”

“지금 4시즌 대본을 훑어보고 있는데 마음에 드는 배역이 나왔어요.”

앗싸! 오예! 나이스다! 나도 그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4시즌이라면 혹시···.”

“레이첼요.”

“아아···.”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레이첼!

시리즈 중반부터 나오는 사신(死神)으로 불리는 중간보스 격인 캐릭터였다. 모든 일의 원흉인 본사에서 파견 나온 한국 지부 스폐셜원(감찰관)이다. 육체적으로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이며 본사의 오버 테크놀러지 생명공학으로 탄생한 최악의 인간 병기로 주인공과 죽음의 사투를 벌이는 존재이며 후반부 스토리 전개에 중요한 열쇠가 되는 캐릭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레이첼 역할은 나유정이 딱이었다. ‘나만의 세계’에서 칼을 휘두르는 나지혜 역할을 신들린 사람처럼 소화한 연기 천재 아니던가!

레이첼은 시리즈 초반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자주 들어왔던 나유정의 후광을 등에 업고 간다는 소리를 불식시킬 수 있지 않을까?

거기다 중반부터 자칫하면 지루해질 수 있는 타이밍에 그녀를 팍하고 등장시켜서 후반에 벌어질 일에 대해 기대감을 줄 수도 있었다.

모든 면을 고려했을 때 그녀가 누구보다 그 역할에 너무나 잘 어울릴 듯싶었다. 솔직히 나를 노려보는 것만 봐도···. 크흠···.

“왜 레이첼에 꽂히신 거죠?”

“글쎄요. 그녀는 외로운 캐릭터예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해요. 4시즌 이후로는 아직 못 봤지만 아마도 후반부에 큰 활약을 할 것 같아요.”

역시 대배우인가? 그녀의 추측은 거의 정확했다. 레이첼의 짧은 독백과 대사로 어떻게 그걸 파악했을까? 감은 진짜 누구보다 뛰어난 천재였다.

“일단 그 넷플릭 관계자를 언제 만나는지 정확하게 알려줘요. 저도 한번 따라가 보게요.”

“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 좀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닌지···. 누가 보면 오해할 것 같은데···.”

“피···. 누가 본다 그래요. 그리고 오해는 무슨 오해.”

“오해할 만하죠. 다 큰 남녀가 한방에서···. 으음···.”

“됐어요. 그런데 돈도 엄청나게 버신 분이 방이 이게 뭐예요? 좋은 곳으로 이사 가셔야 하는 거 아녜요?”

그녀는 아주 단출하기 그지없는 내방을 한번 쓱 훑어보는 것 같았다. 일인용 침대와 책상, 옷장 정도밖에 없는 썰렁한 방이었다.

“뭘 그렇게 쳐다봐요? 남의 방을···.”

“음···. 살짝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켁. 냄새는 무슨! 유정 씨나 빨래 좀 제때 하시라고요.”

“쉿! 조용히 안 해요? 어머님, 아버님 깨시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뭐래. 내로남불인가? 자기 불리하면 조용히 하래.”

“어쨌거나 회사에서 봐요. 캐스팅 관련해서 회의 좀 하자고요.”

“일단 이민영 총괄 디렉터를 만나 봅시다. 넷플릭은 무슨 빅데이터를 써서 어울리는 배우나 작가를 찾아낸다는데요?”

“정말요? 그런 건 또 처음 듣네요.”

“요즘 세상이 그래요. 너무 빠르게 발전하죠. 뭐 그래서 이렇게 우리 회사가 클 기회가 있는 겁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어림도 없죠. 옛날 같았으면 아직도 방송국에 인사하러 다닐걸요?”

솔직히 예전 같았으면 사업 안 하고 그냥 글이나 쓰고 있었을 거다.

“알았어요. 이제 좀 주무세요. 저도 이제 자야겠네요. 오랜만에 대본 보니까 정신이 확 드네요.”

“얼른 좀 가요. 눈앞에서 그러고 있으니까 신경이 쓰인다고요.”

“뭐에요. 이 변태.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저기요. 여긴 누가 찾아온 걸까요? 얼른 가서 잠이나 주무세요.”

내가 등을 떠미는 통에 그녀는 문 앞으로 밀려났다. 밀려나면서도 엄지를 척하니 내밀며 윙크를 날리는 나유정이었다.

“이 작가! 대본 좋았어요. 아주 흥미로워요. 딱 내 스타일.”

“유정 씨 출연시키려고 만든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요.”

“에이···. 거짓말. 딱 내 취향 저격인데···. 너무 티 내는 거 아님?”

“어휴···. 말이라도 못하면···. 쩝···. 얼른 잠이나 자요!”

나는 방문을 열고 그녀를 밖으로 밀어냈다.

그때였다. 갑자기 주리의 방문이 열리며 산발이 된 이주리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어?”

주리는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며 두 눈을 부릅떴다.

“아, 아냐. 오해하지 마.”

“그, 그게···.”

주리는 다소간 놀랜 표정을 하더니 갑자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아, 아니라니까!”

도리도리···. 끄덕끄덕···.

딱 봐도 ‘아니야 괜찮아. 나는 이해해.’ 이런 표정이었다.

나는 팔꿈치로 유정 씨를 툭툭 쳤다.

‘뭐해요. 해명 안 하고? 오해는 풀어야죠.’

‘지금 말해봐야 오해가 풀리겠어요. 좀 가만히 있어 봐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에이. 모르겠다. 오해를 하든지 말든지.

그렇게 새벽의 저주···. 아니 습격이 끝이 났다. 나는 그녀가 다녀간 후 잠을 자려 했으나 정신이 너무 말똥말똥했다.

‘젠장. 잠은 다 잤네. 그냥 글이나 쓸까? 쩝···.’

나는 컴퓨터를 켜고 5시즌 이후의 레이첼 스토리에 서사를 좀 더 추가하기로 했다.

인형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을 동경한 고독한 존재···. 명령을 받아 사람을 죽이지만 정작 그것이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 돌연변이!

레이첼은 내 손끝에서 더 처절하고 슬픈 존재로 재탄생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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