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46화 (146/263)

대배우의 걸그룹 데뷔? (2)

“전무님. 오랜만입니다.”

[이 작가님. 오랜만이네요. 요즘 TV에도 나오시고 잘 지내시는 거 같던데요?]

“전무님 덕분에 편안하게 영화 제작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소개해주신 마케팅 전문가가 아주 유능하더군요. 그나저나 요즘 분위기는 어떠십니까? 별일 없으신가요?”

[저야 뭐. 큰 문제 없이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제안해주신 오디션 프로그램도 잘됐고 아주 제 입지가 날로 탄탄해 지고 있습니다.]

“더 좋아지려면 이번에 영화가 잘 되길 바라야겠군요.”

[그럼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동생분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아! 기영이요? 회장님께 아주 혼쭐이 나서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일부러 이기영 전 대표의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어렴풋이 사건의 내막을 유추하고 있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저번에도 강하게 안 나갔더니 어영부영 대충 넘어가려고 해서 일부러 언급하는 거였다.

“그런데 어쩐 일로···.”

[좋은 소식을 좀 전해드리려고 전화를 했습니다.]

“좋은 소식이요?”

[네. 저희 회사에서 작가님의 뮤지컬 영화를 해외에 적극적으로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그거야 앞으로 필름 마켓을 돌면서 팔면 되지 않습니까? 솔직히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식으로 제작부터 개봉까지 쭉 밀어붙여서 홍보할 기회가 없었잖아요?”

[그거야 당연한 거고요. 해외에 판권을 팔아서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의 투자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 OSMU(One Source Multi-Use) 말씀하시는 거군요?”

단순 리메이크가 아닌 IP(지식재산권)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제작되어, 판권 판매뿐만 아니라 기획 및 제작 공동 참여해 따른 수익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역시···. 우리 이 작가님은 '척'하면 척이셔.]

“CA가 그런 식으로 해외에서 사업기반을 다져놓은 건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 뭐였더라? ‘수상한 여인’도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 태국, 미국까지 합작 영화 형태로 제작해서 꽤 성공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크흠···. 작가님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꼭 우리 기획팀 직원들하고 회의하는 기분이네요. 맞습니다. 그거에요. 솔직히 ‘수상한 여인’이 음악 영화 계통 아니겠습니까? 저희가 봤을 때 작가님 작품은 국제적으로 통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호불호 없이 신나고, 긍정적이죠.]

“아···. 괜찮게 보셨군요. 감사합니다.”

[사전 편집본을 봤을 때 뭔가 느낌이 딱 오더군요. 이 작품은 분명 전 세계적으로 먹힐 것이라는 거요. 물론 국가별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시나리오에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긴 할 테지만요.]

“좋습니다. 전무님. 그리하시죠. 저희도 전혀 손해가 아니니까요. 저야 로열티만 잘 주시면 아주 행복할 것 같군요.”

관련 공부를 해보니 의외로 우리나라의 영화 수출액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었다. 한국 영화 시장의 가치의 십 분의 일도 수출을 못 하고 있는 걸로 드러났다.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국내에서 흥행해서 검증된 IP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에서 공동 제작을 하는 게 수익을 극대화할 수 좋은 방법으로 떠올랐다.

아무리 국가별로 제작된다고 하지만 작품이 인기를 얻게 된다면 원작도 무조건 볼 거라는 계산이 섰다.

원작을 보는 순간 그 압도적인 가창력과 외모에 빠져버릴 거지만···. (물론, 이건 내 망상이다)

이런 것은 CA가 알아서 잘하도록 맡겨놓으면 된다. 나한테 손해가 될 게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실무자 협의를 통해서 하는 걸로 하시죠.]

“알겠습니다. 전무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이제 우리는 같은 배를 탄 운명인데요.]

“네 들어가세요.”

나는 전화를 끊고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 같은 배는 무슨?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려고 하는 거 다 안다고 이 양반아.

한동안은 이런 기묘한 관계가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네미시스 관련 논란이 아직도 뜨거운 가운데 언론시사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영화 상영 후 김호진 감독과 나 그리고 주연배우인 러브원과 네미시스 멤버들이 단상에 올라 인터뷰를 가졌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출연진의 인사가 이어졌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작품에 스토리와 제작을 담당한 이준형입니다. 이렇게 많이 찾아와주셔서 감사드리고···.”

출연진들의 의례적인 인사가 쭉 이어지고 사회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영화 촬영 소감과 고생했던 점 그리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등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다.

그리고 곧바로 기자들의 공개 질문이 이어졌다.

“안녕하십니까? 이슈데일리의 김정훈 기자입니다. 오랜만에 제 맘에 딱 드는 영화를 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님이 진행하셨던 일반적인 내용 말고 지금 기자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있는 부분이 뮤직비디오 선공개에 관한 내용입니다. 언론에 노출 없이 갑자기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뮤직비디오 제작은 처음부터 기획되어 있던 일이었습니다. 다만 뮤직비디오가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얻을지 예측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저희도 당황스럽네요.”

사실 이슈를 일으키기 위한 거였지만···.

“그래도 미리 언질을 주셨으면 좋았을 거 같은데요.”

“그래서 이렇게 언론과 기자님들만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준비하지 않았습니까? 이 자리에서 궁금하신 내용에 대해 솔직하게 전부 다 풀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씨네 2000 안지영 기자입니다. 영화 재밌게 잘 봤습니다. 저는 특히나 나유정 씨의 연기를 보고 너무 웃었는데요. 갑자기 출연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그건 팀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대표님의 아이디어였어요. 네미시스 멤버들도 찬성하고 저를 열심히 도와주었습니다. 제 춤 실력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우리 러브원과 네미시스 멤버들의 도움 때문입니다.”

기자 인터뷰에서는 나유정의 영화 출연 관련 에피소드에 관해 상당한 시간이 할애되었다.

기자들은 주연 배우들에게는 의례적인 질문을 하는 반면 나유정에게는 아주 세세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나유정은 능숙한 말솜씨로 기자들을 상대했고 자신만 이슈를 독점하지 않도록 주변 배우들을 계속 언급해가며 이야기를 이끌어 갔다. 그야말로 베테랑다운 인터뷰였다. 역시 대배우의 파워는 건재했다.

나유정이 계속 다른 주연 배우들을 언급하며 말을 시키자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그 사실을 깨달은 기자들이 다른 배우들에게도 많은 질문을 했기 시작했다.

이미 인지도가 있는 혜수와 윤지에게 질문이 많이 쏟아졌고 다솜과 하영에게도 질문이 이어졌다. 특히나 연기력이나 가창력에 대한 호평이 줄을 이었고 배우들도 즐겁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드디어 긴 인터뷰가 끝나며 포토 타임이 이어졌다. 엄청난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왔다.

오늘 시사회를 종합해볼 때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평이 꽤 좋아서 시사회 분위기도 좋았고 무엇보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세세하게 풀어줘서 그런지 기자들의 표정도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내심 흥행에 대한 기대감이 들기 시작했다.

[‘프로듀서님 저 회귀했어요’ 언론시사회 현장을 가다.]

[멘토인 나유정이 뮤지컬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한 계기는?]

[‘프로듀서님 저 회귀했어요’ 언론시사회 대호평! 여름 흥행 기대작 중 단연 원픽이 되다!]

[편하게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뮤지컬 영화 ‘프로듀서님 저 회귀했어요’]

[슬기로운 덕질생활의 나혜리가 그립다면? 그럼 이 영화를 보라!]

언론시사회 후 나유정의 영화 출연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기사가 쏟아졌고 영화에 관한 긍정적인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영화 개봉 이틀 전

오늘 프로젝트 그룹 멤버들은 뮤직넷 X 카운트다운에 출연하기 위해 방송국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대기실에서 팔짱을 끼고 누군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후후후···.”

“왜, 왜 그렇게 보는 거예요? 무대 의상 처음 봐요?”

“네. 처음 봅니다. 유정 씨가 걸그룹 무대 의상을 입은 모습을 생으로 보는 거잖아요. 솔직히 언제 이런 걸 다시 보겠습니까?”

“사람 무안하게 왜 그래요?”

그녀는 네미시스의 타이틀곡 “내 안의 나”의 무대 의상을 입고 있었다. 아주 연한 핑크색의 타이트한 미니스커트 원피스에 어깨를 덮는 형태의 프릴 카라 의상으로 흰색 벨트와 하이힐로 포인트를 준 세련된 의상이었다.

“아···. 음···. 뭔가···.”

“뭐···. 뭐요.”

“아니에요.”

“쳇···. 싱겁기는···.”

내가 옷을 잘 몰라서 설명하기가 힘든데 뭐랄까 다리 말고는 다 가렸는데 은근히 성숙하고 섹시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옆을 보니 하늘하늘한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러브원이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며 살짝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러브원은 그냥 1티어 그룹이라고 해도 믿겠다. 멤버만 보면 뭐 거의 올스타니까···.’

대기실에 사람이 엄청 많았지만 나야 원래 이런 상황에 아주 익숙한 사람이었다. 명색이 매니저 출신 아니던가? 가만히 소파에 앉아 두 그룹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아주 편안했다.

‘어우. 너무 든든하다. 든든해. JB Ent. 의 프로듀서가 딱 이런 기분일까? 톱클래스의 아이돌이 좌우로 포진한 좌청룡 우백호 느낌! 노래조차 완벽하고···.’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불세출의 스타가 서 있었다.

‘으음···.’

“준형 씨. 얼굴 또 또.”

“왜, 왜요? 뭐 문제 있어요?”

“준형 씨 헤벌쭉해질 때 그 특유의 표정 있어요. 스크루지 영감 같은 그런 표정요.”

“에이···. 떽! 그런 말 하면 못씁니다. 장가도 안 간 총각한테 영감이라뇨!!”

“표정이 딱 그런데 어떡해요. 뭔가 탐욕스러운 그런 느낌···.”

“또 괜한 사람 잡네요. 기레기와 다를 게 뭐임?”

그렇게 긴장을 풀기 위해 농담을 하는 사이···. 러브원의 리더 역할인 혜수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또 사랑싸움한다. 아까부터 못 봐주겠음.”

“얘는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사람도 많은데···.”

“하여간 이 커플은 알다가도 모르겠네. 솔직히 아무도 신경 안 쓰거든?”

“..........”

“그, 그나저나 어때요? 블랙소울도 아니고 다른 프로젝트 그룹으로 정식 데뷔하는 심정이?”

“솔직히 좀 이상해요. 영화만 찍을 줄 알았는데 정식 데뷔까지 해야 한다니···. 이럴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래도 이런 컨셉은 또 처음이잖아요. 항상 걸크러쉬였지.”

“솔직히 간지럽긴 해요. 그런데 뭐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혜수는 확실히 이런 청순하면서 발랄한 컨셉도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사실 외모가 거의 배우상이었으니···. 나유정과 혜수는 무대 의상을 두고 서로 놀리면서 긴장을 풀고 있었다.

똑똑···.

“러브원 이제 스테이지 가실게요!”

“네!”

러브원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구동성으로 대답을 했다. 그들은 파이팅을 외치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잠시 후 케이의 노래가 공개홀에 흐르기 시작하고 러브원의 타이틀곡 “Return to Love”가 시작됐다.

‘와···. 싱그럽다. 이 클래시컬한 느낌.’

러브원은 응원을 나온 팬들 앞에서 완벽한 무대를 선보였다. 바로 전 공연했던 신인 그룹과 너무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후···. 이거 큰일 났다. 노래가 너무 좋은데 라이브까지 레전드잖아? 반응 장난 아니겠는데 이거?’

다음 주자는 네미시스였다. 나는 무대로 올라가려는 그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해주었다.

솔직히 러브원보다 이들의 생방송 무대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네미시스 6명 중 4명이 걸그룹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나유정···.

얼굴은 무슨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처럼 비장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멤버들 사이에서 눈을 꼭 감고 뭔가를 중얼중얼 외우고 있었다.

‘저게 뭐라고···. 저렇게 열심히 할까? 그냥 재미로 해도 될 텐데···.’

드디어 네미시스가 무대로 올라가 포메이션을 맞췄다.

이내 끈적한 EDM 사운드가 울려 퍼지며 노래가 시작되었다. 이미 메인 카메라의 포커스는 나유정의 얼굴에 딱 고정된 상태였다.

4마디가 지나고 아래로 시선을 내리깔고 있던 나유정이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그윽하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빛은 완벽한 연기 모드였고 섹시 그룹의 비주얼 센터답게 사람들을 홀리는 구미호와 같은 표정으로 손목을 돌리며 핑거스넵을 가볍게 날리더니 허리를 숙여 손으로 허벅지를 살짝 터치해 밑으로 스르륵 미끄러트렸다.

메인 카메라가 다시 그녀의 전신을 비추니 음악에 맞춰 사뿐사뿐한 고양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와···. 미쳤다!!’

나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들어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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