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룡점정 (4)
인피니티 드림즈와 협의 완료 후, 뮤지컬 영화 [프로듀서님 저 회귀했어요]의 프로듀서 유준 역할에 테리우스의 대표 노안(?) 이창민이 캐스팅된 가운데 드디어 대망의 영화 촬영이 시작되었다.
김호진 PD는 정말 드라마계의 봉테일이라는 별명처럼 빠르게 촬영을 이끌어갔다. AI처럼 모든 장면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해본 사람처럼 모든 신을 기계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맞춰 끝내고 있었다.
아무리 드라마와 다른 분야인 영화였지만 예전 버릇이 어디 가는 건 아닌 듯했다.
마지막으로 캐스팅된 이창민은 프로듀서 유준 역할을 찰떡같이 소화해내고 있었다. 그의 연기에 만족한 나는 옆으로 다가가 넌지시 그 비결에 관해 물어본 적 있었다.
“창민아. 너 연기 뭐냐? 왜 이렇게 잘해?”
“아···. 별거 아냐. 일주일 동안 이든이 형을 연구했거든. 딱 그렇게 연기하면 되겠더라고.”
“쓰읍···. 그건 너무 4차원으로 나간 거 아니냐?”
“아! 나도 그건 알아. 4차원 끼만 덜어낼 거야. 솔직히 이든이 형이 냉미남이지만 평소 하는 거 보면 로맨스는 진짜 꽝이잖아. 그건 내가 좀 바꿨어.”
“잘했다. 나도 그거 걱정했었는데 특징을 잘 잡았구나.”
“눈치 하면 또 나지.”
창민이는 말끔한 흰색 셔츠에 검은색 타이트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도 살짝 웨이브를 줘 아티스트 같은 이미지로 연출했다.
‘창민이도 참 잘생겼단 말이야. 어떻게 보면 요즘에 인기 있는 스타일이긴 해.’
팀 내에서 연준이가 얼굴 천재로 유명하긴 하지만 창민이는 연배가 있는 누나 팬들이 많은 특징이 있었다. 살짝 노안이긴 했지만 그만큼 단정하고 강인한 인상의 남자다움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오늘은 영화 초반의 하이라이트인 무대 공연 중에 난입한 취객을 업어치기로 제압하며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신을 찍는 날이었다. 이 영상이 온갖 SNS로 퍼지며 흙수저 걸그룹 러브원의 센터 심채원(윤하영)이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다.
러브원은 그들의 타이틀곡을 무대에서 열심히 부르고 있었다. 비록 지방의 이름 없는 행사에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형. 나 진짜 이거 해야 해? 내가 왜 취객이야?”
허름하게 취객으로 분장한 박영관이 나를 보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초반에 프로듀서 유준이 속해 있었던 보이그룹으로 열연했잖아. 이건 그냥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넣는 거야.”
“에이···. 그래도 취객은 좀 아니지. 내가 왜 이런 노숙자 같은 복장을 하고 나와야 하는 거냐고!”
“아니···. 왜 그래? 잘만 어울리는···. 아니 아무튼 다 경험이야 인마. 너 광주행 모르냐? 거기 처음에 좀비로 변하는 사람 있지? 거기에 신은영 씨가 카메오로 나왔잖아. 그게 얼마나 화제가 됐는지 몰라?”
“응? 정말?”
이 녀석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본 모양이다.
“진짜야. 미튜브 찾아봐.”
“어? 그러네? 은영 씨가 광주행에 카메오로 나왔구나. 하하···. 나도 좀 화제가 되겠는데?”
“당연하지. 사람들 깜짝 놀랄걸?”
“그럼 열심히 해야지. 갑자기 기합이 팍 들어가는데?”
사람들이 깜짝 놀라긴 할 거다. 난입하는 취객으로 싱크로율 100%였으니까.
드디어 촬영이 시작되었다. 무대에서 러브원은 자신들의 타이틀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야외에서 출력이 좋은 스피커로 케이의 곡을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 곡도 진짜 좋다. 케이 이 녀석은 역시 천재긴 천재야.’
그때였다. 한 손에 큰 종이컵을 들고 비틀비틀 난입하는 박영관이 보였다. 정말 술이라도 한잔했는지 연기가 꽤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박영관이 헤벌쭉해서 가운데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윤하영을 양손으로 포옹하려는 순간 불꽃 같은 한판 업어치기가 작렬했다.
퍼억!
윤하영은 키가 거의 170cm에 가깝고 근력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유도를 배웠기 때문에 진짜 선수처럼 박영관을 바닥에 메다꽂아버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박영관이 공중에서 너무 오버를 하는 바람에 땅바닥에 머리부터 처박은 것이다. 영상은 아주아주 리얼하게 잘 뽑힌 것 같았지만 정작 영관이는 반쯤 기절하고 만 것이다.
나와 주변 스태프들이 무대 위로 달려갔다.
“어머! 선배님. 괜찮으세요? 어떡해요. 수박 깨지는 소리가 났어요.”
윤하영은 자기가 실수를 한 줄 알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으, 으음···. 음냐···. 여긴 어디? 난 누구?”
“여, 영관아 괜찮니?”
“어어? 형. 우리 스케줄 몇 시에 있어. 벌써 아침이야?”
박영관은 머리를 다쳤는지 횡설수설하고 내가 매니저라고 착각을 하는 것 같았다. 전형적인 단기 기억상실증이었다.
“벼, 병원 가보자. 머리에 충격이···. 저, 저기요. 얼른 들 것 좀···.”
놀래서 사람을 부르려 하자 영관이가 갑자기 손을 뻗어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이 작가 뭘 그리 놀라나. 나 원래 머리 단단한 거 알면서···.”
박영관은 누운 상태로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야 이! 돌대가리야. 깜짝 놀랐잖아.”
“어때 영상은 잘 나온 거 같아? 인터넷에 이슈 좀 될 거 같지?”
“그래 인마. 진짜 깔끔하게 잘 나왔어. 근데 너 진짜 관종이다. 관종.”
나는 영관이를 일으켜 세워주며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자고로 연예인은 대중의 관심을 받아야 하는 거야. 항상 이슈 몰이를 해야 하는 거라고!”
“그래. 이슈 몰이 한번 잘했다. 이 역할을 너 시킨 게 신의 한 수였어.”
“알면 됐어. 형.”
“진짜 머리는 괜찮은 거지?”
“괜찮다니까? 그나저나 이 곡 케이 형님이 만든 거야? 노래 되게 좋다. 후크 미쳤는데? 곡은 또 왜 이렇게 상큼한 거야?”
“뜰 거 같냐? 케이가 신경 써서 곡을 뽑긴 했어.”
“이거 당장에 내놔도 차트 10위권에 들 거 같은데? 우리도 케이 형님한테 곡 좀 받을까 봐.”
“됐어. 너흰 이제 스스로 곡을 만들고 프로듀싱하는 그룹으로 이미지 메이킹하는데 뭐하러 그래. 정이든도 작곡 천재잖아.”
“형. 솔직히 말해봐. 쓰리콤보 때문에 그렇지? 작곡팀 옆에 붙어서 가사 쓰고 연금처럼 따박따박 받아먹으려고···.”
솔직히 뜨끔했다. 의외로 날카로운 구석이 있는 박영관이었다. 괜히 리더가 아니었다. 허당같지만 분위기 메이커에 눈치도 빠른 녀석이었다.
“아, 아냐 인마. 너 내가 돈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전 세계에 내 책이 다 깔려있다고···.”
“어이구 그러셔요? 그렇게 돈이 많으면 밥이라도 좀 사던가!”
“그래 알았다. 알았어.”
우리는 그렇게 박영관의 도움을 받으며 영화 초반부 하이라이트를 멋지게 촬영했다.
* * *
그리도 두 번째 하이라이트 신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헐벗은 유도소녀’ 영상으로 뜬 심채원은 혼자만 유명해지며 팀원들과 불화를 겪게 된다. 결국, 2년 후 재계약을 하지 않고 배우 연예기획사로 이적해 혼자만 승승장구하다가 영화 촬영 도중 높은 곳에서 추락해 식물인간 상태가 되고 만다.
오늘 찍을 장면은 사고를 당해 모두에게 버림받고 어둠 속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심채원의 애절한 모습으로 가창력을 상당히 필요로 하는 그런 장면이었다.
의식만 살아있는 식물인간이 된 심채원. 자신의 매니저는 자기가 죽기를 바라고 아무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다. 심지어 팀 내 불화를 겪은 이유가 믿었던 매니저의 농간임이 드러난 상황. 미칠 듯한 외로움에 구슬프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케이가 공을 들여 만든 애절한 발라드곡이었고 윤하영은 듣는 사람의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소화를 잘 해냈다.
‘와···. 정말 레전드다. 하영이도 1티어급 보컬이야. 하···. 내가 사람 하나는 진짜 잘 뽑았어.’
이미 그녀는 오디션 예선에서 드라마 저승사자의 OST를 멋지게 소화해서 가창력을 인정받았지만 또 하나의 레전드 곡이 탄생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병원에 몰래 찾아온 프로듀서 유준. 그는 그녀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현재 러브원의 음원까지 다 넘기고 신용불량자가 된 상태였다. 심채원은 이제 자신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된 것이다.
이창민은 캐릭터 분석을 열심히 했는지 한연준 못지않은 연기력을 선보이며 배역을 120% 이상 소화하고 있었다.
왠지 창민이도 이 작품을 기점으로 주연 배우급으로 성장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보육원 원장선생님이 회귀를 시켜준 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프로듀서 유준이 설립한 회사에서 오로지 온전한 완전체 그룹으로 히트시킬 생각을 하는 심채원은 첫 번째 해야 할 일이 나쁜 매니저의 정체를 만천하에 까발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작전을 짜고 매니저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나게 한 후 팀원들과 함께해 단단한 팀워크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뮤직넷에서 새롭게 론칭하는 프로그램인 [걸즈온탑 - 차세대 신인 걸그룹 전쟁]에 출전하게 된다.
회귀한 심채원은 이 프로그램이 큰 흥행을 거두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출연을 결심한다.
이 걸즈온탑은 기획 초반에 소속사들의 외면을 받았지만 거대한 팬덤이 생기는 대형프로그램으로 발전하는데 이 내용을 미리 알고 있는 심채원이 프로듀서 유준을 설득해 출전하게 된다.
하지만 이 경연 프로그램은 만만치 않았다. 강력한 경쟁자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라이벌 그룹으로 등장하는 네미시스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네미시스는 강력한 경쟁자인 러브원을 쓰러트리기 위해 숙소에서 음모를 짜고 있었다.
“내가 걔들 리허설을 몰래 들어봤거든? 역시 유준 프로듀서더라. 곡이 아주 장난이 아니야.”
네미시스의 리더인 은하가 침중한 얼굴로 팀원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노래는? 노래도 잘해?”
끄덕끄덕···.
은하는 굳은 얼굴로 이선정의 질문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가면 1티어에 진입해 입지를 굳히려던 자신들의 계획에 큰 지장이 생기게 된다.
“어떻게 할까? 라이브 할 때 설사약이라도 탈까?”
악독한 계획을 모의 중인 네미시스였다. 그 순간···.
“야. 정유나! 너 뭐 하는 거야. 지금 언니들 중요한 이야기 하는 거 안 보여?”
“으, 으응? 지, 지금 뭐 하는 데요?”
식탁에는 안경에 녹색 추리닝을 입고 똥머리를 하고 있는 나유정의 모습이 보였다. 커다란 양푼에 비빔밥을 해서 맛있게 먹고 있다가 언니들의 호통 소리에 눈치만 살살 보는 중이었다.
분명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빵 터질 거라 생각했다. 정말 슬기로운 덕질생활 나혜리의 강화판이랄까? 그 정도로 임팩트가 강했다.
“야. 쟤는 그냥 내버려 둬. 어차피 병풍인데 뭘···.”
그 말을 들은 나유정의 표정이 울상이 되었다. 쭈구리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중이었다.
나유정은 계획한 대로 실제 자신의 모습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 녹음실에서는 한 소절도 소화를 못 하며 프로듀서에게 혼나고 ‘렛츠고’ 파트 하나만 부르게 되었다.
그녀는 음치 연기를 너무 찰떡같이 하는 바람에 제작진과 동료 연기자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언니. 진짜로 존경스러워요. 어떻게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는지···.”
“정말 깜짝 놀랐어요. 언니. 연기 왜 이렇게 잘해요?”
“바보야. 괜히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겠어?”
“정말 말이 안 나와요. 언니!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음치 연기를 잘하세요? 진짜 노래를 못해도 너무 맛깔스럽게 못 하네요.”
원래 나유정은 칭찬을 받으면 콧대가 올라가는 타입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얼굴이 점점 빨개지고 있었다.
“유정 씨. 진짜 대단해요. 정말 제 생각을 아득히 뛰어넘으실 정도로 음치 연기를 잘하셨어요.”
나유정의 연기에 김호진 PD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큭큭···. 그래 감탄해라. 이거 아주 엄청난 화제가 되겠는데? 아무리 음치라도 이거 너무한 거 아냐?’
나도 모르게 웃고 있다가 앞쪽에서 킥킥대고 있는 혜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자는 시늉을 했다. 다행히 혜수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는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웃고 있었다.
우리가 웃고 있는 것을 눈치챈 나유정이 눈을 부릅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솔직히 너무 웃겼지만 입을 꽉 깨물며 웃음을 참기 위해 표정 관리를 했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허벅지를 마구 꼬집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눈을 매섭게 흘기며 손날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커허헉···. 웃기지만 참자. 참아···.’
모든 배우들은 뮤직넷 공개홀에서 경연하는 신을 신나게 촬영했다. 러브원은 그들의 클래시컬한 타이틀곡을 부르고 네미시스는 쓰리콤보의 섹시한 EDM 곡을 불렀다.
어떤 곡이 좋은지는 영화 개봉 후 음원 발매로 판가름 날 예정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라스트 신까지 모두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그렇게 촬영에 든 시간은 딱 한 달 반이었다. 프리 프로덕션 준비를 완벽하게 해놓은 상태라 빠른 촬영이 가능했다.
그 후 김호진 PD의 편집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영화 개봉준비가 한창인 가운데 한 신문에서 우리를 저격하는 기사가 떴다.
[영화제작까지 진출하는 J&J. 무모한 도전이 될 것인가?]
[나뮤스를 통해 인기를 얻은 다솜, 윤하영 J&J 엔터테인먼트와 계약, 사실상 자사 연예인 띄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