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40화 (140/263)

첫 번째 프로젝트 (3)

나유정의 연기 강습이 시작되었다.

“자! 그럼 대본을 바닥에 놓으시고 제작진들이 나눠드릴 요가 매트를 받고 잠시 누워 보세요. 그리고 제가 말하는 걸 따라 해보세요.”

나유정은 그렇게 약 20분 동안 스트레칭과 근육 이완 운동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옳지···.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온몸의 근육을 풀어주세요. 네! 그만!”

“으으으으···.”

“어때요? 몸이 나른하고 쫙 펴지는 거 같죠?”

“네!”

“연기 초보의 가장 큰 적인 긴장을 몰아내는 방법입니다. 긴장은 모든 걸 망치는 주범이에요. 사실 이 스트레칭은 특별한 방법은 아니에요. 많은 분이 하시는 방법이기 때문에 아마 배우신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초보들에게 아주 유용하니 꼭 빼먹지 말고 해보세요.”

참가자들은 스트레칭을 하고 파트너와 연기 연습을 시작했다.

“어때요? 아까보다 훨씬 낫죠?”

“네! 몸이 풀려서 그런지 정말 아까보다 자연스러운 거 같아요.”

처음 몸풀기부터 나유정의 실전 꿀팁들이 줄줄이 전수되고 있었다.

“저기 스트레칭 방법이 특이하네요?”

스튜디오에서 MC 이동현이 영상을 보고 있다가 나유정에게 질문했다.

“네. 알렉산더 테크닉이라고 해요. 공연예술계에서 많이 쓰이는 자세를 회복시키는 방법이죠. 저도 예전에 많이 했구요.”

나유정은 어렸을 적부터 연기를 태생적으로 잘하는 배우인 줄 알았지만 의외로 연기 이론들도 아주 디테일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며 팀별로 연기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며 개개인에게 맞는 맞춤형 조언을 해주었다.

시종일관 연습실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으며 적절한 지적을 받은 참가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오! 이래서 제작진들이 유정 씨의 활약을 기대해 달라고 했구나. 멋지네.’

참가자들은 효과적인 조언을 들어서 그런지 나유정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진짜! 저도 몰랐던 문제점을 꼬집어 줘서 깜짝 놀랐습니다. 역시 월드클래스 배우랄까···. 역시 우리 멘토님이에요. 사랑해요. 유정 선생님!]

참가자 인터뷰에서 나름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던 윤지까지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나유정을 찬양하고 있었다.

“유정 씨. 인기 많네요. 아무래도 선생님을 했으면 엄청 잘하셨을 거 같아요.”

“제가 제대로 된 사람을 여럿 만들었죠.”

나유정이 대답을 하며 내 얼굴을 흘깃 쳐다보았다.

‘응? 지금 나보고 하는 소리인가? 와! 어이없네. 내가 기껏 매니저 노릇 하며 사람 만들었더니?! 역시 검은 머리 짐승은 키우는 게 아니라더니···.’

* * *

참가자들의 합숙은 매우 바쁘게 돌아갔다. 시간이 길지 않다 보니 연기, 댄스, 노래까지 한꺼번에 단체 수업이 이루어졌다.

빡빡한 대규모 합숙 생활을 통해 30명 중에 과연 개성이나 스타성이 돋보이는 인재가 나올까 걱정했으나 웬걸? 잠재력이 팡팡 터지는 참가자들이 차례로 눈에 띄었다.

그렇게 힘든 교육을 마치고 모두가 녹초가 된 밤.

한 참가자가 나유정의 숙소로 상담을 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 모습을 설치된 무인 카메라가 찍고 있었다.

“유정 씨도 자야 하는데 저렇게 찾아와도 되는군요?”

“제가 처음 만났을 때 아무 때나 찾아와도 된다고 했거든요.”

“그렇군요. 계속 화면 보시죠.”

나유정의 숙소로 찾아온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전 프렐류드의 메인보컬이었던 다솜이었다.

“선생님. 계세요?”

“어. 다솜이구나 들어와.”

“늦었는데 죄송해요. 상담 좀 해도 되나요? 제가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럼. 얼마든지···. 뭔데 그래? 고민 있어?”

그렇게 시작된 고민 상담의 내용은 이러했다. 다솜은 노래만 주로 했지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자연스러운 연기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감정을 느끼면서 연기를 하라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잘만 하는데 연예인인 제가 연기를 훨씬 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다솜은 개인적으로 약 2주 정도 연기 지도를 받고 들어가긴 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기간이 짧아서 그런지 자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보니 방송에서도 어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유정은 다솜에게 오전에 했던 연기를 다시 해보라고 주문했고 그녀가 펼친 연기는 확실히 뭔가 과장되고 어색해 보였다.

“흐음···. 왜 그런지 알겠어.”

“네? 저, 정말요?”

“왜? 나 못 믿니?”

나유정의 얼굴에 자신감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아···. 아니요. 믿어요.”

“잘 들어봐. 지금 네 연기는 뭔가 과장되고 붕 뜨는 느낌이 들어. 이런 경우 너무 그 감정에 매몰된 상태라고 볼 수 있거든. 아까 네가 그랬지? 감정을 느끼면서 연기를 하라? 이게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기도 해.”

“그게 틀린 말이라고요?”

“그래. 평상시를 잘 생각해봐. 우리가 화가 나지만 꾹 참고 슬퍼서 눈물이 나지만 그걸 참으려고 하잖아. 이게 감정만 있는 게 아니야. 어느 정도 이성도 작용하는 거야. 그런데 그냥 화만 내고 울기만 하면 그냥 아무 느낌 없는 과장된 연기가 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해요?”

“음···. 이런 경우는 최대한 몸을 이완시켜서 긴장을 풀고 뇌에서 생각한 게 바로 실행이 되도록 해야 해. 생각하지 말고 느끼지도 말고 그냥 행동하는 거야.”

“!!”

나유정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노하우를 쏟아내고 다솜을 고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다솜이 연기를 몇 번 반복했을 때···.

“그래! 그거야. 다솜아.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상황에 빠져서 연기하면 되는 거야.”

“아···. 이렇게요?”

“이리 와. 우리 다솜이 너무 잘했어요. 그 감각을 잊어버리면 안 돼. 알았지?”

나유정은 팔을 활짝 벌린 후 다솜이를 껴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흑···.”

“에이 울지마. 잘했는데 울긴 왜 울어?”

나유정의 매직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사실은 재능이 없다면 이렇게 쉽게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솜이는 노래와 연기에 대해서 완벽한 밸런스형 아우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가만 보니 유정 씨가 진짜 사람의 재능을 잘 끌어내는군요.”

이동현이 따뜻한 눈을 들어 나유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윽···. 다 내가 잘 뽑아서 그런 건데. 이걸 공개할 수도 없고 말이야.’

나는 답답했지만 참기로 했다. 어차피 작가인 내가 배우들에게 직접적으로 해줄 수 있는 건 없었으니까.

그 후로도 몇 명이 나유정의 숙소를 방문했고 그녀는 귀찮은 기색 없이 정말 친언니처럼 참가자들을 보듬었다.

스튜디오에서는 첫날 합숙 영상에 대한 리뷰가 끝이 났다. 오후에는 둘째 날, 저녁에는 셋째 날 영상을 찍어 3화 분량을 하루에 끝내기로 했다.

우리는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며 점심을 먹었다.

갑자기 케이가 밥을 먹다 말고 젓가락을 테이블에 탁하고 내려놓았다.

“왜 그래? 입맛 없어? 왜 먹다 말고 그래?”

케이는 평소에 음식을 아주 잘 먹는 편이었기 때문에 젓가락을 도중에 내려놓는 건 자주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소, 소화가 안 돼. 아까 유정 씨 영상 본 후로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하···. 큰일 났네. 이걸 어쩌지?”

“뭔데 그래?”

“내, 내가 너무 애들을 혹독하게 평가했나 봐. 유정 씨랑 비교당하게 생겼어.”

“뭐 인마. 넌 냉정하게 팩트만 이야기한다면서? 이제 후회되냐? 그냥 생각대로 밀고 나가.”

“하으···.”

오후 녹화에는 노래 연습을 하고 온 3개 조가 차례로 녹음실에 들어서며 프로듀서 케이의 멘토링을 받았다.

“잠깐만요. 은하 씨.”

화면에는 케이가 얼굴을 찌푸리며 음악을 끄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네. 네···.”

잔뜩 주눅이 든 표정의 전 프렐류드 센터 은하가 케이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다시 한번 갑니다. 이번엔 악보 제대로 보고하세요. 음정 자꾸 틀리지 마시고···.”

케이의 말에 녹음실의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부스 바깥에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4명의 다른 참가자들도 덩달아 표정이 굳어졌다.

“플랫이잖아요. 다시···.”

“그게 아니고···. 방금 그 부분은 짧게 하세요. 다시···.”

“한 번 더 갑니다.”

“그만. 하아···. 삑사리까지..”

부스 안에서 울 것 같은 눈으로 밖을 내다보는 은하의 모습이 참 안쓰럽게 보였다.

“아니 애를 잡겠어요. 도대체 몇 번을 하는 거예요.”

“그러게요. 그래도 7년이나 걸그룹을 했던 멤버인데···.”

“그, 그건 제가 완벽을 추구하느라···.”

케이가 이동현과 나유정의 핀잔에 손을 흔들며 변명을 하고 있었다.

겨우겨우 녹음을 끝낸 은하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후 소파에 앉아 고개를 푹 수그렸다.

잠시후 은하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얼마나 굴욕적이었겠는가! 뮤지컬 영화에 나오기 위해 서바이벌도 마다하지 않고 나왔더니 이런 취급이라니···.

케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사람의 노래를 평가하고 있었다. 어떤 참가자는 부스를 박차고 얼굴을 감싸 쥐고 부스를 빠져나가기도 했다.

“아니! 케이 프로듀서님. 원래 저런 스타일이었어요?”

“녹음할 때 좀 예민해져서···.”

“아니 이건 예민한 수준이 아닌데요? 슈퍼노바랑 작업할 때는 도대체 어땠길래···.”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다 보니 욕하고 멱살 잡고 싸우기도 하고···.”

“헐···.”

“유정 씨 멘토링을 보다가 케이 씨가 하는 것을 보니 완전 천당에서 지옥으로 강등되는 느낌인데요?”

“그, 그래도 잘하는 사람들은 칭찬했습니다.”

되지도 않는 변명이었다. 앞에서 나유정의 조언에 참가자들이 극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본 케이도 자신의 모습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글쎄요. 케이 씨 기준으로 칭찬받은 사람을 보면 5명 중 1명이나 될까···. 다른 참가자들은 전부 멘탈이 붕괴 직전이네요. 표정을 보니···.”

스튜디오의 대화를 뒤로하고 다시 화면에 케이의 가차 없는 평가가 계속되고 있었다.

“Stop! 잠시만요. 노래 꺼주세요. 저기요. 하아.. 뭐지? 아예 준비가 안됐는데..”

녹음실에 또다시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짜증이 난다는 케이의 표정!

“..........”

“저기요. 노래가 그렇게 하고 싶으세요?”

아니! 이 장면은?

마치 아이돌 메이커에 나왔던 레전드 장면인 ‘세희야! 너 아이돌이 하고 싶어?’를 보는 듯 했다.

솔직히 나도 괴작판독기에게 당했었기 때문에 이때다 싶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말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이 지적만 하는 쌍팔년도 스타일이네요. 쯧쯧···.”

“에이! 쌍팔년도라니요? 제가 태어나지도 않은 해입니다.”

케이는 내 말에 동요한 듯 당황하고 있었다.

“예전에 제 글을 딱 저런 식으로 평가했었어요. 정말 무자비했습니다. 정말 멘탈이 붕괴될 정도였죠. 정말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왜 그렇게 내 글에는 빠짐없이 나타나던지···.”

“그, 그건 분명 자질이 보여서..”

“저기요. 그쪽에게 인정받고 싶은 맘 없거든요?”

“제가 지적한 부분을 고쳐서 세계적인 작가가 된 거 아닙니까?”

“헛소리! 멘탈이 갈려서 절필하고 매니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만?”

오늘은 3개 조의 노래 테스트 겸 녹음이 있었는데 케이에게 혼나지 않은 사람은 한 손에 꼽는 수준이었다. 나는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당황하고 있는 케이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충격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모두가 녹음실을 떠난 후 케이는 그곳에 홀로 남아서 3개 조 열다섯 명에 대한 리포트를 쓰고 있었다.

그는 워드 프로세서를 실행시켜놓고 한명 한명 이름을 적으며 장점과 단점 그리고 보완할 방법을 적기 시작했다.

1시간···. 2시간···. 3시간···.

그는 힘든 녹음을 마치고도 3시간 정도를 더 앉아서 고민하더니 3시간 동안 열다섯 장에 이르는 분석 노트를 만들어냈다.

[음···. 다하셨나요?]

제작진으로 보이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 힘들다. 여기요.”

[이게 뭔가요?]

“오늘 녹음한 참가자들의 리포트예요. 녹음한 순서대로 작성했으니 영상 확인해보시고 참가자들에게 나눠주세요.”

케이는 무표정하게 출력된 리포트를 제작진에 건네고 목이 뻣뻣한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있었다.

“와···. 반전 뭐야? 겉으론 차갑고 속은 쏘 스위트? 케이 프로듀서님. 이게 사실입니까? 참가자별 리포트라니요?”

케이는 이동현의 말에 살짝 부끄러운지 얼굴이 붉어졌다.

“잠시만요! 이의 있습니다.”

“네. 이 작가님 말씀하세요.”

“저건 리포트가 아니라 데스노트 같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네? 데스노트요?”

나의 말에 MC가 흥미로운 눈빛을 보였다.

“네. 가망 없다고 생각한 참가자들에겐 죽음과 같은 팩트를 선사하는 거죠.”

“큭큭큭···.”

내 말에 제작진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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