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프로젝트 (2)
[J&J 엔터테인먼트? 이준형과 나유정의 이니셜을 딴 약자?]
한사코 커플이 아님을 밝혔던 두 사람이 회사를 차리고 빌딩까지 샀다?
각 커뮤니티에 ‘나의 뮤지컬 스타’ 1화에 나온 J&J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각종 추측성 게시물들이 올라오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닌 J&J라는 이름이다.
한 네티즌은 J&J는 누가 봐도 이준형 작가의 앞글자인 J, 나유정의 뒷글자인 J를 조합해서 만든 게 아니냐면서 두 사람은 얼른 사귀는 사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글을 올렸다.
한편, 나유정은 방송에서 이 작가와의 관계에 대해 계속해서 모호한 발언을 이어갔으며 자신이 왜 이준형 작가와 함께 기획사를 차렸는지를 설명하며 그에게 강한 신뢰감을 드러냈다.
J&J가 둥지를 튼 빌딩의 소유주가 나유정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 등기확인을 해보니 건물의 소유자가 나**로 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나 씨가 그리 흔한 성은 아니기 때문에 소문은 어느 정도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기사가 워낙 많이 나서 그런지 이제 두 사람의 열애설에 대해서는 그다지 놀라워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아예 사귀는 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뿐더러 이미 혼인신고를 했다거나 애가 있다고 해도 별로 놀랄 사람이 없다는 농담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중략>
나는 이 기사를 읽고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확실히 회사 이름은 내 잘못이야. 너무 일차원적으로 지었어. 쭌앤쩡을 피하려다가 그만···.’
나는 한숨을 푹 내쉰 후 브라우저를 끄고 커피 한잔을 마셨다.
‘그래도 기사가 너무 자주 나와서 그런지 이제는 뭐 덤덤한 반응이네.’
솔직히 나야 상관없긴 한데 유정 씨에게 피해가 가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 CF를 파기하자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광고주가 없는 실정이니 열애설에 관해서는 정말 별다른 영향이 없는 것 같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판단하기 힘든 상황!
‘에이···. 나도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커피 한잔을 마신 뒤 워드를 켜고 ‘천마의 외동딸이 되었습니다.’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고담 출판사를 통해 발매한 천외딸은 플랫폼 나이스를 통해 연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웹소설쪽에 많은 작품이 없던 고담 출판사는 천외딸에 아낌없이 프로모션을 쏟아부어 유입을 끌어내고 있었고 작품이 상위권에 노출되며 인기몰이를 이어가고 있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천외딸의 작가인 ‘쭌쩡’의 필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평이 많았는데 ‘쭌쩡’이 누군지 궁금해하는 글들이 작가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오고 있었다.
‘천외딸’은 요즘에는 너무 바빠서 하루에 1~2편 정도밖에 쓰질 못해서 그런지 하루 매출이 삼백만 원 정도 나오고 있었다.
‘뭐 얼마 안 되긴 하지만 이것도 쏠쏠하네.’
생각해보니 이렇게 된 게 불과 1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예전에는 꿈도 못 꿀만 한 수준의 매출인데 이걸 껌값 취급을 하고 있다니···.
‘이준형! 초심을 찾자! 초심을!’
사실 천외딸은 심심풀이로 써봤던 작품이라 흥행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돈은 얼마 안 된다고 하더라도 글을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하지.’
꾸준히 글을 쓰지 않으면 감각이 무뎌지니 나태함을 경계하기 위해서라도 가볍게 쓰고 있었는데 사실 이 작품은 지속해서 유정 씨와 만나는 구실을 만들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글이 안정되고 내가 주인공인 천마 딸의 심리에 익숙해지자 유정 씨가 이야기해 줄 만한 부분이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똑똑···.
문이 열리고 유정 씨가 얼굴을 드러냈다.
“준형 씨. 작업해요?”
“아···. 잠깐 쉬고 있어요. 들어오세요.”
나는 유정 씨와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기사 봤어요?”
내가 먼저 조심스럽게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봤어요. 나뮤스가 아이돌 메이커 1화 시청률을 깼다는데요? 평도 상당히 좋았고요.”
“그 기사 말고요.”
“아아···. J&J 어쩌고 한 거요? 뭐 사실을 호도하거나 그런 건 없지 않았어요? 물론 숨겨둔 애 어쩌고 한 건 아무리 농담이라고 해도 그렇지 기분이 살짝 나빴어요.”
“조회 수에 눈 뒤집힌 애들은 어쩔 수 없어요. 자기가 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발뺌할 게 뻔하거든요.”
“하여간 기레기들···.”
“원고는 읽어보셨어요? 별다른 코멘트가 없던데요?”
“요즘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것 같아요. 여주인공의 감정에 대해 제가 뭘 지적할 게 없더라고요.”
“역시 이제 로맨스도 무리 없이 쓰는 작가가 되었군요. 되게 뿌듯하다. 여성의 심리를 이제 아는 거죠. 제가 글도 많이 읽고 공부도 좀 많이 했거든요. 이제 원고를 안 보내도 되겠···.”
“그 입 다물라.”
“응?”
유정 씨의 얼굴은 아까와 다르게 딱딱하게 굳어있는 상태였다.
“잔말 말고 꼬박꼬박 보내요. 준형 씨가 여자의 심리를 알긴 뭘 알아요?”
“아니···. 그, 그게···.”
“쓰읍···.”
“아, 알았어요. 보내야죠.”
잠시 작업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몰랐지만, 그냥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나저나 이번 주에 본선 합숙한 거 녹화 있는 거 아시죠?”
“네. 유정 씨가 멘토로 어떤 활약을 했는지 궁금하군요. 제작진들이 1화에서 잔뜩 기대감을 심어주던데요?”
“별건 아니고 그냥 노하우 약간 전수해 준 건데요. 뭘···.”
“그런 게 바로 꿀조언입니다. 도대체 누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님한테 직접 강의를 들을 수 있겠어요. 정말 엄청난 기회인 거죠.”
나는 아까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과도한 아첨을 해버리고 말았다.
“호호···. 그게 정말 도움이 많이 됐을까요?”
“아무렴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이죠. 그저 갓갓!”
듣고 있던 귀를 막아버릴 정도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아부였지만 유정 씨의 얼굴이 활짝 피어나기 시작했다.
‘휴···.’
* * *
나뮤스 2화가 방영되었고 3%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1화 마지막의 모자이크 참가자는 식스엔젤의 윤지로 밝혀졌다. 윤지는 워낙 인지도가 있는 현역 걸그룹 멤버였으니 당연히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비연예인 전형의 윤하영도 압도적인 비율과 외모를 뽐내며 순식간에 일반인 참가자의 원탑을 찍고 말았다.
그녀가 부른 저승사자의 OST 영상은 일반인 참가자들 영상 중 압도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일반인이 부른 저승사자 OST 주제곡 클래스!]
[JB Ent.가 또 한 명을 놓쳤습니다.]
[걸그룹 명가에서는 이런 인재도 떨어진다. 현직 아이돌을 압살하는 비율 학살자 등장!]
오히려 윤하영의 등장으로 인해 JB의 명성이 올라가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윤하영은 비율 학살자라는 별명을 얻으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2화 마지막에 등장한 블랙소울 혜수로 인해 커뮤니티가 뒤집히고 말았다. 그녀의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도 화제였지만 현존 세계최강의 걸그룹의 리더가 서바이벌에 나왔다는 자체만으로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아니 블랙소울의 혜수가 여기서 왜 나와?]
[크흑···. 역시 혜수는 치트키였다.]
[아니···. 영화가 얼마나 기대되길래 이런 인재들이 다 지원을 한 거야? 글로벌하게 히트한 드라마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가?]
[YN 대표가 잘도 허락했군. 그룹을 안 돌리고 솔로 활동을 하게 한다고? 혹시 영화에 지분 투자했나?]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 가운데 역시 혜수를 출연시킨건 의심의 여지 없이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 * *
오늘 3화는 예선을 통과한 30명의 참가자가 2박 3일을 합숙한 내용으로 방영될 예정이었다.
멘토 3명은 스튜디오에 모여 합숙하는 기간에 벌어진 일들을 가볍고 재미있게 관찰하는 식이었다.
최근 방송가의 대세인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같은 포맷이었다.
“어서 오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MC 이동현입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유정 씨는 예전에 시상식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었죠.”
“네. 기억나네요.”
“그때 드레스를 입고 있던 유정 씨를 보고 너무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왜 놀라셨어요?”
“연예인들을 많이 봤지만, 실물이 그렇게 예쁜 사람은 처음 봤었거든요.”
“아···. 정말요?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냥 사실인데요. 흐음···. 그런데 말이죠. 그걸 잘 모르는 아주 둔한 사람이 여기에 나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이동현은 유명 개그맨 출신의 MC였는데 특유의 느끼하지 않은 음흉한 미소로 더욱 유명한 사람이었다. 지금 그는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그 미소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예? 서, 설마 저는 아니죠?”
나는 처음부터 이상하게 몰고 가는 이동현의 말에 당황하고 말았다.
“이거 봐. 덩치는 무슨 곰처럼 생겨서 눈치가 원···.”
“.........”
“요즘 나뮤스 방송 이외에 두 분의 이야기가 언론에 많이 나오던데요. 이 작가님. 솔직히 말이죠. 저 같으면 그런 기사가 나오면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맞다고 막 우길 겁니다. 왜냐? 상대가 보통 분입니까? 월드 스타 나유정 씨잖아요.”
“맞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유정.
“사, 사실이 아닌데 우길 필요도 없고 괜히 이상하게 말해봐야 만인의 공적이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 MC의 말에 나도 모르게 억울함을 표하고 말았다.
“어차피 유정 씨야 전 국민이 모태솔로라고 알고 있고 이준형 작가 정도면 뭐 그럭저럭 이해가 가능한 수준이니···.”
아니! 그럭저럭 이라고? 말이 좀 심하구만?
“잠시만요! 누가 그래요? 저 모태솔로 아니거든요?”
갑자기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던 나유정이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꼭 모태솔로가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그런···.”
“아니요. 정정해주세요.”
MC 이동현은 나유정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휴···. 됐습니다. 사귀든 말든 맘대로 하시고요. 방송 진행합시다. 지금 예선전을 통과한 30명이 양평의 합숙소에 입소했다고 합니다. 그 첫날은 어땠는지 모두 함께 영상을 보도록 하시죠.”
“저기요. 정정 좀···.”
이동현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진도를 나갔지만, 나유정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화면이 나오며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합숙 장소에 도착하고 있었고 좌충우돌하는 에피소드가 방영되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연예인 1명, 비연예인 1명으로 구성되어 한 조가 되고 같은 방을 배정받았다.
3화부터는 경연이 아닌 캐릭터에 집중해서 인물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방송이 진행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조를 세분화해야 했다.
“와···. 참가자들이 정말 화려하네요. 유명한 아이돌도 많네요. 방금 도착한 사람이 블랙소울의 혜수 씨죠?. 월드투어다 뭐다 해서 엄청 바쁘시실 텐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뮤지컬이나 영화를 꼭 해보고 싶었다고 하네요.”
방 배정이 끝나고 강당에 모여 서로의 얼굴을 보며 어색해하고 있는 찰나···.
커튼이 열리며 한 명의 인영이 무대로 걸어 나왔다. 참가자들은 그 사람을 보고 입을 가리고 좋아하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우와아···.”
격렬한 환영을 받으며 무대 위에 등장한 사람은 바로 나유정이었다.
“나유정! 나유정! 나유정!”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연기 멘토 나유정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기쁩니다. <중략> ....저는 여러분들께 도움을 드리려고 나온 거지 평가하려고 나온 게 아닙니다. 심사위원들과 시청자분들이 평가하는 거지 제가 평가를 하는 것도 아니구요. <중략> ....궁금하거나 잘 안 풀리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질문 주세요. 그리고 저도 2박 3일 동안 같이 합숙을 하니 언제든 제 방으로 찾아오셔도 되구요. 아셨죠?”
“네!!”
그녀는 합숙 때문에 흥분했는지 텐션이 너무 올라가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하하···. 유정 씨가 제일 신난 것 같아요. 얼굴을 보면 딱 보여요.”
“..........”
“와! 말 너무 길다. 제작진들이 말을 편집했네요. 담임 선생님 아침 조회하시는 것 같다.”
“흥! 일단 보기나 하세요.”
이동현이 나유정에게 핀잔을 듣고 있었다.
그녀는 제작진들이 준비한 조별 대사를 나눠주고 연기 연습을 한번 해본 뒤 기본적인 연기를 하도록 했다. 조별로 잘한 조와 못한 조가 생기고 수준 차이가 천차만별이었다. 특히 비연예인 참가자들은 아직 카메라가 익숙하지 않은지 연기하는 게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정말 다들 잘하셨어요. 아무래도 연기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다들 어느 정도 기본기가 있네요.”
나유정은 그 모습을 꼼꼼하고 유심히 지켜보더니 전반적인 총평을 해주었다.
“그래도 아직 연기를 별로 해보지 않았거나 긴장을 많이 해서 제 실력이 안 나오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초반이긴 한데 제 경험에서 나오는 팁을 전수해 드릴게요. 뭐 아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네요.”
나유정의 팁이라는 소리에 참가자들의 두 눈이 초롱초롱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