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프로젝트 (1)
나는 리리에게 지금까지 확정된 NGG 멤버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얘는 예전에 XM에서 데뷔할 뻔했던 걸그룹의 센터였고···. 얘는 한일 혼혈인데 정유리라고 테리우스 정이든 여동생이에요.”
“자, 잠깐만요. 그럼 정이든 씨도 혼혈?”
“아···. 이건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는데···. 죄송해요. 모른척해 주세요. 그리고 김담희라고 SG 뉴비즈 연습생도 있고···.”
“어? 담희요?”
“알아요? 하긴 아이돌에 관심 있으면 알지도 모르겠군요. 담희는 몸이 안 좋아서 현재 치료 중이에요. 심각한 건 아니구요.”
".........."
“마지막으로 여기 도도하게 생긴 애가 바로 이지령이라고 카이스트 출신입니다. 나이는 열아홉 살이네요. 어때요? 대단하죠? 그러니까 리리 씨가 들어오면 제일 언니가 될···.”
“하겠습니다.”
“응? 정말이에요?”
“네. 저도 하고 싶어요.”
갑자기 강렬한 눈빛으로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는 리리였다.
“자, 잘 생각하셨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직원에게 계약서 좀 가져오라고 하겠습니다. 음···. 나이가 민법상 성인이긴 한데 혹시 모르니 보호자를 부르셔도 됩니다.”
“아니요. 전 하나만 확인하면 돼요. 정말 담희가 여기 연습생인거죠?”
“맞아요. 계약서라도 보여드릴까요? 아니면 전화 통화라도···.”
“아니요. 괜찮습니다. 대표님. 믿을게요.”
“감사합니다. 혹시 그런데 담희랑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알 수 있을까요?”
“같은 보컬 학원 출신이에요. 요즘 서로 안 좋은 일이 있어서 한 일 년 동안 연락이 끊어졌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리리는 뭔가 감격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인간은 어떤 스토리 같은 게 있으면 더 빠져들고 감동하기 마련이니까.
“그럼 잘 됐군요. 담희도 아는 사람 생기고···. 아! 담희는 건강에 좀 유의해야 합니다. 갑상선이 좀 안 좋아요. 뭐 심각한 건 아니고···. 언니니까 신경 좀 써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대표님.”
“조만간 멤버들 다 모이면 회사 근처에서 숙소 생활을 시작할 건데 상당히 넓고 깔끔하니까 지내기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리리와 계약이 끝나고 그녀가 써놓은 이름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흠···. 본명이 이리리네요?”
“네. 어렸을 때 그거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요. 매일 애들이 북한에서는 리리리냐? 막 이러고요. 릴리리라고도 불렸어요.”
“하하···. 연예계에서는 이름이 특이할수록 잘 기억되니 좋은 거죠. 예명을 쓸 필요가 없는 이름이네요. 아! 생각해보니 영어로 써도 리리리네. 애매하니까 그냥 쓰던 예명인 리리(RiRi)로 가시죠?”
“네. 그게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있으면 다 물어보라고 했다.
“어떻게 이런 멤버들을 다 모으신 거예요? 능력은 아직 모르겠지만 비주얼이 정말 사기에요. 그런데 제가 여기에 껴도 되나요?”
그녀는 다른 4명보다 돋보이지 않는 자신의 외모를 걱정하고 있었다.
“리리 씨도 만만치 않아요. 그리고 점점 나아질 거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피지컬만 갖춰졌다면 외모는 관리를 받으면서 나날이 예뻐지고 멋있어지는 게 당연했다. 2년간 테리우스 매니저로 생활하면서 카메라 마사지와 관리를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정말 그렇게 될까요?”
그녀는 일 년간의 방황이 힘들었는지 외모에 대한 자존감이 약간 떨어진 상태인 듯했다.
“제가 이거까지는 안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나는 휴대전화 갤러리에서 윤하영 사진을 찾아서 보여줬다.
“이게 관리 전이고 이게 한 달 후에요. 어때요? 놀랍죠? 회사를 한번 믿어보세요. 최선을 다해 관리할 거니까요.”
그녀는 내 휴대전화를 들고 몰라보게 예뻐진 윤하영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솔직히 하영이는 피지컬이 좀 타고난 면이 있긴 한데···. 리리도 키도 크고 하니 뭐 관리를 받으면 비슷하겠지 뭐.’
나는 그렇게 마지막 멤버인 메인보컬 리리를 영입하게 되었다. 팀에 메인보컬이 필요했는데 그야말로 딱 어울리는 인재였다.
‘휴. 모아놓고 보니 어벤져스네. 어벤져스야.’
이제 숙소 생활을 하면서 친해지고 합을 맞춰보면서 트레이닝을 시켜야 할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마음이 든든하지?’
* * *
2월 말부터 ‘나의 뮤지컬 스타’의 광고가 연일 방송을 타고 있었다. CA 미디어가 작정하고 자사 채널들의 광고 시간을 할애해서 마케팅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예선전과 본선 합숙을 녹화해보고 내부적으로 흥행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는지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있었다.
‘음···. 홍보해주면 나야 좋지 뭐.’
[신개념 서바이벌 ‘나뮤스’ 드디어 3월 1일 금요일 첫 방송!]
TV 광고에는 저번에 지원자를 모으기 위해 홍보자료로 썼던 영상이 나오고 예선전에 있었던 장면들을 떡밥으로 풀고 있었다.
이철승 PD는 온갖 표정을 지으며 놀라고 있는 내 표정을 편집해서 광고로 써먹고 있었다. 반면 나유정과 케이는 예쁘고 멋진 모습으로 나오고 있었고..
‘어휴. 저 어리바리한 모습 좀 봐. 난 왜 저렇게 촌스러운 거야!’
그것만 빼면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케이는 서바이벌 참가자와 녹음하는 영상을 아주 잘(?) 찍었으며 회사의 신규 걸그룹 멤버들은 모두 다 숙소에 입성했다.
첫 번째 주자인 장예원은 안방마님처럼 숙소에서 연습생들을 차례로 받기 시작했다. 서울에 사는 김담희와 리리가 먼저 들어오고 대전의 이지령과 일본의 정유리가 시차를 두고 숙소에 들어왔다.
NGG 멤버들은 약 2주 정도를 같이 생활해보더니 친자매처럼 지내기 시작했다. 리더는 만장일치로 이지령이 당선됐고 최고의 트레이너에게 외주를 맡겨 PT, 춤, 노래, 연기까지 가르치기 시작했다.
비용은 상당히 비쌌지만 대부분 재능과 기초가 탄탄한 아이들이라 그런지 트레이닝이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 같았다.
사실 춤을 습득하는 게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다행히 NGG 멤버 전원이 수준급의 댄스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예원, 담희, 리리는 걸그룹 데뷔조거나 대형 기획사 연습생이었고 지령이와 유리는 아마추어였지만 2년 이상 전문적으로 댄스를 배웠기 때문에 합을 맞춰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블랙소울의 노래를 커버한 영상을 보고 있으니 얼마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벌써 완성형의 느낌이 물씬 났다.
‘NGG 멤버들의 키는 신기하게도 전부 165cm를 넘다 보니 일부러 군무를 위해 키를 맞춰서 뽑은 것 같은 느낌이 나네.’
겨우 몇 번 합을 맞춰보고도 이 정도라니···. 멤버들의 능력이 대단하긴 했다.
걸그룹 연습생들이 트레이닝을 받는 사이, 사무실의 식구도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일단 6층에 사과 스튜디오 직원들이 들어와 J&J 스튜디오로 이름을 바꿨으며 매니저와 지원팀 인원도 일부 보강해서 이제는 어엿한 기획사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7층 작업실에도 인원이 늘어났다. 작업실에 출근한 김시후가 공모전을 목표로 드라마 대본을 집필하는 중이었다. 무슨 요즘 대학생들의 현실을 담은 드라마를 쓴다고 하는데 나랑 괴작판독기가 감평을 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회사가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고 어설펐던 회사가 이제야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 * *
3월 1일 (금) 11시였다.
드디어 독립 후 첫 번째 프로젝트인 ‘나의 뮤지컬 스타’의 방송이 시작되었다. 처음 장면으로 우리 회사의 전경이 나오고 있었다.
[2월 15일 오전 10시 J&J 엔터테인먼트 빌딩]
간단한 회사 전경과 계단의 그림들이 비치더니 광고 영상처럼 멋지게 문이 활짝 열리며 내 사무실이 공개되었다.
[직수입 작가 전용 책상에 멋들어진 책꽂이와 각종 편의시설 그리고 완벽한 뷰까지···.]
“안녕하세요. 이준형 작가입니다. 이곳이 바로 제 사무실입니다.”
[전자책 인세로 시원하게 FLEX!]라는 자막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으음···. 사실 내가 산 것도 아닌데···.
그러거나 말거나 화면은 빠르게 휙휙 넘어가고 있었다.
“‘나만의 세계’ 이후 제 차기작은 뮤지컬 영화를 제작할 예정입니다.”
그러자 라라랜드나 맘마미아 같은 뮤지컬 영화가 잠시 스쳐 지나가더니 곧바로 6층 사무실에 앉아 있는 김호진 PD의 모습이 애니메이션처럼 나타났다.
“저는 슬기로운 덕질생활을 연출한 김호진 PD입니다.”
[전설의 콤비가 다시 뭉쳤다! 슬기로운 덕질생활은 올리비아 채널에서 재방송 중!]
다음으로 나유정의 옥상 정원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정원이긴 했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약간 살풍경한 모습이었다. 차라리 사무실이 어땠을까 했지만 바로 옆에 뚫린 문이 논란이 될까 봐 일부러 옥상에서 인터뷰한 것이다.
“아하하···. 지금은 겨울이라 경치가 좀 그런데요. 봄에는 볼만할 거에요.”
[지금 추우신 거 같은데요?]
“시원한데요?”
[서바이벌의 연기 멘토가 된 소감은?]
“사실 이런 프로그램에 나가는 게 처음이라 떨리고 흥분되는데요. 참가자들을 제 친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조언을 해줄 생각입니다.”
[....너무 의욕에 차신 게 아닌지?]
[아니요! 저는 이미 준비돼 있습니다. 친언니처럼 참가자들을 돌볼 거에요. It's show time!]
그녀는 카메라를 향해 윙크하며 손가락으로 총을 쏘는 시늉을 하며 아이돌 메이커의 유행어를 따라 하고 있었다. 앞으로 아이돌 메이커도 다시 해야 할 텐데 뮤직넷에서 아주 좋아할 만한 멘트였다.
[멘토중의 멘토 나유정의 엄청난 활약을 기대해주세요. To be continued!]
그녀가 본선 합숙에서 어떤 활약을 했길래 제작진들이 자막을 저리 거창하게 깔아놓은 걸까?
마지막으로 케이의 녹음실이 공개됐다. 녹음실은 케이의 취향답게 뭔지 모를 퇴폐미(?)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용하는 장비들과 각종 트로피 그리고 그림 등의 인테리어 소품들을 들고 왔는데 왠지 모르게 이상한 것들이 많았다.
‘하여간 취향하곤?’
“안녕하십니까? 저는 프로듀서 케이라고 합니다. 냉정하게 평가하겠습니다.”
쯧···. 누가 괴작판독기 아니랄까 봐.
[참가자들의 멘탈을 가루로 만드는 영혼 콜렉터 프로듀서 케이!]
뭔가 심상치 않은 자막이 화면을 스쳐 지나갔다.
저번에 녹음할 때 참가자들이 얼굴을 가리며 녹음실을 뛰쳐나오던데···. 혹시 그게 저 의미였나?
그리고 곧바로 화면이 스튜디오로 바뀌며 100명의 진출자가 서바이벌을 준비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방송은 녹화 때처럼 연예인 전형부터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방송에 관한 관심이 몰려있을 때 제일 재미있는 부분을 먼저 터트리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예선을 심사했던 영상이었다.
첫 참가자의 등장부터 흥미진진했다. 프렐류드의 센터 은하의 강렬한 등장! 그리고 같은 그룹의 메인보컬인 다솜의 충격적인 변신! 그리고 벌칙으로 참가했던 C-Girls의 메인보컬이 나로 인해 자기도 전혀 몰랐던 연기 재능에 눈을 뜨는 장면, 마지막 모자이크를 통해 등장한 최강의 실력자까지···.
딱 궁금해할 부분에서 귀신같이 자르는 제작진이었다.
“하···. 저러면 다음 편을 안 볼 수가 없잖아. 진짜 스피디하고 화려한데? 아이돌 메이커보다 재밌는 거 아냐?”
1화가 방영된 뒤 다음날
나는 포탈에서 ‘뮤직넷 나뮤스’에 대한 기사를 읽어보고 있었다. 이미 인터넷에서는 꽤 이슈가 되고 있었다.
[나의 뮤지컬 스타 흥행 성공? 1화를 본 시청자들의 호평 이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