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36화 (136/263)

마지막 멤버 (2)

“죄송한데. 사람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척 연기하는 리리의 표정을 보니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이렇게 발뺌을 자연스럽게 하는지···. 만약 아우라 스카우터가 없었으면 추측만으로는 도저히 우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 쏭포유에서도 봤잖아요. 그 무대 뒤 통로에서요. 후···.”

내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으니 하얀 얼굴의 리리가 고개를 30도 정도 삐딱하게 틀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라니까 자꾸 왜 그러시는 거예요?”

“연기해봐야 소용없습니다. 리리 씨가 왜 그런 모습으로 다니는지 모르지만, 화장을 두껍게 하든 변장을 하든 저는 당신이 누군지 다 알아낼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그녀는 정말로 궁금한 모양인지 자기도 모르게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확신하는 표정을 지었나 보다.

후후···. 오케이. 그럼 그렇지.

“저는 외모가 아니라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거든요.”

“농담하지 마세요.”

물론 내면을 꿰뚫어 보진 않지만, 그 사람의 아우라는 보는 거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농담 아닙니다. 그러지 마시고 저랑 잠시 이야기 좀 하시죠.”

버스에 타지 못하게 정류장 앞에 버티고 있으니 이리저리 빈틈을 노리던 리리가 이내 포기하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요.”

“건설적인 이야기죠. 저희 사무실로 가시겠어요? 얼른 들어가야겠어요. 지금 너무 춥거든요.”

나는 셔츠 한 장만 걸친 상태였고 입김을 불어 춥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휴···. 알았어요.”

리리와 함께 다시 J&J 빌딩에 도착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어우! 춥다. 추워.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시죠.”

우리는 7층에 도착해 녹음실로 걸어갔다. 내가 녹음실 문을 열자 그녀는 잠시 멈칫하는 듯했다.

“왜요? 괜찮아요. 아까 케이 프로듀서 보지 않았어요?”

“그, 그렇긴 한데···. 이 얼굴로는 처음이라···.”

“왜요. 예쁘기만 하구만?”

“..........”

나는 정말 객관적으로 하는 소리였다. 그녀는 노메이크업에 눈썹이 반쯤 없었지만 깔끔하게 생긴 편이었다. 어디 가서 미모로는 꿀리지 않는 그런 수준. 하지만 특별히 개성이 있다거나 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런데 눈썹은 왜 안 그렸어요?”

“앗! 시, 실수···.”

그녀는 황급히 화장실로 들어가 눈썹을 그리고 나왔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제가 아까 버스 시간 놓칠까 봐. 눈썹을 못 그렸는데 그걸 깜빡했네요.”

“괜찮습니다. 안 한 것도 괜찮으신데요. 들어가시죠.”

안으로 들어가니 케이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쳐다봤다.

“형. 어딜 그렇게 나갔다···. 어? 누구신지?”

“리리 씨잖아. 넌 왜 그렇게 눈치가 없냐.”

“엥?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말을 들은 케이는 오히려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럴만한 게 얼굴은 완전 다르고 옷도 패딩을 제외하고 갈아입은 것 같았다.

* * *

“그러니까 전 빅샷 연습생이었고 거기서 데뷔조 멤버중 한 명이었다는 거죠?”

“네···.”

“어? 몇 개월 전에 빅샷에서 걸그룹 나왔잖아요. 글레어(Glare)라고···.”

“맞아요. 제가 떨어진 그룹이에요. 그리고 연습생도 관뒀구요.”

“그러면 지금 어떻게 생활을 하시는지 궁금하군요.”

“제가 이제 스물 됐거든요. 제 또래들이 이제 3월이면 대학에 입학하죠. 그런데 전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고등학교도 자퇴했기 때문에 지금은 그냥 아르바이트만 뛰고 있습니다.”

“홍대 쏭포유에서?”

“네. 전 기획사에 아시는 분이 연락을 주셔서 가이드 보컬을 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연결이 돼서 일주일에 한 번 공연하고 있거든요.”

“흐음···. 그렇군요. 그런데요. 노래 부를 때 왜 그러고 다니시는지 살짝 이해가 안 가거든요.”

“아···. 그게 사정이 좀 있어서···.”

“뭔데요. 한번 들어나 봅시다.”

나와 케이는 리리의 이야기 차분히 듣기 시작했다. 그녀는 원래 빅샷 소속의 연습생이 아니었다고 했다. 빅샷은 슈퍼노바의 대성공 이후로 부족한 걸그룹을 외부 인수를 통해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그때 인수된 한 회사의 연습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회사를 돌며 연습생을 발굴하던 빅샷 트레이너 한 명이 리리의 뛰어난 노래 실력을 알아보고는 본사에 추천을 했고, 빅샷으로 이적해 새롭게 연습생 생활을 하게 됐다고 한다.

새로운 환경은 낯설고 외로웠으며 경쟁이 엄청 치열했지만 죽을 힘을 다해 새롭게 준비되는 걸그룹 데뷔조 예비 12명에 들어갔다.

그녀는 엄청 기뻤지만, 아직 최종 관문이 남아있었고 마지막 총괄 프로듀서 평가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고 한다.

‘허 참···. 이런 탈아이돌급 인재를 탈락시킨다고?’

“이해가 안 가는군요.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데 탈락시킨다고요? 거긴 무슨 외계인이라도 뽑는답니까?”

“흐···.”

내 아재 드립이 살짝 웃겼는지 리리에게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있었어요. 노래는 정말 누구에게 진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나는 그녀의 자신감에 별반 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정도로 훌륭한 보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그게···.”

신규 걸그룹 최종 오디션인 총괄 프로듀서 평가는 1차 댄스곡 부르기, 2차 자유 노래 평가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리리는 1차 평가에서 의외의 말을 듣고 멘붕에 빠졌다고 한다.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를 때 표정이 어색해요. 뭐랄까? 꾸며진 듯한 가식적인 표정?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사람이 생각하지도 못한 걸 지적받았을 때 흔히들 머리가 멍해지며 혼란스러운 상태가 된다고 하는데 딱 그런 상태였다고 했다.

“정말 그런 말은 정말 평생 처음 들었어요. 춤을 출 때도 연기하라는 소리는 들었어도. 가식적이라니···. 그때부터 머리가 복잡해지고 땀이 나기 시작했어요. 아니. 거의 멘붕 상태에 빠져들었다고 하는 게 맞겠죠.”

슈퍼노바를 만든 총괄 프로듀서의 지적은 그녀를 엄청난 혼란으로 몰고 갔고 급기야 2차 노래 평가를 할 때 갑자기 난조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칠듯한 긴장감으로 목소리가 떨려오기 시작했고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서 노래도 엉망진창이 돼버렸다고 했다.

“흐음···. 1차 평가 때 차라리 춤을 지적당했다면 2차까지는 망치진 않았을 거 같은데 생각지도 못한 지적이라 머리가 복잡했겠군요”

“마, 맞아요. 대표님. 노래 부를 때까지 그 소리가 머리에 맴돌더라구요.”

그녀는 아직도 그게 마음에 남아있는지 울컥한 것 같았다. 원래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소리를 들으면 혼란에 빠지기 마련이다. 물론 자신이 인정하지 않고 그런 견해를 무시하면서 멘탈을 잡을 수도 있지만, 만약 평가하는 사람이 월드 스타를 만든 장본인이라면? 그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이른바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

사람들은 전문가의 의견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 분야의 권위자가 말을 하면 그것을 진리로 착각하는 일이 종종 있다. 물론 일반인보다는 권위자가 당연히 더 많이 알고 있지만 이런 문화 예술계에서는 전문가라는 점이 타당성을 보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문화 예술이란 취향의 영역이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최종에서 떨어지고 말았어요.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이상하다며 한 번 더 기회를 주자고 했는데 뽑힌 멤버들이나 떨어진 멤버들이 그건 형평성에 어긋난다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잘렸나요?”

“최종 데뷔조에 떨어진다고 해서 연습생에서 제명되거나 그러진 않아요. 그냥 연습생들이 그만두는 거죠. 나이가 어린 연습생들은 더 연습해서 차기 그룹에 들어갈 수 있는데 저같이 마지노선에 걸리면 버티는 것도 애매하거든요. 그래서···.”

“그렇군요. 작년 초라고 하니 열아홉 살이었겠군요.”

“네. 지금 데뷔하는 걸그룹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차기를 노리고 3년 이상 연습생으로 머무르는 것은 너무 치명적이니까요. 그래서 원래 최종 데뷔조가 정해지면 우수수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 프로듀서 사람 보는 눈이 참별로네요.”

“훗···.”

“물론···. 남자 아이돌은 빼고 여자 아이돌 한정입니다. 남돌 보는 눈은 인정!”

“그 데뷔조가 글레어 아닌가요? 작년에 데뷔한···.”

“네···.”

옆에 있던 케이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글레어라면 시원하게 망했네요. 아! 망한 건 아니고 그냥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군요. 원래 3년 정도는 인지도를 쌓는 기간이니 섣불리 판단하긴 이르지만···.”

‘아차! 이 녀석도 슈퍼노바를 만든 일등 공신인데···.’

“케이야. 넌 데뷔조 최종 평가 안 했어?”

“난 작곡 위주로만 해서···.”

“아···. 그렇구나. 그런데 그게 이해가 가니? 퍼포먼스를 하면서 짓는 표정이 가식적이라니?”

“원래 테리 형이 뜬금없는 소리를 자주 하긴 해. 나랑은 스타일이 반대야. 나는 있는 사실만 정확하게 지적해서 뼈를 때리는 스타일인데 그 형은 취향이 좀 독특해. 약간 4차원이야.”

음···. 총괄 프로듀서인 테리가 4차원이었어? 잠깐! 그런데 뼈를 때리긴 인마! 그냥 부숴버리는 수준이지. 너 때문에 멘탈 갈린 거 생각하면···. 어휴···.’

한마디를 해주려다가 리리 얼굴을 보고 참았다. 나랑 케이가 테리 총괄 프로듀서를 살짝 씹어주자 표정이 살짝 풀리는 모습이었으니까.

“그렇게 된 거군요.”

“네. 그 후로 쭉 방황하다가 가이드 보컬 일을 처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원형 탈모가 왔었거든요. 피부 트러블도 심했었고···. 그래서 화장도 두껍게 하고 가발을 쓰고 나갔어요.”

“..........”

“물론 누가 알아보는 것도 싫었죠. 나름 큰 회사 연습생이라는 자존심이 있었는데 최종에서 떨어지고 알바나 다니고 있다는 걸 스스로 용납 못 한 거 같아요. 그래서 저를 더욱 숨기고 싶어서 그런 식으로 화장을···.”

“허···.”

“그런데 웃기게도 노래가 너무 잘되는 거예요. 그때까지는 노래할 때 가슴이 두근두근 떨리는 그런 게 있었거든요. 그런 현상이 확 사라지니 살 것 같았어요.”

“딱 보니 정신적인 트라우마네.”

“그런 거 같다.”

“저거 가끔 오래가기도 하는데 리리 씨는 분장하는 거로 극복한 거 같은데? 본인에게는 지금 이 모습이 자연스러운 거죠?”

케이는 리리를 담담하게 쳐다보며 말을 했다.

“아, 아니요. 이건 거의 생얼이라.”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얼굴은 그냥 깨끗하고 깔끔하게 생긴 하얀 도화지 같았다. 그럭저럭 괜찮은 얼굴이었지만 화장에 따라서 변화무쌍해지는 그런 스타일?

“메이크업하는 건 혼자 터득했나요? 되게 능숙한 것 같던데요?”

“네. 라이브 카페에서 일한 후로는 워낙 여기저기 많이 불려 다녀서요. 그리고 완벽하게 메이크업을 안 하면 약간 불안한 것도 있고···.”

그랬구만.

가창력은 좋아지고 메이크업 스킬이 생겼지만, 소속사가 없는 거로 봐서는 아직도 트라우마 극복이 안 되었나 보다.

하여간 큰 기획사는 스케일이 달랐다. 단점이 있다고 이런 인재를 가차 없이 내보내는 냉혹함이란···.

아마도 그녀는 라이브 공연과 가이드 보컬을 하며 최종 평가할 때보다는 가창력이 더 향상되었을 것임이 분명했다. 트라우마만 극복할 수 있다면···.

“화장하는 건 좋아요. 그런데 왜 지금까지 노래 부르러 갈 때 왜 그렇게 화장을 세게 하고 다녀요?”

나는 굳이 그렇게 하는 이유를 못 찾아서 질문하는 것이었다.

“그, 글쎄요?”

“어차피 못 알아보게 하는 목적이면 메이크업을 해도 예쁘게 하면 되잖아요? 리리 씨 얼굴이면 메이크업에 따라 변화가 극심한 스타일 같은데요.”

실로 오랜만에 발동한 나의 심미안이었다. 별것 아닌 능력이었지만 가끔 도움이 되는 능력!

“솔직히 그런 식으로 강하게 화장을 하는 게 아니라 살을 조금 더 빼든지 해서 화장을 예쁘게 하고 다녀도 되잖아요. 그럼, 사람들도 몰라볼 테고···. 내가 보기엔 트라우마가 없어지는 것을 너무 의식해서 화장하는 스타일이 처음 그대로 굳어진 것 같은데···.”

“아.”

그녀는 정말 어이없게도 그것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굳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할 게 아니라 그냥 트라우마랑 공생하면 되죠. 하루종일 그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어차피 아이돌이라면 잠잘 때 빼고 메이크업 상태로 있는 게 다반사인데···.”

“형. 그거 아이디어 좋은데?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마라. 그냥 공생해라. 오호···.”

“물론 극복하면 좋겠지. 넌 가만히 있어 인마. 너도 문제야. 이런 인재가 있었으면 테리 프로듀서를 설득해서 무조건 뽑았어야지.”

나는 말을 하면서 케이를 쳐다보고 윙크를 해줬다. 나랑 보조 좀 맞춰달라는 소리였다.

“그, 그러게. 나도 좀 평가에 참여해서 의견을 냈어야 하는데···.”

다행히 내 신호를 캐치했는지 적절한 대답을 하는 케이였다.

리리가 드라마를 찍을 걸그룹에 적합한 멤버라는 것은 본인이 그간 다른 캐릭터로 활동해서 그런지 연기력이 꽤 준수한 편이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메소드 연기를 연습하고 있는 상황으로 드라마에서도 괜찮은 연기를 보여줄 것 같았다.

“리리 씨···.”

“네, 네.”

내가 무게를 잡고 낮은 목소리로 리리를 부르자 한껏 긴장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음···. 아까운 재능 썩히지 말고 우리 회사랑 함께합시다. 조만간 아이돌 그룹이 데뷔할 건데 그 그룹의 맴버로 참여를 좀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

“지금 엄청난 인재들이 4명이나 모였습니다. 리리 씨만 들어오면 완전체가 됩니다. 리리 씨는 아마도 우리 회사 걸그룹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퍼즐이 될 거예요.”

“마, 마지막 퍼즐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