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34화 (134/263)

카이스트에 가다 (2)

“앞으로 J&J가 성장하는 모습이 기대되는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이 교수는 나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정중하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감사합니다. 지령양의 미래가 곧 저의 미래입니다. 믿고 맡겨주신 만큼 건강하게 잘 케어하겠습니다.”

그 후 그제야 언제 숙소로 들어가는지 트레이닝을 얼마나 받고 데뷔는 언제쯤 할 예정인지에 관한 스케줄 이야기를 나눴다.

“자···. 여기 계약서입니다.”

나는 그렇게 무사히 계약을 완료할 수 있었다.

“잠시만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교수님.”

“어제 우리 애가 자기가 왜 연예계로 나가고 싶은지에 대해 제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더군요.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것과 더불어 앞으로 우리나라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가 엄청나게 성장할 게 확실하고 자기가 그 분야에서 중요한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아이돌도 좋지만, 실제 업계 돌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뭐야? 그런 거였어?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을 보니 두 부녀에게는 이미 계획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왜 이렇게 내 비전에 대해 장황하게 물어봤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허허···. 황당하네!’

사람의 자아실현 방법은 다양한 것 같았다. 이지령처럼 머리가 좋은 사람은 이런 장기 계획을 세우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SG 엔터테인먼트도 오래 활동하고 회사에 기여한 아이돌을 임원으로 채용하는데 뭐···.’

만약 이지령이 그런 쪽으로 능력이 있다면 나도 SG처럼 그렇게 인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휴···. 진짜 힘들다. 계속 이런 식이면 캐스팅하다가 뻗겠는데?’

그래도 발굴한 인재들을 생각해보니 가슴이 뿌듯했다.

이제야 장예원, 정유리, 김담희, 이지령 총 4명의 멤버가 모였다. 1티어 그룹의 정예 멤버만 쏙쏙 데려와 구성해 놓은 듯한 환상적인 조합!

뭐. 물론 실력은 연습을 시켜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 * *

나는 이동화 교수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연구실이 더웠는지 몸에 살짝 땀이 난 상태였다.

“휴···.”

생각해보니 예원이와 이지령을 만나게 해줘야 하는데 정신이 쏙 빠져서 그런지 그만 깜빡해버렸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이지령에게 아래로 잠시 내려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음···. 예원이가 어디 갔지?”

나는 예원이를 찾기 위해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근처에서 한 안경 쓴 남자에게 붙들려 있는 예원이가 보였다. 예원이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살짝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아니! 어떤 놈이 우리 센터한테 수작질이야! 나는 얼른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안 한다니까요.”

“한 번만 어떻게 안 될까요?”

“저 시간 없어요.”

나는 재빨리 옥신각신하는 안경남과 예원이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 남자는 갑자기 내가 끼어들자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만 하세요.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왜 대낮부터 우리 애한테 치근덕거리는 거예요?”

“네? 치, 치근덕거리다뇨?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오해는 무슨 오해입니까? 우리 애가 지금 겁먹었잖아요!! 지금 뭐 하시는 거냐고요?”

“아···. 그···. 저기···.”

내가 강하게 나오자 그는 다소 긴장한 듯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예원이를 쳐다보니 그제야 안심한 듯한 표정이었다.

“예원아. 무슨 일이야? 이 사람이 너한테 뭐라고 했어?”

“그게···. 갑자기 저 보고 다짜고짜 촬영 중인 본인 영상에 나와줄 수 있냐고···.”

“영상에 나와달라고? 잠시만. 저기요. 초면에 고등학생에게 이게 무슨 짓입니까?”

“고, 고등학생이요?”

“딱 봐도 모르겠어요?”

“저, 전혀 모르겠는데···. 전 우리 학교 학생인 줄···.”

“어디서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해요?”

내가 눈을 번뜩이자 그 안경남의 어깨가 움츠러드는 게 느껴졌다.

“대표님!”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그 방향을 쳐다보니 이지령이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안경남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서 뭐 하세요? 왜 이렇게 시끄러워요?”

“이 사람이 예원이한테 치근덕거리길래 혼내주려고···.”

이지령은 무표정하게 그 안경남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선배! 혹시 또 촬영중이야? 설마 영상에 나와달라고 그런 거야?”

“..........”

이지령은 약간 덕후스러운 복장을 한 안경남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는 마치 과자를 훔쳐먹다 걸린 사람처럼 그녀의 눈치를 살살 보고 있었다.

“선배! 자꾸 그러지 좀 마. 왜 자꾸 길거리에서 가는 사람 붙잡고 그러는 거냐고···. 아니면 설명을 차근차근 잘하던가!”

“뭐야. 너 아는 사람이었어?”

이 안경남을 선배라고 하는 거 보니 둘이 안면이 있는 사이 같았다. 차도녀와 덕후남이라니···. 진짜 이상한 조합이었다.

“랩에 있는 선배인데요. 이 사람이 영상 출연 어쩌고 한 거 맞죠? 그냥 외골수적인 기질이 강한 사람이지 이상한 사람은 아니에요. 오해하지 마세요.”

“그래? 저기요. 그럼 설명을 좀 잘해주셔야지. 깜짝 놀랐잖아요.”

“죄송합니다.”

“선배. 자세히 얘기해야지. 왜 앞뒤 잘라먹고 그렇게 맨날 오해를 사고 있어. 나 안 나왔으면 우리 대표님한테 두들겨 맞을 뻔했잖아.”

‘음···. 내가 그 정도였나? 나 그렇게 무식한 사람 아닌데···.’

“대, 대표님?”

“응. 이분이 소속사 대표님이셔.”

“와! 교수님 설득하고 드디어 계약한 거야?”

덕후 안경남의 말에 이지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사이라고 하니 일단 화가 살짝 누그러졌다.

“일단 둘이 아는 사이 같으니 이야기는 나중에 들어보기로 하고 지령아 인사해라. 우리 회사에 첫 번째로 계약한 연습생이야. 이름은···.”

“안녕하세요. 장예원이라고 합니다. 열여덟 살이에요.”

“그래. 난 이지령이라고 해. 반갑다?”

이지령은 장예원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예원이는 그 손을 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반가워요. 언니. 헤헤···.”

“너 키 몇이야? 엄청 크네?”

“저 백칠십이요.”

“나랑 4cm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왜 이렇게 커 보이지?”

“그건 예원이가 비율이 좋아서 그래. 슈퍼모델 저리 가라잖아.”

그것에 대해서는 내가 대신 설명했다.

“그럼 저는 비율이 안 좋다는 말씀?”

이지령이 눈을 흘기며 나를 살짝 째려보고 있었다.

“오우! 그런 건 절대 아니고···. 예원이가 비정상적으로 비율이 좋다는 거지.”

“왜 그렇게 당황하세요. 농담이에요.”

흐미···. 저 무표정 무엇? 얘는 농담을 진담처럼 하네.

“우와. 언니! 카리스마 대박! 넘 멋져요!”

장예원은 그래도 한 살 어리다고 언니에게 살갑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였다.

“자 그럼 지금부터 오해를 풀어볼까요? 모두 저를 따라오세요. 선배도 얼른 따라와요.”

“아, 알았어.”

이지령은 우리를 2층에 있는 한 연구실로 안내했다.

“여기가 VR, AR을 연구하는 곳이에요.”

“언니. 그게 뭔데요?”

장예원은 이지령이 말한 VR, AR을 모르는지 되묻고 있었다.

“VR(Virtual Reality)는 가상현실이고, AR(Augmented Reality)는 증강현실이라고 하는데 VR은 현실과 차단된 상태에서 가상의 공간을 보여주는 기술이고 AR은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가상의 이미지와 정보를 제공하는 기술이지.”

“윽···. 어려워요.”

나도 용어만 들어봤을 뿐 자세한 뜻은 모르고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VR은 일인칭 게임처럼 가상 공간을 체험하는 기술이고 AR은 백팩몬GO처럼 스마트폰을 켜면 현실 배경에 몬스터 같은 걸 보이게 하는 그런 기술을 말하는 거야.”

“아하! 저 그 게임은 해봤어요. 처음엔 열심히 했는데 조금 하니까 질리던데···.”

“그래. 아무튼, 그중에서 이 선배가 연구하는 게 바로 VR이야. 원래는 증강현실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랩인데···. 지금 쓸데없이···.”

“야! 이지령. 쓸데없다니! 내 결과물을 깎아내리지 말아 줄래?”

“그래서 아까 우리 예원이한테 얘기한 게 VR 때문이에요?”

나는 말이 또 길어질 것 같아서 두 사람의 말을 잘랐다.

“네. 이런 거예요. 한번 보세요.”

안경남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나에게 자신의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슬쩍보니 휴대전화 바탕화면이 걸그룹 아이돌이었는데 아주 당당한 모습이었다.

‘원스 팬인가?’

나는 그가 내민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영상에서는 멀리서 한 여자가 뚜벅뚜벅 다가오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돌려보세요.”

“어라?”

그의 말대로 스마트폰을 돌려보니 동영상이 꼭 내 시야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아닌가?

“시야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네?”

“네. 그게 유사 VR 영상이에요.”

“신기하네. 영상을 360도로 찍었나?”

그는 내가 신기해하자 신이 났는지 열심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아! 만난 기념으로 한 가지를 보여드릴게요. 지령아. 내가 만든 장비와 영상이 든 노트북을 가져다줄래?”

이지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구실 한쪽에 있는 박스를 꺼내 책상으로 가져왔다. 안경남이 노트북 전원을 누르니 화면이 켜졌는데 걸그룹 배경화면을 떡하니 쓰고 있었다.

‘잡덕인가? 원스가 아니잖아?’

“이건 뭐죠?”

나는 손으로 장비를 가리키며 그에게 묻고 있었다.

“이건 많이 보셨을 겁니다. 가상현실을 체험하게 해주는 VR이죠. 그런데 이건 제가 커스터마이징을 한 겁니다. 한번 체험해 보세요.”

그는 나에게 장비를 건네줬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 장비를 머리에 뒤집어썼다. 일반적인 VR 장비인가 싶은데 마이크 같은 것도 달려있고 일반적으로 파는 기기와는 약간 달라 보였다.

“장갑도 한 쪽 끼시고요.”

“다 했습니다.”

“오케이! 자. 이제 감상해보세요.”

갑자기 암전된 듯 주위가 캄캄해졌다.

‘응?’

갑자기 화면이 밝아지며 마치 에덴동산 같은 환상적인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졌다.

‘오오!’

거대한 나무가 중앙에 버티고 있으며 형형색색의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환상적인 장면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 시선을 따라 화면이 움직이고 있었다. 상하좌우 하늘까지 전부 시야에 들어왔다.

‘뭐야. 멀리 보이는 게 세계수인가? 판타지에 나오는 숲 같은데?.’

나는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꽃잎을 잡기 위해 손을 움직여봤다. 그러자 꽃잎이 내 손을 스쳐 지나갔다.

‘와 진짜 멋있다. 그래픽 효과 죽이는데?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가상현실이구나.’

갑자기 멀리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흰옷을 입고 있는 소녀였는데 그녀는 점점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다가온 소녀가 누군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와!”

그녀는 바로 이지령이었다.

그녀는 실크 드레스와 찰랑이는 흑발을 휘날리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주위를 날아다니는 꽃잎과 화려한 조명효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이세계에 와 있는 기분이랄까?

화면 오른쪽에는 하트 모양의 버튼이 있었는데 나는 무심결에 손가락을 들어 허공을 터치했다. 화면에서는 내가 하트를 건들었지만, 아직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뭐지? 그냥 개발 중인 건가?’

“저기요! 이건 모델처럼 촬영해서 CG를 입힌 건가요?!”

멋진 영상에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점점 높이고 있었다.

그 순간···.

화면 속의 이지령이 눈빛을 빛내며 갑자기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게 아닌가!

[너 누굴 보고 CG라고 하는 거야? 혼나고 싶어?]

“응? 말도 하네?”

[내가 말하는 게 신기하니?]

화면 속의 캐릭터는 약간은 비웃는듯한 표정이었다. 진짜 이지령이 웃는 모습 같았고, 말과 입이 살짝 다르긴 한데 묘하게 자연스러웠다.

“어라? 설마 인공지능?”

[인공지능? 난 그런 게 아니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생명의 나무인 엘렌의 수호자이자 하프 엘프인 아그네스야. 넌 이세계에서 온 녀석이구나?]

그녀가 나를 보며 가볍게 손짓하자 바람이 불며 나뭇잎과 꽃잎들이 그녀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뭔가 몽환적인 판타지의 한 장면이 리얼하게 연출되기 시작했다.

“으헉···.”

나는 정말 깜짝 놀라 쓰고 있던 장비를 벗고 말았다.

“허···.”

“어때요?”

안경남은 놀란 내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 좋은데요?”

나는 얼떨떨했지만, 불현듯 VR 영상을 활용해서 우리 회사 아이돌을 홍보할 생각이 떠올랐다. 정말 현실처럼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에 덕후들의 지갑을 무자비하게 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옥에서 돌아온 다섯 명의 소녀!

이미 내 상상 속에서 시커먼 포탈에서 갓 나온 NGG의 다섯 명의 소녀가 떠올랐다. 그 다섯 소녀는 각자 다른 복장을 하고 무기를 든 채 신비한 마나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거 영상 플레이 시간이 얼마나 되니?”

“짧아요. 한 5분? 최대 10분을 못 넘길 거에요. 특히 인공지능은 아직 이상한 부문만 작동하고···.”

“이지령! 이상한 부문이라니? 말이 심하다.”

안경 선배는 얼굴을 찌푸리며 안경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이상하지! 두근두근 러브모드만 인공지능이 작동하잖아!”

“그, 그건 아직 개발이 안 끝나서 그래.”

잠깐 두근두근 러브모드? 아까 내가 하트를 눌러서 인공지능이 작동한 건가?

“기술이 아직 완전하지 않은가 보군요.”

“맞아요. 아직 멀었어요.”

“..........”

“괜찮아요. 정말 생생했습니다.”

“카이스트의 제4차산업혁명연구센터에 왔는데 이 정도는 경험하고 가셔야죠.”

안경 선배는 놀라고 있는 내 얼굴을 보고 자신감 넘치게 웃고 있었다.

“저···. 혹시 성함이···.”

“네. 조현우라고 합니다.”

나는 그제야 그의 이름을 물어봤다.

그가 보여준 영상은 정말 놀라웠다. VR을 통해 등장한 이지령의 모습은 생각해보니 천사라기보단 마치 차가운 엘프 마법사와 같은 모습이었다.

가상현실이 이 정도로 생생하게 느껴진다면 이런 콘텐츠를 NGG의 굿즈에 추가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공지능까지 들어가 있다고 하니 나중에는 정말 케이팝의 아이돌이 개인 아바타가 되는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제야 조현우가 예원이에게 영상에 제발 출연해달라고 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걸그룹 덕후로써 연예인 같은 아이를 학교에서 발견했다면 창작 욕구가 뿜뿜 솟아나지 않겠는가?

‘하하···. 재밌네.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내 뇌가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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