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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30화 (130/263)

< 홍대에 간 스카우터 (2)- (일부 수정) >

무려 두 명이나 되는 멤버가 케이와 비슷한 보라색 아우라를 보여주고 있었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 밴드의 이름은 ‘카이시브’였다.

카이시브라···. 카이시브···.

뭐냐. 카이스트 + 프로그레시브의 합성어잖아?

밴드의 기타 겸 보컬리스트의 노래 실력은 뭐···. 그저 그랬다. 곡이 좋은 거지 노래가 훌륭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보라색 아우라가 두 명이라니! 솔직히 노래만 들어봐도 창작에 재능이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한때 록 마니아였으니 주의 깊게 듣고 있었지만, 관객들은 슬슬 지루한지 하품을 하는 사람도 보이고 있었다.

갑자기 변조가 들어가며 곡이 빨라지고 있었다. SF 영화에서나 나오는 퓨쳐리스틱한 사운드였다.

‘오호···. 괴상하게 좋다. 좋아. 리리를 보러 왔다가 예전에 봤던 애들을 만나게 된다니···.’

참 신기했다. 이런 게 사람의 인연인가 싶었다.

나는 밴드의 공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무대 밖으로 나가는 카이시브를 불러세웠다.

“저기요. 잠시만요.”

내 목소리에 그들이 반응했다.

“네? 저희요?”

“네. 혹시···. 카이스트에서 공연하던 밴드 맞죠?”

“어? 나 저분 알아. 그 작가···.”

“야 인마. 가만히 있어 봐.”

귀엽게 생긴 키보드 치는 멤버가 나를 보고 아는 척을 하자 보컬이 조용히 하라며 그를 말리는 형국이었다.

“맞습니다. 저희가 카이스트에서 결성된 그룹 맞아요. 그런데 저희를 어떻게 아시죠?”

“아···. 예전에 카이스트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축제 공연에서 1위 하는 걸 봤습니다.”

“그렇군요.”

“야! 너 저분 모르냐? 저분 테리우스 매니저잖아. 나만의 세계 드라마 작가님.”

키보드 담당의 말에 멤버들이 다들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방송의 영향인지 심심치 않게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키보디스트가 그나마 TV를 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표정이 구겨지는 멤버가 있었으니 바로 보컬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자기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하···. 지금은 매니저가 아닙니다. 회사를 하나 차렸어요.”

나는 새롭게 만든 명함을 카이시브 멤버들에게 돌렸다.

“J&J 엔터테인먼트요?”

“네. 신생입니다. 소속 연예인은 아직 적지만 탄탄한 회사죠.”

“누가 소속돼있죠?”

“음···. 배우 정혜성 씨와 나유정 씨, 그리고 가수 연습생 한 명 총 3명에 아이돌 연습생이 몇 명 있습니다.”

“와! 나유정 씨가 거기로 옮겼어요? 저 팬인데!”

확실히 생긴 것처럼 싹싹한 키보드 담당이었다.

“혹시 성함이···.”

“안녕하세요. 저는 카이스트 2학년 김관중이라고 합니다. 방학 때라 서울로 올라와서 이렇게 놀고 있습니다.”

“아···. 본격적으로 하시는 게 아니고 방학에 경험 삼아 하시는 거군요.”

“관중아. 너 쓸데없는 말 좀 그만해라. 우리가 왜 본격적으로 하는 게 아냐?”

“아니···. 난 그냥 안되면 내려가기로 했잖아···.”

“그 소리 그만 좀 하라고.”

'응? 이게 무슨 소리야? 뭔가 메이져를 노리는 건가?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그렇다면 아마도 나랑은 인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랑 가는 길이 다른 친구들이로군.'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서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어졌다.

“제 연락처는 명함에 있으니 관심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나는 살짝 아쉬웠지만 가벼운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저, 저기요. 작가님···.”

“야! 넌 좀 가만히 있어. 아이돌이라잖아! 무슨 속셈으로 접근하는지도 모르면서···.”

‘응? 속셈? 하···. 얘가 뭔가 오해를 하나 본데···.’

아까 처음부터 나를 경계하고 있던 녀석이었다.

나는 나가다 말고 몸을 돌려 그 말을 한 보컬에게 뚜벅뚜벅 다가갔다. 그는 내가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긴장을 한 듯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왜···. 왜요?”

나는 긴장하고 있는 보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쪽 이름이 뭐예요?”

“저요? 하지훈이라고 합니다만···.”

“지훈 씨···. 여기 홍대에서 계속 있다가 걸리는 병이 뭔지 알아요?”

“??”

“홍대병이라고 아주 지독한 병이 있죠. "

“뭐, 뭐라고요?”

“대중적인 콘텐츠를 무시하고 자신의 취향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병이요. 더러는 힙스터라고도 하죠. 물론 지금 지훈 씨가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지금 놀리는 겁니까?”

“아니요. 놀리긴요. 그냥 하는 말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하도 많이 봐서···. 제발 여러분은 그런 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월감 빼면 시체인 사람들이 됩니다. 전 카이시브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아! 우리 회사에 소속한 작곡가가 있는데요. 케이라고 슈퍼노바 작곡가인데 클래식 쪽에서 이름을 날리던 천재입니다. 그런 분이 케이팝을 작업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그런 크로스 오버가 많아요.”

솔직히 케이가 클래식 영재라는 말을 자기 입으로 하긴 했는데 이름을 날리던 천재인 줄은 솔직히 나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케이 님이 거기 계세요? 저 알아요.”

“프로그레시브 록은 메이저가 되는 길이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트렌드를 만드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면 또 모르죠. 아무튼, 부디 본인들의 시각 속에 갇혀있지 마시고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나는 하지훈의 어깨에 있던 긴 머리카락을 손으로 툭툭 털어주며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는 내 덩치에 겁을 먹었는지 얼굴만 붉으락푸르락하고 있었다.

‘괜히 오버했나? 홍대병 초기 환자를 만나서 폭주했네. 사실 굳이 이럴 필요 없었는데···.’

적대적인 시선에 괜히 안 해도 되는 말을 한 거 같아 약간 후회가 되었다. 사실 창작하는 사람치고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나는 무거워진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뭐 사실 내가 리리를 찾으러 온 거지 밴드를 스카웃하러 온 건 아니니까.

어차피 당장 회사에 작곡가가 더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밖으로 나오니 안에서 땀을 살짝 흘렸는지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휴···. 이제 집에 가야지. 오늘은 허탕만 치고 가네. 아니지 그래도 아까 담희랑 계약했으니까 일보 전진한 거지.”

오늘 있었던 좋았던 일을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  *  *

다음날 사무실에 출근한 나는 넷플릭 이민영 총괄 디렉터의 전화를 받았다.

“응? 여보세요? 디렉터님? 아침부터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대본 3시즌 치 다 읽으신 거예요?”

[으음···. 뭐···. 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습니다. 작가님.]

“혹시 잠 못 자신 거 아니에요? 목소리가 되게 피곤해 보이시는데요?”

[아까 두 시간 정도 잠깐 잤어요. 이제 좀 괜찮습니다.]

“자고로 잠이 보약이라고 했습니다. 잠 안 자고 그러시면 큰일 나요.”

[아니! 작가님. 작가님이 작품을 한꺼번에 던지시니까 그런 거잖아요. 전들 이걸 밤새도록 읽고 싶겠냐고요.]

내 충고에 갑자기 화를 살짝 내는 이민영이었다.

“왜요. 별로 재미없던가요?”

[아니요. 재밌어요···. 무지무지···. 엄청나게요.]

“응? 정말요? 그렇게까지 칭찬을 해주시니 송구스러운데요?”

[제가 봤을 땐 나만의 세계보다는 스토리 면에서 좋다고 할 순 없지만, 영상화만 잘하면 흥행 면에서는 그걸 압도하고 남을 것 같아요.]

“아···. 정말이요?”

[네. 섣부른 추측이지만···.]

나는 이민영의 솔직한 감상평에 만면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런데 디렉터님. 그걸 압도하다니요? 그게 뭐죠?”

[아! 작가님의 전작인 ‘나만의 세계’거나 좀비물의 신기록을 썼던 ‘워킹좀비즈’ 또는 최근 선풍적인 인기였던 ‘조선 킹덤’ 같은 작품들이겠죠.]

내 작품을 포함한 그녀가 언급한 작품들은 메가 히트작인데 그녀는 내 작품이 그 정도의 성공을 할 거라고 조심스러운 추측을 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그 정도만 되도 저는 만족합니다.”

[피이···. 거짓말 잘하시네요. 작가님. 그건 그렇고 오늘 시간 되십니까? 이제는 계약을 진행하시는 게···.]

그녀는 약간 안달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만약 이런 대본으로 다른 곳과 계약하면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피곤하지 않으세요? 거의 날을 세다시피 한 것 같은데···.”

[전혀요. 전 원래 잠을 잘 안 자는 편이라 괜찮습니다.]

허허···. 구라도 잘 치시네. 역시 한국 지부 보스라 그런지 일 추진력 하나는 예술이었다. 일단 나를 직접 찾아온 것 자체부터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회사들과 차원이 달랐다.

“뭐 그럴까요? 오늘 점심이나 하시죠.”

[좋습니다. 작가님. 제가 장소 톡으로 보내드릴게요. 가까운 데서 보시죠.]

나는 잠시 업무를 보다가 나유정이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유정 씨? 합숙 잘 찍고 있어요?”

[준형 씨? 지금 저 무지 바빠요.]

“아니 뭐하시는데···.”

[애들한테 운동이랑 연기를 가르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지금 애들 입소식 시작됐거든요.]

“2박 3일간 고생 좀 하시겠네.”

[고생요? 저 지금 엄청나게 흥분되거든요? 진짜 이런 거 해보고 싶었어요. 킥···.]

하이고···. 못 말린다. 이 서바이벌 마니아 같으니라고···.

“적당히 이미지 관리해나가면서 촬영하세요. 대성이 옆에 있어요? 필요한 거 있으면 대성이 시키세요.”

[알았어요. 나 지금 바쁘니 끊어요. 알았죠. 안녕~]

어이어이···. 재미있어도 너무한 거 아니냐고. 너무 급하게 끊어버리네. 쩝.

나는 약간 아쉬움이 남아서 휴대전화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연락처 정보에 등록한 유정씨의 얼굴이 보였다.

‘괜히 오버하면 안 되는데 걱정되네.’

*  *  *

나는 이민영 총괄 디렉터가 알려준 식당에 먼저 도착해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민영은 10분 정도 늦었는데 머리도 약간 안 말린 듯한 모습으로 헐레벌떡 들어왔다.

“죄, 죄송해요. 작가님. 제가 잠깐 실신을 해서···.”

“하하하. 거봐요. 내 그럴 줄 알고 나중에 만나려고 했는데···.”

“절대 안 됩니다. 오늘 죽었다 깨나 무조건 계약하셔야 합니다.”

단호한 그녀의 얼굴에는 배수의 진을 친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흠···. 계약은 막하나? 조건을 보고 하는 거지.

“일단 식사나 좀 하시죠.”

“그, 그럴까요?”

만난 곳이 일식집이라 초밥과 라멘이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물기 있는 머리가 신경 쓰이는지 자꾸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쓱 훔치더니 젓가락을 들어 초밥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작가님. 1시즌은 벙커에 들일 착한 사람들을 구하는 거고요. 2시즌은 벙커에 밀려드는 좀비 웨이브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막는 거고요. 3시즌은 웨이브가 끝난 후 헤어진 동료들을 다시 찾아 떠나는 내용이더군요.”

“어떤 게 제일 좋았나요?”

“전 2시즌이요. 진짜 대박이에요. 그게 공개되면 난리가 날 거예요.”

후후···. 맞다. 내가 제일 공들인 시즌이 바로 2시즌이다.

일명 벙커 디펜스!

미친 듯이 꾸역꾸역 들이치는 좀비들을 다 갈아버리고 육편을 만들어 버릴 예정이었다. 그야말로 비주얼 충격을 느낄만한 가슴 떨리는 장면이었다.

“3시즌부터는 시리즈가 약간 확장되는 것 같더군요. 아마 제가 모르는 뭔가가 그 후에 나오는 거겠죠.”

“맞습니다.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비밀이죠. 그리고 왜 주인공이 내성이 있는지에 대한 떡밥도 회수될 거고···.”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이민영 총괄 디렉터가 가방을 뒤지더니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여기 사인부터 하세요. 무조건 넷플릭하고 갑시다. 대우는 최고로 해드립니다. 7시즌까지 전부 다 계약합니다.”

계약서를 내민 그녀의 눈빛은 단호했다. 만약 다른 곳과 한다는 소리를 하면 여기서 동귀어진이라도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들고 있는 그녀의 젓가락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휴···.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하세요. 아직 초밥 몇 점 먹지도 않았는데···.”

“지, 지금 초밥이 대순가요? 당장 올해부터 경쟁자들이 밀려올 판인데요?”

“그거야. 넷플릭 사정이고요.”

“그, 그건 그렇지만···.”

그녀는 내 심드렁한 반응에 긴장하고 있었다.

“제가 부탁드린 제작사 목록은···.”

“여기 있습니다.”

그녀는 0.1초도 안 돼서 바로 가방에서 서류철 하나를 꺼내더니 나에게 들이밀었다.

“역시 일 처리는 확실하셔.”

“그럼요. 척하면 척이죠.”

나는 그녀가 건넨 제작사 리스트를 쭉 살펴보고 있었다. 국내 유수의 제작사들이 제일 상단에 올라가 있었다. 면면히 살펴보니 내 작품을 찍어도 무리가 없을 만한 큰 회사들이었다.

“저는 A팀미디어를 추천합니다. 자본도 탄탄하고 경험이 많고 무엇보다 저희와 오래 함께해서 저희가 선호하는 스타일로 영상을 뽑거든요.”

“흐음···.”

나는 리스트를 보고 있었지만, 솔직히 이름만 알지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편이었다. 연예기획사라면 전문가였지만 이런 제작사는 내 아킬레스건이었다.

나는 시선을 밑으로 쭉 내려가며 제작사와 인원 구성을 살피고 있었다.

[사과 스튜디오. 제작사 대표 정광현, 대표 프로듀서 김호진]

응? 뭐지? 내가 아는 슬기로운 덕질생활의 김호진 PD인가? 이 양반은 TVM PD인데? 설마···.

ⓒ 소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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