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대에 간 스카우터 (1)>
“어? 담희 씨?”
[대표님···. 안녕하세요. 담희입니닷!]
전화로 들리는 김담희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밝았다.
“어제 집에 잘 들어갔나요? 아! 혹시 오늘 뮤직넷에서 통보받았어요?”
[네. 저 탈락했어요. 헤헤···.]
탈락한 사람의 목소리라는 생각이 안 들었고 뭔지 모를 생동감이 느껴졌다.
“그, 그렇군요. 어쩔 수 없죠. 다음에 잘하면 됩니다. 아직 나이가 어리잖아요.”
[넵! 명심하겠습니다. 대표님!]
“다행입니다.”
[여기 병원이에요. 엄마랑 같이 와서 검진을 받았어요.]
“아···. 정말이요? 뭐래요?”
[대표님의 말씀이 맞았어요. 제가 왜 그런 변화를 겪었는지 이제 알았어요.]
“그 이유가 뭔데요?”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래요.]
“갑상선?”
나는 황급히 컴퓨터에서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검색해보았다. 이 질환은 한번 발병하면 극심한 피로감과 땀을 많이 흘리고 체중이 감소하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네. 그런데 약물로 치료하는데요. 1~2개월이면 회복한대요. 물론 1년간은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하나 봐요.]
“그래요. 심각한 것은 아니군요. 다행입니다.”
[대표님께서 말씀해주셔서 병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전 이렇게 된 게 제 탓으로만 생각했거든요. 가슴이 떨리고, 땀이 나고, 얼굴이 붓고···.]
“그런데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살이 빠진다고 나와 있는데 그런 건 아니네요?”
[히히···. 원래 그렇긴 한데 많이 먹으면 찌기도 한다고···.]
하긴···. 스트레스를 먹는 거로 풀었다고 했는데 아직 보통 체격인 걸 보면 확실히 그 증상이 맞는 것 같았다. 치료하다 보면 예전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는 언제 끝나는데요?”
[다 끝났어요. 이제 처방받고 나가는 길이에요.]
“잘됐네요. 혹시 시간 있으면 회사에 놀러 올래요?”
[그래도 돼요? 엄마랑 같이 있는데···.]
“모시고 오세요.”
[정말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통화 종료 후 업무를 보고 있으니 담희가 엄마와 함께 회사에 도착했다. 나는 5층으로 내려가 모녀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쪽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대표님.”
김담희는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고 그녀의 모친은 회사를 한번 쓱 훑어보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
담희의 모친은 담희와 판박이였다. 엄마의 미모를 그대로 물려받아서 그런지 그야말로 축복받은 외모였다.
‘확실히 유전자의 힘이 무섭긴 무섭구나.’
“저는 무슨 쌍둥이가 들어오나 싶었습니다.”
“에이. 대표님 그건 좀 너무하셨다. 우리 엄마가 몇 살이신 데요···.”
“미모는 나이랑 상관이 없어요. 어머니를 보니 꼭 예전 커피 광고에만 나오던 어떤 모델분이 떠오르는군요.”
“농담이시겠지만 기분은 좋네요. 대표님.”
“아니에요. 절대 농담이 아닙니다.”
담희의 모친은 내 말이 기분 좋은지 수줍게 웃고 있었다. 나의 아부가 통한 걸까? 모녀는 우리 회사를 구경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담희는 회사 연습실과 녹음실을 특히나 좋아했다.
담희의 모친은 옥상 정원을 방문해보고 여기 가끔 놀러 와도 되냐는 농담을 할 정도였다.
“아직은 추워서 잘 안 나오지만, 날씨 좋아지면 여기서 공연도 하고 바베큐 파티도 하고 그럴 작정입니다.”
“우리 담희가 여기서 편하게 데뷔를 했으면 좋겠어요.”
“문제없습니다. 저희는 다른 회사와 달리 데뷔시킬 인재만 뽑거든요. 경쟁도 덜하죠.”
왜냐하면 스카우터로 잠재력을 확인하고 뽑으니까 사람의 피를 말리는 자체 경쟁이 필요 없는 회사였다.
“우리 아이가 정말 괜찮을까요?”
“진찰받고 치료하면 정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면서요?”
“애가 너무 자신감이 떨어져서···.”
“그건 예전 모습을 되찾으면 자연스럽게 복구될 겁니다. 담희씨가 예전에 얼마나 예뻤는데요. 날고 긴다는 SG 뉴비즈에서도 단연코 눈에 띄는 아이였죠.”
“대표님! 제가 그렇게 인상 깊으셨어요?”
난간에서 밑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환하게 웃는 담희였다.
“담희 씨. 제가 말 편하게 해도 될까요?”
“네. 대표님. 저도 그게 편할 거 같아요.”
“그래. 내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요?”
“혹시 SG 뉴비즈에서 노래 레슨 안 받았니?”
“아···. 저번 오디션에서 너무 못해서 깜짝 놀라신 거죠?”
“아,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아니긴.. 솔직히 좀 놀랐다. 내가 알던 다미가 아니었으니까.
“그때 솔직히 진짜 못하긴 했어요. 그런데 저 그 정도로 못하는 건 아니에요. 증상이 없었을 때는 SG에서 노래로 칭찬도 많이 받고 그랬어요. 그때는 정말 가슴이 미친 듯이 떨리고 땀이 많이 나서···.”
아하! 그날이 특히 상태가 안 좋았군! 다행이네. 노래도 곧 잘하게 될 거고···.
그렇게 담희는 우리 회사와 계약했다. 나는 두 모녀를 보내고 자리에 앉아 수첩을 꺼내 목록을 작성했다.
NGG (New Girl Group)
1. 장예원 (센터?) 18세
- 170cm, 러블리, 큐트한 얼굴의 장신
- 아우라 : 밝은 골드
2. 정유리 (리드보컬, 리드댄서) 19세
- 168cm 큐트, 신비계열의 장신
- 아우라 : 밝은 오렌지
3. 김담희 (센터?, 리드보컬) 18세
- 167cm 보조개가 매력적인 러블리하고 청순한 얼굴
- 아우라 : 밝은 오렌지
4. 이지령 (메인댄서, 리드보컬, ?) 19세
- 166cm 냉미녀, 차도녀 스타일의 카이스트 뇌섹녀
- 아우라 : 탁한 브라운
5. ???
나는 포지션 같은 걸 정하기 위해서 수첩에 새로운 걸그룹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보았다.
“와, 대박이네. 비주얼 수준 뭐야? 4명 모두 어딜 가도 비주얼 센터급 외모인데?”
내가 뮤지컬 영화 후속작으로 NGG가 나오는 드라마를 생각하고 멤버를 설정한 게 다섯 명이었기 때문에 이제 한 명만 더 모으면 됐다.
수첩에 적힌 멤버들을 살펴보니 확실히 드라마를 찍기 위해 전원이 연기가 되는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흐음···. 문제는 밸런스야.”
나는 펜으로 수첩을 톡톡 치면서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NGG는 전원 비주얼이 출중하고 춤과 연기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보컬이 살짝 떨어졌다. 장예원을 제외한 세 명이 모두 꽤 괜찮은 노래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오디션에서 봤던 윤지급의 보컬이 절대적
으로 필요한 상황.
“드라마 말고 음반도 내고 아이돌 활동도 해야 하는데 메인보컬이 없으면 좀 그렇지.”
요즘은 메인보컬이 좀 약하더라도 멤버 전원이 비주얼로 무장하고 나오는 추세였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실력 있는 메인보컬의 유무는 그룹의 완성도를 급격히 상승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그룹에 메인보컬이 있는 편을 선호했다.
“휴···. 도대체 윤지급의 메인보컬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나는 한숨을 쉬다가 이내 수첩을 접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어 나는 케이에게 들었던 홍대 라이브 카페에 도착했다. 아직도 추운 겨울 초저녁이었지만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 흥겨운 분위기였다.
“역시 홍대가 좋구만. 윽···. 생각해보니 이제 나도 30대구나. 제길···.”
입고 있는 옷부터가 약간 직장인다운 옷차림이었다. 아무래도 한 회사의 대표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깔끔한 정장 스타일을 애용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는 곳은 홍대의 라이브 카페인 쏭포유였다.
입구로 들어서니 강아지 한 마리가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1층에서 음료수 한 잔을 시켰다. 맥주를 마시고 싶었지만 차를 몰고 와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수많은 공연 포스터와 엘피판들이 벽면에 꽉 차 있었다.
그야말로 홍대 인디 뮤지션들의 성지와 같은 느낌이랄까?
지하 공연장 앞에 세워져 있는 공연 시간표를 보니 7시부터 리리(RiRi)의 공연이 시작된 것 같았다.
리리는 바로 가이드 보컬의 예명이었다. 나는 음료를 받아들고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아래에 다다르자 소리의 진동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약간은 어두운 관객석 앞으로 작은 무대 위에 검은색 옷을 입은 리리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헉!’
그녀는 단발보다 살짝 짧은 머리에 붉은색 블라우스 위에 검은색 가죽점퍼를 입고 징 박힌 검은색 스키니 청바지에 부츠를 신고 있었다.
‘패션 뭐야?’
조명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창백해 보이는 리리의 얼굴이 드러났다. 허연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눈썹은 밀었는지 희미했고 시커먼 아이라인에 탁한 색의 립스틱을 바른 것 같았다. 저런 메이크업을 하고 있으니 외모가 정확히 어떤지 판단할 수 없었다.
전반적으로 고스룩까지는 아니었지만 뭔가 음울하고 반항아적인 이미지가 보였다.
‘허미···. 패션, 메이크업 한번 요란하네.’
저러고 다녔으니 실물로 가까이 본 케이조차 나이를 파악하기 힘들었으리라.
리리는 잔잔하지만 블루지한 곡을 부르고 있었는데 그녀의 R&B 감성이 느껴지는 보컬에 딱 맞는 곡이었다.
‘노래 하나는 기가 막히네.’
나는 황급히 스카우터를 켜고 그녀의 아우라를 스캔했다. 리리에게서 강렬하기 그지없는 붉은 빛이 강한 오렌지빛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허허···. 역시···. 대박!!’
그녀는 약 25분간 공연을 하더니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무대를 내려갔다.
그녀의 노래에 심취해 있던 관객들에게서 요란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관객들과 같이 손뼉을 치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그녀를 따라 무대 밖으로 나갔다. 공연장 문을 열고 나오니 밝은 조명이 켜진 통로가 나타났고 검은 옷을 입고 있던 리리가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쯧···. 좀 기다려야겠군.”
그런데 리리는 15분이 되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뭐지? 큰일 보나?”
그리고 추가로 5분이 지나자 나의 인내심은 극에 다다르고 있었다.
“혹시 변비?”
20분이 지나고 누군가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응?”
화장실에서 나온 여자는 앳돼 보이는 소녀였다. 긴 머리의 그녀는 철 지난 고딩들의 기본 아이템을 장착하고 천천히 통로를 걷고 있었다.
핑크색 폴라티에 시커먼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치마를 입었는지 검은색 스타킹에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있는 평범한 소녀 같았다.
‘뭐야. 리리가 아니잖아?’
그녀는 묵직한 가방을 메고 나를 스쳐 지나갔다.
“저기요!”
나는 지나가던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녀의 깔끔하게 생긴 외모가 눈에 들어왔다.
“네? 저 부르셨어요?”
“네. 실례지만 아까 화장실에 들어간 리리라고···. 검은색 옷을 입은 짧은 머리 여성분 못 보셨어요?”
“리리? 짧은 머리요?”
“네. 제가 분명히 들어간 걸 봤는데 아직도 안 나오고 있어서요.”
“글쎄요.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그녀의 표정을 보니 정말인 것 같았다.
하아···.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죄송한데요. 저 늦어서 이만 집에 가봐야 하거든요?”
“아 네.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더니 어디서 본 거 같은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을 돌려 출입구를 빠져나갔다.
“아 씨! 뭐야? 내가 잘못 봤나? 저기 어디 나가는 길이라도 있어? 해리포터 승강장이야 뭐야?”
나는 툴툴거리며 10분을 더 기다려보았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젠장! 시간만 날렸잖아?”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입구로 나가려다가 내가 한때 좋아했던 록 사운드가 들려와 다시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무대에는 4인조 록밴드가 곡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곡은 무려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우리나라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장르였다.
우리나라는 록의 불모지였는데 거기다 잠 오는 록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장르로 인디밴드를 하다니···. 하지만 곡을 들어보니 철학적인 가사와 치밀한 곡의 구성이 엿보였다.
“어?”
예전에 본 적 있는 이들이었다. 이지령을 처음으로 봤던 카이스트의 공연에서 1위를 차지했던 교내 록밴드였다.
홍대 물을 좀 먹었는지 패션도 좋아지고 범생이 끼가 많이 빠진 느낌이었다. 멤버 체인지도 있는 것 같고···.
그 당시 전자기기를 활용해서 희한하고 새로운 사운드를 선보이며 내 귀를 사로잡았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음악 활동을 하고 있었다니···. 아무래도 취미로 하는 수준은 넘어선 것 같았다.
기타리스트 겸 보컬은 머리를 길러 반쯤 얼굴을 가린 채 눈을 감고 장중한 곡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댄디하게 생긴 청년이 각종 전자기기가 달린 키보드를 연주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뭐에 홀린 듯 스카우터를 켰다.
‘오오!!’
그룹사운드 4명 중 보컬과 키보드 연주자에게서 케이와 같은 보라색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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