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들의 비밀 (1)>
“저기요. 이 작가님. 이제 녹화 끝내셔야죠. 자리에 좀 앉으세요.”
나는 MC의 말에 한쪽 손을 들어 보였다.
“알았어요. 잠시만요.”
그리고 다시 몸을 돌려 무대 위의 김담희에게 집에 가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을 건넸다. 그녀는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나유정은 내가 또 무슨 짓을 하는지 호기심에 찬 눈빛을 하고 있었고 반면에 케이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MC 박무성이 기다렸다는 듯 클로징 멘트를 시작했다.
“자···. 이렇게 예선 통과자 100명의 심사가 모두 끝이···.”
하지만 내 머릿속은 김담희에 관한 생각이 가득 차 그 어떤 말도 잘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만약 김담희가 내가 케이블 방송국에서 봤던 그 다미라면 분명 그녀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
신체 능력을 뜻하는 아우라가 떨리고 있는 것은 분명 몸에 뭔가 안 좋은 문제가 있다는 뜻인데···. 혹시 어디가 아픈 건가?
“.... 이상 나의 뮤지컬 스타, 나뮤스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와아아···. 짝짝짝···.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오늘의 녹화가 마무리됐다.
“준형 씨. 아직도 걔 생각해요? SG 전 연습생? 도대체 뭘 본 거예요?”
내가 방송이 끝난 후에도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자 유정 씨가 곁으로 다가와 나를 불렀다.
“아니···. 뭘 본 게 아니라 예전에 어디서 본 적 있던 거 같아서요.”
“본 적이 있으면 있는 거지 갑자기 무대 쪽으로 왜 걸어 나갔어요?”
“좀 긴가민가해서 정확하게 확인 좀 해보려고요.”
“흠···. 또 무슨 일을 꾸미시는 거 같은데···.”
그녀는 팔짱을 끼며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유정 씨를 보고 있으니 예전 리틀 유정이라고 불렸던 그 화려하고 귀여웠던 소녀 다미가 떠올랐다. 둘은 외모에서 미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이제 가시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나가던 스태프에게 10조의 김담희를 우리 대기실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 * *
“형. 저는 너무 피곤해서 이만 들어갈게요.”
“그래라. 나도 유정 씨랑 잠깐 있다가 들어갈 거야.”
“무슨 일을 꾸미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나도 알려줘요.”
“알았어. 인마.”
목이 휑하니 드러난 축 처진 옷을 입고 있는 케이는 피곤한 얼굴을 한 채 대기실 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 나갔다.
‘저 녀석 평소에 밥도 많이 먹는데 왜 저렇게 마른 거야?’
나와 같이 있으면 항상 체격이 대비되는 케이였다.
잠시 후 스태프 한 명이 김담희를 데리고 왔다. 대기실로 들어온 그녀는 쭈뼛거리고 있다가 소파에 앉아 있는 나유정을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어서 오세요. 뭘 그렇게 놀라세요?”
“유, 유정 님이 제 우상··· 아니 팬이라 너무 떨려서요.”
팬이라는 소리를 듣고 유정 씨의 얼굴이 급격히 환해졌다.
“어머? 재 팬이시라고요?”
“아, 안녕하세요. 김담희라고 합니다. 너무너무 좋아해요.”
나유정은 김담희에게 걸어가더니 어깨동무를 하고 소파로 그녀를 안내했다.
역시 아부의 효과는 달콤했다. 왜 충신들은 귀양 가고 간신들은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겠는가?
이미 나유정은 김담희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늦게까지 기다리느라 긴장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괜, 괜찮습니다. 이런 경험은 꽤 많이 해봐서요.”
나는 담희의 얼굴과 아우라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식은땀을 약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 땀이 차는지 자꾸 옷에 손을 닦고 있었다.
“혹시 예전 SG 뉴비즈로 활동했던 다미 씨 아니에요?”
“네? 네. 맞아···요.”
그녀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주눅이 들어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그 당시 무대에서 봤을 때는 이렇지 않았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돼버린 걸까?
“역시 제 눈이 맞았군요. 예전 테리우스 매니저를 할 때 다미 씨를 본 적이 있었거든요. 아까는 외모가 성숙해져서 그런지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지만, 확실히 그 예전 그 느낌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 제 얼굴이 좀···. 살도 약간 찌고요.”
“뭐. 지금도 괜찮은데요. 귀엽고···.”
김담희는 내 칭찬을 듣자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그리고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그녀는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그런 말을 하도 오랜만에 들어서요. 다들 왜 역변했냐. 뭘 어떻게 했길래 그렇게 변했냐 하면서 놀리고 욕하거든요. 그거 때문에 자존심도 상하고···.”
“담희 씨 지금, 그 자체로도 너무 예뻐요.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내가 그 이야기를 해주자 옆에 있던 나유정이 안타까운지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있었다.
“흑···.”
설움에 북받친 것일까? 아니면 오늘 있었던 실수를 떠올렸던 것일까?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음을 터트렸다.
어휴···. 민감한 청소년 시기인데 외모 때문에 놀림을 당하다니···. 그런데 지금, 이 외모가 놀림을 받을 외모는 아닌데···. 어릴 적 워낙 예뻐서 기준이 너무 높다는 게 문제구만.
“괜찮아요. 그런 건 정말 별것 아니에요.”
나유정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며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었다.
“저도 이전에 심한 대인기피증이 있었어요. 그래서 재작년까지 3년 동안 일을 쉬었죠.”
“아···.”
그녀는 뭔가 아는 눈치인지 입을 꼭 다물었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그녀 앞에서 이야기하지 않는 그 사건.
그녀는 그 사건 이후로 돌연 활동을 중단하고 잠적을 해버렸다.
바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나유정 부모의 불륜 사망 스캔들이었다. 치정으로 얼룩진 유명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저도 그런 대중들의 시선에 심한 염증을 느낀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엔 내가 하고 싶은 걸 찾게 되더군요. 담희 씨도 남들이 뭐라 해도 포기하지 말고 지금처럼 꾸준히 도전하세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는 무슨···. 그냥 언니라고 해요.”
“어, 언니···.”
이제 감동은 이제 그만···. 담희가 왜 이런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소속이 없나요? 어쩌다 SG를 나온 거예요? 조금만 기다리면 신규 걸그룹이 나올 타이밍인데···.”
“벌써 다 뽑았어요.”
“응?”
“이미 결정됐다구요.”
“그럼 신규 걸그룹에 합류 못 한 거예요? 왜요?”
나는 담희 같은 재능을 가진 인재가 왜 거기에 포함 안 됐는지 궁금했다. 지금은 이렇지만, 한때 SG 센터 계보를 잇는 연습생으로 평가받은 인재였는데 말이다.
“일단 차기 걸그룹은 걸크러쉬 컨셉이라 이미지가 맞지 않다는 게 첫 번째 이유고요”
“그리고?”
“그 당시 제가 자기 관리에 실패하면서 외모 관리를 잘하지 못할 때라 지적 사항이 많았어요.”
“작년이면 17살인데 여자 17살이면 성장이 멈춰서 그렇게 심하게 변하기가 쉽지 않은데···. 혹시 배달의 만족으로 야식을 많이 먹거나···. 아···. 이건 그냥 예를 든 거예요.”
“무, 물론 평소보다 많이 먹긴 했는데···. 저도 모르겠어요. 갑자기 작년부터 월말 평가받으면 가슴이 두근대고 식은땀도 엄청나구요. 그래서 무대도 망치고 그게 스트레스로 이어져 폭식으로 풀기도 하고···.”
“음···.”
그랬구만. 이런 악순환이 그녀를 이렇게 만든 거였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게 갑자기 가슴이 두근대고 식은땀이 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우라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이 현상!
“담희 씨. 오해하지 말고 들어보세요.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갑자기 생긴 그런 현상을 그냥 심리적인 탓을 하며 넘어가면 나중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몸에 뭔가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는 소리입니다.”
내가 그 말을 하자 김담희뿐만 아니라 나유정도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나를 쳐다보는 거야. 나는 그냥 가능성만 알려주는 거라고!
* * *
결국, 김담희는 내일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기로 하고 시간이 되면 회사에 들러서 결과도 이야기도 해주고 구경도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굉장한 연습생이 3명이나 있다는 이야기도 슬쩍 흘렸다.
곧 숙소로 들어오게 될 테니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우리는 차를 타러 지하주차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유정 씨. 이틀 동안 고생하셨어요.”
“준형 씨도요. 그런데 담희도 연습생으로 계약하시려고요?”
“네. 봐서요. 예전에 방송국에서 봤을 때 정말 빛이 반짝반짝 났던 아이예요.”
“진짜 몸이 안 좋은 걸까요? 걱정되네요.”
“글쎄요. 갑자기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 건 의심을 해볼 만한 사항 아닌가요? 그러다 원인을 찾으면 좋은 거죠.”
“흐음···. 별일 아니면 좋겠네요.”
“아까 보니 노래에 대한 재능도 있는 것 같던데···.”
“노래요? 노래가 뛰어나다는 생각은 안 들었는데···. 비주얼 센터감이었다면서요?”
“모르죠. 뭐. 회사에서 센터감으로 낙점하고 노래에 관해서는 능력 개발을 안 시켰을 수도 있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뭐에요. 준형 씨는 항상 그런 식이라니까? 진짜 뭐라도 보이나 봐.”
“나와라. 상태창! 띠띠띠···. 망막에 스탯이 표시됩니다. 나유정···. 연기력 90!”
“뭐래? 갑자기 웬 상태창?? 그리고 왜 제 연기력이 그거밖에 안 돼요? 100은 몰라도 99는 줘야죠.”
“띠띠띠···. 상기 시스템은 인간계의 최고점이 90점입니다. 그 이상의 점수는 인간이 아니무니다.”
“피···. 하여간 임기응변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럼 외모는요? 외모는 몇 점이에요?”
“띠띠띠···. 90점···. 입니다.”
“그럼 성격은요?”
“띠리리릭···. 배터리가 다 되었습니다. 시스템을 종료합니다.”
“흥! 무슨 상태창이 이래? 옛날 고물 TV처럼 주먹으로 두들겨야 하나 봐요.”
“띠리링···. 재부팅 완료! 성격 90점! 모든 게 완벽 그 자체입니다.”
“킥킥···. 그 시스템 참 믿을 만한 하군요. 인정합니다.”
나는 잠시 뒤를 돌아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인생 힘드네.’
“얼른 타세요. 집에 가야죠.”
* * *
나는 그녀를 태우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차에 타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 없었다. 그저 창밖만 바라볼 뿐···.
내 차가 그녀의 아파트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그녀의 기분에 따라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선곡한 상태였다. 차 안에는 맑은 피아노 연주곡이 흐르고 있었다.
“이제 도착했네요. 유정 씨 그런데 아까부터 무슨 생각 해요?”
“그냥요. 이런저런 옛날 생각요.”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지나간 일은 생각해봐야 도움 되는 거 없습니다.”
나는 그녀가 예전 그 안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지 않았으면 했다.
“이제는 괜찮아요. 너무 조심 안 하셔도 돼요.”
솔직히 믿기 힘들었다. 그 당시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 당사자는 오죽했을까 싶었다.
내가 임시 매니저로 들어갔을 때는 그녀는 3년의 공백을 깨고 작품을 하나 찍었을 때였고 그 당시 그녀의 표정은 정말 무표정 자체였다. 너무 무표정해서 차가워 보이는 인상 말이다. 매니저들도 그녀를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녀를 그 당시와 비교해보면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였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네. 정말이에요.”
“흐음···.”
나는 그녀가 하는 말이 의심스러웠지만 입을 꼭 다물고 말았다. 괜찮다는데 굳이 내가 언급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준형 씨.”
“네.”
“솔직히 말해도 돼요?”
“그럼요. 전 영원히 유정 씨 편입니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처음엔 엄마가 없어져서 너무 좋았어요.”
“..........”
“사람들은 제가 매니저 아저씨와 엄마의 불륜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단지 아빠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지 몰랐을 뿐···. 그런 일을 당했는데 장례식장에서 눈물이 안 나는 거예
요. 눈물은커녕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홀가분해진 느낌이었어요.”
나는 그녀의 뜻밖의 고백에 살짝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랬다. 예전에 그녀가 매니저와 거리를 두며 아무 말을 하지 않았던 게 바로 저런 이유였으니까.
“저 나쁜 년이죠?”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너무 엄격하게 유정 씨를 통제했다는 것도 알고요. 그리고 음···.”
나는 차마 나머지 말을 할 수 없었다.
“절 돈벌이 수단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으셨죠.”
“맞아요. 그걸 알기 때문에 유정 씨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이해가 갑니다. 사실 가족이 모두 사이가 좋고 우애가 깊은 건 아니니까요. 주변에 원수가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준형 씨. 그렇게 위로 안 해주셔도 돼요.”
“위로 아닌데···.”
“그런데 이상한 게 요즘은 가끔 엄마 얼굴이 생각나요.”
“아무래도 그렇죠. 애증의 관계 같은···.”
“부러웠어요. 준형 씨 가족요. 형제가 있다는 것도 그렇고···.”
“그냥 친부모, 친형제처럼 생각해도 됩니다.”
나는 상체를 돌려 그녀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유정 씨를 향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우리 집에 자주 오시면 장 건강에 좋은 해초 무침도 듬뿍 드실 수 있어요.”
“치···.”
나유정은 하얀 이를 보이며 피식 웃고 있었다.
그녀는 내 말을 어떤 뜻으로 받아들였을까?
* * *
밤잠을 설치고 다음 날 사무실에 출근하니 아침 일찍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십니까? 마블링 스튜디오의 캐스팅 디렉터 존 김입니다. 혹시 J&J의 이준형 대표님 맞으신지요?”
‘뭐지? 아침부터? 어제 전화를 했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 급해? 기다리면 어련히 연락을 줄 텐데···.’
“네. 제가 이준형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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