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26화 (126/263)

< 나 안 할래요 (2)>

“정말 안 할거에요? 할리우드인데요?”

“별로 안 내켜요.”

나는 통로를 걸어가며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출연료 엄청 셀 텐데···.”

“회사 빌딩이 얼마였더라···.”

아···. 그랬지. 갓물주님께 내가 무슨 실례의 말을 한 거지?

생각해보니 유정 씨에게 돈은 이제 뒷전인 거다. 자기 맘에 드는 작품을 하거나 덕질 활동을 하겠다는 소리였다. 예를 들면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 멘토나 남자 아이돌 제작 같은 거 말이다.

요즘은 남자 연습생 공고를 내놓고 어떤 인재가 들어올 건지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음···. 그게 되겠어? 나야 사기적인 스카우터 능력이 있으니 숨겨진 인재를 찾는 거지. 우리가 무슨 3대 기획사도 아니고···. 얼마나 좋은 연습생이 오겠냐고···. 끙···.’

“뭐 일단 알았어요. 그 문제는 차후에 논의하도록 해요. 일단 오늘은 오디션부터 끝내야죠.”

장예원을 비롯한 회사의 걸그룹 연습생들도 숙소에 들여야 하고 이것저것 할 일이 태산이었다.

*  *  *

“자 4조 입장하세요.”

제작진이 사인을 주자 무대 위로 7명이 차례로 걸어 나오고 있었고 거기에 우리 회사의 1호 연습생의 모습도 보였다.

짝짝짝···.

4조 7명 중 4번째로 입장하고 있는 그녀에게 자동으로 눈이 갔다. 170cm에 가까운 신장에 다른 참가자들을 압살하는 실로 우월한 비율!

솔직히 말해서 7명 중 중앙에 서 있는 윤하영밖에 보이지 않았다.

‘와···.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비율 학살자구나.’

나유정이 화려한 얼굴로 주변 사람들을 맥반석 오징어처럼 만들어 버린다면, 윤하영은 압도적인 몸매와 비율로 주변 사람을 드워프로 만들었다.

같은 키라도 두상과 몸의 비율 그리고 팔, 다리의 길이에 따라서 엄청나게 크게 보이기도 작게 보이기도 하는데 젖살이 빠진 윤하영은 그야말로 이세계의 엘프와 같았다.

연예인 전형으로 들어왔어도 학살자 소리를 들었을 텐데 일반인들 한가운데에 서 있다니···.

3부리그에서 노는 프리미어리그 선수요. 톰슨가젤 무리 한가운데의 흉포한 암사자였다.

심지어 같이 들어온 참가자조차 그녀를 계속 힐끔거리고 있었다.

‘진짜 열심히 운동했지.’

그녀는 한 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혹독한 운동과 식단 관리로 최강 비율로 거듭났다. 무려 7kg을 감량하고 근력 운동을 통해 잘 다져진 몸매를 만들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그녀는 등까지 흘러내린 긴 머리에 타이트한 흰색 남방을 걸치고 물이 빠진 스키니진을 입고 있었다. 사슬이 달린 검은색 가죽 벨트와 화이트 스트랩 사과워치로 포인트를 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한 분홍색 운동화로 마무리했다.

‘모델들은 면티 한 장에 청바지만 입어도 멋진데 딱 그런 모습이야. 비율도 서구적이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메인 카메라가 그녀의 얼굴을 떡하니 클로즈업하고 있었다.

‘낭중지추로다.’

살이 쪽 빠진 윤하영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찼다.

웅성웅성···.

누가 봐도 탈 아이돌급 인재가 일반인 그룹에 섞여 들어오자 심사위원들의 동요가 느껴졌다.

“자 4조 오디션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번과 2번 참가자도 일반인치고는 꽤 준수한 실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사람들의 이목이 4번 참가자에게 가 있다는 게 문제였다.

3번 참가자는 중압감 때문인지 노래와 춤에서 연달아 실수하며 눈물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인생 처음 방송이라 긴장을 했는데 하필이면 자신의 옆에 무시무시한 학살자가 떡하니 나타나다니···.

“4번 참가자. 윤하영 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윤하영이 박무성의 말에 마이크를 들고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그러자 그녀의 뒤로 간단한 약력이 뜨면서 그녀가 별다방에서 일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이름 : 윤하영

나이 : 21세

별명 : 별다방 얼짱 소녀

특기 : 글쓰기

기타 : JB Ent. 연습생으로 3년 생활, 웹소설 작가

“영상에 모자를 쓰고 초록색 에이프런을 입고 일을 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군요. 매장에서 남자 고객님들에게 시달림 좀 받으셨겠어요.”

“네···. 뭐···. 가끔···.”

그녀가 미소를 짓자 주위가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피부관리에 공을 들여 푸석푸석했던 피부가 맑게 되살아났다.

“보니까 아이돌 연습생이었네요? 그것도 걸그룹 명가에서 말이죠?”

“네···. 3년 정도 연습을 했는데 아쉽게도 잘 안됐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MC 박무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게 아닌가?

“아니! JB 미쳤습니까?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왜 이런 인재를···. 그냥 걸그룹 센터에 넣어놔도 될 거 같은데 말이죠. 가끔 보면 JB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요. 지금 내로라하는 그룹의 멤버들 중 상당수가 JB 연습생 출신인 거 다들 아시잖아요?”

“저기요. 무성 씨. 갑자기 왜 그렇게 흥분하고 그러세요?”

옆에서 보다 못한 나유정이 박무성을 말리고 있었다.

“아니···.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요. 안목이 이렇게 없을까?”

“내부 사정이 있겠죠. 그렇다고 JB가 언제 실패하는 것 보셨어요?”

“그, 그건 아니지만···. 어쨌건 윤하영 씨에게 계속 질문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를 괜히 오래 끌고 싶어지는 참가자는 또 오랜만이네요.”

“감사합니다.”

“특기를 보니 글쓰기라고 돼 있네요? 웹소설 작가라구요?”

“네. 요즘은 쉽게 자신의 소설을 플랫폼에 올려서 연재할 수 있습니다. 자랑하긴 작은 액수지만 소소하게 수익도 내고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노래 한 번 들어볼까요?”

“네!”

윤하영은 잔잔한 피아노 선율에 맞춰 제일 자신 있는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널 품기 전 알지 못했다···.”

“오오!!”

첫 마디가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몇 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저승사자’의 OST의 주제곡이었다. 상당한 가창력을 요구하는 곡인데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잘 소화하고 있었다.

‘크···. 잘한다. 잘해.’

“모두 잊고 살아가라···.”

윤하영은 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워서 그런지 애절한 감정을 가득 담아 연기하듯 노래하고 있었다. 그녀의 보이스는 R&B 스타일로 성량이 크고 소리가 매우 풍부했다.

‘그래도 최고 기획사에서 메인보컬을 지망하던 인재였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암···.’

최근 노래 연습은 별로 하지 않았지만, 최상의 관리를 통해 몸이 탄탄하게 준비가 되니 가창력이 오히려 예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한다.

방출당할 당시 그녀의 재능은 미쳐 다 개화가 되지 않은 듯했다. 포텐을 다 터트렸더라면 분명 데뷔 조에 포함됐을 텐데···.

‘이렇게 강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드물지. 그녀는 경쟁보다는 세심한 관리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스타일이야.’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 정도의 인재가 방출되는 JB의 인재풀은 얼마나 크고 탄탄한 것인지···.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나는 거의 환골탈태 수준으로 외모가 바뀐 그녀를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후후···. 잘했다.”

드디어 윤하영의 노래가 끝났다. 사람들은 그녀의 노래에 취해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역시나 케이가 먼저 마이크를 들었다.

“잘 들었습니다. 정말 아마추어가 아니고 기성 가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 데뷔를 못 한 건지 이해가 안 가네요. 제가 주목하는 건 성량입니다. 노래가 음을 뚫고 나오고 있어요. 그 풍부한 소리가 사람들의 귀에 정확히 전달되는 거죠. 아무튼, 잘

들었습니다.”

극찬이었다. 케이는 오로지 실력만 보고 평가하기 때문에 그의 평은 꽤 믿을 만했다.

차례로 나와 나유정의 칭찬이 이어졌다.

나유정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1호 연습생의 실력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윤하영과 다솜을 솔로로 데뷔시킬지 아니면 듀엣으로 데뷔시킬지 고민 중이었다. 둘은 비슷한 키에 약간은 상반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붙여놔도 개성이 통통 튈 것 같았다.

‘그리고 노래도 1티어 보컬들이지···. 암~’

4조는 인재들이 괜찮은 것 같았다. 1, 2번 그리고 4번인 윤하영.

그 뒤로 5, 6, 7조의 오디션이 쭉 이어졌다. 오후 오디션은 윤하영의 아우라를 뛰어넘는 인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조에 한두 명씩은 꼭 괜찮은 지원자가 포함돼 있었다.

아무래도 그런 지원자들은 대부분 소속사가 있는 신인이거나 기존에 연예계에 몸을 담았다가 잘 안 풀린 케이스가 많은 것 같았다. 화면에 나오는 간단한 약력을 보니 대부분 그런 참가자들이었다.

저녁을 먹고 마지막 8, 9, 10조의 오디션이 진행되었는데 오후에 있었던 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괜찮은 아우라를 지닌 성악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참가자에게 높은 점수를 주기도 했고 노래와 연기에 자질이 보이는 개인 방송 BJ가 자신의 장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다 마지막 10조의 오디션에 나온 한 참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서원예고 2학년 김담희라고 합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강력한 주황색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재능으로만 본다면 내 신규 걸그룹에 합류시킬만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인재였다.

‘어라? 왜 어디서 본 것 같지?’

스크린에 그녀의 약력이 나오고 있었다.

이름 : 김담희

나이 : 18세

별명 : 빵떡

특기 : 연기

기타 : SG 연습생 7년 경력

키는 160대 중후반에 SG 7년 연습생 경력치고는 관리가 안 된 몸이 살짝 거슬렸다. 얼굴도 살이 많이 올랐는지 라인이 무너진 모습이었다.

‘이상하네? 몸은 보통 체형인데 얼굴이···.’

뭔가 이상했다.

“와! SG 연습생 7년이요? 대단하네요. 그럼 지금은···.”

“지금은 소속사를 관두고 학교 다니면서 연기자가 되려고 준비 중입니다.”

“좋습니다. 뭐부터 보여주실 작정이신가요?”

“노, 노래부터 하겠습니다.”

그녀는 무대가 긴장되는지 목소리를 약간 떨고 있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거기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으나 중요한 부분에서 실수를 연거푸 하더니 자멸하고 말았다.

그 후 노래가 망해서 그런지 연기도 인상적이지 못했다. 최고의 기획사 7년 연습생치고는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특징이 없어서 방송에 내보내지도 못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자신감이 상당히 하락해있어서 가진 능력에 비해 실력을 못 보여준 것 같았고 앞선 노래와 연기를 망치는 바람에 춤을 잘 추더라도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 것 같았다.

‘이래서 7년 동안 연습생 생활만 한 건가···.’

10조의 오디션도 거의 끝이 나고 무대 위의 참가자들이 나가려고 하는 참이었다. 내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김담희는 자신의 실수에 풀이 죽었는지 어깨가 축 처져있었다.

나는 계속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근처로 다가갔다.

“어? 이 작가님···. 녹화 아직 안 끝났는데···.”

나는 박무성의 말을 무시하고 김담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자 멀리서는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김담희의 아우라가 몸 주변에서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아우라는 밝은 주황색. 이런 경우 신체적 능력을 나타내는 흰색 아우라가 포함된 것으로 봐야 하는데 멀리서는 그 흔들리는 흰색 아우라가 주황색 아우라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저···. 담희 씨?”

“네?”

내가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나가다 말고 나를 돌아보았다.

‘어? 담희? 담희라고?’

나는 테리우스 매니저 시절 모 케이블 방송사에 보았던 한 소녀가 생각났다. SG 엔터테인먼트의 유망주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헉! 이제 보니 다미잖아?’

그녀는 SG 엔터테인먼트의 차기 걸그룹의 센터로 불렸던  다미였다. 그 당시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뇌리에 깊숙이 박혀있던 아이였다.

‘아니 그랬던 다미가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여기에 나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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