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23화 (123/263)

< 나의 뮤지컬 스타 (3)>

뭔가를 떠올려 보던 이선정이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상대 남자 배우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 나쁜 새끼야. 어떻게 네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연기를 배워 본 적 없다던 그녀는 아까의 어색한 즉흥연기와는 180도 다르게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역시···. 몰입했네.’

나름 걸그룹 전문가 아니겠는가. 그녀는 아이돌이 되기 전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다고 했다. 가수가 되기 위해 험난한 다이어트와 꾸준한 관리로 결국 아이돌이 된 그녀였기 때문에 배역에 빙의한다면 멋지게 연기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좋아. 좋아.’

심사위원들과 나유정도 그녀의 달라진 모습에 호기심을 갖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기 초보인 이선정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억울해 미치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설마 아닐 거야’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미안하다. 그래도 너 내가 고백했을 때 너도 엄청 기분 좋지 않았어?”

역시 연기 강사다운 연기력이었다.

“뭐가 좋아? 지금 그게 할 말이야? 난 네가 사귀어 주면 감사해야 해?”

“글쎄다. 그건 네가 더 잘 알 거 아냐?”

남자 배우의 살짝 비웃는 표정이 압권이었다. 그야말로 패버리고 싶은 얄미운 연기였다.

‘저 연기 강사도 괜찮네? 작품에 등장하는 인성 가출한 매니저 역을 맡기면 괜찮을 것 같은데?’

주인공인 센터 심채원을 멤버들과 이간질해 대형 기획사로 이적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매니저 말이다.

‘일단 더 지켜보자.’

“제발···. 이러지 마. 갑자기 왜 그래. 유정이는 너 안 좋아해. 그, 그냥 질투 나니까 너한테 관심 있는 척하는 거야.”

갑자기 이러면 안 된다며 변심한 그를 말리는 이선정이었다.

“미안한데 그것까지 노린 거야. 몰랐어? 어차피 유정이도 조금 사귀다 말 건데 뭐···.”

“이익···.”

대사를 쓴 게 살짝 찔려서 옆을 힐끗 쳐다보니 나유정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깔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크흠···.’

“그, 그럼 나는 두 번째라도 괜찮아. 그냥 지금처럼···.”

“솔직히 내키지 않아. 네가 유정이랑 친해서 잠깐 만나준 거지. 그냥 다른 사람 만나라. 나 귀찮게 하지 말고···.”

“흑···. 두고 봐. 부숴버릴 거야.”

이선정은 정말 배역에 빙의라도 한 듯 부들거리며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솔직히 마지막 대사는 살짝 유치해서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천외딸을 쓰기 전 로맨스 소설을 습작 삼아 써본 그다지 공을 들이지 않은 글이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나유정이 ‘설마 진짜 저런 대사를 썼다고?’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네! 잘 봤습니다. 그만하면 됐어요.”

와아아!

짝짝짝···.

제작진과 심사위원들에게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니! 선정 씨?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연기 안 해본 거 맞습니까? 거짓말이죠?”

“저, 정말 해본 적이 없어요. 여기 지원하는 것도 멤버들이랑 내기를 해서 벌칙으로 지원한 건데 여기까지 올라올 줄 꿈에도 몰랐어요.”

후후···. 원래 인생은 의외성이 있지. 재미로 한 일에 엄청난 결과가 나타나기도 하니까···.

“네? 내기 벌칙요? 하하하···. 이거 당황스럽군요.”

“그러게요. 저도 지금 제가 뭘 했는지 모르겠어요.”

모르긴 뭘···. 주인공 그룹인 러브원을 괴롭힐 악녀가 탄생한 거지.

나야 그냥 거기에 기름만 살짝 부어준 거다. 이렇게 재능이 있는 사람은 터질 기회만 부여하면 된다. 그러면 알아서 재능이 발아한다.

“선정 씨. 아까 그 느낌을 잊지 마세요. 그렇게 배역에 몰입하는 게 중요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작가님.”

그녀는 엄청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강해 보이는 외모 때문에 노래 말고는 그룹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자신에게 새로운 기대감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작가님.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분명 아까 즉흥연기를 할 때는 연기가 좋다고 말할 순 없었거든요?”

“그건 순화한 표현이고요. 솔직히 엉망이었죠.”

“그러니까요. 무슨 마법을 부리신 거예요?”

“별 것 없습니다. 그 배역에 몰입시킨 것뿐입니다.”

“허···. 참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무슨 선문답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입니다. 별다른 노하우가 있는 건 아니에요. 아까 즉흥연기를 할 때 보니까 연기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서 재능이 나오도록 살짝만 건들어 준 겁니다.”

“네? 재능이 보였다구요? 그게 가능합니까? 어라? 지금 유정 씨가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유정 씨! 그 웃음의 의미가 뭐죠?”

아닌 게 아니라 나유정은 정말 나를 보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명을 받아서 그런지 오늘따라 큰 눈이 더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오늘 녹화를 위해 엄청 신경을 쓰고 나와서 그런지 물오른 미모가 팡팡 터지고 있었다.

그녀는 테이블에 있는 마이크를 잡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웃었던 건 준형 씨가 가진 특별함 때문입니다.”

“특별함이요? 그게 무슨···.”

“준형 씨는 남들이 못 보는 사람의 재능을 알아보는 그런 특별한 능력이 있어요.”

“남이 못 보는 재능을 본다구요?”

“네. 그래서 아까 선정 씨 연기력을 각성시키는 걸 보고 웃은 거예요.”

내 특별함이라···.

그녀는 나에 어떤 모습을 보고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생각해보니 나유정은 누구보다 내가 했던 일들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자신도 몰라봤던 정혜성 사범을 발굴하고 정이든이 만든 곡을 타이틀곡으로 쓰게 한 것, 그리고 몰래 돌아다니면서 재능있는 걸그룹 연습생을 모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비밀을 오직 그녀만이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 사이에는 어떤 유대감 같은 게 존재했다.

“그게 바로 제가 준형 씨와 회사를 만든 이유입니다.”

“오오!! 그런 깊은 뜻이···. 점점 기대되고 있습니다. 이 작가님. 계속 이런 거 보여주실 거죠?”

“저는 별로 한 게 없습니다. 그냥 선정 씨 자체가 원석이었던 겁니다.”

나에게 너무 과도한 기대를 하는 것은 금물인데···. 어우 부담스럽다.

“에이···. 그건 아니죠. 남들이 못 보는 이면을 본다는 건 대단한 재능이에요.”

나유정은 내 눈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갑자기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내가 이런 자리까지 올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멀리 돌아서 왔을 수도 있지만, 그냥 웹소설 작가로 골방에서 댓글과 씨름하며 연재를 하고 있었겠지···.

인생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나는 MC의 진행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방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재능이 있는 인재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이제 30명의 참가자 중 2/3가 끝나가고 저녁이 되었다.

“방송국에서 주는 도시락으로 두 끼를 때울 줄 몰랐네요.”

“그러게요. 저도 오랜만이네요. 이런 경험은···.”

“형. 나 못 먹겠어. 나가서 설렁탕이라도 한 그릇 해야겠어.”

“넌 안 어울리게 그런 거 좋아하더라? 순대국밥, 돼지국밥, 설렁탕 이런 거···.”

“내가 뭐 어때서 그래. 난 뭐 한국인 아냐?”

“맞아요. 케이 씨 이미지랑 좀 안 어울리긴 해요.”

“유정 씨까지···.”

나와 나유정 그리고 케이는 대기실에서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형···.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

“뭘 알어?”

“아까 이선정 씨 나올 때 말야. 연기 재능이 뭐가 보인다고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론 터져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얼마나 웃겼겠어?”

“안 터지면 마는 거지. 웃길 게 뭐가 있냐?”

“아냐. 그 분위기에서 선정 씨가 연기 못했어 봐. 얼마나 뻘쭘할 거야.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어.”

“망하면 망하는 거지. 뭐가 무섭냐?”

“하여간 희한해요. 아! 맞다. 곧 다솜이 나오지? 형 다솜이한테 뭐라고 했어? 둘이 뭐 작당하던데?”

“다솜? 다솜이라면 아까 은하랑 같은 걸그룹 아니에요?”

“오! 유정 씨도 아시는구나. 맞아요. 프렐류드 메인보컬요. 걔는 계약도 안 했으면서 자꾸 회사에 놀러와요.”

“다솜 씨한테 뭐라고 했는데요? 작당을 했다구요?”

“아···. 별거 아니에요. 병원 소개해주고 노래 부르는 스타일에 관해서 이야기 해줬어요.”

나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휘저으며 대답했다.

“또 뭐가 있구나?”

유정 씨가 나를 보고 피식 웃고 있었다.

“아니에요. 있긴 뭐가 있어요? 별거 아니에요.”

사실은 있긴 하다. 다솜은 내 조언을 듣고 많은 걸 수용했다. 그 결과가 오늘 있을 본선 심사에서 나타날 예정이었다.

똑똑···.

[녹화 시간이 됐습니다.]

스태프가 노크하며 녹화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와···. 진짜 피곤하다. 온종일 이러는데 이제 20명 했네. 오늘 10명 더해야 하고···. 내일은 70명이라며? 이러다 죽는 거 아냐?”

“죽긴 왜 죽어? 넌 밥 좀 잘 먹고 운동 좀 해야겠더라. 가만 보면 진짜 안 움직여. 맨날 커피나 마시고···.”

“아···. 내일 진짜 걱정된다. 오늘이야 실력 있는 애들이 나왔으니 괜찮았는데 내일은 아닐 거 아냐. 이것도 진짜 고역이네.”

“그래도 똑바로 봐라. 네 곡을 불러줄 애들 아니냐.”

“하아···. 그러게. 힘내야지.”

“괴작판독기 모드 발동시켜봐라. 그럼 된다.”

우리는 잡담을 나누며 녹화장에 들어섰다.

“잘 쉬셨나요? 이제 나머지 10명만 하면 오늘 일정은 끝입니다.”

“힘냅시다!”

“자! 이제 스물한 번째 참가자입니다. 여러분 절대 놀라지 마십시오. Let’s get it!”

사방이 어두워지며 170cm의 장신인 처자가 무대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오! 드디어 나왔군.’

무대로 걸어 나온 사람은 바로 프렐류드의 메인보컬 다솜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들 두 눈을 크게 뜨고 정말 다솜이 맞는지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일단, 그녀는 머리를 단발로 잘랐다. 그리고 찰랑거리는 블루 크리스탈 귀걸이를 하고 카메라를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피부가 유난히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다솜은 백설기 같은 뽀얀 피부의 소유자였다. 거기에 완전 블랙 단발은 그녀를 성숙하게 보

이게 했다.

나는 그녀와 전략을 짜면서 기존과 다른 컨셉을 짜기로 했다. 프렐류드 활동을 하면서 큰 임팩트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스타일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 해답을 찾은 건 성대 치료를 위해 찾은 병원에서였다. 훈이의 성대 결절을 치료했던 세브란스 병원의 김철중 박사는 다솜을 진찰하면서 크게 위험하지 않고 약물로 관리만 잘하면 큰 이상이 없을 거라고 했다.

치료하면서 그녀에게 어울리는 노래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그녀의 데뷔 전 노래.

아마도 그녀가 데뷔 전 보컬 학원에서 부른 노래였는데 그 보컬 학원에서 그녀의 영상을 홍보용으로 올렸던 것이다.

그 영상에 나오는 그녀의 노래는 지금과는 꽤 달랐다. 그녀의 톤은 날카롭고 허스키했으며 상당히 어른스러웠다. 목소리 자체에 소울이 가득했다.

그녀는 갑자기 캐스팅을 받고 1개월 만에 프렐류드에 합류했다고 한다. 메인보컬이 없었던 프렐류드는 그룹의 귀엽고, 청순한 이미지와 음색이 맞지 않는 다솜의 보컬 스타일을 바꾸도록 종용했고 그녀는 7년 동안 자신의 본래 목소리를 내지 않고 프렐류드 스

타일의 보컬로 활동했던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황급히 본래 목소리로 재즈풍의 노래를 시켜봤더니 처음에는 어려워하더니 금세 제 목소리를 찾기 시작했다.

‘으아···. 소름 끼쳐.’

다솜이가 원래 이런 목소리였구나. 이런 톤을 가지고 여리여리한 걸그룹 톤으로 노래를 오랫동안 불렀으니 부자연스러운 창법 때문에 성대에 무리가 갈 수밖에···.

한편, 무대 위에서는 간주가 끝나고 리드미컬한 보사노바풍의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다솜은 반주에 맞춰 자신의 본래 색깔을 입힌 날카롭고 허스키한 사운드로 노래를 표현하고 있었다.

‘하···. 좋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공기 반 소리 반인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다리를 꼬고 있던 케이가 자세를 고쳐 잡으며 다솜의 노래를 신중하게 들으려고 하는 게 보였다.

‘그래! 바로 이거지.’

ⓒ 소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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