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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22화 (122/263)

< 나의 뮤지컬 스타 (2)>

첫 음부터 부드럽게 하이노트를 찍고 내려오는 윤지의 맑은 반가성이 내 귓가를 강타했다.

‘하···. 미쳤다.’

그 뒤로 속삭이는 듯 이어지는 독백이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 보고 있는 모두를 홀릴 듯한 충만한 감성의 노래였다.

세상이 끝나더라도 당신과 함께 있겠다는 감미로운 발라드곡.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정말로 아무도 없는 파리의 길거리를 홀로 거닐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감정이 가슴에서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멘토들과 심사위원들은 평가할 맘을 고이 접고 정신없이 노래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듣다가 고개를 의자 받침대에 대고 눈을 감고 말았다.

노래가 끝난 후 녹화장에는 진한 여운이 맴돌았고 적막을 깨고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마치 파도와 같이 그 기세가 이어졌다.

나도 모르게 케이의 곡으로 화려한 하이라이트 고음을 터트리는 그녀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정말 진땀을 뺐다.

“자, 잘 들었습니다. 다들 점수 입력하셨죠? 노래를 너무 잘하셔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라이브로 들어본 노래 중에서는 제일 훌륭했던 것 같습니다. 앗! 제가 MC의 본분을 잊고 감상평까지 이야기했네요. 자···. 멘토님들 어떻게 보셨는지요?”

박무성이 질문을 하자 제일 왼쪽에 무심히 앉아 있던 케이가 갑자기 마이크를 들었다.

“저···. 휴지 좀···.”

그는 갑자기 제작진들에게 휴지를 달라고 하더니 선글라스를 살짝 들어 올리고 눈물을 훔쳐냈다. 그러더니 다시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마이크를 들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풍부한 저음과 힘 있는 고음까지 쉽게 낼 수 있는 정말 무시무시한 재능의 소유자입니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노래를 부르는 스킬, 성량, 고음 처리, 박자감, 딕션, 감정 표현,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까지···. 더군다나 목 상태도 최상입니다. 정말 놀랍

습니다. 가창력만큼은 뭐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프로듀서 케이는 윤지의 가창력에 대해 극찬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꾸준히 연습하고 계시는 건가요?”

“네. 매일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힘이 들지도 않은지 담담하게 대답했다.

“대단합니다.”

“저기요. 윤지 씨. 지금 케이 씨가 극찬했는데요. 기분이 어떠세요?”

“하하···. 저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아요. 프로듀서님한테 칭찬을 받으니 하늘을 나는 거 같네요.”

그녀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더니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있었다. 털털한 거로 유명한 그녀다운 모습이었다.

“자···. 이 작가님의 감상평이 있겠습니다. 작가님?”

“네. 솔직히 노래를 듣는 동안 가슴이 두근두근해서 혼났습니다. 예전에도 노래를 잘하는 거로 유명하셨는데 이제야 그걸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아요. 제가 기술적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어떤 것도 지적할 게 없을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그래도 가장 좋았던 게 뭐였을까요?”

“성량? 스피커가 터지는 줄 알았어요. 저 가녀린 몸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올까요? 정말 엄청납니다.”

“아! 그건 제가 타고난 것도 있긴 한데요. 노래를 잘하려고 운동을 엄청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유정 선배님처럼요.”

“천재인데 노력형 천재군요. 가장 무섭다는···.”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윤지 씨는 드라마에서도 성공하고 뮤지컬도 했던 걸로 아는데요. 어떻게 이런 서바이벌에까지 나오신 겁니까?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제가 저기 앞에 앉아계신 이준형 작가님 팬이거든요. 드라마하고 책도 다 봤는데 뮤지컬 영화를 제작하신다고 해서 꼭 출연하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MC의 질문에 수줍게 마이크를 들고 대답하는 윤지였다.

그녀는 전형적인 미인형 얼굴은 아니었지만 건강하고 마치 현실 여친 같은 그런 친근한 스타일이었다.

“팬이라면 작품을 좋아하는 거지 개인적으로 호감이 있거나 한 건 아니시죠?”

“제 이상형이세요. 개인적으로 키 크고 덩치가 있는 훈남을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지적이시잖아요.”

“!!!!”

나는 그녀의 돌발 고백에 입꼬리가 올라가고 웃음을 참기 위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 이준형 작가님 좋아 죽으려고 하는데요. 지금 옆에 시퍼렇게 눈을 뜨고 계신 분이 있는데 지금 그럴 때입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약간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유정 씨와 눈이 마주쳤다.

커흠···.

“저기요. 두 분 무슨 사이신 거나 한 건 아니시죠? 분위기가 좀···.”

“아니에요. 제가 노려본 건 멘토라고 나와서 그냥 헤벌쭉하고 있는 모습이 좀 그래서요.”

유정 씨의 말에 솔직히 뜨끔했다. 거기서 나에게 가차 없는 평가를 하다니!

“죄송합니다. 제가 평소에 윤지 씨 팬이라서 그 말을 듣고 살짝 이성을 상실했었습니다. 정신 차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이 작가님도 극찬하셨고요. 마지막으로 유정 씨는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군요.”

“네. 노래 잘하시던데 정말 부럽네요. 어쩜 그렇게 부르시는지 믿기지 않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A그룹을 당연히 노리실 건데요. 주인공이 A그룹의 센터 역할이거든요? 그게 어울리는 역할인지 확신이 안 드네요. 물론 윤지 씨도 충분히 예쁘시지만···.”

“지금 말이죠. 유정 씨가 살짝 경계하는 듯한 느낌이거든요?”

“그런 거 아니에요.”

“진행자님 그건 제가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윤지가 손을 들고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이 작가님 작품을 좋아해서 나온 건 정말 사실이구요. 드라마에서 주연도 해봐서 배역에 큰 욕심은 없습니다. 주시는 역할은 힘이 닿는 대로 열심히 해보려구요.”

오! 저 겸손함. 하긴 그녀는 이미 주연으로 출연해서 큰 성공을 거둔 드라마도 있었고 망한 드라마도 있는 어찌 보면 중견급 연예인이라 할 수 있었다. 나이도 거의 데드라인에 걸린 그녀였고 솔직히 아우라 스카우터를 켜볼 필요도 없는 인재였다.

요즘은 미튜브에서 라이브 방송으로 즉흥적으로 노래를 불러주며 놀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음악적 재능이 풍부한 인재며 마치 주크박스와 같아 뮤지컬에 최적화된 인재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녀를 출연시킨다고 하니 내 작품의 흥행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음···. 상상 못 한 거물이 덩굴째 굴러들어왔군.’

“자! 초반부터 거의 끝판왕급 보스가 나타났습니다. 제작진들 이거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참가자는요.”

그렇게 참가자들이 차례로 무대 위로 오르고 있었다. 확실히 연예인 전형으로 올라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쟁쟁한 인물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나이를 한정해서 그런지 걸그룹 출신들이 제일 많았고 걸그룹을 준비하다가 배우로 전향한 사람도 있었다.

또한, 노래보다 뮤지컬 연기를 먼저 선보이는 참가자도 있었다. 아무래도 노래가 부족한지 먼저 임팩트를 주려고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특이하게 장기를 먼저 보여주며 시작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아우라를 보는 사기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 아니던가? 아무도 내 매의 눈을 피해갈 순 없었다.

아우라를 살펴보고 부족한 것들 보여달라고 하면 노래에서는 악마 같은 케이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집요하게 약점을 파헤쳤다.

반면 걸그룹 출신 중 노래가 뛰어난 멤버는 여러 가지 즉흥연기를 시켜보며 연기력을 테스트하고 있었고 실력이 드러나면 나유정이 조곤조곤 맘 상하지 않게 정확한 지적을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은하나 윤지를 능가하는 인재는 찾기 힘들었다.

30명 중 약 12명이 지나가고 점심을 먹은 뒤 녹화가 시작되기 전에 MC가 말을 걸어왔다.

“아니 이 작가님 무슨 능력치라도 보이는 거예요? 처지는 참가자들한테서는 잘하는 것을 골라내고 뛰어나 보이는 참가자한테는 부족한 부분을 마구 찌르질 않나···.”

“그런 게 가능하겠습니까?”

나는 그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거기서 그렇게 안 하면 엄한 참가자가 위로 올라와서 내 작품에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지.’

“아무튼, 자기가 모르던 자신의 장점까지 알게 된 참가자도 있는 것 같던데···. 아무튼 신기하네요.”

“소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는 격이죠.”

“그래도 신기한 건 신기한 겁니다. 아! 그리고 심사위원님들도 잘 들어보세요. 참가자들한테 점수를 매기고 있는데요. 이건 특정 영역의 점수가 아니라 종합적인 능력치로 점수를 줘야 합니다. 이 점 유념해 주세요.”

13번째 참가자가 무대 위로 올랐다. 그녀는 만년 2티어 걸그룹 메인보컬이었다. 그녀는 4세대 걸그룹 중 탑티어 보컬로 알려진 만큼 굉장한 가창력을 선보였다.

‘후···. 이게 무슨 마스크싱어야 뭐야. 걸그룹 출신들은 웬만하면 가창력이 뛰어나잖아?’

“안녕하세요. C-Girls의 메인보컬 이선정입니다. 반갑습니다.”

긴 머리에 건강한 스타일인 그녀는 눈매가 약간은 강해 보여서 그런지 그녀의 노래를 좋아하는 팬을 제외하고 그다지 팬덤이 강하다고 할 수 없는 멤버였다.

그녀의 노래에 크게 감탄한 나유정이 이선정에게 연기를 시켜보았지만, 인상적인 연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무래도 준비 없이 급히 나온 모양이었다.

‘흐음···. 연기는 별로네? 이상하다. 왜 이렇게 뭔가 찝찝하지? 인상이 강해서 라이벌 그룹인 B그룹으로 등장시키면 딱인데···. 어디 한번 아우라를 봐야 하나? 후···. 힘든데 이거?’

오늘 새롭게 안 사실은 이 아우라 스카우터도 계속 쓸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정신력 고갈이 심각해서 아까 밥을 먹고 쉬지 않았다면 어지러워서 토할 뻔했으니까···.

그래도 이상하게 뭔가 느껴지는 위화감 때문인지 피곤함을 무릅쓰고 스카우터를 가동시켰다.

‘헉!’

그녀의 몸 주변에서 강렬한 주황색 아우라가 솟구치고 있었다. 가창력을 뜻하는 붉은 빛을 더 띠고 있었지만, 노란색 아우라도 무시 못 할 정도였다.

자신의 어색한 연기에 실망해서 그런 걸까? 이선정은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실컷 노래를 잘해놓고 연기로 망쳐버린 케이스였다. 그래도 연습은 좀 해온 모양인데 즉흥 연기를 시키니 실수를 연발하며 연기를 배우지 않았던 티가 났다.

“질문은 이제 다 끝난 건가요?”

박무성이 멘토들에게 질문하자 내가 입이 근질거려 마이크를 덥석 잡았다.

“선정 씨. 연기를 한 번도 배워 본 적 없죠? 레슨 같은 것도 안 받으신 거 같고···.”

“네네···.”

“혹시 제가 제시하는 연기에 한번 도전해 보시겠습니까?”

“시키시면 뭐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녀는 마치 신인 걸그룹이 된 것처럼 긴장한 상태로 대답했다.

“잠시만요. 제가 쓰던 글이 있는데···. 음?”

나는 스태프에게 대본 한 장을 두 부 출력해달라고 요청했다. 케이는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나유정은 달랐다.

그녀는 내가 또 무슨 신기한 것을 보여줄지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그렇게 보지 말라고요. 지금 영화에 라이벌 그룹으로 캐스팅할 악녀를 탄생시키고 있으니까요.

스태프가 대본을 출력해왔다. 나는 잠시 마이크를 끄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내가 그녀에게 준 것은 종이 한 장이었다.

“이걸 한번 연기해보는 겁니다. 주인공은 외모 콤플렉스가 강한 학생이고요. 같은 반에 공부도 잘하고 잘생긴 엄친아 남학생을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네네···.”

“그런데 그 남학생이 주인공에게 접근을 하는 겁니다. 콤플렉스가 심한 그녀는 왜 그가 자신에게 대시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같이 어울리게 되죠. 하지만 사실은 같은 반의 예쁜 여자애의 질투심을 이용해 관심을 끌려는 수작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안 주인공

이 남학생에게 따지는 내용입니다.”

“..........”

“잘할 수 있어요. 연기를 배워보지 않아서 그렇지 당신은 재능이 충분합니다. 자신을 믿어보세요.”

선정은 뭔가에 홀린 듯 대본을 받아들고 정신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

나는 심사위원석에 있는 잘생긴 훈남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그를 잘 몰랐으나 아우라를 살펴보니 연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도 같은 설명을 해주며 이선정의 연기를 보조해 주도록 했다.

다행히 그는 꽤 유명한 연기 강사라고 했다. 나이는 삼십 대지만 외모 관리를 잘해서 20대처럼 보이는 사내였다. 개성 있는 외모로 조연을 하면 잘할 것 같은 날카로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강사를 할 게 아니라 배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잠깐 대사를 숙지한 그들이 다시 무대 앞에 섰다. 내 대본을 미리 본 이철승 PD가 거대한 스크린을 학교 배경으로 바꿔줬다.

‘역시 이 PD 센스 보소. PD를 딱지치기로 단 게 아니었어. 능력 하나는 확실하구만.’

나는 무대를 내려가기 전 이선정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을 했다.

“메소드 연기라고 알아요? 주인공이 나라고 착각하면서 완전히 몰입해서 연기하는 겁니다. 주인공에 빙의해보세요.”

끄덕끄덕···.

무대 위에 핀포인트 조명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고 텅 빈 교실로 보이는 배경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 소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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