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21화 (121/263)

< 나의 뮤지컬 스타 (1)>

나와 유정 씨가 녹화장으로 들어서자 요란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눈부심이 가시자 통로 앞으로 간이 무대와 그 뒤로 커다란 스크린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키 큰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프리랜서이자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로 개그 감각이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는 박무성이었다.

그리고 녹화장 중앙에는 커다란 탈 것(?)으로 보이는 의자 겸 탁자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마치 오디션 보이스의 뒤로 도는 의자 같은 장치였다.

“어서 오세요. 멘토 여러분. ‘나의 뮤지컬 스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나는 거대한 세트장에 살짝 놀라 엉거주춤한 포즈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안녕하세요.”

박무성은 환한 미소를 보이며 손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작가님은 자리의 제일 왼쪽이고, 유정 씨는 가운데 앉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아보니 앞을 보니 무대와 스크린이 정면으로 보였고 옆을 보니 수많은 카메라가 우리를 찍고 있었다. 그리고 뒤를 쳐다보니 약간 높은 2열 단상에 10명의 전문 심사위원이 앉아 있었다. 더러는 얼굴을 아는 유명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뮤지컬 배우, 유명 가수, 보컬 트레이너, 댄서, 배우 등등···.

내가 뒤를 돌아보고 있자 몇몇은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하며 인사를 받았다.

“이준형 작가님? 아까부터 두리번거리면서 촌스럽게 행동하고 계신데요. 정신 차리시고요.”

“아···. 네.”

“반면에 우리 유정 씨는 들어오면서도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뭐 이 정도야···.”

“이곳이 바로 본선으로 가는 두 번째 관문이 되겠습니다. 자! 박수!”

“와아아···.”

나도 모르게 박무성의 진행에 말려들어 손뼉을 치고 말았다.

“열심히 박수를 치셨던 이준형 작가님.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죠?”

“첫 녹화 아닙니까?”

“맞습니다. 바로 나의 뮤지컬 스타, 줄여서 나뮤스의 역사적인 첫 녹화 날입니다. 약 3,000명의 지원자가 중 예선 심사를 통해 100명의 본선 진출자가 선정되었습니다.”

“놀랍군요.”

“그 말이 맞습니다. 얼마나 열기가 뜨거웠는지 예선 심사를 봤던 제작진 중 일부는 과로로 링거를 맞고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합니다.”

“설마요.”

“올해 세간에 화제의 중심이었던 두 분을 곁에서 보게 되니 영광입니다. 아까 나란히 들어오시던데 사이가 좋아 보이시더군요.”

“나쁠 일이 있나요?”

박무성 MC의 말에 나 대신 대답하는 나유정이었다. 그녀는 요즘 휴식을 취하면서 운동을 열심히 하는지 얼굴에 윤기가 흘렀다. 아래로 길게 늘어지는 드롭 귀걸이를 하고 머리를 위로 묶어서 포니테일을 연출했는데 예전보다 더 어려 보이는 것 같았다. 자줏빛

실크 블라우스와 연한 보라색 바지 스타일로 화려함까지 겸비했다.

“유정 씨는 여기 지원자들하고 경쟁하셔도 되겠는데요? 2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지금 괜히 칭찬하는 거 보니 무슨 할 말이 있으신 거 같은데···.”

“맞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시원하게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기사에 이준형 작가님과 유정 씨가 회사를 하나 설립하셨다고 하던데요.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부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그런 회사라는 말이 많더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부인데 글자에 아닐 부(不)를 쓰는 부부입니다.”

“네. 아재 개그 됐구요.”

“뭐 시청자분들께서 그렇게 흥미롭게 지켜봐 주시니 기분은 나쁘지 않네요.”

“유정 씨. 그 말은 두 분의 사이가 긍정적이라고 봐도 되는 겁니까?”

“글쎄요? 궁금하시죠? 큭큭···.”

“아 참···. 답변이 참 애매하군요. 이 작가님. 공동으로 운영하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운영하신다는 거죠?”

“제가 대표고 유정 씨가 이사인데요.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는 건 아니고 가끔 출근하는 사외이사? 그런 느낌인 거죠.”

“약간 주말부부 같은 느낌인가요? 네. 알겠습니다. 인터뷰는 여기까지···.”

“저, 저기요.”

생방송이 아니고 녹화방송이기 때문에 진행이 타이트하지 않고 상당히 편하게 촬영을 하는 중이었다.

‘어차피 이 녹화본은 누더기가 된다.’

뮤직넷의 서바이벌하면 빠르고 어지러운 편집이 유명했다. 이렇게 느슨하게 촬영돼도 불필요한 부분은 칼처럼 잘라버릴 제작진들이었다. 아마 우리가 나올 때도 인터뷰 부분을 잠깐 편집해서 넣을 게 분명했다.

“왜 이 자리는 아직 비어있는 걸까요?”

“아마 오늘 무슨 옷을 입을지 고르고 있어서 늦을 겁니다.”

“아···. 그분이군요.”

“지금 제 욕하고 있습니까?”

말을 하자마자 통로에서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내가 뚜벅뚜벅 녹화장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와아아···.”

제작진들과 심사위원들의 이목이 케이에게 집중됐다. 그는 눈썹 피어싱에 살짝 웨이브 진 머리를 뒤로 넘기며 등장했다.

검은 니트티 위로 화려한 문양의 하얀색 트위드 재킷을 걸친 케이는 찢어진 청바지에 부츠를 신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대충 걸어오는 것 같은데 나와는 다르게 너무나 스웩 넘치는 걸음걸이였다.

‘허 참···. 쟤는 그냥 몸에 쿨함이 배어 있구만? 왜 저렇게 자연스러워?’

나는 긴장을 1도 안 하는 케이의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어서 오십시오. 프로듀서 케이 님. 이렇게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처음이신가요?”

“네. 처음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선글라스는 계속 끼고 계실 건가요?”

“이게 바로 방송 출연 조건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런데요. 들리는 소문에 케이 님도 이 작가님이 하시는 기획사에 들어가셨다고 하시던데요?”

“사실입니다.”

“두 분은 어떤 인연이시길래···.”

“글쎄요 한 5년 전쯤부터 아는 관계였습니다. 일종의 애증 관계라고 할까요?”

“애증의 관계요? 그거참 궁금하군요. 혹시 유정 씨를 두고 싸움이라도 하신 겁니까?”

“그게 아니구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케이는 대학 때부터 제 블랙 독자였습니다.”

“블랙 독자요? 그게 뭐죠?”

“제가 지어낸 말인데요. 블랙 컨슈머를 인용해서 이름을 붙였습니다. 도를 지나치는 행위를 하는 독자라는 뜻이죠.”

“쯧쯧···. 좋은 감평을 해서 사람을 만들어줬건만···.”

보다 못한 케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한번은 케이 때문에 절필한 적도 있었습니다.”

“오···. 절필이요? 케이 씨 블랙 독자 맞는데요? 어쨌건 이 작가님 글쓰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군요.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뭐···. 결국 잘됐잖아요.”

“그건 내가 잘나서···. 크흠···. 뭐 이쯤 합시다.”

선글라스를 끼고 아주 시니컬하게 시건방진 태도를 보이는 케이였다.

방송 제작진들은 사전에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보더니 약간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원했다. 솔직히 요즘 부쩍 친해져서 사이가 괜찮았는데 방송 컨셉대로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둘다 노력하고 있었다.

“자 이렇게 3명의 멘토가 자리에 모였는데요. 저 뒤편에 보이는 분들이 바로 전문 심사위원단입니다. 저분들의 평가로 30명의 본선 합격자를 뽑을 예정입니다. 예선 합격자가 저 통로로 한 명씩 나와서 소개를 할 텐데요. 공개 오디션을 본다고 생각하시면 이해

하기 쉬울 것 같네요. 아···. 그리고 오늘은 연예인 전형 오디션입니다.”

박무성 MC의 진행으로 곧바로 본선을 향한 서바이벌이 시작되었다.

“연예인 전형의 예선 통과자는 총 30명이고요. 여기서 반수가 떨어지게 됩니다. 자···. 그럼 첫 번째 지원자부터 만나볼까요? 나의 뮤지컬 스타! Let’s get it!”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무대가 살짝 어두워진 가운데 첫 번째 지원자가 통로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소개도 건너 뛰고 무작정 노래로 점프하는 1번 참가자였다. 조명이 무대를 비추자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헉!”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얘가 서바이벌에 왜 나왔지?’

나온 참가자를 보고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머리를 잡고 있었다.

첫 지원자부터 내 계획을 흔들려고 작정한 듯 강력한 다크호스가 등장했다.

그녀의 이름은 최은하! 바로 다솜이 메인보컬로 활동했던 프렐류드에서 센터를 맡고 있던 멤버였다.

[나 사랑인 줄도 정말 몰랐어. 너를 보내고 난 후 너에게 아무것도 준 게 없다는 걸 알아버렸어.]

은하는 싱어송라이터 샐리의 히트곡인 ‘사랑인 줄도 몰랐어’를 부르며 무대를 휘어잡고 있었다.

왼쪽을 슬쩍 보니 나유정이 은하의 표정 연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곁눈질로 케이를 보니 그는 뭐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노래는 별론가? 노래가 좋은 거지 가창력이 좋은 건 아니구나?’

프렐류드는 정말 노래에서는 다솜이가 북치고 장구 치면서 혼자 캐리했기 때문에 비주얼 센터인 은하는 가창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은하가 나왔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안정을 찾게 되자 그녀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아우라 스카우터를 가동시켰다.

‘흠···.’

그녀에게서 연기력을 나타내는 노란색 아우라가 보였다. 하지만 내가 보아오던 재능 부자들의 아우라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었고 나유정을 100으로 치자면 그녀의 능력치는 겨우 20이나 될까 말까···.

완전한 노란색이라 다른 능력은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역시 센터는 센터였다. 물이 오른 미모로 좋은 곡을 부르니 별 생각 없이 들으면 되게 잘하는 느낌이 드는 무대였다.

‘확실히 귀여운 스타일의 다솜과는 다른 세련된 청순함이 느껴지는군. 확실히 인기가 있을 만한 외모야.’

귀여운 거로 따지면 다솜이도 만만치 않지. 노래는 훨씬 잘하고···. 활발하고 인성도 좋고···.

다솜이가 소속사가 없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자 거대한 스크린에 그녀의 프로필 사진이 뜨며 간단한 개인 약력이 떠올랐다. 전문 심사위원들과 멘토들도 감탄한 듯 박수를 쳤다.

“자! 개인별로 점수를 입력해주세요. 멘토분들은 감상평도 부탁드립니다.”

MC의 말에 사람들이 점수를 주기 시작했다.

“은하 씨가 기준점이 될 수 있으니 점수를 신중하게 넣으시길 바랍니다. 자···. 이제 심사가 모두 끝난 거 같군요. 첫 번째 참가자분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배우 최은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은하 씨는 얼마 전까지 실제 걸그룹 이셨죠? 지금은 해체했다고 하던데요···.”

“네. 지금은 연기자로 전향했습니다.”

“저요. 저 알아요. 인터넷에서 유명하잖아요. 웹드라마에서 봤어요.”

나유정이 손을 들고 웃으며 은하를 아는 척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저 팬이에요.”

후배가 팬이라고 말을 하자 기분이 좋은지 미소를 짓는 나유정이었다.

“웹드라마도 재밌게 봤었는데 연기를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노래를 하면서도 연기가 자연스럽던데 전 괜찮게 본 거 같아요.”

나는 그녀가 하는 말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지를 개선하려고 하는 것인지 처음부터 참가자에게 후한 평가를 하고 있었다.

“극찬을 해주셨는데요. 그럼 프로듀서의 평을 한번 들어볼까요?”

MC가 케이에게 평가를 해달라며 바통을 넘겼다.

“흐음···.”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다리를 꼬면서 내 얼굴을 슬쩍 바라보았다.

“노래를 부를 때 음정이 너무 불안하고 플랫이 납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노래 연습 좀 많이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케이의 가차 없는 평가가 이어졌다.

‘어우···. 저 녀석 누가 괴작판독기 아니랄까 봐.’

참가자는 7년 동안 걸그룹을 하던 멤버였는데 노래 연습이나 더 하라고 하다니···. 아무리 눈치를 안 봐도 그렇지. 쩝.

혹평을 들은 은하의 얼굴이 굳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기분이 나쁠 만 한대도 꾹 참고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다.

“처음부터 평가가 너무 극과 극인데요? 이번엔 작가님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죠.”

“네. 은하 씨 연기 너무 잘 봤고요. 노래도 메인보컬이 아닌걸 감안하면 괜찮았던 거 같습니다. 저 왼쪽 분이 하는 말을 듣고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저 녀석은 제 글에도 혹평을 가했던 사람입니다.”

“네네. 감사합니다. 작가님.”

“그런데···. 뮤지컬을 하기엔 아직 살짝 노래가 부족하지 않나···. 싶긴 한데···. 연기력으로 잘 커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 말은 노래에 대한 재능은 없으니 빨리 단념하고 연기나 더 가다듬는 게 좋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방송이다 보니 듣기에 따라서는 그냥 그저 그런 입에 발린 소리처럼 들릴 수 있었다.

옆에 양극단인 천사와 악마가 있으니 내가 중간에서 처신을 잘해야 할 것 같았다. 오늘 참가자들은 그래도 연예인 전형을 뚫고 올라온 진짜 연예인들 아니던가? 팬들도 많은데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괜히 안티가 생겨서 영화 흥행에 지장을 주면 곤란했다.

“네. 잘 들었습니다. 뭐 다른 궁금한 사항 없나요?”

옆에서 나유정이 손을 들었다.

그렇게 몇 가지 질문이 추가되고 첫 번째 참가자인 은하가 무대 밖으로 내려갔다.

“춤은 안 보나요? 작가님?”

“네. 걸그룹 경력이 있는 멤버들은 굳이 추고 싶지 않으면 안 춰도 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다고 보거든요. 하지만 일반인 전형에서는 필수로 봐야 할 것 같구요.”

“그렇군요. 이상 첫 번째 참가자인 최은하 씨였습니다. 첫 등장부터 강렬했는데요. 이제 두 번째 참가자를 만나볼 차례입니다.”

다시 무대가 어두워지고 장엄한 팝 발라드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좁은 통로로 가녀린 몸매의 주인공이 걸어 나오더니 무대 위로 올라가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헉···.”

무대 조명이 그녀를 비추자 뒤에 앉은 전문 심사위원들의 깜짝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바로 2년 전 TVM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복고드라마에서 찰진 사투리 연기로 스타덤에 오른 식스엔젤의 메인보컬 윤지였다.

그녀는 뛰어난 연기자였지만 가창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메인보컬이기도 했다.

그녀의 잔잔하고 힘 있는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고 있었다.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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