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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20화 (120/263)

< 모여드는 인재들 (2)>

뮤지컬 서바이벌 예선 접수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나는 한 통의 메시지를 받고 근처의 YN 엔터 빌딩 앞에 서 있었다.

“오···. 건물이 진짜 화려하네.”

J&J 빌딩은 신축 건물이긴 하지만 YN 사옥처럼 모양 자체가 신기한 편은 아니었다. 역시 대형기획사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YN 엔터 빌딩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작가님.”

“어? 혜수 씨? 왜 나와 있어요?”

“왜요. 제가 마중 나오면 안 되나요?”

“최고의 케이팝 스타께서 이렇게 친히 나와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에이···. 최고의 작가님인데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혜수 씨는 화려한 외모와는 다르게 정말 다정다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래서 리더역을 잘하는 거겠지.’

“대표님은 아직도 방송 출연에 부정적이세요?”

“네. 몇 번을 나가고 싶다고 말했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으세요.”

“흐음···. 일단 올라가서 대표님과 이야기를 해보시죠. 아 참! 제가 어제 보내드린 거 연습 좀 해보셨어요?”

“연습은 하긴 했는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잘 할 겁니다.”

“푸훗···.”

응? 갑자기 왜 웃지? 힘내라고 위로하는 건데?

“왜 웃어요?”

“아···. 죄송해요. 작가님. 그냥 유정 언니가 한 말이 생각나서요.”

“유정 씨가 뭐라고 했는데요?”

“언니가 그러는데 작가님한테 뭔지 모르는 제3의 감각이 있대요. 그래서 사람을 정확히 본다는 거예요.”

컥···. 이 아가씨가 도대체 뭔 소리를 하고 다니는 거야?

“하하···. 유정 씨도 참···. 뭐 사실 제가 사람의 특징이나 적성을 아주 잘 파악하긴 합니다. 그래서 혜수 씨에게 이 뮤지컬 영화를 추천해 드린 거고요. 제가 봤을 때 완전 딱 이거든요?”

“킥킥···. 그때는 언니가 하는 말이 이해가 안 갔는데 지금 보니 왠지 안심되네요.”

“안심됐다니 다행입니다. 아 참 혜수 씨 상대역은 제가 해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는 분명히 그녀의 연기력을 의심할 게 뻔했다. 왜냐하면, 혜수는 연기 레슨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으니까···.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회의실에 들어가니 YN 엔터의 수장 주영진 대표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대표님.”

“오···. 어서 오세요. 작가님. 실제로 뵈니 실물이 진짜 멋지신데요.”

“어우···. 멋지긴요. 요즘 광고에 나오는 제 모습을 보고 열심히 운동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이렇게 크게 나오는지···.”

“뭐···. 나보다는 훨씬 괜찮은데···.”

주영진 대표는 나보다 키가 약간 작았지만, 살이 쪄서 덩치가 상당히 커 보였다. 인상도 살짝 험악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는 스타일이었다.

외모 평가는 하지 말자. 외모가 어찌 됐든 이 양반은 자신의 기획사를 당당히 3대 기획사의 한 축으로 올려놓은 입지전적인 인물 아니던가!

“혜수한테 들어보니 창업을 하셨다고요?”

“네.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

“우리 회사로 오시지 그러셨어요? 작가님이 굳이 힘들게 뭐하러 사업을 하시려고 그러세요.”

그는 왜 사서 고생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힘들진 않고 아직은 재미있습니다.”

“처음에는 의욕이 앞서 그렇긴 합니다.”

“뭐 의욕이라도 있어야죠. 신경 쓸 게 많더군요.”

“앞으로 더 많아질 겁니다. 우리 회사로 오시는 게···.”

“회사가 망하면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하하···.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이번에 뮤직넷하고 예능도 하시고 영화도 만드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흐음···. 그런데 왜 우리 혜수가 꼭 필요하시다는 건가요?”

“그게···.”

“대표님···. 이건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제가 예전에 애들하고 유정 언니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작가님이 차기작을 쓰신다고 하시길래 제가 먼저 출연을 하고 싶다고 손을 든 거예요.”

“혜수야. 팀도 잘 나가고 최고의 인기 그룹이 됐는데 굳이 서바이벌에 나가고 싶어?”

“대표님. 다른 멤버들은 솔로 음반 활동을 하는데 왜 저만 못하게 하세요?”

“그, 그거야···.”

혜수의 투정에 주 대표가 쩔쩔매고 있었다. 어떻게 말을 할 것인가? 그녀는 노래, 랩, 춤 모든 게 괜찮았지만 솔로를 할 만큼 특출난 면은 없었다.

“주, 준비해야지. 나중에···.”

“저 꼭 이준형 작가님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요. 유정 언니가 작가님 작품 있으면 무조건 출연하라고 했단 말이에요.”

‘응? 유정 씨가?’

유정 씨가 나한테는 맨날 핀잔을 주더니 그래도 밖에서는 칭찬을 하고 돌아다니는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 앨범 활동 마치고 3월까지는 다음 앨범 작업 기간이라 시간도 충분하잖아요. 1년 이상 활동을 안 한 적도 있는데···.”

“아, 앞으로는 일거리가 쌓여있어. 정말이야.”

“대표님. 저 정말 하고 싶다니까요!”

혜수도 상당히 고집이 센 성격이었다. 저 무서운 주 대표에게 이렇게 말을 하다니···.

“후우···.”

주영진 대표는 가슴이 답답한지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혜수야. 그래. 다 좋아. 그런데 왜 하필이면 서바이벌이냐고!”

“뽑히면 되잖아요.”

“작가님이 무조건 캐스팅해주시겠대?”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거봐! 괜히 나가서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네가 거기 나가는 건 잘해봐야 본전이고 까딱하면 마이너스야. 그룹에도 손해를 끼치는 거라고.”

“무슨 그룹에 마이너스에요? 제가 잘하면 된다니까요?

”그리고 컴백하려면 연습도 해야 하고 이것저것 할 게 많잖아.“

“대표님. 그 일정은 저희가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제작진과 협의를 하면 될 사항이었다. 어차피 혜수가 출연한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으니까.

찌릿!

주 대표는 내 얼굴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거봐요. 대표님. 작가님이 제 일정 감안해서 진행한다고 하잖아요.”

“일정을 조정해준다고 해도 문제야. 아까도 말했지만 거기 나가서 잘못되면 어떡해? 너희 지금 세계적으로 탑티어야. 잘못하면 그 명성에 흠집이 생기는 거라고!”

결국, 그거였다. 만약에 혹시라도 떨어지면?

혜수는 주 대표의 말에 약간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대표님. 제가 알기론 블랙소울은 연기 레슨을 받은 적 없고 노래와 댄스만 집중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제가 알고 있는게 맞을까요?”

“그랬죠. 하지만 연기 쪽으로 나가면서 그룹이 깨지는 경우를 많이 봤으니까 조금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래도 활동이 3년 넘어가면 연기 쪽도 검토해주기로 하셨잖아요.”

“그, 그렇긴 한데, 혜수야. 꼭 연기를 해야 하겠니? 넌 리더잖아.”

“아하···. 대표님···.”

혜수는 뭔가 할 말을 못 하고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혜수 씨는 원래 영화배우가 꿈이었다고 했죠?”

“네. 맞아요. 우연히 기획사에 캐스팅돼서 걸그룹으로 데뷔하긴 했지만 어렸을 적 꿈이었어요. 특히 유정 언니 같은 배우요.”

음···. 굳이 부러워할 필요 없는데···. 블랙소울도 가수로 거의 끝판왕에 도달하기 직전인 상태인데?

“대표님···. 일단 혜수 씨에게 잠재력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시잖아요. 일단 노래는 잘하니까 연기를 한번 보고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요?”

“응? 갑자기 무슨 연기?”

연기를 한번 보자는 내 말에 주 대표가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혜수는 올 게 왔다는 눈치였는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는 그녀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그거 한번 해볼까요?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그거란 어제 내가 그녀에게 보내준 드라마 ‘나의 키다리 아저씨’에 나오는 짧은 장면이었다. 왠지 그 장면을 써먹으면 좋을 것 같아 연습해보라고 했던 것이다.

“자···. 제가 상대역 해드릴게요. 집중하시고···.”

나는 한 발짝 앞에 서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솔직히 혜수보다 내 근본 없는 연기력이 더 문제였다.

‘어우···. 이게 뭐라고 떨리냐.’

“아니···. 지금 뭐하시는···.”

주 대표의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나는 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그리고 혜수도 나에게 맞춰 감정을 잡고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뭐하시니?”

원래 배우처럼 목소리를 중저음으로 내리깔았다.

“아저씨 부모님은 뭐하시는 분들이신데요?”

혜수의 무미건조하고 냉담한 말투가 내 귓가를 때렸다. 한 번에 이렇게 집중을 하다니···. 역시 재능이 무섭긴 무서웠다.

“난 아저씨 부모님이 뭐하시는지 하나도 안 궁금해요. 왜 그걸 물어보실까?”

“그거야. 내 맘이지. 별생각 없어.”

“왜 그걸 멋대로 물어봐요?”

약간 더 높아진 날카로운 톤으로 대사를 읊는 혜수였다. 온몸에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나이 들면 그냥 무의식적으로 하는 말이야. 아무 생각 없이···.”

“흥···. 집안 사정이 어떤지 물어보고 내가 누군지 알아보려고 하는 거잖아요? 정작 내가 누군지, 관심 있고 잘하는 게 뭔지 하나도 모르면서?”

“하···. 미안하다.”

“정말 실례예요. 앞으론 그런 질문은 하지 마세요.”

내가 솔직히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약간 누그러진 음성으로 담담히 말하는 혜수였다.

‘와! 무섭다.’

가진 재능이 많아서 운명이 이상하게 바뀌었지만, 역시 혜수는 연기를 해야 하는 천생 배우였다. 거기다 음악 영화니 더더욱 최고였다.

정극 연기를 훌륭하게 해낸 혜수를 보며 주영진 대표가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레슨도 안 받았는데 이 정도라는 사실에 상기된 표정이었다.

사실 내가 이 드라마를 고른 이유가 바로 대사 때문이었다.

혜수의 마지막 대사는 딱 주대표에게 하는 말이었다.

혜수가 관심 있어 하는 것도 모르면서 매니지먼트를 제대로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소속 연예인과 장기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억눌러서는 안 된다. 물론 좋은 쪽으로 가도록 약간 강제하는 것도 있어야 하지만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도 인간에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주 대표의 얼굴을 슬쩍 보니 약간 찔리는 모양이었지만 아직도 못마땅한 눈치였다.

“으음···. 그래도 탈락하는 리스크까지 져야 하는 거면···.”

그는 말을 흐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아무리 그래도 주 대표는 현재 YN의 최고 스타인 블랙소울에 어떠한 피해도 줄 수 없다는 태도였다.

“제가 연애 안 하는 조항을 2년 더 연장할게요.”

헉···. YN은 이런 조항도 있구나. 우리 시후 큰일 났네. 불쌍해서 어쩌지?

“으음···.”

이것도 안 먹히는 것 같았다. 정말 외모와는 다르게 신중한 타입인 주영진 대표. 과거 힙합을 하던 래퍼의 모습과는 너무나 상반된 이미지였다.

‘안 되겠군. 마지막 카드를 꺼내야겠어. 이게 안 되면 접을 수밖에···.’

나는 주 대표에게 최후의 방법을 제시했다.

“대표님. 우리나라에서 걸그룹 인기투표를 하면 누가 일등일까요?”

“당연히 블랙소울이죠. 그런 걸 왜 묻습니까?”

“제가 제작진과 상의해서 인기투표로 뽑는 멤버를 두 명 넣겠습니다.”

“인기투표?”

“네. 선발 방법을 뮤직넷 PD와 대강 이야기를 하긴 했습니다. 서바이벌에서 전문 심사위원단이 평가해 멤버를 뽑을 건데요. 마지막 인기투표에서 연예인, 비연예인 각각 1위를 한 사람은 심사위원단 판정과 무관하게 뽑히는 거로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인기투표 1위는 살아남는 거로 한다?”

“맞습니다.”

사실 시청자들의 참여도 중요하니 한 명씩만 뽑는 거로 조정을 해보는 게 좋을 듯싶었다. 사실 이철승 PD도 심사위원들의 의도만으로 멤버가 뽑히는 걸 불안해하고 있었다.

“휴···. 그럼···.”

*  *  *

나는 주영진 대표와 헤어지고 나서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 휴대전화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철퍼덕 안마의자에 앉았다.

‘휴···. 진짜 못 해 먹겠네. 왜 캐스팅 디렉터를 쓰는지 알겠는데?’

그냥 혼자 책상에 앉아서 글만 쓰는 게 훨씬 편한 거 같았다. 그래도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었다. 이제는 온전히 방송 촬영만 잘하면 될 것 같았다.

‘아···. 시원하다.’

나는 안마의자에 앉아 피로를 풀고 있었다. 피로가 풀리듯 방송도 잘 풀리면 좋으련만···.

예선 접수 마감이 끝나고 며칠이 지났다. 제작진은 총 3,000명의 지원자 중 100명을 뽑았다고 했다. 선발에 들어간 시간은 총 2주! 1차 심사를 한 제작진들은 벌써 초주검이 된 상태라고 했다.

일부러 지원서에 요구하는 것도 많고 짧은 접수 기간이었음에도 엄청난 수의 지원자가 몰린 것이다.

‘후후···. 역시 이준형의 힘이구만?’

스스로 대견함을 느끼며 2차 본선 심사를 하기 나유정과 함께 방송국으로 향하는 길이였다.

제작진들은 100명의 1차 통과자 중에서 30명을 뽑는 내용을 방송 1화로 찍을 예정인 듯했다.

우리는 신입 PD의 안내를 받아 녹화장으로 들어섰다.

“이곳을 통과하면 바로 녹화가 시작됩니다.”

그는 어두운 통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벌써요?”

신입 PD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더니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제 갈까요?”

나는 나유정과 함께 노란 조명이 켜진 어두운 통로를 걸어갔다.

두근두근···.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내 심장이 마구 뛰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100명 안에 들었을지 궁금해 미칠 것만 같았다.

“준형 씨. 얼굴 왜 그래요?”

“응? 뭐가요? 표정 이상해요?”

“그 표정 또 나왔어요. 준형 씨가 자주 하는 표정인데···.”

“나 또 놀리려고 하는구만? 어디 한번 말해봐요.”

“그 왜 탐욕스러운 표정 있어요. 스크루지 영감 같은···.”

“떽! 영감이라뇨! 멀쩡한 총각한테 무슨 망발을 하세요.”

“헤헤···. 이제 긴장 풀렸어요? 우리 녹화 재미있게 해봐요. 오랜만에 예능이라 기대되네요.”

“그래요. 잘합시다.”

드디어 통로 끝에 다다랐고 환한 무대 조명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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