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여드는 인재들 (1)>
나는 뮤직넷의 광고를 보고 있었다. 이철승 PD의 재촉으로 급하게 찍은 광고였는데 막상 내용을 보니 어그로가 적당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화면에는 지금까지 뮤직넷이 해오던 서바이벌 오디션들의 역사가 빠른 편집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K 스타 오디션부터 최근 아이돌 메이커까지···. 그리고 1등이 발표되는 순간과 지금껏 서바이벌 오디션으로 배출한 스타의 활약상이 나오고 있었다.
[뮤직넷의 역사를 이을 새로운 오디션이 열린다.]
[뮤지컬 영화 캐스팅을 위한 신개념 서바이벌 오디션! 흥행을 위해 업계의 최고들이 뭉쳤다.]
자막과 함께 나부터 등장하고 있었다.
“윽···. 역시 내가 처음이네. 역시 인지도가 문제야.”
화면에는 팔짱을 끼면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마치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에 나오는 대선 후보들의 어색한 모습 같았다.
“역시 TV로 내 모습을 보는 건 적응이 안 되네.”
[슬기로운 덕질생활, 나만의 세계를 전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최고의 신인 작가 이준형!]
나의 모습은 빠르게 사라지고 다음 자료화면으로 나유정이 출연한 작품들이 요약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보여준 미쳐가는 메소드 연기, 슬기로운 덕질생활에서 아이돌 사진집을 껴안고 미소지으며 바닥을 뒹구는 모습, 나만의 세계에서 피가 튀는 칼부림 액션, 그리고 마지막으로 체육관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는 멋진 모습이 화면에 등장했다.
“오! 역시 멋지네.”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나만의 세계의 열연으로 대한민국의 역대급 캐릭터를 창조하는 최고 인기 배우 나유정!]
“뭐야. 왜 이렇게 길게 나와.”
나유정 다음으로 회사 녹음실에서 급하게 찍었던 케이의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오늘날 세계적인 케이팝 슈퍼스타인 슈퍼노바를 있게 하였으며, 대중매체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뛰어난 패션 감각과 외모로 유명한 천재 작곡가 겸 프로듀서 케이!]
케이는 패션 감각을 자랑이라도 하듯 퇴폐적이고 요란한 옷을 입고 작곡을 하는 것처럼 연기하고 있었다.
분명 내가 옆에서 몇 번이나 NG를 내는 걸 보고 엄청나게 비웃었는데 정작 편집된 화면으로 보니 내가 등장하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임팩트가 있었다.
화면에 나온 케이의 모습은 실제보다 더 잘 나오고 있었다. 확실히 모델 같은 마른 체형이라 그런지 화면에는 카리스마 있게 연출됐다.
“하여간 뮤직넷 녀석들 편집기술 하나는 알아줘야 해.”
[뮤지컬 영화 출연을 위한 서바이벌을 위해 최고의 드림팀이 뭉쳤다. 차세대 스타로 거듭날 다시없는 기회! 연예인, 비연예인을 가리지 않고 선발하는 신개념 오디션!]
[스타가 되고 싶은 사람은 놓칠 수 없는 기회! 1차 예선 접수 기한은 1월 10일! 접수 방법은 뮤직넷 홈페이지를 참조하세요.]
그렇게 30초짜리 광고가 끝이 났다.
나도 다이어트를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설렁설렁했었는데 화면에 나온 적나라한 내 모습 보니 경각심이 팍팍 솟아났다.
‘제길···.’
“이철승 PD가 마음을 바꿔 먹었는지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네요.”
회의하고 있던 홍보팀 김정웅 팀장이 영상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최고의 멘토들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냥 시간 때우기용으로 만들 순 없겠지.’
마침 뮤직넷 이 PD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이철승입니다. 광고 보셨습니까?]
“네. PD님 아주 잘 봤습니다. 아 참. 그리고 이거 스피커폰입니다. 지금 홍보팀하고 회의 중이거든요.”
[네. 거기도 바쁘시겠죠. 대표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어제부터 뮤지컬 서바이벌 인터넷 접수를 시작했는데요. 반응이 상당히 뜨겁습니다.]
“정말요? 지원자가 많나요?”
[광고에 대표님과 유정 씨 그리고 케이를 노출한 게 효과가 아주 컸던 것 같습니다.]
“어휴···. 말도 마세요. 케이가 아주 난리를 치더라고요. 자기 얼굴 팔린다고 하면서···.”
[어차피 방송 나오시면 팔릴 텐데···.]
“모르겠습니다. 방송에서 말을 잘 안 하려고 하는 거 같던데 강제로 시켜야죠. 뭐.”
[제출해야 할 서류나 영상들이 많은데도 일반 참가자들의 숫자가 상당히 많습니다. 아무래도 뽑는 인원이 많다 보니 지원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겠네요. 그런데 연예인 전형은 어떻습니까?”
[연예인 전형도 예상보다 지원자가 많습니다. 초반에는 분위기를 보면서 지원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과감하게 지원한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인원이 많이 몰릴 것 같아 지금부터 내부적으로 예선 심사를 진행 중인데요. 연예인 전형에서 깜짝 놀랄
사람들이 지원했더라고요. 대표님은 나중에 아시게 될 겁니다.]
“일단 다행이고요. 심사 진행이 꽤 빠르군요? 좋은 인재들이 많이 지원하면 좋겠네요. 그 깜짝 놀랄 지원자들은 아직 공개할 수 없는 거겠죠?”
[대표님. 지원자들은 첫 촬영 때 공개할 예정이니까 기대해주세요. 저희도 멘토님들의 놀라는 리액션을 찍어야 할 거 아닙니까?]
“그 정도로 흥했나 보군요.”
[하하! 비밀입니다. 그럼 일정이 나오는 대로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2월부터는 절대 다른 일정 잡으시면 안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멘토 3명 모두 별다른 일정이 없습니다.”
[믿겠습니다. 대표님. 나중에 뵙겠습니다.]
“통화를 들어보니 지원자들이 꽤 괜찮은 모양이군요”
김정웅 팀장도 빡빡한 방송 일정에도 불구하고 준비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안심하는 눈치였다.
“제작진들이 1차 예선 심사를 하는데 지원자가 많아서 애를 먹는가 봅니다. 잘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안심해도 되겠네요.”
“대표님. 윤하영 씨와는 연습생 계약을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춤과 노래 레슨을 시작했습니다.”
“빠르게 잘 처리했군요. 홍보팀에게 이런 거 시켜서 미안합니다. 조만간 인원 충원을 할 테니까 조금만 참아주세요.”
“괜찮습니다. 대표님.”
“아···. 추가로 윤하영 씨 피부관리와 PT 스케쥴 나왔나요? 이제 녹화가 한 달도 안 남았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관리해서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야 합니다.”
“어제 1차로 피부관리를 받았고 레슨 끝나고 헬스클럽에서 PT 강습도 받을 예정입니다.”
“좋군요. 서바이벌은 일반형 전형으로 지원하는 거죠?”
“네. 대표님 6층 미니 스튜디오에서 프로필 영상을 찍었고, 7층 연습실에서 댄스 영상, 녹음실에서 노래 부르는 영상까지 모두 촬영하고 편집까지 깔끔하게 했습니다. 이제 지원서만 넣으면 됩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내 생각에는 회사의 철저한 관리를 받은 윤하영은 확실하게 달라질 확률이 높아 보였다.
“오케이! 수고했습니다.”
홍보팀은 사무실로 돌아가고 나는 대표실인 내 사무실로 들어가 워드프로세서를 띄웠다. 천외딸을 플랫폼에 연재하기 위해 분량을 쌓고 있었는데 이제 거의 150화 정도를 비축한 상태였다.
나유정은 톡으로 매화마다 여성으로서 글을 읽을 때 걸리는 부분이 없는지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매일 보지 않더라도 항상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똑똑···.
누군가가 내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예···. 들어오세요.”
딸깍.
방문이 열리고 지원팀 순규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표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대표님을 뵙겠다고 하십니다. 예전에 아무 때나 연락을 주라고 했다고 하네요.”
“제가요? 음···. 뭐지? 일단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잠시 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 나를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이제 대표님이라고 불러야겠네요?”
“어? 다솜 씨?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그녀는 7년 차 걸그룹 프렐류드의 메인보컬 다솜이었다.
“연준이가 알려줬어요. 저 연준이랑 학교 동창이거든요.”
“아···. 같은 예고 동창이구나. 맞다 연준이가 3학년 때 예고로 전학 갔었는데···.”
연준이가 올해 이제 21살이지? 와···. 프렐류드가 데뷔한 지 6~7년은 된 거 같은데 도대체 몇 살에 데뷔한 거야? 14살?
“혹시 연준이랑 어떤 사이에요?”
“킥킥···. 누가 매니저 출신 아니랄까 봐. 저흰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괜히 연준이 건드려서 팬들한테 테러당할 일 있어요? 걔 요즘 보니까 완전 국제적으로 놀고 있던데···.”
“그냥 농담입니다. 농담.”
나는 농담을 하며 그녀를 소파에 앉게 했다.
“와! 그런데 대표님 사무실 진짜 좋네요. 무슨 영화에 나오는 부잣집 아들 방 같아요. 아까 올라오면서 회사를 둘러보니 층도 3개나 쓰고 계시던데···.”
“제가 회사를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무리를 좀 했습니다.”
“흐음···.”
다솜은 작업실 겸 사무실이 신기한 듯 사방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살짝 꺼내서 포털 사이트에서 프렐류드를 검색했다.
[프렐류드 1월부로 계약 종료, 멤버와 소속사 모두 재계약 의사 없어. 결국 해체하나?]
‘그렇구만. 프렐류드가 해체하는가 보네. 그래도 소속사도 꽤 역사가 깊은 회사고 인지도 있는 고참 걸그룹인데 이렇게 기사가 없다니···. 이거 참 ’
“몇 달 전 방송국에서 봤던 게 기억나네요. 그런데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여기까진 어떤 일로 오셨어요?”
나는 프렐류드의 해체 소식을 모르는 척하며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저 대표님 회사랑 계약해도 될는지 염탐하러 왔습니다. 헤헤···.”
다솜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반달 눈웃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허~ 이런 맹랑한 아가씨를 봤나. 그냥 솔직하게 직진이네.’
그녀의 미소를 보고 그때 내가 명함을 건넸던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 그녀는 성대 혹사로 아우라에 문제가 보이기 시작할 때였다.
“솔직하시네요. 프렐류드는 해체하는 건가요?”
“어? 맞아요. 대표님도 아시는군요? 저희 팬이 아니면 잘 모르시던데···.”
“전 팬이니까요.”
오늘도 역시나 거짓말이 술술 나오고 있었다.
“와···. 정말요? 그냥 하시는 말씀 아닌가요?”
“그럴 리가요. 예전부터 팬 맞습니다. 다솜 씨 그런데 목은 괜찮으세요?”
“네?”
넌지시 건넨 말에 다솜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작년부터 목 상태 안 좋았잖아요. 저번에도 뭔가 이상이 있으면 연락해도 된다고 분명히 말씀드렸는데···.”
“저, 정말 저희 팬 맞는 건가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팬이라면 그 정도는 눈치를 채야죠. 어때요? 이 정도면 확실하죠?”
그녀의 아우라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스카우터를 켜보니 다솜에게서 진한 주황색 아우라가 강력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크···. 역시 프렐류드의 메인보컬이라 이건가? 하영 씨가 보컬 쪽에 약간 기울어진 능력치라면 다솜이는 노래와 연기가 완벽하게 밸런스를 이룬 상태구나.’
다만 메인보컬로 노래를 많이 소화해서 그런지 역시나 아우라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처음 봤을 때보다는 그 떨림이 줄어든 것 같았다.
“요즘 활동을 하지 않아서 목이 좀 나아졌죠?”
“헉···. 대표님 진짜 제 팬이세요? 저 작년 말부터 행사도 안 하고 거의 숙소에만 있어서 목 상태가 그나마 좋아졌어요.”
“팬이라니까 자꾸 그러시네. 왜 그렇게 사람을 못 믿어요. 하하···.”
“그런데···. 다솜 씨는 소속사에서 안 잡던가요? 저 같으면 솔로라도 계약했을 것 같은데···.”
“회사에서도 제 목 상태가 안 좋다는 거 알아요. 그리고 저보다는 은하 언니랑 솔로 계약을 한다고 하더라구요.”
‘은하라···. 프렐류드 센터로군. 웹드라마로 떴다는···.’
“다솜 씨 회사 대표님이 도대체 누구시죠? 판단력이 진짜 떨어지시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제 미끼를 문 고기를 낚는 타이밍이었다. 그녀는 세심한 성대 관리와 자신감 회복이 중요했다. 다솜은 내가 쓴 차기작의 실제 스토리를 몸소 몇 년간 체험한 멤버였다.
노래를 도맡아 하며 궂은일을 다 했지만, 팀의 센터만 CF를 찍고 드라마에 출연하고 재계약까지 하는 씁쓸한 현실···.
나는 이때다 싶어 상체를 앞으로 숙이면서 눈에 힘을 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무게를 잡자 그녀도 긴장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흠···. 아무리 감이 떨어진 대표님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밀어줄 멤버를 착각한단 말입니까? 정작 능력 있는 인재는 몰라보고 말이죠. 대표로써 실격이네요. 실격!”
“아, 아니에요. 은하 언니 인기가 좋은 건 사실이라···.”
“노노! 처음부터 센터는 다솜 씨였어요. 괜히 노래를 잘하는 바람에 이상하게 꼬인 거죠.”
“.........”
그녀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말한 사실이 정말이냐는 듯 의심에 가득 찬 눈을 하고 있었다.
“이번 뮤직넷에서 하는 서바이벌 방송에 나가보는 게 어때요? 거기서 숨겨왔던 능력을 보여주는 겁니다. 저는 다솜 씨가 지금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 정말요?”
“물론이죠. 제 눈은 틀린 적이 없습니다.”
누가 들으면 미친 사람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인 걸 어떡한단 말인가?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하는 법! 다솜의 표정이 붉게 상기되는 게 느껴졌다.
후후···. 거의 넘어왔군. 이제야 인재들이 하나둘씩 모여드는구나. 이제 마지막으로 블랙소울의 혜수만 출전시키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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