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정도면 되겠죠? (2)>
“아니···. 대표님. 잠깐만요. 프로듀서 케이라면 빅샷 소속 아닌가요”
“아닙니다. 저희 기획사 식구가 맞습니다.”
“그, 그렇군요.”
“그리고 이번 제 차기작인 뮤지컬 영화에 음악 감독으로 참여할 거고요.”
“음악 감독이요?”
“네. 벌써 곡도 만들었습니다.”
“허···.”
이철승 PD는 나유정과 프로듀서 케이라는 결정타를 맞고 거의 그로기 상태가 된 것 같았다.
“뭐 맘에 안 드시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는 휴대전화를 외투 주머니에 넣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 대표님. 말씀하다 말고 어디 가세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멍한 상태인 이 PD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나를 향해 물었다.
“아니 PD님이 관심이 없으신 거 같아서 JTVC에 한번 가보려고요.”
그는 엉거주춤 일어나 내 외투를 손으로 잡았다.
“에이! 대표님. 왜 그렇게 성격이 급하세요. 저는 아직 이야기 시작도 안 했는데.”
‘큭큭···. 역시···.’
솔직히 미친 라인업 아닌가? 아이돌 메이커도 이렇게 화려한 출연진을 내세우지 못했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세 배우 나유정!
슈퍼노바를 있게 만든 천재 프로듀서 케이!
쓰는 것마다 대박을 내는 최고의 신인 작가 이준형!
음. 마지막이 약간 처지는 감이 있긴 한데 어쨌건 나는 회사의 대표가 아니겠는가?
연기, 음악, 시나리오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꿈의 무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빠밤!
“저기요? 대표님? 무슨 생각하세요?”
어이쿠 깜짝이야.
“아.. 여기서 JTVC가 얼마나 걸리는지 생각해보고 있었습니다.”
“잠깐만요. 대표님. 우리 긍정적으로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저희가 있는 자원을 모두 갈아 넣어서 아이돌 메이커 못지않게 성공시켜보겠습니다.”
“정말이십니까?”
“저. 이철승. 한번 한다고 하면 하는 놈입니다. 이 정도면 반항 래퍼는 좀 미루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흐음···. 그럼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아서 이 PD와 세부 사항을 논의하기로 했다. 결정된 사항은 아래와 같았다.
1. 멤버 수는 내가 제안한 대로 17명을 선발한다.
2. 걸그룹 전형과 일반 전형으로 나눠서 선발한다.
3. 프로그램의 예선은 제작진들과 내부심사위원들이 진행하며 본선부터는 멘토들이 참여해서 인재를 선별한다. 결선은 총 30명의 인원을 선발하여 진행한다.
4. 최종 선발은 심사위원들이 결정한다. (조작사건 여파)
5. 1월부터 예선을 시작하여 3월에 방영한다. 10화 이내로 촬영한다. 방영은 총 두 달을 넘기지 않는다. 등등···.
일단 더 세부적인 내용은 추후 협의하기로 했다.
“휴···. 일단 대충 뼈대는 세운 것 같은데 프로그램 컨셉은 어떻게 가실 건가요? 가혹하게 굴리는 아이돌 메이커처럼 아실 거예요?”
이철승 PD는 역시 보고 배운 게 서바이벌인지 아예 처음부터 그거부터 떠올리는 것 같았다.
“일단 뮤지컬 서바이벌을 한다는 기사가 멋대로 발표되긴 했는데요. 사실 아이돌 메이커와 같은 방식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나는 오히려 흔한 경쟁보다는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의적이라고 하심은···.”
“서바이벌이지만 경쟁보다는 육성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 됐으면 합니다. 관찰형 예능처럼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겁니다. 솔직히 걸그룹 전형이라면 아이돌 메이커 같은 경쟁이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일반 전형으로 선발된 멤버들은 경쟁할 실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분명히 시청자의 흥미를 끌지 못할 겁니다.”
“으음.”
분명 수준 미달의 서바이벌 경연은 시청률 하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뿐이었다. 실제로 그것을 증명한 오디션도 꽤 있기도 했고···.
“그건 제가 해봐서 더 잘 압니다. 정말 참혹하죠. 편집으로 살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런 걸 도입하면 어떨까요?”
“어떤···.”
* * *
나는 이철승 PD와 작가들과 마라톤 회의를 마치고 기진맥진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퇴근 후 부모님 결혼기념일 선물 때문에 형과 동네 별다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매장으로 들어갔다.
커피를 주문하려고 카운터에 가보니 역시나 윤하영이 오늘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 작가님. 안녕하세요. 매장은 오랜만에 오시는 거죠?”
윤하영은 오랜만에 얼굴을 봤는데 역시나 활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요즘은 글을 써서 월 50~100만 원 정도 버는 모양인지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네요. 예전엔 자주 왔는데 요즘은 바빠서 그런지 시간이 안 나네요.”
“바쁘시겠죠. 평소 드시던 거 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곧 끝날 시간이죠? 저랑 잠깐 이야기 좀 해요.”
나는 커피를 마시며 형이 올 때까지 멍하니 앉아 사람들을 관찰했다.
‘항상 이 자리에 앉아 글을 쓰다가 지치면 이러고 놀았었는데···.’
“작가님? 뭐 하세요?”
“아! 하영 씨. 여기 앉아보세요. 할 말이 있습니다.”
나는 독립을 하면 윤하영과 계약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일하는 별다방에 들른 김에 이야기를 꺼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네. 갑자기 분위기 잡으시니 좀 걱정되는데요?”
하영 씨가 미소를 지으며 앞에 앉자 나는 아우라 스카우터를 켰다.
‘오! 역시···.’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주황색 아우라는 역시나 강렬했다. 왜 이런 인재가 별다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질도 없는 글쓰기를 붙잡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영 씨. 혹시 기획사에서 연습생 같은 거 한 적 있나요?”
“네? 그걸 어떻게.”
딱 보면 알지. 이런 아우라를 가진 사람이 드문데 그냥 일반인처럼 살았을 리 없었다. 예전에 하던 일이 잘 안 됐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제가 아무래도 기획사 매니저 출신이다 보니 눈썰미가 좀 있죠.”
물론 헛소리였다. 그냥 아우라가 보이는 걸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아···. 실은···.”
윤하영은 JB Ent. 걸그룹 연습생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집안에 일이 생겨 더는 지원을 받지 못했고 연습생 생활을 관두고 어린 동생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집안일이 생겼다는 건 핑계구요. 번번이 최종 선발 조에서 탈락을 하는 바람에 방출을 당했어요. 다른 소속사로 옮기려고 했는데···. 집의 상황이 안 좋다 보니···.”
그녀의 이야기는 이 바닥에서 뻔하디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었다. 연예계는 이렇게 재능있는 인재들이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무서운 곳이었다.
“탈락 사유가 뭐래요?”
“아···. 그게···.”
“괜찮아요. 하영 씨. 말씀해 보세요.”
“애매하다고 하더군요.”
“애매하다고요? 뭐가요?”
“외모가요.”
아! 그런 건가? 하긴 JB Ent.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은 그 정도로 인재가 흘러넘치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저 정도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인재를 외모 문제로 방출을 시켜버리다니?
그녀는 분명 일반인보다는 예뻤지만, 연예인으로 특출난 외모는 아니었다. 이런 것은 인재가 차고 넘치는 걸그룹 명가에서 충분히 탈락할 수도 있는 사유이기도 했다.
예쁘긴 한데 무쌍에 약간은 밋밋한 얼굴이라···. 꾸미면 상당히 괜찮을 것 같은 외모 같은데···.
“저는 이상한 점을 못 느끼겠는데요.”
사실 JB만 아니라면 어디서든지 충분히 데뷔할만했는데 하필 그때 집안이 기울어버리는 일이 발생한 모양이다.
“아니에요. 어렸을 적 저는 정말 제가 잘난 줄 알았는데 우물 안의 개구리였어요. 정말 예쁜 데 실력도 좋은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지 처음 알았어요.”
“흐음···.”
내가 보기엔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윤하영 정도면 출중한 인재였다. 다만 현재의 자신의 상황 때문인지 약간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여기 온 목적을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창업을 하고 차기작을 썼고 그것 때문에 방송까지 한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당신이 거기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해줬다. 그리고 나와 계약해서 서바이벌에 출연하면 어떨지 넌지시 물어봤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 놀라다가 고민에 빠진 듯했다.
“작가님이 저의 어떤 면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거든요.”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렵게 입을 여는 윤하영이었다.
“역시 그게 문제였군요.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합니다.”
“간단하다고요?”
“네. 일단 저랑 계약하고 작가 사무실에 나와서 글 쓰는 것을 배우세요. 선인세를 먼저 드릴 테니 회사에서 연습도 하고 글을 쓰며 작가로서 역량을 키우는 겁니다. 우리 회사에 글을 봐줄 대단한 사람이 두 명이나 있거든요.”
두 명 중의 하나는 나였고, 다른 하나는 괴작판독기 케이였다.
그녀는 지금도 다소간의 수익이 나고 있는 작가였기 때문에 나와 괴작판독기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고치면 지금보다 재미있는 글을 써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그녀에게 보라색 아우라는 없었지만, 세상의 모든 작가에게 이런 아우라가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내가 본 방송사의 모 PD는 재능이 없음에도 천재 PD보다도 더 높은 직위에 있기도 했으니까.
특히 웹소설이면 훈련을 통해 수익을 내는 글쓰기 기술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일단 한번 오셔서 직접 경험을 해보세요.”
케이한테는 감평을 좀 살살 해달라고 부탁해야 할 듯싶었다. 비록 보라색 아우라가 없긴 하지만 우리 회사 1호 작가 아니던가!
나는 그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J&J의 좋은 점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연기력에 소질이 있다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릴 겁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요즘 좀 활동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 그렇죠?”
“맞아요. 혹시 연기 레슨은 받아보신 적 있으신가요?”
“연습생일 때 잠깐 받아본 적 있어요. 그럭저럭 괜찮았던 거 같기도 하고···.”
‘괜찮은 수준이 아니야. 이렇게 아우라가 선명하다고···.’
윤하영은 붉은빛이 도는 진한 주황색 아우라의 소유자. 노래가 가장 강점이긴 하지만 연기력도 만만치 않은 인재였다.
“그럼 일단 회사에 나오세요. 계약하시고 연습하면서 준비하도록 합시다. 물론 글도 꼼꼼히 봐줄 거예요.”
“네!”
“그런데 소속사 연습생이라도 서바이벌에서 특혜 같은 건 없을 겁니다.”
“네, 네···.”
그녀는 내가 쏟아내는 말에 정신을 못 차리는 듯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 순간.
“준형아!”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형! 왜 이렇게 늦었어?”
“주차할 곳을 못 찾아서 한참 헤맸어.”
“그런데 누구···.”
갑작스러운 한 남자의 등장에 윤하영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묻고 있었다.
“아···. 인사해요. 하영 씨. 이쪽은 제 친형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윤하영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이준호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형은 하영 씨를 보고 인사를 한 후 자연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고 있었다.
“형! 뭐 하는 거야. 왜 그렇게 쳐다보고 그래. 민망하게···.”
“아! 미안합니다. 제가 오늘 상담을 많이 하는 바람에 무의식적으로 버릇이 나왔네요.”
“네?”
“우리 형 직업이 성형외과 의사거든요.”
“아아···. 그러시구나.”
형은 들고 있던 가방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간단한 대화를 나누다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형에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연습생 계약을 하는 거라고?”
“응. 내가 원석을 발견했거든.”
“아, 아니에요. 작가님이 괜히 저 놀리시는 거예요. 예전에 저 글 쓰는 거 알려주실 때 얼마나 구박하셨는데요.”
“제가요? 하하···.”
한 시간 정도 수다를 떨었나? 우리는 이런 대화로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성형외과 의사시면 제 얼굴 견적이 얼마나 나올까요?”
“하영 씨 견적이요?”
“네. 저도 약간 콤플렉스가 있어서요.”
윤하영이 형을 쳐다보고 질문을 하자 형이 엄근진한 표정으로 폼을 잡기 시작했다. 상담하는 강남 성형외과 의사 선생님 같은 자세였다.
“하영 씨는 성형 같은 게 그다지 필요 없으신 분이세요.”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지금도 예쁜 편인데 무슨 얼굴에 손을···. 응?
자세히 보니 관리를 좀 받아 젖살이 빠진다면 청순가련한 이미지가 극대화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에이···. 솔직히 말해보세요. 저 쌍꺼풀이 없어서 눈매 교정을 해보고 싶었어요. 교정받으면 괜찮을 것 같지 않나요? 전문가의 의견이 궁금해서요. 아···. 이거 상담료 드려야 되나요?”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굳이 하신다면···. 윽···.”
나는 테이블 아래로 형의 정강이를 찼다.
“하영 씨. 하영 씨는 성형 같은 거 필요 없다는 걸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
그렇게 뮤직넷 뮤지컬 서바이벌에 예선 접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CA 미디어 계열 방송사에서 일제히 광고 방송이 뜨기 시작했다.
[뮤직넷의 야심작 뮤지컬 서바이벌! 인터넷 예선 접수 드디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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