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17화 (117/263)

< 이 정도면 되겠죠? (1)>

케이가 만든 노래는 뮤지컬의 대미를 장식하려고 작정하고 만든 것 같은 곡이었다.

성스럽고 웅장하게 시작하는 성가대에 맞춰 부르는 러브원의 청량한 노래.

그리고 점차 음이 고조되며 가사를 그루브하게 주고받는 성가대 보육원의 꼬마와 러브원의 각 멤버들!

그리고 빠른 드럼 비트와 어울려 화려하게 연주되는 각종 현악기의 향연. 그리고 폭풍처럼 터지는 러브원 멤버들의 가창력.

아직 보컬이 없었지만 노래 자체를 워낙 잘 만들어서 그런지 내 머릿속에서는 모든 장면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하아···.”

“어때요? 괜찮아요? 이거 시스터 액트 I’ll follow him 느낌을 한국적인 걸그룹 스타일로 만든 곡인데···.”

나는 마지막에 화려하게 터질 장면을 생각하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이런 대단한 곡을 만든 케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너무 곱상해서 스타성이 엿보였으나 그의 음악적 능력에 비해서는 아주 작은 재능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최고다.”

“좋죠?”

“좋은 정도가 아니야. 이건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이야. 오늘 들려준 노래들은 네가 썼던 어떠한 곡보다도 훌륭했어.”

정말이었다. 극장에서 이 마지막 부분을 보고 가슴이 울렁거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너무 신나고 격정적이었다.

‘명곡이다. 명곡.’

슈퍼노바에게는 미안하지만, 소속사는 왜 이런 케이의 진정한 실력을 끌어내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넌 이런 곡을 만들 줄 알면서 왜 작곡을 안 하는 거야?”

정말 이해가 안 가서 물어보는 말이었다.

“왜 그룹들이 음악적 견해차로 해체되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거기다 회사까지 나서서 아주 그냥 상황을 엉망으로 만들길래. 짜증이 좀 났죠.”

‘엉망은 아니었는데···.’

솔직히 괜찮긴 했다. 케이의 기준이 쓸데없이 높았을 수도 있다. 딱 보니 몰두를 하면 도를 지나치게 되는 스타일인 것 같다.

내가 몇 년간 이 녀석 때문에 고생했으니 무의식 영역의 그에 관해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는 셈이었다.

“아무튼, 네가 만든 것 중에는 최고인 거 같은데?”

“그래요? 내가 처음으로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만들어서 그런가 봐. 스토리에 맞는 음악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니까 곡이 술술 써지는 거 있죠.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잘했다. 그런데 총 4곡이야?”

“맞아요. 제가 다작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이것도 많이 쓴 거예요. 추가로 필요한 곡은 다른 작곡가한테 얻는 게 어때요?”

“그래. 그러지 뭐. 이렇게 메인 곡들이 빵빵해졌는데 다른 곡들은 내가 알아서 구할게.”

아무래도 쓰리콤보나 다른 작곡가에게 연락을 돌려봐야 할 것 같았다.

“형. 이거 가이드 보컬이라도 입히면 좋겠죠?”

“아무래도 그렇겠지? 서바이벌 방송에도 나와야 하고···. 그냥 음악만 나가기도 이상하잖아.”

“혹시 누구 아는 사람 있어요? 나는 예전에 회사에서 다 알아서 해줘서 아는 사람이 없는데?”

케이의 말을 들은 나는 DJ Nec을 떠올렸다. 분명히 병춘이라면 가이드 보컬을 잘하는 사람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일단 내가 한번 구해볼게. 아무튼, 수고했다.”

“고마워요. 형. 실력 괜찮은 사람으로 구해야 될 거야. 노래가 상당히 어렵거든요? 멤버들이야 연습을 많이 시키면 되는데 가이드 보컬은 악보 보고 몇 번 만에 불러야 하니까···.”

“오케이! 알았네. 아! 네가 만든 곡 좀 보내줘라.”

“유출 안 되게 조심해요. 형.”

“그래. 나 간다. 진짜 진짜 수고했다.”

“오···. 세계적인 작가에게 인정을 받으니 기분이 좋은데?”

“내가 누굴 인정하고 평가하냐. 천재 작곡가님이 그냥 주는 대로 쓰는 거지. 하하···.”

그렇게 나는 수고한 케이를 칭찬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  *  *

다음날

나는 뮤지컬 서바이벌 방송에 대한 실무 협의를 하기 위해 뮤직넷으로 출발했다. 홍보팀에 김정웅 팀장과 조아린 대리가 있었지만, 이 프로젝트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내가 전부 조율을 했기 때문에 내가 가는 게 편했다.

회의실로 올라가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담당 PD로 보이는 남자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나를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이철승 PD님?”

“안녕하세요. 이준형 작가님이시죠? 아···. 이제 이준형 대표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이야기 들으셨군요?”

“네. 본사에 다이렉트로 불려가서 갑작스럽게 통보받았습니다.”

반겨줄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정작 담당 PD란 사람이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어라? 좀 이상하네? 기훈이 형이 분명 전폭적으로 밀어줄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PD님 죄송한데요. 본사에 가셔서 뭘 어떻게 들으신 거죠?”

“뭐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일단 기사가 나갈 테니 한번 확인해보고 기획한 사람이 찾아오면 이야기를 잘해서 시청률을 한번 올려 보라는 거였죠. 그리고 그게 뮤지컬 영화에 출연할 아이돌을 뽑는 그런 서바이벌 경연이라는 것도요.”

‘흠···. 듣긴 제대로 들었는데 뭐가 문제야?’

“뭐가 문제인지···.”

“뭐가 문제냐고요? 아니 아무리 본사면 다인 줄 아나? 우리는 시키면 하는 사람들이냐고요! 그것도 내부 아이디어 다 무시하고 갑자기 나보고 하라고 하면 기분이 좋겠어요?”

“왜 화가 나셨는지 알겠습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갔다 와서 다시 회의하시죠.”

“뭐. 그러세요. 전 담배 한 대 피우고 오겠습니다.”

나는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 계단으로 빠져나와 이기훈 전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전무님?”

[오! 대표님. 어떤 일로 저에게 전화를 주셨는지요?]

“지금 뮤직넷에 와서 담당 PD를 만나고 있는데요. 영···. 협조적이시지 않네요.”

[아···. 이철승 PD죠? 그 양반이 좀 그런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래도 실력 하나는 뛰어납니다. 잘 이야기해 보세요.]

“전무님. 지금 제삼자 어법을 쓰고 계시는데요. 이거 분명히 전무님께서 오케이 하신 겁니다. 그런데 시끄럽던 이슈 지나갔다고 안심하고 계시는 것 같으신데요?”

[하하! 대표님. 뭔가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제 선에서 해보자는 것에는 동의한 게 맞는데요. 뮤직넷 의견도 들어봐야 하는 거잖습니까? 저는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에 힘쓰는 사람입니다. 실무진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어요.]

“그렇다는 건 제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겁니까?”

[아니, 그런 소리는 아니고 내가 일단 대표님한테 아이템을 들어보니 괜찮은 것 같아서 실무진을 불러 제안한 겁니다. 아무래도 실무진들은 저번 조작사건이라던지 그런 트라우마가 남아있으니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어쨌거나 그럼 실무진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는 거네요? 그럼 자세한 이야기도 안 하시고 언론에 발표하신 거예요?”

[그거야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까 그랬던 거고···. 솔직히 내가 없는 말을 보도한 것도 아니고 다 우리가 한 말이잖아요?]

나는 그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어이가 없었지만 생각해보니 그 정도 이야기를 해 줬으면 담당 PD와 잘 풀면 될 것 같았다.

나도 높은 사람들하고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특권의식 같은 게 생겼나 보다.

“전무님. 일단 제가 잘 이야기해 볼게요. 그런데요···.”

[네. 말씀하세요.]

“일을 애매하게 처리해주신 거 같은데 이 프로그램이 잘 돼도 아예 관여하지 않겠다는 거로 이해하면 되는 거죠?”

[음···. 그러시던지요.]

이기훈 전무는 현재 프로그램에 누가 나오는지 모르는 상태다. 그냥 아이돌 메이커를 다시 하기 전에 시간 때우기용으로 써먹으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오케이! 차라리 잘됐다.’

나는 이기훈 전무와 통화를 종료한 뒤 화장실에 들러 손을 씻었다.

‘자자. 초심을 찾자. 이준형. 네가 언제 쉽게 간 적 있었냐? 그리고 네가 꿀릴 게 뭐가 있어? 설득하면 되잖아?’

나는 일단 사내 카페에 들러 따뜻한 커피 두 잔을 샀다. 그리고 회의실로 들어가니 담배를 피우고 온 이철승 PD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니 왜 이렇게 늦···. 아···. 고맙습니다.”

이 PD는 말을 하려다 내가 내미는 커피를 받고 바로 말을 바꿨다.

“물어보니 라떼를 드신다고 해서 사 왔습니다.”

“아···. 네···. 맞습니다.”

“지금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이제 차분히 이야기해 볼까요? PD님?”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이철승 PD의 능력이 보고 싶어 아우라 스카우터를 켰다. 역시 이 전무의 말대로 그에게서 보랏빛 아우라가 뚜렷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확실히 능력은 있네. 그런데 그만큼 자존심이 강하군.’

“PD님 혹시 예정되어 있던 프로그램이 뭐였죠?”

“반항 래퍼 2를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아···. 반항 래퍼요···. 그런데 일이 진행되거나 그런 건 아니었죠?”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제가 대표님을 만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허 참···. 이 양반 되게 깐깐하게 구시네.

하지만 나는 이런 스타일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스타일은 자기의 기준만 맞춰주면 이것저것 요구하지도 않고 상당히 편한 스타일이 많았다.

“지금 뭔가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저랑 본사의 높으신 분과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그분도 이야기를 들어보고 괜찮은 것 같다고 소개를 시켜주신 거고 PD님이 들어보시고 하기 싫으시면 그냥 퇴짜를 놓으시면 됩니다.”

나는 그에게 부드럽지만 강한 눈빛으로 그냥 퇴짜를 놔도 된다고 말을 했다.

“하기 싫으면 그냥 퇴짜를 놔도 된다?”

“네. 그러면 저는 JTVC랑 같이하면 되죠. 저번 드라마처럼요. 이거 잘하면 경쟁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겠는데요?”

내가 오히려 강하게 나오자 그가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JTVC도 한번 망해봐서 그렇지 오디션 방송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내 말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분명했다.

“크흠···. 일단 높으신 분께서도 괜찮다고 하신 아이템이니 어디 한번 들어나 봅시다.”

나는 이 PD에게 뮤지컬 서바이벌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을 해주었다.

그는 내 말을 유심히 듣는 것 같았다. 대강의 설명이 끝나자 그는 나에게 반문을 해왔다.

“그러니까 작가···. 아니 대표님 작품인 뮤지컬 영화에 출연할 배우들을 뽑는다는 거죠? 이거야 뉴스로 나온 이야기니까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고···. 기존 걸그룹 그러니까 전문가 그룹하고 나머지 그룹하고 둘 다 할당해서 뽑는 다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냥 경쟁했다가는 걸그룹 멤버들이 대부분 배역에 캐스팅될 거니까요.”

“그렇긴 하죠. 아무래도 신인이 들어가야 새로운 맛도 있고 보는 재미도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뽑는 인원수가 상당히 많네요?”

“네. 영화에 등장할 인물들이 꽤 됩니다. 주인공인 흙수저 걸그룹인 러브원 5명이 있고요. 조연인 라이벌 그룹도 5명입니다. 마지막으로 비중이 작은 조연들도 7명 정도는 필요하죠.”

“총 17명이군요.”

“네 총 3개의 그룹으로 선발할 예정입니다.”

“3개요?”

“먼저 주인공 그룹 5명은 A그룹으로 선발하고요. 걸그룹 3명, 비걸그룹 2명으로 선발할 예정입니다. 조연 그룹 5명과 비중이 작은 조연 그룹 7명은 적절히 섞어서 뽑을 거고요.”

내 말을 들은 이철승 PD는 머리가 복잡한지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흐음···. 새로운 시도라 괜찮긴 한데요. 뭔가 임팩트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제가 직접 출연을 하겠습니다. 사람 보는 눈이 좀 있거든요. 이슈도 좀 될 거고요.”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는 이 PD였다.

“그럼, 일 벌여 놓으시곤 출연 안 하시려고 하셨어요? 당연한 소리를 하고 계시네요.”

아···. 그런 건가? 까칠하긴? 나는 당연히 계획이 포함되어 있군. 그럼 이건 어떠냐.

“저희 회사에서 두 명 더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네? 대표님 회사요?”

그는 이게 무슨 소리지?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막 생긴 듣보잡 회사가 그럴 능력이 있는지 나 같아도 황당할 것 같았다.

“네. 쓸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허···. 그게 대체 누군데요?”

나는 그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랑 자주 기사에 나왔던 분입니다.”

“자주 기사에 나왔던 분이라면···. 으헉···. 설마?”

“네. 생각하시는 그분입니다. 유정 씨가 연기 멘토로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저, 정말이요?”

“네. 맞습니다.”

이제야 이철승 PD는 약간 흥분을 했는지 자세를 고쳐앉고 초조한 듯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여기서 안 한다고 하고 JTVC로 가버리면 큰 곤욕을 치를 수 있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아하하···. 에이···. 대표님. 너무 하신다. 그런 건 미리 좀 말씀해주시면 덧나십니까. 하하하···.”

“물어보시지도 않으셨는데요?”

“험험···.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어째 좀 씁쓸하다. 나유정이 나온다고 하니 금세 태세 전환을 해버린다.

‘하긴 유정 씨야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연예인 아니던가···. 나는 항상 옆에 있다 보니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을 뿐···.’

“그럼 다른 소속사 식구는 누구시죠?”

“저희 회사 프로듀싱을 담당하고 있는 작곡가 겸 프로듀서입니다.”

내가 작곡가라고 하자 흥분했던 표정이 싸하게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나만의 세계에 나왔던 배우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작곡가요? 그게 누군데요?”

“프로듀서 케이라고···.”

“예? 그게 무슨···.”

이철승 PD는 의자에서 반쯤 일어나다시피 하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왜 있잖아요. 슈퍼노바의 곡을 쓴 작곡가 겸 프로듀서요. 모르세요?”

“프, 프로듀서 케이요? 아니! 어떻게 그분이 대표님 회사에 있습니까?”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요. 어떻습니까? 프로듀서 케이까지 나오는데 이 프로그램을 마다하실 이유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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