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11화 (111/263)

< 격랑의 XM 엔터 (1)>

뜬금없는 나유정의 전화에 먹던 숟가락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싸움 났다고요? 누구랑 싸움이 나요? 유정 씨는요? 유정 씨는 괜찮아요?”

[저는 괜찮아요. 이기영 대표하고 이건호 씨랑 싸움이 났어요. 지금 식당에 경찰이랑 구급차 뜨고 난리 났어요.]

이건호? 이건호라면 ‘나만의 세계’에서 살인마 연기를 한 후 섭외도 끊기고 심하게 곤욕을 치르고 있었는데 회식 자리에 나타난 모양이다.

“경찰? 구급차? 상황이 심각한가요?”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안방으로 들어갔던 예원이가 문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어 주었다.

[와. 정말 이런 일은 처음 보네요.]

아닌 게 아니라 그녀 주위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유정 씨. 지금 거기 있지 말고 얼른 집으로 가세요. 제가 대성이에게 연락할 테니까요.”

[제가 벌써 불렀어요. 일단 자세한 것은 집에 가서 이야기해줄게요.]

유정 씨만 아무 이상 없으면 된다. 사실 무슨 안 좋은 일이 터진 줄 알았는데 유정 씨가 제삼자 화법을 쓰는 거로 봐선 그리 심각한 일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요. 저도 일이 대강 끝났는데 곧 서울로 출발할 겁니다. 집에 가면 연락주세요.”

나는 통화를 종료하고 허겁지겁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잠시 후 아버지의 식사를 도운 예원이가 거실로 걸어 나왔다.

“식사 다하셨어요?”

“응. 잘 먹었어. 너 요리 엄청 잘하는구나?”

“헤헤···. 생존 기술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아빠 일 나가시면 제가 알아서 밥을 차려 먹어야 했거든요.”

그녀는 쑥스러운 듯 머리카락을 비비 꼬면서 말을 했다.

“그때는 할머니가 계신 거 아니었어?”

“할머니도 아프셨어요. 그때도 제가 밥도 해드리고···.”

아···. 그래서 그렇구나. 어렸을 때부터 식사를 스스로 챙겨서···.

“혹시 서울 고모네 집에 있을 때 분식집에서도 일한 적 있니?”

“어머···.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고모가 저 요리 잘한다고 주방일 많이 시키셨어요.”

“허···. 아니 원래 네 나이면 주로 홀에서 서빙시키지 않아?”

“그게···. 제가 홀에 있으면 안 돼요.”

아···. 예원이 정도의 미모면 남자애들이 아주 난리가 났을 거다. 그냥 모르는 사장님이면 손님 많아진다고 좋아했겠지만, 고모라서 그런 꼴은 보고 있지 못한 것 같았다.

“아···. 왠지 이해된다.”

“헤헤···. 그리고 고모네 집 근처가 전부 식당가 먹자골목이라 여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요리에 빠져들게 됐달까? 근처 골목의 고깃집, 한정식, 일식, 중식, 이탈리안 레스토랑 등등···. 안 해본 게 없을 정도예요. 사장님

들께서 저 예뻐해 주셔서 요리 비법도 알려주시고···.”

‘와! 대박···.’

요리 쪽으로는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을 거 같은데? 황종원 선생님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넣어 달라고 해야 하나? 흐음···.

“아버지 식사 다하신 거지? 이야기 마무리 좀 하고 가야 할 거 같은데···.”

*  *  *

나는 예원이의 아버지와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사실은 ‘슬기로운 덕질생활’과 ‘나만의 세계’를 쓴 작가이자 테리우스의 매니저라고 밝히자 예원이 아버지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 나만의 세계를 너무 잘 봤습니다. 정말 감명 깊었어요. 이런 작가님인 줄도 모르고 제가 그만···.”

“아, 아니 됐습니다. 그대로 누워 계세요. 큰일 납니다.”

나는 그를 만류하며 재계약에 대한 말을 솔직하게 꺼냈다. 앞으로 1개월 동안은 예원이가 집에 있을 예정이고 한 달은 간병인을 붙여주겠다는 제안을 하자 오히려 예원이보다 좋아하는 부친이었다.

“제발···. 우리 예원이를 데려가 주세요. 정말입니다. 우리 애를 이렇게 살게 할 순 없어요. 부모가 돼서 도움을 못 줄망정 다리는 잡지 말아야죠.”

“아···. 다리를 잡다뇨.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예원이가 얼마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아무튼, 고맙습니다. 작가님.”

어우! 딸은 대표님, 아버지는 작가님···. 이거 처음 호칭부터 부담스러워지네···.

나는 인사를 하고 예원이네 집을 나섰다. 예원이는 주차장까지 나를 배웅했다.

“대표님. 나중에 봬요. 그리고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 넌 아버지 잘 보살펴드리고 한 달 후에 보자. 혹시 어려운 일 있으면 전화하고···. 알았지?”

“넵. 대표님 그런데요. 저 올라가면 유정 님 볼 수 있나요?”

“유정 님이라고 좀 그만하면 안 되니? 하아···. 뭐 얼마든지 볼 수 있지. 회사 이사니까 주기적으로 보지 않을까?”

뭐 그리고 기획사가 입주할 빌딩의 갓물주이기도 하니까···.

“꺄악···.”

“크흠···. 너도 좀 이상한 아이구나. 연기 선생님으로 유정 씨 붙여줄까?”

“꺅!! 선생님이라고요? 대박!”

어우! 깜짝이야. 고막 터지는 줄?

“아···. 물론 유정 씨가 동의해야 하는 거니까 미리 좋아하지는 말고···.”

“아···. 그, 그렇겠죠?”

“나 이제 진짜 가야겠다.”

“넵! 밤길 운전 조심하세요. 대표님!”

“그래. 알았어.”

차에 시동을 켜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리어 미러를 힐끔 쳐다보니 아직까지 손을 흔들고 있는 예원이가 보였다.

“하하···. 귀엽네.”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는 어린 예원이가 허름한 집에서 외롭게 혼자 밥을 차려 먹으며 TV를 보는 그림이 그려졌다. 어머니도 안 계시고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얼마나 심심했을까.

물론 말괄량이처럼 동네 친구들하고 놀았을 수도 있지만, 조숙해 보이는 예원이는 그러지 않았을 것 같았다.

*  *  *

“여보세요? 집에 도착한 거예요?”

나유정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집에 도착해서 전화한 모양이었다.

[네. 지금 어디예요?]

“여기 공주 근방이에요. 지금 서울로 올라가고 있어요.”

[운전 조심해요.]

“조심히 운전하고 있어요. 아까 일 좀 빨리 알려줘요. 현기증 납니다.”

[지금부터 잘 들으세요. 딱 좋네! 운전하면서 안 졸리게 제가 말동무해드리죠. 아까 말이죠···.]

나유정의 말을 들어보니 결국 신임 대표 이기영과 신인 배우 이건호가 레스토랑에서 술에 취해서 싸웠다는 이야기였다.

[와! 건호 씨의 눈이 완전히 획 돌더라구요. 난 인육 살인마 이혁이 다시 재림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건호 씨는 아직도 그 역에서 못 벗어난 것 같던데···. 그땐 솔직히 진짜 무서웠음.]

응? 이게 무슨 소리야? 이건호가 폭주했다는 거잖아?

“아니···. 이기영 대표가 왜 이건호를 살살 건드렸는데요?”

[아. 그게···. 이 대표가 한소리에게 한 소리를 들어서 그래요.]

“한소리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고요? 응? 그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예요?”

[준형 씨 말대로 둘이 사귀는 사이인 것 같더라구요.]

“진짜요? 그냥 짐작이었는데···. 그런데 유정 씨는 그걸 어떻게 확신해요?”

[확신하는 게 아니라 제가 화장실 근처에서 둘이 하는 얘기를 몰래 들었다니까요? 제가 아까 오후에 전화할 때 그랬잖아요. 이중간첩처럼 정보를 캐오겠다고요. 아! 이중간첩이 아니라 그냥 첩보원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뭘 어떻게 정보를 캤길래···.”

[킥킥···. 진짜 스파이처럼 이 대표 근처를 맴돌았어요. 물론 눈치 못 채게요. 막 화분 뒤에 숨기도 하고 소파 뒤에 몰래 쭈그려 앉기도 하고···. 그리고 휴대전화로 녹음도 했다니까요?]

“컥···. 그, 그거 절대 누구한테 들려주면 안 됩니다. 절대요!”

[제가 그 정도로 생각이 없진 않죠. 이거 나중에 한 번 들어보세요.]

허어···. 어이구야. 폭주했네. 폭주했어.

갑자기 그녀가 레스토랑에서 첩보영화를 찍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여자 화장실 옆 벽에 기대 이기영과 한소리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는 장면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갑자기 목이 타는 것 같았다.

이거 나중에 탈북한 남파 여공작원이 아이돌 매니저를 하는 그런 스토리를 한번 써볼까?

‘이준형 동무. 후라이까지 마시라요.’

또 이상한 생각을 하며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크흠···. 뭐 그렇다 칩시다. 둘이 뭐라고 했는데요.”

[한소리가 자기 배역 어떻게 됐냐고 물어보는데 이 대표가 우물쭈물하면서 말을 못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이준형 작가 그 새.. 음···.]

“..........”

[아무튼, 이 대표가 이 작가가 오디션을 보라고 하더라. 미안하다. 이러니까 한소리가 화가 나서 오빠는 그것도 못 해···. 재벌 3세 맞아? 막 이러면서 따지고···. 와···. 한소리 걔 장난 아니던데요? 제 앞에서는 조신한 척 엄청하더니 뒤로는 와···. 말이 안 나오

네.]

“아무튼, 그래서 안 좋은 소리를 들은 이 대표가 화가 나 있는 상태였군요. 그걸 이건호한테 풀었다고요?”

[그게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술에 약간 취한 사람이 건호 씨였어요.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는지 와인만 자꾸 들이키더라구요.]

그렇겠지. 다른 배우들은 내 드라마에 나오고 광고 찍고 승승장구 하고 있는데 자기만 불러주는 데가 없으니 화가 나도 단단히 나 있는 상태였겠지. 워낙 배역이 좀 그랬으니까. 인육 살인마가 뭐냐. 진짜···.

“혹시 그거 녹음한 거 파일로 나한테 보내줄 수 있어요? 그 싸우기 직전 부근부터···.”

[아! 그게 좋겠네요. 저도 그 분위기를 말로 전달할 자신이 없거든요.]

“좀 잘라서 줘보세요.”

[알았어요. 진짜 무슨 ‘데빌을 보았다’를 보는 것 같았다니까요?]

‘데빌을 보았다’에서 소름 끼치는 연기를 보여준 대배우 최만식도 한동안 사이코패스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게 돼서 엘리베이터에서 반말하는 동네 주민을 보고 안 좋은 생각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했으니까.

“어째 건호 씨 사고 칠 것 같더라니···.”

[인성이 좀 그러니 멀리하라고 대성 씨가 말해주더군요.]

“맞아요. 대성이를 괴롭히던 배우예요.”

[그런데 준형 씨. 혹시 일부러 그런 역할에 캐스팅한 거 아니에요? 후배 괴롭혀서 복수해주려고?]

으헉! 너무 무서워···. 이런 게 여자의 직감인가? 미치겠네. 이제 두려울 정도였다. 나유정하고 결혼하는 남자는 비상금도 못 챙길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다.

“아, 아니에요. 제가 무슨 알파고도 아니고···. 그런 걸 어떻게 치밀하게 계산했겠습니까! 마, 말도 안 됩니다.”

[왜 말을 더듬어요? 찔리는 거 있어요?]

“찌, 찔리다니요? 전 그런 능력 없습니다.”

[흐음···. 뭔가 수상한데? 솔직히 말해봐요. 치밀한 계획이죠? 화이트보드에 막 계획 짜서···.]

“끙···. 아니라니까요. 뭐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이거 무슨 사람을 암중에서 음모나 꾸미는 사람으로 만드시네. 실망입니다.”

[왜요. 전 멋있어 보이는데요? 왠지 어둡고 지적이잖아요. 계획을 세워서 복수를 제대로 하는···. 아으···. 멋져.]

“쯧즛···. 영화를 너무 봤네.”

[저기요. 저 영화배우거든요?]

스피커로 말소리를 높이는 나유정의 목소리가 쨍하니 울렸다.

“유정 씨 얼른 파일이나 보내보세요. 한번 들어나 봅시다.”

[알았어요. 잠시만 기다려요.]

나는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겼다.

잠깐! 뭘 어떻게 했길래 그러지? 경찰이랑 구급차가 출동했다고?

띠링···.

나유정이 첩보 활동(?)으로 수집한 녹음 파일이 도착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도착한 음성 파일을 클릭했다. 차의 고급 스피커로 현장의 생생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호 씨는 요즘 뭐하고 계십니까? 요즘 보니까 이준형 실장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은 다들 CF도 여러 개 찍고 돈도 꽤 번 것 같은데···.]

“.... 전 아직 신인이라 그런지 그런 섭외가 없네요.”

톡 톡 톡 톡···.

이기영 대표가 뭔가 기분이 안 좋은지 테이블을 뭔가로 톡톡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이상한 게 거기 신인 배우 한 명은 지금 대박 난 것 같은데요? TV 틀면 광고에서 자주 보이고···. 이름이 뭐였더라?”

“정혜성···.”

“그래. 정혜성. 김하진 역으로 나와서 대박 났잖아. 완전 스타 되고···. 그쪽도 그렇게 떴으면 좋았을 건데···.”

이 대표는 반말을 섞어가며 이건호의 성질을 살살 건드리고 있었다.

"그만하시죠? 그렇게 뜨고 안 뜨고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허 참. 누가 뭐래요? 들어보니까 본인이 그 역할 한다고 우겼다던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그만하랬잖아!”

“어어? 이거 안 놔? 너 이새끼 내가 누군지 몰라?”

퍼억! 우당탕!

어? 누구지? 펀치를 날린 사람이?

[까아···. 그러지 말아요!]

파칵! 으악! 프스스···. 우당탕···.

아···. 뭔가 심각한 사고가 터진 거 같은데 소리만 들어서는 이게 뭔지 구별이 안 됐다.

나유정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사건을 들어보니 멱살을 잡힌 이기영 대표가 먼저 이건호에게 주먹을 날리고 테이블로 쓰러진 이건호가 눈이 돌아가며 빈 와인병을 들고 이 대표의 뚝배기를 깨버렸다고 했다. 그 후로 실신한 이 대표 때문에 구급차도 오고 누가

신고했는지 경찰까지 다녀갔다고 했다.

‘와···. 이거 잘못하면 크게 터지겠는데?’

기자라도 붙어서 이 사실이 까발려지면 XM의 이미지와 더 나아가서는 CA 그룹에 치명상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 대표가 술에 취해서 이건호를 살살 건드렸다고 하니 기사를 어떻게 쓰는지가 중요한 것 같았다. 얼마든지 소속 배우에 대한 갑질로 둔갑될 수 있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아이돌 메이커 조작 사건으로 CA 그룹 이미지가 땅바닥으로 추락했었는데···. 만약 이 사건이 보도돼서 커지기라도 하면 정말 그룹에 심대한 타격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상한 기사가 안 나오길 빌어야겠군.’

하지만 나의 우려대로 폭행 사건에 관한 기사가 다음날 연예 기사란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XM Ent. 소속 신인배우 이건호 신임 대표 폭행!]

[XM Ent. 폭행 사건. 쌍방 과실로 밝혀져···.]

[신임 대표가 술자리에서 갑질을 한 것으로 밝혀져···. CA 미디어 그룹 비상!]

[CA 미디어 그룹···. 유일하게 운영 중이던 연예기획사 정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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