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08화 (108/263)

< 로열패밀리 (2)>

이기영 대표는 머리가 복잡한 나를 잡고 놔주질 않고 있었다.

‘으으···. 우리 비주얼 센터가···.’

“크흠···. 제가 살짝 마이너하게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실장님이 그 자리에 부임하고 새롭게 하신 일이 아직은 없다는 겁니다. 아! 당연히 별문제는 아니고요. 지금껏 해오셨던 일을 폄하하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이제 제가 새롭게 부임했

으니 차기작 문제는 저와 상의하면 되겠네요.”

“대표님···. 일단 한가지 짚고 넘어가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제가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닙니다. 자체적인 프로듀싱팀으로 신곡을 발표했고 그 곡으로 차트 1위를 찍었습니다.”

“응? 그게 이 실장님 무슨 관계가 있나요?”

“저도 작곡팀 멤버입니다. 작사가로 참여해서 곡의 가사를 썼습니다.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하기엔 좀 민망하긴 하군요.”

“아···. 작사가···. 그건 안 적혀···. 아니 몰랐는데···.”

그는 살짝 당황하는 것 같더니 이내 표정을 관리했다.

솔직히 정이든의 자작곡으로 컴백을 하자고 주장한 것도 나였는데 안 그래도 코너에 몰린 한 이사의 입장이 난처해질까 봐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것도 좋은 성과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기영 대표는 말을 하면서 ‘앞으로’라는 말을 유독 강조했다.

어차피 이전 일은 자기의 공적에 들어가질 않으니 그렇게 말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회사의 미래를 위해같이 하자는 걸까?

조만간 그만둔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니 상당히 곤욕스러웠다. 뭐 그렇다고 계속 남아있을 생각은 전혀 없다. 아직 유정 씨 빌딩의 내부 정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제는 차기작을 본격적으로 추진해봅시다. 업계에서도 아주 초미의 관심사라고 하던데요? 일단 대충 이쪽 팀의 사정을 알았으니 이제 차근차근 일을 진행해 봅시다. 아주 기대가 큽니다.”

어이! 나는 아직 대답도 안 했다고!

짝!

그는 갑자기 손뼉을 치더니 손을 싹싹 비볐다.

“이만 끝내시죠. 보고 잘 들었습니다. 아 참! 한 이사님은 운영 계획을 작성해서 다음 주까지 제출하도록 하세요.”

나에게는 페르시아의 왕처럼 관대했지만 한 이사에게는 스파르탄처럼 한없이 차가운 이 대표였다.

*  *  *

나는 회의를 마치고 한상훈 이사와 대표실을 나섰다.

“수고했네. 이 실장.”

대표이사실의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한상훈 이사가 조금은 풀이 죽은 소리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사님.”

“앞으로 쉽지 않겠구만. 끄응···.”

그의 얼굴에 씁쓸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러게요. 본사 사업기획팀에서 오셨다던데 그쪽 스타일인가 보죠? 무슨 타임 스케줄을 짜고 주차별 실적을 보고하라니···.”

“농땡이 못 치게 감시하는 거지. 내 동생이 대기업 다니는데 다 그렇게 한다더군.”

“뭐···. 그동안 XM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죠.”

“자네도 그리 생각하나? 젊어서 그런가 받아드리는 게 빠르구만? 난 벌써 막막한데···.”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걸그룹을 들어먹고 방황하는 것도 봐주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관두지 않을 거면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멍한 표정의 한 이사를 보며 발걸음을 돌리는데 불현듯 뮤지컬 영화에 관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 이사님. 혹시 뮤지컬 작곡하시는 분 아시나요?”

“뮤지컬?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보지?”

“뮤지컬 영화나 드라마 제작에 관심이 있어서요.”

“아아···. 난 진짜 뮤지컬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마. 뮤지컬을 전문으로 하는 작곡가도 있지만 대부분 다양한 음악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야. 굳이 뮤지컬 작곡이 따로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그냥 좋은 곡이면 다 통하는 법이지. 최

근 큰 성공을 거둔 맘마미아나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뮤지컬 영화만 봐도 별도의 곡이 따로 필요치 않지.”

“아!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맞아. 브로드웨이는 별의별 스타일의 음악들이 다 사용되지. 거기도 전문 작곡가들 말고 프로 뮤지션들도 제작에 참여하고 있던데 스팅이나 신디 로퍼, 라디오 헤드의 톰 요크도 그렇고···.”

“그렇군요.”

한상훈 이사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단 좋은 곡이 중요한 거지 형식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는 이야기였다. 영상화를 하는 거면 너무 형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충고였다.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한 모양이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하는 것 같다.

“좀 도움이 됐나?”

“네. 도움이 됐습니다.”

“그거 다행이네. 말은 못 했는데 저번에 사과할 일도 있고 해서 말이지.”

“사과요?”

“테리우스 컴백 앨범에 대한 곡 말이야. 걸그룹 엎어지고 테리우스 타이틀곡 블라인드 테스트를 할 때 제대로 듣지 못하고 건성으로 한 게 맞아. 곡이 안 좋았으면 좀 자세히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도훈 팀장이 그런 식으로 장난을 쳤는지 몰랐어.”

음···. 한상훈 이사는 몰랐나? 하긴 오늘 보니까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 표정도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도훈 PD가 투표에 대해 일러바치러 갔다가 사표 내고 나간 걸 보면 한상훈 이사는 한패가 아닌 것 같았다.

“그만둔 이도훈 팀장이 작정하고 벌인 일인데요. 이사님이 모르셨을 수도 있죠. 테리우스가 드라마로 뜨기 전에 받은 곡 중에서는 최선이었겠죠.”

“그래도 미안해. 걸그룹 데뷔가 엎어지고 내가 그만둬야 하나 어쩌나 고민이 많았던 시기여서 머리가 복잡했었지. 그래서 일에 좀 소홀했었어.”

“괜찮습니다. 지난 일인걸요.”

“솔직히 자네가 이루어 낸 것들을 보고 자극을 받았어. 저렇게 힘들게 일하면서도 꾸준히 노력해서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데 도대체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달까?”

“아···. 민망하네요.”

"아니야. 정이든이 만든 곡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 나도 그때 이후로 정신 차리고 있어. 몇 년간 감이 떨어져서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었는데 요즘은 최신곡들도 듣고 하면서 감각을 끌어올리려는 중이야."

맞다. 이 마음이 여린 양반. 그래도 90년대~2000년대 대중음악계에 꽤 이름을 날리던 천재 작곡가였다. 내놓은 곡만 해도 수백 곡이 넘고 알만한 히트곡도 수십여 곡에 이르는 사람이다. 도중에 사기를 엄청나게 크게 당해서 가진 거 다 날렸다지만 시간이 지

나니 저작권으로 다시 먹고살게 된 저작권 부자였다.

XM에도 전 전 대표가 가수 쪽을 키우기 위해 데려온 사람이기도 하고···.

“좋은 곡 하나 만들어주세요. 좋으면 넣어드릴게요.”

“그럴까? 물론 블라인드 테스트는 필수겠지?”

“당연하신 걸 왜 물어보세요. 하하···.”

“그래. 어떤 스타일의 곡이 필요하지? 나도 좀 알아야 쓸 거 아닌가?”

“걸그룹이 부를 노래입니다. 대강 JB 엔터의 원스가 부른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상쾌한 느낌?”

“오호! 잘됐구만. 기존에 쓰려고 했던 곡들 다듬으면 될 거 같은데···. 거기에 나도 한번 지원해봐야겠는걸?”

“예. 당연히 지원 가능합니다. 만드시면 연락 주세요.”

한상훈 이사와 헤어지고 내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방금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했다.

‘한상훈 이사가 히트곡을 내놓지 못한 지 벌써 몇 년째지?’

솔직히 그가 트렌드에 맞는 곡을 만들어 올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그의 말에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깨져버렸다. 노래가 좋으면 사람들이 듣고 좋아하고 기억하는 게 당연했다.

‘가사는 내가 스토리에 맞게 쓰면 되니 곡만 확보하면 되겠네.’

‘아까 한 이사의 아우라도 체크해봤어야 하나?’

나는 수첩을 펴놓고 할 일을 적기 시작했다. 일단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배우들을 확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배우들의 이름과 내 이름을 팔아서 좋은 곡을 모을 예정이었다.

모든 내용을 다 적어 놓고 수첩을 덮었다.

“뭐였지? 뭐가 중요한 게 있었는데···. 헉! 맞다. 연습생!”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신인개발팀에 전화를 걸었다.

“네. 신인개발팀 박진혁입니다.”

“박 팀장님. 안녕하세요. 저 이준형 실장입니다.”

“아! 네. 실장님. 안녕하십니까?”

“지금 시간 좀 되십니까?”

“네···. 말씀하세요.”

“연습생들 신상명세서 들고 제 방으로 좀 오실 수 있나요? 물어볼 게 있어서요.”

“네. 바로 가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10분 뒤 박진혁 팀장이 내 사무실에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서류철 두 개가 들려있었다.

나는 잠시 박 팀장과 안부 인사를 나누고 파일철을 건네받았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위에 있는 것을 먼저 펼쳤다.

“음?”

파일철에 정리된 프로필을 읽으며 페이지를 뒤로 넘겼다.

슥슥···.

“남자 연습생이군요.”

나도 모르게 표정이 일그러졌다.

“네. 실장님. 총 3명입니다. 테리우스도 이제 3년 차에 접어들기 때문에 지금부터 연습생들을 관리해야 2~3년 안에 데뷔시킬 수 있습니다.”

".........."

나는 밑에 있는 파일철을 위로 올려서 여자 연습생 프로필을 펼쳐보았다.

“응?”

파일철을 보고 갑자기 앞이 캄캄해졌다.

“왜, 왜 그러시는지요?”

“기, 김연화···. 메인 보컬···. 이 연습생 달랑 혼자입니까? 왜 프로필이 한 장뿐이죠?”

“그, 그게 다 관두고 나갔습니다.”

으으윽···. 이럴 수가···. 강렬한 황금빛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던 비주얼 센터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가까이 있어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게 실수였다.

나는 정신을 수습하고 힘겹게 입을 뗐다

“하···. 혹시 최근 그만둔 연습생의 프로필 좀 볼 수 있을까요?”

*  *  *

박진혁 팀장이 사무실로 돌아가 E-mail로 그만둔 연습생들의 프로필을 보내왔다.

나는 허겁지겁 파일을 클릭해서 조회했다.

[이민정 -메인 댄서]

아니다. 얘는 아냐.

[장예원 – 센터 – 고1 - 키 169cm]

“찾았다! 장예원!”

프로필에 붙어있는 사진조차 아주 상큼한 외모였다.

나는 부랴부랴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쾅쾅!

나도 모르게 책상을 세게 두드렸다. 밖에 있던 비서가 무슨 일인지 문을 열고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나는 별일 아니라며 손짓을 하고 뒷장을 마저 살펴보았다. 뒷장에는 다행히 보호자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미친 사람처럼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신호가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나라 분식···. 아니···.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예원이가 있던 소속사의 직원입니다. 혹시 예원이 거기 있나요?”

[네? 예원이요? 예원이 없는데요?]

“네? 혹시 예원이하고 어떻게 되시죠?”

[예원이 고모인데요?]

“혹시 예원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소속사 직원이 시라고요? 아니 뭐 때문에 찾으시는데요? 혹시 예원이 앞으로 빚이라도 있어요? 우리 돈 없는데?]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아닙니다. 고모님. 예원이가 회사에 뭘 두고 가서요. 혹시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할까요?”

거짓말이 술술 나오고 있었다.

[아. 난 또 뭐라고···. 깜짝 놀랐잖아요. 요즘 고향에 내려가서 전화번호라도 바꿨는지 통화가 안 되는데···.]

“고향이요? 고향이 어디인데요?”

[군산이요. 전북 군산. 아버지하고 같이 살아요.]

“주, 주소 좀 알려주세요. 택배를 좀 보내야 할 것 같아서요.”

[아···. 잠시만요. 조금 있다가 수첩에서 찾아서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이 번호로 보내드리면 되죠? 아! 김밥 두 줄이요?]

“네네. 그러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모라는 사람은 분식점을 하는지 바쁜 모양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주얼 센터 장예원은 다른 기획사로 간 게 아니라 고향으로 내려간 것이었다.

왜 고향으로 내려간 거지? 거기에서는 트레이닝을 받을 수가 없을 텐데···. 아 혹시? 그만두려고?

아니 그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만둔다고.? 그게 말이 되나? 아···. 생각해보니 재능은 나만 볼 수 있구나. 어쨌건···.

나는 일정을 다 뒤로 미루고 지방으로 내려갈 준비를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군산 XX 동이라···.”

음···. 지금 오후 3시 반이니 밟으면 저녁때쯤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무슨 일인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띠리리링···.

사무실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받을까 말까 하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이 실장님. 저 좀 잠깐 보실까요?]

이기영 대표였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아까 업무보고 때 다 끝난 거 아니었나?

“아···. 저 지금 막 일을 보러 나가려는 참이었는데···.”

[나도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한 십 분만 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나는 급한 마음에 전화를 끊고 대표실로 향했다.

이기영 대표는 문을 여는 나를 보고 미소를 짓더니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

“실장님. 바쁘신 거 같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그게 편합니다.”

“아까는 한 이사가 있어서 말을 못 했는데 혹시 차기작에 여배우 필요하지 않아요?”

“네? 여배우요?”

응? 뭐야. 이거였어? 지금 한시가 바빠 죽겠는데···.

“그래요. 신인배우인데 스타성만큼은 끝내주는 친구가 있거든요? 마침 우리 회사랑 계약한 배우예요.”

“누구···.”

“한소리라고···. 아시는지?”

“아!”

알고 있다.

한소리.

갑자기 얼마 전 나우민 팀장이 자기 팀으로 대박 신인이 들어왔다고 떠들던 게 기억났다. 원래 패션모델이었는데 남자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페이스와 시원시원한 키로 장래가 촉망된다는 배우였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기영 대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뭔가를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어? 잠깐!

생각해보니 이런 얼굴을 최근에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헉! 김시후!

시후의 표정과 비슷했다. 혜수가 나온다는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엄청나게 흥분하며 기뻐하던 그 표정 말이다.

‘하! 씨···. 욕 나오네. 이거였어? 내 주위에는 왜 이런 사람들만 있는 거야?’

솔직히 왜 재벌 3세가 계열사 중에서도 하꼬인 XM Ent.에 부임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는데 이제야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왜 나한테만 유독 잘해주는가 싶었는데···.’

하하···. 어이가 없네?

ⓒ 소광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