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07화 (107/263)

< 로열패밀리 (1)>

신임 대표인 이기영은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좌중을 쓱 둘러보며 직원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 옆에 붙은 조형석 전무가 임원진부터 실무진까지 차례로 소개했다.

“이쪽이 회계와 홍보, 마케팅까지 총괄하고 있는 경영지원본부의 박기용 실장, 가수팀을 맡고 있는 김상효 실장, 그리고 배우팀 하석우 실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가수팀 김상효 실장입니다! 발령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다들 가볍지만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큰소리로 인사를 하는 김상효 실장이었다.

‘하여간 저 인간은 쓸데없는 것만 잘해요. 일이나 잘할 것이지. 괜스레 군기나 들어서 말이야. 여기가 군대야 뭐야?’

나는 도를 넘는 그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김 실장님 이시라고요? 목소리도 크고 믿음직스럽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표님.”

이기영 대표는 말로만 믿음직스럽다고 말할 뿐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안녕하십니까? 배우팀의 하석우 실장입니다.”

하 팀장은 김상효 실장과 다르게 부드럽게 대답했다.

“배우팀은 올해 실적이 매우 좋더군요?”

“감사합니다.”

그 말을 하며 살짝 웃고 있던 이기영 대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런데 말이죠. 전 대표님께서 인수인계서에 이런 말씀을 적어놓으셨더군요.”

“네?”

“하 실장은 술을 먹이지 말 것. 술에 취하면 아래위가 없음.”

“..........”

허어! 갑분싸라는 게 바로 이런 걸까? 이기영 대표가 뜬금없이 꺼낸 농담에 장내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됐다.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제가 김인환 그 양반 얼굴 보기 싫어서 인수인계서에 전부 써놓고 가라고 했더니 쓸데없는 것까지 세세하게 다 적었더군요.”

‘전 대표. 쪼잔하네. 하여간 다들 말만 번지르르하지.’

대인배처럼 행동했지만, 은근히 뒤끝 있는 김인환 대표였다. 인수인계서 파일에 그런 사적인 내용까지 시시콜콜 언급하고 가다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기영은 눈에 힘을 주고 다시 한번 좌중을 둘러보았다.

본사 경영전략실 사업기획팀에 있었다던데 거기서 배운 정치질인가? 아니면 대표가 다 알려주고 갔으니까 다들 조심하라는 신호인 건가? 딱 보니 한 명 꼬투리 잡아서 일단 패고 기선을 잡으려는 수작 같아 보였다.

재벌 3세가 하는 유치한 짓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재밌네?’

전 대표가 적어놨다는 말에 하석우 실장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으나 내가 테이블 밑으로 손을 넣고 진정하라고 다리를 두들겨주었다.

그는 이빨을 꽉 깨물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뭔가를 결심한 듯 다시 눈빛이 살아났다.

“아. 그때가 이등병 놀려먹기 같은 자리였습니다. 술 마시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라고 한 거라 심각한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대표님.”

그래도 라인이라고 조형석 전무가 해명을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기영은 심드렁하게 알았다며 고개만 건성으로 끄덕였다.

“대표님. 이 실장은 아시죠? 요즘 장안의 화제인 이준형 작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준형입니다.”

“오! 그 유명한 이준형 작가님이시군요? 저도 드라마 재밌게 잘 봤습니다. 스토리가 정말 좋았어요. 우리는 연배도 비슷하니 앞으로 친하게 지냅시다. 건설적인 이야기도 좀 하고요.”

“네.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차가워 보이고 시니컬했던 그의 표정이 봄날의 따뜻한 바람처럼 바뀌었다.

그는 개인적인 것들을 이것저것 다정하게 물어보며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주변 임원들의 눈초리가 살짝 매서웠기 때문이다.

'살짝 민망하구만?'

그는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물을 마시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손목에 억대로 보이는 시계가 번쩍이고 있었다.

“식사를 하기 전에 간단하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금껏 잘해오셨지만, 앞으로는 제 스타일에 맞춰서 업무를 진행하셔야 할 겁니다. 기존 대표처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지나가는 식은 없을 겁니다. 우선 조직은 당분간 그대로 유지할

작정입니다. 내일부터 본부별로 업무보고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자 이제 식사하시죠.”

나는 웹소설 스토리를 머릿속으로 구상 중이었다. 이 대표가 말을 마치자 이제야 잘 익은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게 됐다.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야. 으음~’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어 고기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것을 우물거리며 다른 생각을 하던 중 김상효 실장의 눈꼴사나운 장면을 목격했다.

대표 옆에 찰싹 붙은 김상효 실장은 대표가 주는 술이 무슨 예수님이 따라주는 성수라도 되는 양 아주 영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아예 자리를 옮겨가며 마치 시다바리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이기영 대표를 챙기고 있었다.

‘허 참···. 물 만난 고기처럼 열심히 움직이네. 김 실장님. 일 좀 그렇게 하지.’

참 고단한 셀러리맨의 단상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측은지심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저러다 비서실장이라도 되면 인생 성공하는 거지 뭐.

술을 몇 잔 하던 이 대표는 나에게 시선 옮기더니 가볍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실장님은 젊은 나이에 돈도 많이 버시고 자수성가하셨네요? 대단합니다.”

“돈은 대표님이 저보다 많으시죠.”

이기영 대표는 태생이 금수저 아니던가? 나는 그냥 적당히 맞춰주기로 했다.

“하하···. 뭐 아직 제 돈이라고 하기도 뭐하죠. 정식으로 후계자가 된 것도 아니고···. 형제들하고 경쟁을 해야 해서···. 아 참···. 혹시 차기작은 아직이신가요?”

“네. 지금 쓰고 있습니다.”

물론 나는 다 썼지만, 시나리오가 아직 미완성이었고 시후의 손을 거쳐 계속 진화 중이었다.

“혹시 어디에서 제작할지 결정됐나요?”

“아닙니다. 아직요.”

응. 사실은 퇴사하고 자체 제작할 생각이다.

그는 내가 차기작 이야기를 꺼내자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전작을 JTVC에서 했기 때문에 조심히 물어보는 게 느껴졌다.

“다음 작품은 TVM에서 하실 거죠? 나만의 세계야 원작이 JTVC에 있어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다음번은 꼭 CA 미디어 쪽에서 했으면 합니다.

“예.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이기영은 내가 그냥 의례적으로 대답했음에도 내가 자기 말을 들은 것처럼 생각하는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다음날 이기영 대표는 그는 출근하자마자 아침부터 각 부서의 업무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미 몇몇 부서는 크게 깨졌다는 소문이 돌며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안 그래도 잠깐 복도에 나가보니 큰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환영 인사를 하자마자 군기 잡으려 드네. 쩝···.”

드디어 오후에 프로듀싱&콘텐츠 총괄본부의 업무보고가 시작되었다. 참석자는 한상훈 이사와 내가 이기영 대표를 독대하는 중이었다.

프로듀싱&콘텐츠 총괄본부의 업무보고서는 아주 간략했다. 한상훈 이사가 작성한 걸 보니 내용도 부실한 것 같았다. 나한테 시켰으면 그래도 알맹이는 없어도 그럴싸하게 만들었을 텐데 본인이 직접 더듬더듬 만든 모양이었다.

프로듀싱 팀은 진즉에 프로듀서 2명이 나가고 인원도 한상훈 이사와 나 그리고 DJ.Nec(병춘이) 뿐이었기 때문에 본부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이기영 대표는 책상에 앉아 보고서의 첫 페이지인 조직도를 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이사님. 인원이 겨우 3명입니까? 이게 본부 맞아요?”

“그, 그게 가수 부분을 육성시키려는 전전 대표님의 비전 따라 구성된 조직으로 아직 초기 단계라 그렇습니다. 원래 다섯 명이었는데 두 명이 나갔고 아직은 충원이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외주로 보컬 및 댄스트레이너와 계약이 되어있습니다.”

“전전 대표라면···. 아! 전성진 상무? 그 양반 얼마 전에 집에 갔잖아요. 영영···.”

“네?”

한상훈 이사가 처음 듣는 듯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 몰랐구나? 그런 일이 있었어요. 본사 방침이 완전히 바뀌어서···.”

그는 알듯 모를 듯한 말을 하며 보고서의 페이지를 넘겼다.

휘릭휘릭···.

탁 탁 탁···.

그가 신경질적으로 펜으로 책상을 두들겼다.

“후···. 여긴 다 왜 이 모양이에요?”

“네?”

“왜 이따위냐고요! 말 좀 해보세요. 이사님.”

“올해 초에 걸그룹을 데뷔시키고 테리우스와 같이 운영하면서 기초를 다져가려고 했지만,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이사님. 이전 일은 그만 이야기하시고요. 이제 뭘 어떻게 하실 작정이신데요?”

“이, 일단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 테리우스를 집중해서 관리하고···. 좋은 곡을 확보하고···.”

“하아···. 됐습니다. 솔직히 이런 시스템에서 남자 아이돌이 떴다는 게 기적입니다. 기적.”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다 맞는 말이다. 테리우스는 총체적 난국에서 피어난 꽃이다. 트렌드도 못 따라가는 컨셉, 똥 같은 곡, 아이돌 매니지먼트 경험 부재에 따른 혼란···.

테리우스 매니저를 하면서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 험난한 길을 함께 걸으며 성공을 시킨 게 나인데···.

“그리고 테리우스가 뜬 게 프로듀싱팀이 잘한 겁니까? 인기 드라마에 출연해서 인지도 쌓고 뜬 거잖아요?”

“.........."

딩동댕~ 하하···. 이 양반 은근히 날카롭잖아?

역시 금수저라 다르네. 거칠 게 없으니 그냥 팩트로 조지는구나. 지금까지 놀고먹었던 임원들은 혼 좀 나야 된다. 암!

날카로운 지적에 한상훈 이사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이기영 대표는 한 이사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스르륵 미소를 지었다. 마치 육성회장을 부모로 둔 아이를 보는 교장 선생님의 눈빛!

“그리고 곡도 외부 곡이 아니라 자작곡이라면서요? 그거 얼마 전에 1위 한 곡 맞죠? 제목이 뭐였더라?”

“쓰리콤보가 만든 '내가 빛나더라도' 입니다.”

“그래! 맞다. 그 곡이네. 그건 좋던데···. 내가 테리우스라는 그룹의 노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 곡은 알잖아요.”

“죄, 죄송합니다. 걸그룹만 잘됐어도 괜찮았을 겁니다. 그게 엎어지면서 다들 분위기가 가라앉고···.”

“저기요. 역사에 '만약'이 어디 있습니까? 검증도 안 하고 그런 이상한 애들을 뽑은 회사가 잘못이지. 그리고 엎어졌으면 끝인가요? 기존 그룹을 잘 챙겼어야죠. 이 실장님이 쓴 드라마 아니었으면 남자팀도 어떻게 됐을지 장담 못 하는 거 아닙니까?”

어라 맞는 말만 하네?

“보니까 대표 직속으로 되어있는 신인개발팀도 연습생 관리가 개판이던데요? 이제 보니 프로듀싱팀은 더하네? 허···. 이거야 원···.”

그는 펜을 휙 테이블에 던지더니 몸을 뒤로 기울였다.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연습생 관리가 개판이라고? 어? 안 되는데···. 우리 상큼하기 그지없는 황금 아우라의 비주얼 센터가 거기 있었단 말이다!

나는 한상훈 이사가 깨지든 말든 강 건너 불구경하듯 옆에서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신인개발팀이 개판이라는 이야기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갑자기 목이 바짝 타들어 갔다.

생각해보니 그 비주얼 센터를 못 본 지 꽤 된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 설마···. 아니겠지?’

“저기···. 이 실장? 얼굴이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이 대표가 걱정스럽다는 듯 나의 안위를 물어왔다.

“응? 아, 아닙니다.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요.”

“이상한 기분? 아···. 내가 너무 뭐라고만 했나?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게 그게 이 실장한테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이 실장님은 우리 회사의 보물이에요.”

“네?”

으···. 이기영 대표의 이 시선···. 왠지 부담스럽다. 내 미간에 내 천자가 새겨지고 있었다.

‘이상하네? 김인환 대표가 분명 망나니라고 했는데?’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었다.

‘혹시 내부 문제점에 대해서 벌써 누구한테 정보를 싹 받은 거 아냐 이거?’

의심이 가긴 했지만 일단 내 머릿속에는 그 찬란한 황금색 아우라를 지니고 있던 연습생 생각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

‘제길···. 얼른 알아봐야겠어.’

ⓒ 소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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