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06화 (106/263)

< 몸값이 천정부지? (2)>

출근하고 자리에 앉아서 통장을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차올랐다.

“흐흐···.”

웃음이 피식피식 터져 나왔다.

유정 씨가 마포에 건물을 3년간 공짜로 임대해 준다고 했으니 나는 얼른 독립해서 차기작을 성공시키면 되는 것이다.

참으로 고맙고 배포가 큰 유정 씨였다. 아니 사실 투자금 50억을 몇 배로 불려주니까 괜찮은 거지 뭐. 3년간 임대료는 수수료 아니겠는가? 음···. 너무 날강도 같나?

이제 연말도 다가오고 내 진로를 차분히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됐다. Run 하는 것 같지만 솔직히 내가 회사에 벌어다 준 돈이 어마어마하다. 이 정도면 당당해져도 되는 거 아닌가?

잠시 인터넷 기사를 살펴보다가 넷플릭에 들어가 봤다.

“우와! 멋지다!”

나만의 세계가 넷플릭 메인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내 맞춤으로 뜨는 거지만 말이다) 순위도 1위였다.

칼을 들고 얼굴에 피가 튄 나유정의 살벌한 눈빛이 압권이었다. 이 스틸 사진만 봐도 궁금해서 영상을 봐야 할 지경이었다.

‘뭐야. 이거 우리나라만 1위가 아니고 엄청난데?’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심지어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도 1위였다. 그리고 이따금 10위권에 슬기로운 덕질생활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터넷 브라우저 창을 껐다. 이제 각을 잡고 글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똑똑···.

누군가가 내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네. 무슨 일이시죠?”

“실장님. SBC에서 나오셨는데요?”

“하아···.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요새 들어 사무실에 출근하면 미팅을 하느라 내 본 업무(?)를 다 못 보는 느낌이었다. SBC에서 찾아오신 PD님이 나간 후···.

“실장님. KBC에서 찾아오셨는데요?”

“또요?”

“실장님. 하늘스튜디오에서 찾아오셨는데요?”

“저 없다고 하면 안 될까요?”

“실장님, 실장님···”

요즘은 정말 막무가내로 찾아오는 사람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글을 쓰며 꿀을 빨아야 하는데 계속 읍소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같이 작품을 할 수 없겠냐며 나를 못살게 굴었다.

그냥 문전박대하자니 각 방송사의 높으신 분들이라 우리 다른 연예인 식구들을 생각하면 못 할 짓이었고 상대를 해주자니 기분 상하지 않게 거절을 하는 게 너무 힘이 들었다. 그렇다고 잠적을 할 수도 없고···.

“하아···. 지친다.”

요즘은 찾아오는 너무 손님이 많다 보니 김인환 대표가 개인 비서를 붙여주고 내 일을 돕게 했다.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붙여주다니 내가 그만큼 회사에서 위상이 달라지긴 한 모양이다.

조블리 팀장과 나우민 팀장은 그런 나를 부러워했지만 나는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어차피 거절은 내 몫이었으니까. 아 물론 잘 모르는 사람이 찾아오면 비서가 쳐내기도 했다.

각 방송국 중역들과 제작사 임원들은 엄청난 원고료를 제시했다. 거의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원고료로 나를 유혹하려 했다.

이제 딱 두 작품밖에 없는 나를 뭘 믿고 이런 엄청난 돈을 준다고 하는 걸까?

이제 나와 드라마를 하려면 원고료만 30억 이상을 들고 와야 하니까 대작만 가능했고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을 따졌을 때 무조건 100억 이상의 작품으로 기획해야 했다.

“실장님. 대표이사님 오셨습니다.”

“아···. 김 비서가 알아서 없다고 하시면 안 될까요?”

“실장님. 다른 회사가 아니라 대표이사님입니다만?”

“아아···. 대표이사님은 들어오시라고 해야죠.”

말을 마치자마자 문을 열고 김인환 대표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아이고···. 우리 복덩이 이 실장님 일하고 계셨나?”

그는 내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자기 사무실인 듯 의자에 풀썩 앉았다.

“아이고···. 허리야. 나도 이제 늙나 봐. 이 실장 요즘 엄청 바쁘죠?”

김인환 대표는 요즘 들어 부쩍 나를 예뻐하는 티를 냈다. 다른 임원이 보든 말든 어깨동무를 하며 나를 칭찬했는데 그럴수록 임원들의 나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물론 나는 그런 거 하나도 안 무서운 사람이다.

“네. 대표님. 요즘 들어 하도 외부에서 손님들이 찾아와서요.”

“하하. 뭐 당연한 거겠지. 글로벌 스타 작가 아니겠어요?”

“이제 신인인데요. 글로벌 스타 작가라니요. 부담스럽네요.”

“이 실장. 이리 와서 나랑 이야기나 좀 합시다.”

“네. 대표님.”

내가 김 대표의 앞쪽에 앉자 그는 상체를 세우고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 실장.”

“네 대표님.”

“혹시 소문 들었나?”

“어떤···”

“아! 자네는 바빠서 모를 수도 있겠군. 나 연말에 본사로 올라갈지도 모른다네.”

“정말요?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엄청 기대하셨잖아요.”

“하하. 고마워 이 실장. 이게 다 이 실장 덕분이지. 내가 뭘 잘한 게 있나?”

“아닙니다. 대표님.”

“아니지? 그래도 내가 자네를 발탁했으니 지분이 조금 있는 거지. 안 그런가?”

크흠···. 왜 이 소리 안 나오나 했다. 심심하면 입버릇처럼 하는 인재 등용론이었다. 자기가 나를 뽑았기 때문에 회사가 이렇게 됐다는···. 하하···. 모르겠다. 정말 나를 좋게 봐서 뽑은 것인지 뭔지.

어차피 이 양반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별 관심도 없다 보니 어떻게든 실적만 쌓아서 본사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XM Ent.의 올해 영업이익이 비약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그 실적을 인정받고 본사로 다시 복귀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이쪽 전문가도 아니고 원래 하던 영역이 있었지. 요즘 그쪽도 좀 핫하거든. 그래서 윗선에서 연락이 왔네. 조만간 올라올 준비를 하라더군.”

“축하드립니다. 좋으시겠네요.”

“여기도 괜찮았네. 새로운 것도 배우고 특히 내가 자네를 눈여겨보고 떡하니 발굴하지 않았겠는가?”

“·········.”

맙소사. 점점 못 들어 주겠구만. 그래요. 대표님! 아마도 일생의 자랑거리가 될 겁니다.

“아무튼, 나는 조만간 발령이 날 거 같은데···.”

“아? 혹시 새로운 대표로 누가 오나요?“

솔직히 나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의례적으로 물어본 것이다. 물론 나는 1~2개월 정도는 더 있다가 나갈 예정이었다.

“이기영 이사라고···.”

“그게 누구죠?”

“하하···. 우리 이 실장은 사내 정치랑 거리가 멀지? 더구나 본사 일인데 알 리가 있겠나?”

“저야. 그런 건 도통 관심이 없는 편이죠. 작품 쓰는 것만 해도 바쁜데요?”

“그렇지. 그렇지. 자네는 뭐 그런 걸 걱정할 필요가 없지. 어쨌건···. 그 이기영 이사가 누구냐면···. CA 그룹의 셋째이신 이정흠 사장님의 막내 아드님이시지.”

“아···.”

“나이가 서른 초반인가 그럴 거야.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들어온 지 몇 년 안 됐거든?”

“유학까지 갔다 왔으면 상당한 인재겠는데요?”

“으하하··· 인재? 그 녀석··· 아니 그분이?”

“왜요. 대표님하고는 친척분 아니세요?”

“친척이긴 한데 내 처지랑 같나? 나는 방계도 아닌 외가 쪽이고···. 그쪽은 성골은 아니더라도 진골쯤 되거든. 일단 나는 성씨부터 다르잖나. 이기영이 진골이면 나는 육두품인가? 흐흐···.”

“무슨 문제가 있나 보군요?”

“이기영 이사가 유학파긴 한데 국내에서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유학을 보내서 학력 세탁 겸해서 미국에 다녀온 거고···. 솔직히 학교도 전혀 모르는 학교지. 무슨 컬리지 어쩌고 하던데 하하···. 거기서도 사고나 치고 아무튼 소문이 별로 좋지가 않은 녀석이야.

자꾸 녀석 녀석 하는데 이해하게나. 나도 별로 좋은 기억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대표님.”

“이기영 이사가 여기로 오고 싶어서 손을 든 모양이야. 사실 뭐 한량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연예계가 딱 맞지 뭐.”

웃기는 소리! 지금 국내 3대 기획사 아니 수퍼노바의 빅샷엔터까지 하면 4대 기획사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엄청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지금 도약하지 못하면 영영 4대 기획사로 굳어져 버릴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CA 그룹도 종합 엔터 회사로 거듭나려고 했는데 아이돌 메이커 조작 사건으로 자체 기획사가 아니라 지분 인수 쪽으로 역량을 강화하고 있었다. 더구

나 빅샷과 협력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3대 기획사가 긴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렇게 따진다면 XM은 거의 버려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냥 배우들이나 관리하는 애물단지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예상치 못하게 테리우스라는 1티어 그룹이 만들어지는 바람에 약간 애매해진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 테리우스만 먹고 다 뱉어버릴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내 추측이다)

그런 걸 파악 못 하고 자신이 자진해서 내려온 사람이면 정말 답이 없는 사람일 게 분명했다.

‘뭐 미리 짐작할 필욘 없지. 나중에 실제로 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   *   *

며칠 후

김인환 대표가 갑자기 본사로 발령이 났다.

“올 게 왔구만.”

나는 회사 ERP에서 계열사 인사명령을 확인하고 창을 닫았다. 그는 퇴직 처리 후 다시 본사 소셜 커머스 부문으로 발령을 받고 이동했다. 직책은 대표이사에서 상무이사로 강등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CA 미디어 그룹 본사의 상무이사는 사실상 승진이라고 봐

야 했다.

그는 발령이 뜨자마자 바로 짐을 싸서 본사로 휙 하니 가버렸다. 며칠 전 내가 그와 면담을 한 게 마지막 인사였을 줄이야.

“이 실장아. 너 혹시 그 이야기 들었냐? 김 대표가 회식도 안 하고 그냥 가버렸다는데?”

내 방에 놀러 온 조블리 조형택 팀장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본사로 진짜 가고 싶었나 보죠. 원래도 별로 미련이 없긴 했잖아요?”

“그래도 이사들하고 밥은 먹고 가야지. 어째 사람이 그런다니?”

“·········”

“그런데 업무 인수인계도 안 한다니?”

“어차피 실제 업무는 조형석 전무가 다했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어이가 없다.”

나는 형택이 형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CA 미디어 그룹은 이제 노선을 바꾼 것 같으며 후폭풍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 참! 새로 온 대표이사 환영회가 오늘이라고 했지? 실장급 이상만 참석하지?”

“어. 그래 봐야 10명 좀 넘겠네? 이사들하고 실장급 다하면···.”

“새로 온 대표가 로열패밀리라며? 직계라던데? 이거 본사에서 우리 키울 작정인가? 솔직히 네가 올해 우리 회사 수익 엄청나게 늘려놨잖아?”

“글쎄···. 직계는 맞는 거 같은데 키울 생각인지는 모르겠어. 만나봐야 알 거 같아.”

“그래. 한번 좀 살펴보고 정보 좀 주라. 이제 고급정보는 너한테 받으면 되겠네.”

“뭔 그런 걸 신경 쓰고 그래? 형은 테리우스만 꽉 잡고 있으면 돼. 걱정 없을 거라고.”

“하긴···. 그런데 오늘 노친네들하고 술자리 하려면 좀 힘들겠다?”

“힘들 게 뭐가 있어. 그냥 맛있는 거 먹는다고 생각하고 가는 거지 뭐.”

“흐흐···. 정신 승리냐? 그런데 메뉴는 돼지고기야 아니면 소고기야?”

“회식 장소가 고깃집이 아니던데? 어디 레스토랑을 빌렸나 봐.”

“엥? 무슨 파티 하니? 레스토랑을 왜 빌려?”

“모르지 뭐. 가보면 알겠지. 어때 흥미진진할 것 같지 않아?”

“넌 이제 3자 화법을 쓰는구나? 돈 벌어서 이제 회사는 안중에도 없지?”

“원래 없었어. 고속도로에서 사고 났을 때부터 좀 우습게 보였지.”

“얼씨구?”

“형. 지금 테리우스 애들 연말 시상식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헉···.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냐? 이제 일어나야겠는데?”

“그래도 올해는 테리우스가 성장해서 밖에서 덜덜 떨 필요도 없겠네?”

“작년에 방송국 엄청나게 욕먹고 이제 그거 없어졌어. 영하 10도인데 헐벗고 밖에서 춤을 추다니 그게 말이나 되냐?”

“우리도 이제 1위 곡도 있고 팬덤도 있으니 소외당하는 기분은 안 들 거야. 저번에 일본 갔다 와서 팬클럽이 부쩍 커졌다고 하더라.”

“원래 다른 나라에서 인기 있다고 하면 관심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래.”

“그래 오늘 회식 잘하고 결과 좀 알려줘라.”

“알았습니다. 조블리 선생”

나는 업무를 마치고 하석우 실장과 같이 회식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실장님. 정혜성 씨가 매니저분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던데요?”

“헤성 씨 매니저로 소개해준 사람이 인간성 좋기로 소문난 사람입니다. 바른말을 잘해서 전 회사와 문제가 좀 있었어요. 왜 있잖아요. 정의감 넘치는 그런 스타일요.”

“아아···.”

“그나저나 새로운 대표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네요. 혹시 본사에서 들으신 이야기 있으세요?”

“직계라는 건 아실 테고···. 뭐 일단 봐야겠지만 그다지 평판은 좋지 않더군요.”

“그런가요···”

하석우 실장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도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으니 배에 탑승할지 내릴지 고민할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실장님. 그런데 걱정하지 마세요. 실장님은 든든한 배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하석우 실장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도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언제고 갈아타실 수 있게 준비 좀 해주세요.”

“그러시죠.”

우리는 예약이 되어 있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장소에 도착해보니 대부분 이사와 실장이 착석해 있는 게 보였다.

하석우 실장은 아는 사람들과 반갑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했고 별로 친한 사람이 없는 나는 중간에 있는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 매니저 한 명이 안쪽으로 고개를 디밀며 소리쳤다.

“대표님 오십니다.”

입구로 들어온 30대 초중반의 남자는 제법 깔끔하게 생긴 사내였다. 확실히 로열패밀리라 그런지 부티가 좔좔 흘렀다. 입고 있는 옷부터 재질이 달라 보였다. 딱 봐도 명품 수트였다. 그리고 그의 전신에서는 다른 사람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풍겨 나오는 것 같

았다.

그는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도련님처럼 커와서 그런지 다른 사람을 부리는데 능숙한 것 같았다. 매니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제 가봐도 된다고 하더니 장내를 주욱 훑어보았다.

그의 눈길에 실장들과 일부 이사가 긴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대표이사든 말든 나는 아무 상관이 없었으니까···.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새로 대표이사에 취임하게 된 이기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자신감 있는 목소리가 홀에 가득 울려 퍼졌다. 힘이 있어서 좋긴 한데 뭔가 오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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