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모르겠어요 (2)>
”어제 무도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테리우스라는 한국 아이돌 그룹이 일본 팬미팅을 가졌는데요. 1만여 명의 팬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에에에···.”
“사실 살짝 생소하긴 합니다만 이 테리우스라는 그룹이 일본 내에서도 상당히 유명하다고 합니다. 아마도 넷플릭 회원이시면 아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요. 현재 3위권에 올라있는 ‘슬기로운 덕질생활’이라는 한류 드라마에 나오는 제우스라는 그룹을 실제로 연
기한 아이돌 그룹이라고 합니다.”
“드라마가 끝났어도 해당 아이돌이 인기를 계속 유지한다는 이야기군요.”
“맞습니다. 최근, 이 드라마는 최상위권을 랭크하며 일본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대만, 태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후루야 상은 벌써 보신 거 같으신데요?”
“봤습니다.”
“어떤가요?”
“정말 재미있습니다. 초인기 여배우가 실은 아이돌 마니아로 신분을 속이고 기획사에 입사해서 자신의 아이돌을 키운다는 내용입니다. 연기도 좋고 스토리가 유쾌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안 봤으면 무조건 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카토 상도 꼭 보시면 좋겠네
요.”
“저는 뭐··· 그다지···.”
“거기서 여배우인···. 나.유.정 씨가 커버 댄스를 선보이다가 그만 무대 아래로 추락했다고 하는데요. 드라마 작가가 옆에 있다가 몸을 날려 구한 거라고 합니다.”
“뭐 있을 법한 이야기인데 이게 왜 이렇게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겁니까?”
“에또··· 그게 약간 생소한 이야기가 있네요. 그 여배우를 구한 작가의 특이한 이력 때문입니다.”
“이력이요?”
“네. 그 드라마의 작가가 바로 아이돌 그룹 테리우스와 주연 여배우 나유정 씨의 매니저라고 하네요.”
“에에??”
“그러니까 매니저 겸 작가고 그 작가가 자신이 쓴 작품에 담당 연예인을 넣었다는 건가요?”
“하이. 그렇습니다.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 그런 작가라고 합니다. 이름이 이.준.형 씨네요.”
‘아니···. 방송할 게 그렇게 없나 너무 자세히 설명해주는데?’
“화면을 일단 보시죠. 이분이죠? 이분이 콘서트장에서 다치는 것을 감수하고 여배우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는데요. 아! 지금 느린 동작으로 나오고 있죠? 보세요. 공중에서 여배우가 다치지 않게 몸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락···.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
다. 요기요기···. 보이시죠?”
“허어···.”
“이게 지금 인터넷에서 아주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하···. 저건 조금 감동이네요.”
“사에키 상 부군께서도 저렇게 해주시겠죠?”
“무대에서 밀지만 않아도 감지덕지합니다. 정말이에요.”
“하하하···”
“그런데 말이죠. 이게 인터넷에 퍼지면서 누군가가 이 장면을 분석한 게 또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게 뭐죠?”
“그게 ‘여배우가 떨어지려고 할 때 매니저 반응 속도에 대한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인데요. 스포츠경기를 분석하는 오타쿠가 올린 글입니다.“
“뭐라고 했나요?”
“거의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반사신경이라고 분석을 해놨습니다. 움직이는 속도에 대해 수학적인 툴로 분석을 해놓은 거라 솔직히 봐도 모르겠던데요. 아무튼, 엄청난 반응 속도였다고 합니다.”
“혹시 뭐 이런 건가요? 차에 깔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차를 번쩍 들어 올렸다는 엄마의 이야기 말이죠.”
“쏘쏘··· 정확합니다. 그런 느낌이랄까요?”
“놀랍군요.”
“카토 상! 잠시만요! 떨어질 때 장면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아! 감사합니다. 지금 매니저 상이 여배우를 잡고 공중에서 빙글 돌고 있지 않습니까?”
“호오! 뭔가 피겨 스케이트의 아사다 나오 선수가 트리플 악셀을 하는 것 같은 공중 턴인데요?”
“아사다 나오 선수라기보단 한국의 김여나 선수 같은데요? 공중에서 도는 동작이 좀 우아하지 않습니까?“
“그렇네요. 뭔가 힘을 줘서 돌린다는 느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휘리릭 도는 그런 느낌입니다.”
지금 화면에서 내가 나유정과 함께 공중에서 돌고 있는 영상이 느린 장면으로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 그만 좀 해! 이놈들아!’
“네. 사에키 상?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예전에 보디가드라는 영화가 있었는데요. 거기에서 경호원이 여가수를 저런 식으로 구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게 생각 나네요.”
“그렇다고 합니다.”
“또 놀라운 것은 최근 넷플릭 10위권에 등장한 ‘나만의 세계’라는 작품도 이 작가가 집필했다고 하는데요. 한국 드라마 마니아 후루야 상! 혹시 이것도 보셨나요?”
“물론입니다. 명작이네요.”
“명작이요?”
“그 드라마를 보다가 마지막에 아이처럼 펑펑 울었습니다. 그렇게 운 것은 오랜만인 것 같은데요. 뭐랄까 마스터 피스? 같은 작품이에요.”
‘허···. 저 양반 내 작품을 너무 감명 깊게 본 거 아냐?’
나는 그 방송을 보면서 초조해졌는지 옆에 있던 생수통을 들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하이. 말로 설명해 드리긴 뭐하고 넷플릭에 전편이 다 올라와 있기 때문에 주말에 몰아서 보는걸 추천해 드립니다.”
“후루야 상의 말을 들어보니 꼭 한번 보고 싶긴 하군요.”
“이미 많은 분이 보고 계시고요. 한국에서는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초초초 유명한 작품입니다.”
“허어···.”
“그 드라마 때문에 주연 여배우인 나유정 씨의 인기가 한국에서는 엄청나다고 하네요. 아마 한국은 지금 이 사고 소식으로 난리가 났을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부재중 전화나 메시지가 한가득이었다. 일부러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알리지도 않았는데 그게 인터넷으로 퍼지다니···. 난감하지 그지없었다.
“저희 공연 측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던 거죠?”
“네. 그냥 댄스를 추다가 서로 부딪쳐서 아래로 떨어진 거라···.”
“하이···. 그럼 다음 소식은···.”
나는 얼른 국내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예상대로 연예 기사란이 난리였다.
[일본 팬미팅 도중 무대에서 추락한 나유정!]
[나유정. 무대에서 이준형 작가와 함께 추락하다.]
[춤을 추다 추락한 나유정 굳이 일본에서 팬미팅을 해야 했나?]
[나유정을 구한 이준형 작가 생명에 이상이?]
아니나 다를까 기레기들이 물을 만난 듯 널뛰기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제목은 저렇게 쓰고 생명엔 당연히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썼겠지 뭐.
끄응···.
나는 뻑적지근한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떨어질 때 나유정의 체중을 고스란히 받아서 그런지 자고 일어나니 여기저기가 쑤시고 있었다.
“형 어디가?”
“유정 씨랑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잠시 나갔다 올게.”
나는 호텔 방을 나서서 유정 씨가 묵고 있는 호실로 갔다. 벨을 누른 뒤 들어가 보니 나유정은 내가 사준 추리닝을 입고 있었다.
“몸은 좀 괜찮아요?”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몸 상태를 걱정했다.
“크흠. 죽을 정도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프면 꼭 다시 병원에 가보세요. 알겠죠?”
“그래요. 알겠습니다.”
나를 걱정하는 그녀의 눈빛이 따뜻했다. 뭔가 매니저 역할이 바뀐 것 같지만 이런 것도 다 추억 아니겠는가?
하지만 왠지 예전 같지가 않다. 그녀가 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감정이 나만 그런 건가 싶다. 잠시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나는 주위를 환기하기 위해 황급히 말을 꺼냈다.
“아 참. 지금 또 인터넷 난리 난 거 알아요?”
“네. 저도 아침에 일어나서 봤는데 기사도 많고 특히 한국이 난리더라고요. 왜 일본까지 가서 다치냐면서···.”
“하여간 기레기들···. 어그로 끄는건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자기들이 해외 마케팅을 해줄 것도 아니면서 자꾸 선동하는 글만 쓰네요.”
“회사 쪽은 조아린 씨가 연락해서 별문제가 없다고 인지를 하고 있는데요. 대중들은 정보가 부족해서인지 무슨 일이라도 난 것처럼 떠드네요.”
“하아···.”
“그래서요. 제 생각에는 유정 씨 SNS에 우리 괜찮다고 사진이라도 올릴까 하는데 어떠세요?”
“그, 그럴까요?”
우리는 같이 사진을 찍어 아무렇지도 않다는 글을 올리기로 했다.
“잠시만요. 준형 씨 이리로 좀 붙어보세요. 얼짱 각도가 안 나오잖아요.”
“에이···. 제가 뭐 얼굴 잘난 거 보여줄 일 있어요?”
“그게 아니라 얼굴이 너무 커··· 아, 아니 저랑 같이 나오니까 얼굴이 상대적으로···.”
“그냥 크다고 하세요. 그런데 유정 씨가 명심해야 할 게 있어요.“
“그게 뭔데요?”
“유정 씨 머리가 작아도 너무 작아요. 그래서 제가 크게 보이는 거지 전 보통이라고요.”
“알았어요. 얼른 좀 붙어보시라니까요? 에잇! 제가 좀 앞으로 갈게요.”
으음. 그녀가 움직이자 또 과일 향이 내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다시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아···. 심장아 또 나대는 거냐?
더 붙으라는 나유정의 말에 깜짝 놀라 너무 접근을 해버렸다.
쿨럭···.
“좋아요. 이제 찍습니다!”
찰칵!
결국, 나는 유정 씨 바로 옆에 딱 붙어서 얼짱 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오···. 이렇게 하니 좀 잘 나왔네요. 이걸로 올려야겠다.”
내가 힘든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건네받고 사진을 살펴보았다.
“음···. 에···. 쓰읍···. 애매한데요?”
“뭐가요?”
“뭐긴요. 그냥 아무 사이가 아닌 거처럼 나와야 하는데 이건 좀 그런데···”
“우리가 왜 아무 사이가 아니에요?”
“네?”
내가 깜짝 놀라자 그녀는 나를 강렬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유정은 목을 돌리며 근육을 풀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요. 살려 놨으면 책임을 져야죠.”
“살리긴 뭘 살려요. 거기서 떨어져도 안 죽어요.”
“그럼 나중에 또 떨어지면 그냥 놔둘 거예요? 다치든 말든?”
“..........”
나는 그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버렸다.
“왜 말을 못 해요? 그냥 놔둘 거냐구요.”
“아뇨. 똑같이 할 겁니다.”
“네?”
“무조건 어제처럼 똑같이 행동할 거라고요.”
나는 뭐에 홀린 듯 그녀의 양팔을 꽉 잡고 말았다. 머릿속의 이성이 이러면 안 된다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마주보며 서 있었고 분위기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문득 내가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서 그녀와 함께 있으면 가슴이 두근두근···. 지금도 그렇고···
머리가 백지처럼 하얗게 변하고 있는데···
지잉···. 지잉···.
호텔 방의 벨 소리가 정적을 깨웠다.
“이크···. 누가 왔나 봐요.”
“그, 그러네요. 준형 씨가 문 좀 열어줘요. 난 옷 좀 갈아입고···.”
타이밍 좋게(?) 조아린 씨가 찾아온 것이다.
“시, 실장님? 여기에서 왜···.”
그녀가 뭔가 단단히 오해한 듯 얼굴에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오해하지 마시고요. 저랑 유정 씨 신상에 아무 이상 없다고 사진 찍어서 SNS에 올리려고요. 마침 잘됐네요. 아린 씨가 찍어주면 되겠네요. 각도가 맘에 안 들어서 다시 찍어야 하거든요?”
바로 방문이 열리고 옷을 갈아입은 나유정이 거실로 걸어 나왔다. 우리는 그렇게 조아린이 찍어 준 새로운 사진으로 게시물을 올렸다. 아까 찍었던 사진은 유정 씨의 휴대전화에 조용히 잠들게 되었다.
우리가 올린 것은 사진과 간단한 안부가 담긴 글이었다.
[여러분! 저희는 괜찮아요. 그냥 무대에서 살짝 떨어진 건데 아무 이상 없습니다. 이상한 기사를 눌러보시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일본 일정 잘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아 참. SNS 계정이 없는 이 작가님이 말 좀 전해달라고 하네요. 어제 사고 때문에 일본에서 드라마 홍보가 크게 됐다며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휴. 그런데 작가님이 생각하는 게 철이 없긴 없어요. 무조건 드라마나 자기 소속 연예인들만 챙기고···. 자
기나 좀 그렇게 챙기지···. 안 그래요?]
댓글==
-그냥 사귀어라! 제발!
-아니! 사귀지 말고 그냥 결혼해!
-유정이 언니 쭌형 작가님 놓치지 말아요. 작가님 몸 날리는 거 보고 나 감동 먹었음 ㅠㅠ
-여러분! 이 커플은 그냥 인정합시다.
-유정 씨를 보냅시다. 어디로? 시집으로···.
-당장 예쁜 아기가 공개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음.
-야 이! 위에 미친놈아.
우리의 안부를 올렸는데 어째 댓글 분위기가 이상하다?
테리우스의 팬미팅에 꼽사리 낀 우리의 일본 일정이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런데 일본 팬미팅 이후 넷플릭에 올라온 ‘나만의 세계’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십 개 국가에서 랭킹 톱을 찍으며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넷플릭···. 나만의 세계로 초대박! 조선 킹덤에 이은 글로벌 메가 히트!]
[넷플릭 CEO 연이은 한류 콘텐츠의 성공으로 경쟁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와 격차를 크게 벌려···.]
ⓒ 소광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