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03화 (103/263)

< 나도 모르겠어요 (1)>

누군가가 내 몸을 들려고 하는 것 같자 나도 모르게 눈을 번쩍 뜨고 말았다.

“헉!”

주위를 살펴보니 비상사태를 대비해 흰 가운을 입고 대기하고 있던 구급 요원이 나를 들것으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옆에서 나유정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었고 유니버설 J의 다카하시 상이 그런 그녀를 달래고 있었다.

‘어이···. 나는 내 팽개쳐두고 뭐 하는···.’

“끄응···. 저기요···. 잠시만요.”

손을 들어 이동하려는 그들을 제지했다.

“유정 씨!”

“준, 준형 씨!“

그녀는 깜짝 놀란 듯 몸을 돌려 바로 내 곁으로 다가왔다.

“괜찮아요? 정신 들었어요? 이거 몇 개예요?”

나유정은 손가락 두 개로 브이 자를 펼치고 있었다. 내 눈에 그녀의 모습이 마치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보이냐구요!”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아픈 와중에도 그런 그녀가 귀여워 보였다. 그녀가 나를 걱정한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하하···. 이 심각한 상황에 사진 찍게 생겼습니까? 브이 자는 왜 보여주는 거예요?”

“정신 잃고 쓰러진 사람이 할 말이에요? 몸은 어때요. 괜찮아요?”

“음···. 괜찮은 것 같은데···. 크게 다치진 않은 것 같아요. 넓은 등판으로 떨어져서 괜찮나 봐요. 두 팔도 멀쩡하고···.”

등이 조금 아팠지만 아픈 척 내색하지 않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레전드 농구 만화에서도 마지막 시합에서 등판을 다친 주인공이 아픔을 참고 나머지 경기를 뛰어 우승 후보를 이기지 않았던가?

“얼른 병원부터 같이 가요.”

“괜찮아요.”

“뭐라고요?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병원 가서 검사 받아봐야 해요.”

“알았어요. 갈 거예요. 단, 팬미팅 끝나고 갈 거예요. 지금 팬미팅 현장 분위기 박살 났을 거 같은데 거기 수습하고 가죠.”

나는 일부러 들것에서 내려 고개를 까딱거리고 팔을 들어 붕붕 돌렸다.

‘으윽···.’

등에서 찌릿찌릿한 느낌이 전해졌다. 확실히 다치긴 한 것 같은데 병원에 입원하거나 그럴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우려스러운 것은 바닥에 부딪힌 머리였다. 혹시 출혈이라도 있으면 갑자기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조심! 조심 좀 해요. 하···. 큰일 나게 생겼어.”

“일단 무대로 가서 팬들하고 테리우스 녀석들을 안심시켜줘야겠어요.”

“그럼 그렇게 하고 바로 병원 가는 거죠?”

나유정은 내 모습이 답답해 보이는지 본인이 더 열을 내고 있었다.

“알았어요. 얼른 같이 나가요. 유정 씨는 아무 이상 없는 거죠?”

“준형 씨가 충격을 다 흡수했는데 어디가 아프겠어요. 완전 멀쩡해요.”

“저 엄청 강골인 거 모르시죠? 어렸을 때부터 잘 아프지도 않고 다쳐본 적도 별로 없어요. 몇 달 전에 테리우스 애들이랑 차 사고 났을 때도 괜찮았다니까요? 뉴스에 나올 정도로 엄청나게 큰 사고였어요.”

“피···. 알았어요. 얼른 수습하고 병원이나 가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 휴지로 눈물을 닦아냈다.

나와 나유정은 그렇게 다시 무대로 나가서 멤버들과 관객들을 안심시켜줬다. 나유정과 부딪친 김훈은 거의 얼굴이 사색이었다. 저 얼굴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려고 했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을 하고 무대를 내려온 뒤 나유정과 함께 인근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아무래도 제휴 병원이라 그런지 검사가 원스톱으로 진행됐다.

약 1시간 정도를 검사를 받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는 병실에서 나유정의 간호를 받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나를 돌봐주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간호라는 게 별거 있나? 그냥 옆에서 말이나 시켜주면 그게 간호지?

“준형 씨. 도대체 나를 어떻게 잡은 거예요?”

그녀는 침대에 팔을 대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글쎄요? 갑자기 주위가 멈춘 것 같더라고요.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렸어요. 시간이 나한테만 느려진 그런 느낌 있잖아요. 유정 씨가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아서 그냥 껴안고 떨어졌어요.”

“치···. 누가 작가 아니랄까 봐. 소설 쓰시네.”

“진짜예요. 그냥 매니저로서의 본능이랄까? 앗! 이건 막아야겠다. 그런 생각이었죠.”

그녀는 침대에 팔꿈치를 대고 손으로 턱을 괴었다.

“진짜 그런 생각뿐이었어요?”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다. 나유정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상체를 숙여 얼굴을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그녀의 얼굴이 정면으로 딱 보이자 심장이 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아···. 심장아 나대지마. 어제부터 왜 그래. 미치겠네. 이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지?

똑똑···.

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우리 둘 다 깜짝 놀라서 문 쪽을 바라봤다.

유니버설 J의 다카하시 상이 들어오고 그 뒤로 가운을 입은 중년인이 뒷짐을 지고 병실로 들어왔다.

“이준형 씨?”

“네···.”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통증이 있다고 하신 등은 요추부 염좌고요. 이건 물리 치료를 받으시면 어렵지 않게 치료가 될 겁니다. 그런데···.”

“뭐 다른 문제가 있나요?”

내가 의사와 일본어로 대화하자 나유정은 못 알아듣고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머리 CT를 보니 출혈 흔적이 조금 있는 것 같더군요. 이번 사고로 생긴 게 아니라 오래전에 생긴 거 같던데 혹시 다치신 적 있으신가요?”

“네. 예전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머리를 살짝 다쳤었고 그때도 의사가 그냥 쉬면 괜찮을 거라고 했었죠.”

그때 이후로 내 눈에 이상한 게 보이기 시작했지.

“아! 그럼 맞겠네요. 전 CT 속에 보이는 게 뭔가 싶어서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별것은 아닌 거로 보입니다. 제가 처방해드린 약을 드시고 물리 치료를 받으시면 더 좋겠네요. 아 그리고 꼭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좀 움직여도 되죠?”

“네. 하지만 격렬한 움직임은 최소 1~2주는 금지입니다. 아셨죠?”

“알겠습니다.”

의사는 입원실을 나가고 다카하시 상에게 내용을 확인한 나유정이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는 게 보였다.

나는 오히려 그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유정 씨가 안 다쳐서 천만다행이었다. 어차피 나는 너무 튼튼해서 좀 다쳐도 된다. 아···. 이건 좀 아닌가?

‘그래.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지.’

유정 씨가 만약 다쳤다면?

‘절대 안 돼. 죽으면 내가 죽었지.’

유정 씨가 나를 돌아보았지만, 다카하시 상이 계속 병실에 있어서 더는 이야기를 이어갈 수 없었다.

저녁 6시 반에 있었던 2차 팬미팅은 나 없이 진행됐다. 나유정의 댄스는 생략됐으며 인터뷰만 진행했다고 한다.

*  *  *

팬미팅이 끝나고 테리우스와 나유정이 병실에 들렀다. 나는 퇴원후 짐을 챙겨서 호텔로 가기로 했다.

“형. 진짜 괜찮아? 퇴원해도 되겠어?”

“응. 아까도 등만 조금 아팠는데 물리 치료를 받았더니 이제 살짝 불편한 정도? 괜찮은 거 같다.”

“그래도 조심해. 나 간 떨어지는 줄 알았어.”

“나 생각해주는 건 연준이 밖에 없구나?”

“형! 나도··· 가슴이 벌렁벌렁하더라. 무대가 높았는데 그 정도밖에 안 다친 건 기적이야.”

“뭐···. 고속도로 사고에서도 살아남은 럭키가이잖아.”

“염라대왕님 방문갔다가 문전박대당하고 왔지.”

“저기요. 전 그때 팔 부러졌거든요?”

“야! 넌 나오다가 미끄러져 넘어진 거잖아.”

또 비글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야! 조용히 좀 해라. 형 아픈 거 안보이니? 얼른 호텔가서 씻고 쉬자고···.”

“뭐야. 씻고 싶어서 그런 거야? 형은 안중에도 없구만?”

“그래. 형! 어서 가자. 그런데 나 그때 형 진짜 멋있더라. 무슨 보디가드 인줄 알았어. 휙 하고 몸을 번개처럼 날리는데 무슨 영화 같더라.”

“와! 나도 그 생각했는데 너도 그랬냐?”

“예술적이었어.”

“야 인마. 정이든. 넌 사고를 무슨 예술적이라고 하냐? 싸이코냐?”

“아니. 그게 아니라 누구도 못 움직였는데 형만 팍하고 튀어 나갔잖아”

“그, 그건 너희가 역동작에 걸려서 그랬을 거야.”

“노노···. 솔직히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었음.”

“이제 그만하자? 형 얼른 퇴원 좀 하자고···”

그렇게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오전까지 나머지 인터뷰를 찍고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음날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통에 잠에서 깨어났다. 확실히 자고 일어났더니 등이 다시 아팠다. 물리 치료를 더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야! 몇 시인데? 내가 너무 늦게 일어났냐?”

“아니! 형 지금 난리 났어.”

“왜? 밖에 물난리 났냐? 어젯밤부터 비가 조금씩 오던데···”

“아니 그런 게 아니고 포털이랑 동영상 사이트에 우리 팬미팅 영상 퍼지면서 기사도 뜨고 난리야.”

“엥? 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거기 동영상 촬영 철저하게 막는다고 안 했어?”

“그거 막아도 소용없어. 어떻게든 찍는 사람이 꼭 있거든. 자! 그거 한번 봐봐.”

연준이가 손으로 내 휴대전화를 가리켰다. 나는 앱을 켜고 실시간 급상승 동영상을 클릭했다.

나유정이 춤을 추다가 김훈과 부딪치며 휘청거리다가 무대 밖 떨어지는데 옆에 있던 내가 번개처럼 움직이며 그녀를 안고 밑으로 떨어지는 영상이었다. 그런데 영상을 찍은 사람의 위치가 하도 절묘해서 가까이에 있었던 테리우스 멤버조차 보지 못한 부분이

고스란히 찍혀있었다.

내가 공중에서 제비를 돌듯 방향을 바꾸어 유정 씨를 다치지 않게 하는 장면이 정확하게 촬영된 것이었다.

“와··· 여기서 이런 걸 찍고 있었다니···. 팬들 무섭네.”

“형! 지금 그게 할 말이야?”

“왜? 뭐가 어떤데? 내가 뭐에서 감탄을 느껴야 하냐? 뛰어난 나의 운동신경?”

“허···. 참 나 할 말 없게 만드네. 댓글 좀 보라고 댓글!”

“댓글?”

나는 스크롤을 내려 위부터 댓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 이준형 작가 미쳤네. 그냥 몸을 날려서 나유정을 구하네. 자기는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자세인데?

- 와 꼭 영화 찍는 거 같다. 무슨 보디가드임?

- 캬! 사랑하는 여자는 내가 지킨다! 개 멋있다.

- 사랑하긴 뭘 사랑해? 하여간···

- 그래도 달달하긴 함. 진짜 둘이 사귀는 거 아님? 이준형 작가 눈이 뒤집혀서 나유정 구하는 거 봐. 이건 뭐가 있어도 있는 거다.

- 이준형 매니저? 작가? 아무튼, 이 사람 진짜 호감이다. 무의식중에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거 같음? 공중에서 나유정 다치지 않게 방향 트는 거 보임?

- 그러게? 반사신경 실화임? 이런 분이 춤은 왜 그렇게 못 추는 거지?

- 진짜 위험하긴 하다. 그래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니 천만다행이다.

- 원래 무대에서는 조심해야 함. 동선이 익숙하지 않으면 잘못하다 사고 남.

어우···. 댓글 난리구만. 크흡···. 또 사귀니 어쩌니 기사 뜨게 생겼네. 이제 새롭지도 않다고···.

“앗! 준형이 형! 연준아! 이리 나와봐. 빨리!”

“왜 그래! 호떡집에 불났어?”

“얼른 나와보라니까?”

박영관의 급한 외침으로 나와 연준이는 거실로 나갔다. 박영관은 아침부터 TV를 틀어놓고 아침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돌아보더니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형! 일본 방송 탔다.”

화면에는 아나운서로 보이는 남자가 어제 팬미팅에서 있었던 사고 장면을 보여주며 설명을 하고 있었다.

“아니! 뭐야? 이게 뭐라고 일본 아침방송에까지 나와?”

내가 어이가 없어서 소리치자 옆에서 보고 있던 정이든이 조용히 말을 했다.

“지금 저게 야호 저팬 인기 기사 목록에 들어가 있는데?”

“진짜야? 야! 정버터 기사 해석 좀 해봐.”

등도 아픈데 머리까지 지끈거리고 있었다.

‘흐음···. 뭐 괜찮을려나? 홍보에 도움은 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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