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근두근 쿵! (1)>
“그러니까 이 매니저님이 두 작품을 집필하신 작가라는 거죠.”
나유정이 어때? 써프라이즈지? 라는 표정으로 나를 가리켰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황당해하는 두 사람에게 지금까지 진행됐던 경과를 차근차근 이야기해줬더니 그제야 이해를 하는 것 같았다.
“놀라운 이야기군요.”
“와···. 정말 생각도 못 했어요.”
그들은 나를 다시 봤는지 눈빛이 달라진 게 느껴졌다. 단순히 아들, 오빠를 돌봐줬던 직원 그러니까 매니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실은 드라마에 꽂아준 작가라니···.
사실상 일본에서 테리우스 돌풍은 드라마로 생긴 인기라 내 지분이 상당한 것도 사실이었고 감명 깊게 봤다는 ‘나만의 세계’ 까지 내 작품이라고 하자 더 믿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정이든. 너 드라마 관련해서 아무 이야기도 안 한 거야?”
“대사도 없는데···. 굳이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잖아.”
그는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실 거의 드라마에서 김훈과 더불어 2대 병풍 노릇을 해서 그런지 가족들에게 별다른 정보를 알려주지 않은 듯했다.
솔직히 나라도 못 하는 걸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자신은 없었다. 나도 방송에서 노래나 춤을 추며 평생 씻을 수 없는 흑역사(?)를 남겼기 때문에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준코 씨. 이든이는 연기 쪽에 재능은 부족하지만, 곡을 쓰는 능력이 상당히 뛰어납니다. 자질만 따진다면 일류 작곡가 수준이에요.”
“저도 이번 곡을 우리 아들이 만들었다길래 너무 깜짝 놀랐어요. 특히 마지막 곡을 듣고 펑펑 울었답니다.”
“아···. ‘보고 싶은 엄마에게’ 말씀하시는 거구나.”
“맞아요. 우리 이든이가 말은 안 해도 속이 깊죠.”
솔직히 준코 씨가 말한 사실은 모르겠고 이든이를 무작정 칭찬하면서 그녀에게 호감을 샀다.
“유정 씨. 유리 정말 예쁘지 않아요? 한국에서 데뷔하면 인기 엄청날 것 같죠?”
나는 그녀를 돌아보며 내 말에 동의하라는 무언의 표정을 날려 보냈다. 그러자 내 표정의 속뜻을 파악하느라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곰곰이 생각해보던 나유정이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아! 그러게요. 난 무슨 인형이 앉아 있는 줄 알았잖아요.”
“그렇죠?”
“진짜 깜짝 놀랐어요. 무슨 일본 연예인인가 했다니까요?”
우리 둘이 호들갑을 떨자 준코 씨는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고 정유리는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부끄러워하며 어찌할 줄 몰랐다. 아무래도 동경하는 나유정이 칭찬을 하니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오! 잘한다.! 역시 나유정! 역시 머리 회전이 빠르다니까.
나는 그녀를 보며 한쪽 눈을 살짝 감고 가슴에 손을 올려서 안 보이게 엄지 척을 날려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내 얼굴을 보고 씩 웃더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유리야. 혹시 이거 봤니?”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유리와 어깨동무를 하고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여주었다. 정유리는 나유정이 마치 친언니처럼 다정하고 편하게 대해주자 기쁜 나머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어? 이거 블랙소울이잖아요.”
“맞아. 너 케이팝 관심 있니?”
“네! 저 댄스 학원도 다니는걸요?”
“그래? 그럼 이거 봐봐. 나랑 블랙소울이랑 같이 라이브로 퍼포먼스 하는 걸 찍어서 올린 영상이거든?”
“에에? 이거 블랙소울 채널에 올라간 거예요?”
“응. 왜 이상하니? 언니 춤 좀 추거든?”
그녀는 정유리에게 윙크를 찡긋한 뒤 영상을 플레이해서 정유리에게 보여주었다.
“우와! 언니 너무 잘 추신다. 블랙소울하고 별로 차이도 없이 추시는 거 같아요.”
아마도 얼마 전 올린 나만의 세계 40% 달성 공약 영상인 듯싶었다. 종영 당시 시청률이 40%를 넘었기 때문에 드라마가 끝난 후 열심히 연습해서 블랙소울 채널에 올린 영상이었다.
그게 또 한동안 엄청난 조회수를 올리더니 큰 화제가 되어 나유정을 블랙소울 객원 멤버로 넣어야 한다는 둥 그런 소리가 회자됐다.
사실 요즘은 라이브를 해야 해서 음치들은 데뷔하기 힘든데 만약 객원 멤버라도 된다면 분량은 1초 컷이 될 확률이 높았다. 브릿지 부분에 ‘come on!’, ‘yes!’, ‘let’s go!’ 이런 가사만 담당하고 개인 파트는 삭제될 게 뻔하달까? 백댄서인지 멤버인지 헷갈리게
될 게 분명했다.
“험험···. 그런데 라이브 퍼포먼스인데 유정 씨 목소리는 안 들리는 거 같은···.”
그 말을 하자마자 나유정이 눈을 부릅뜨며 고양이 눈을 했다. 막 할퀴어버릴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급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차···. 우리 아군이지?’
내가 입을 꽉 다물자 그녀의 얼굴은 다시 풀어지며 정유리의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녀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이는 게 아닌가?
‘아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정유리는 깜짝 놀란 듯 나유정의 얼굴과 내 얼굴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정유리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거리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던 나유정이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머님. 우리 이 작가님이 한국에서는 유명 작가예요. 케이블과 종편 드라마에서 전무후무한 시청률을 기록한 미다스의 손으로 평가받고 있거든요.”
“아아···. 나만의 세계는 정말 대단했어요. 모든 게 완벽했달까···. 스토리를 정말 잘 짰다고 생각했는데 작가님이 매니저인 준형 씨였다니···. 상상도 못했네요.”
와우! 나유정은 나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 봤다. 그녀는 나의 신뢰도를 팍팍 올려놓고 있었다. 한국의 최고 톱스타가 이렇게 보증하는데 누가 안 믿겠는가?
그러자 나와 유정 씨의 대화를 듣고 있던 테리우스는 도대체 뭐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벙찐 표정을 하고 있었다.
* * *
그렇게 이든이의 어머니와 동생을 보내고 XM 식구들끼리 조촐하게 맥주를 한 잔씩 하고 있었다.
일본에서의 상상을 초월한 인기에 놀란 멤버들이 오늘 있었던 일들을 끊임없이 재잘대고 있었다.
“얘들아. 아까 하이터치를 하는데 일본 연예인이 다녀갔더라. SNS에 인증까지 했네? 나랑 손을 마주쳤다는데 전혀 몰랐어.”
박영관이 아주 거만한 표정으로 얼굴이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아···. 혹시 마스크 쓰고 있지 않았어? 나 본 거 같은데?”
“맞아. 형이 봤구나? 내가 일본에서 상당히 인기가 좋은가 봐. 줄은 좀 짧았는데 실속이 있는 편이지.”
웃기는 소리! 이 녀석이 어디서 거드름을 피우는 거야? 어이없네.
“아까 그 마스크 쓰고 있던 여자분 하이터치회 하는 곳 바깥에서 연준이 카드랑 바꾸려고 하던데···. 결국 못 바꾼 것 같더라.”
“뭐? 뻥 좀 치지마 형. 그런 거짓말을 누가 믿어?”
그는 말도 안 된다며 발로 나를 밀어냈다.
모두 박영관의 앙탈을 보고 웃고 있었다. 옆에서 나유정도 웃긴지 맥주를 마시며 피식 웃었다. 갑자기 우리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마주쳤다. 나는 고개를 까딱해서 잠시 보자는 신호를 보냈다.
방으로 자리를 옮긴 나는 나유정에게 질문했다.
“아까 유리한테 뭐라고 한 거예요?”
“왜요? 별말 안 했어요.”
“에이···. 뭐라고 하던데?”
“준형 씨.”
“말씀하세요.”
그녀가 내 눈을 힐끔 바라보더니 팔짱을 꼈다.
“저번에 독립해서 회사 차린다고 했잖아요. 거기서 아이돌도 데뷔시킬 거고 그래서 연습생으로 데려오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맞아요. 유정 씨 정말 날카롭더라. 어떻게 그 짧은 순간에 그걸 캐치했어요?”
“치···. 딱 보면 알죠. 그냥 데려오고 싶어서 눈이 뒤집혔던데···.”
“에헤이···. 눈이 뒤집히진 않았어요.”
“이거 봐. 탐욕스러운 눈···.”
“삿대질 좀 그만하시고···. 뭐라고 하셨냐 고요.”
“그게 그렇게 궁금해요?”
“네···. 전 유정 씨가 잘 말해주셨을 거라 믿습니다.”
“흐음···. 아닌데···.”
별것도 아닌데 자꾸 뜸을 들이는 그녀였다.
“아···. 나 진짜 속에서 천불 나요. 귓속말로 뭐라고 했느냐고요.”
“저 사람 내 거라고 건들지 말라고 했어요. 됐어요?”
“뭐, 뭐요?”
나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쿵 내려앉으며 깜짝 놀랐지만, 그녀의 올라간 입꼬리를 보며 기분이 싹 가라앉았다.
“왜요. 늙어 죽을 때까지 매니저 시키시게요?”
“안될 거 있나요?”
그녀는 뚫어질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농담하지 마시고요. 뭐라고 했느냐고요.”
“후···. 그냥 나중에 언니가 저기 앞에 서 있는 작가 오빠랑 회사를 하나 만들건대 너 들어올래? 걸그룹으로 무조건 데뷔시켜줄게···. 이렇게 말했어요.”
설마 그 말을 듣고 정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단 말인가?
“정말이죠?”
“속고만 사셨어요?”
“정말 나랑 같이해야겠어요?”
“지분 5%에 50억 드릴게요. 콜?”
5%에 50억이라고? 으음···. 지금 넷플릭과 함께 잘나가는 제작사 D-Studio가 시가총액이 2조 5천억이고···. 3대 기획사 시가총액이 대략 각각 1조 정도 약간 안 된다고 봤을 때 내 목표를 시가총액 1조 정도라고 보면 지분의 5%는 500억이었다.
현재 기준으로 따졌을 때는 아주 무모한 배팅일 수도 있는데 내 능력을 생각해보면 사실 리스크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녀가 내 어떤 면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능력을 확신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정말로 내가 사업에 성공하면 그녀는 그냥 최소 10배 이상을 꿀꺽하는 셈이었다.
“흐음···.”
“왜요. 고민돼요? 너무 날로 먹으려고 하는 거 같아요?”
“뭐···. 약간···.”
“그럼 추가로 기획사 사무실 임대료 3년간 면제 어때요?”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지?
“혹, 혹시 건물이라도 샀어요?”
“빌딩이요.”
“빌, 빌딩···.”
그녀는 스케일이 달랐다. 서른도 안 돼서 빌딩을 사다니···. 나도 이번 전자책이 터지면서 통장에 30억 정도가 있었는데 아직 나유정에 비빌 수는 없었다.
그녀는 슬기로운 덕질생활로 100억원 이상의 광고 수익을 벌어들였고 이번 드라마의 초대박으로 300억 이상의 추가 수익을 벌어들일 예정이었다. 물론 모 스포츠 브랜드 3년 전속모델료가 엄청나게 컸다.
‘특급 스타들은 벌어들이는 단위가 다르구만?’
그래도 나는 별로 부럽지 않다. 진정한 부자는 기업을 만들고 주식을 상장해서 거부가 되는 거니까.
물론 지금은 그냥 정신승리지 뭐···.
“저 재산 불려주신 자산관리사 아저씨가 마포에 빌딩 괜찮은 거 나왔다고 권유해서 하나 샀어요.”
“저기요. 무슨 나만의 블루마블 합니까? 마포에 빌딩 하나를 세웠다고요?”
“준형 씨가 부동산에 대해 뭘 알아요? 모르면 가만히 있어요. 세운 거 아니고 그냥 샀어요.”
“..........”
빌딩을 그냥 산다고? 갑자기 힘이 쭉 빠진다. 성우 형의 집을 부러워하지도 않고 이사할 마음도 없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마포 상암에 방송국하고 제작사 다 몰려있잖아요. 입주하기 딱 맞지 않아요? 우리 집하고도 가깝고···. 준형 씨가 기획하는 엔터 회사가 바로 제작 위주의 종합 기획사 아니에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뜨악하고 말았다.
와! 무서울 정도다. 아니 공포다. 내가 말 한마디를 안 했는데 이미 내 생각을 몇 수 넘겨짚고 있다.
“혹시 거기 아직 입주자 못 찾았어요?”
“그, 그건 아닌데요?”
“아니긴? 딱 봐도 세입자 못 구한 거 같은데···.”
“조금만 기다리면 들어올 거에요. 아래층은 다 찼거든요?”
“헐···.”
농담은 했지만 솔직히 당장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5%라···. 아슬아슬하게 용인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절묘한 비율이었다. 그녀는 저번처럼 무모하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때는 49%에 50억이었지 아마?
그리고 3년간 임대료 무료에 입지 조건조차 최상이었다.
“그런데 혹시 저 때문에 일부러 빌딩을 구매한 건 아니죠?”
내가 살며시 이야기하자 그녀는 팔짱을 풀고 아래위로 나를 쓱 훑어보고 있었다.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냐 하는 표정이었다.
“준형 씨 때문이라고요?”
“아, 아닌가?”
“흥! 맘대로 생각하시고요. 할거에요 말 거에요?”
“제 사무실 겸 작업실 만들어도 됩니까?”
“콜!”
“아싸!”
“대신!”
“대신···. 뭐요?”
“저 준형 씨 회사에 사외 이사 자리 하나 주세요. 제가 아무래도 연기 활동을 계속해야 할 것 같아서 실무는 못 할 것 같고···.”
“뭐 그러시죠. 그 정도야···.”
그렇게 우리는 원만하게 합의했다. 물론 구두였지만 내가 계약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그녀를 하루 이틀 볼 것도 아니고···.
“유정 씨. 제가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유정 씨는 뭘 믿고 저한테 그냥 그렇게 배팅을 하는 거예요?”
“몰라요? 저 이능력 있잖아요. 미래 예지력···.”
“헉···. 달동네 플랫폼에서 연예계물 내렸는데 벌써 그거 봤구만?”
“헤헤···. 농담이고요. 저 신 내렸어요. 재신(財神)요.”
“..........”
“믿기 싫으면 믿지 마세요. 그냥 일종의 통찰력 같은 거예요. 평소에 내가 보고 느낀 걸 믿는 겁니다. 의심 따윈 없어요.”
나는 그녀의 반짝이는 두 눈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이 흑요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울컥했다.
‘의심 따윈 없다고?’
내가 전업 작가를 한다고 집에서 자판을 두드릴 때 부모님도 보여주지 못했던 강한 신뢰가 그녀의 눈에서 느껴졌다.
나는 손을 들어 가슴을 만졌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갑자기 어떤 일이라도 잘해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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