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00화 (100/263)

< 일본에서 생긴 일 (3)>

“한국 이름이 정유리예요. 정유리!”

“유리?”

“네. 부모님들이 일본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는 이름으로 지으셨어요. 일본에서는 아키모토 유리예요.”

“어머니 성씨?”

“맞아요.”

윽···. 어머니가 있었지. 내가 미쳤나 보다. 나는 황급히 옆을 보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든이 매니저 이준형입니다.”

“안녕하세요. 아키모토 준코입니다.

“저는 무슨 방송국 아나운서가 들어오는 줄 알았어요. 너무 젊으셔서···.”

“호호호···. 역시 듣던 대로 다정하시네요. 준형 씨.”

그녀는 솔직히 40대로 보이지 않는 외모였다. 정말로 방송국의 고참 아나운서 정도의 느낌이랄까?

“이든아 내 얘기는 잘 한 거지? 흉보거나 그런 거 아니지?”

“난 있는 대로만 말하잖아. 다 좋은 얘기니까 걱정하지마. 형.”

“어머님. 그리고 동생분도 그렇게 서 계시지 말고 이쪽으로 오시죠”

나는 그들을 소파로 안내했지만, 눈은 계속 정유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고등학생인 정유리는 오밀조밀하고 귀여운 얼굴이었다. 마치 귀여움+신비 계열 걸그룹인 키스마이걸의 아름이 같은 느낌이랄까?

요모조모 자세히 살펴보니 확실히 정이든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러블리한 정이든 느낌이랄까?

음···. 이건 좀 멘트가 이상한가? 뭐 어쨌든···.

정이든은 키가 180cm를 넘는 장신이었고 동생인 정유리도 여자 키치고는 큰 160대 후반에 모델 같은 체형이었다.

와. 비율 봐. 연예인 비율이다!

카메라에 잡힐 때 키가 작아도 비율이 좋아 마치 팔등신처럼 보이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춤출 때 비율이 좋고 팔다리가 길면 동작이 시원시원해서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는데 유리가 딱 그런 스타일이었다.

‘얘는 무조건 계약해야 해. 누가 채가면 안 되는데···.’

나는 괜스레 불안해졌다. 예전에 한국의 대표 미인이었던 배우가 나와서 했던 말이 기억났다. 주변에 워낙 예쁜 거로 유명해서 부모님께서 누가 납치라도 해 갈까 전전긍긍했다는 이야기였는데 그게 딱 지금 내 심정이었다.

이든이네 가족은 그동안 있었던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일본어로 이야기하는지라 알아듣는 건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테리우스 나머지 멤버와 조아린 사원도 눈만 멀뚱멀뚱 깜빡이고 있었다.

‘오! 목소리도 귀여워.’

정유리는 목소리에서도 귀여움이 묻어났다. 저런 보이스를 가진 멤버를 그룹에 넣으면 개성 있는 톤으로 곡에 임팩트를 줄 수 있어서 쓰임새가 많았다.

“아···. 죄송합니다. 저희끼리만 이야기했네요. 유리야. 한국말로 하자.”

“응. 알았어. 엄마.”

오! 한국어 발음 좋고!

정유리의 발음은 처음에 회사에 들어온 정이든의 수준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았다.

“유리 씨 혹시 영어도 잘하세요?”

“네?”

“형! 뭘 당연한 걸 물어봐? 우리 영국에서 오랫동안 살다 왔잖아.”

“그렇지. 그럼 다행이고···.”

“형. 그게 무슨 소리야? 다행이라니? 지금 좀 이상한 거 알아?”

“노노! 너를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 주신 어머님과 귀여운 동생을 만나 좋아서 그래. 갑자기 이렇게 오실지 누가 알았겠어. 안 그래?”

“흐음.. 형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형은 항상 뭔가를 꿰뚫어 보는 느낌이 들어.”

응? 꿰뚫어 본다고.? 내가 그렇게 보이는 건가? 아···. 하긴 내가 스카우터로 사람의 능력을 꿰뚫어 보긴 한다.

역시 정이든은 관찰력이 좋은 것 같았다. 그는 옆에서 내가 훈이의 성대 결절을 알아차린 거나 그의 작곡 능력을 알고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연속으로 드라마를 터트리기까지 했으니 그런 생각을 가질 만도 했다.

‘아차! 아우라를 점검해봐야지?‘

생각해보니 정유리의 아우라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나는 곧바로 손을 들어 아우라 스카우터를 가동시켰다.

‘우왓! 미쳤으···.’

정유리의 몸에서 강렬한 오렌지색의 아우라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것은 노래 + 연기 + 신체 능력 삼박자를 모두 갖췄을 때 나오는 색이었다.

예전에 심심할 때 여러 가지 케이스로 색을 섞어 봤는데 이런 색깔의 아우라는 노래 1, 연기 2, 신체 능력 1의 비율로 나올 때의 그런 밝은 주황색이었다.

‘후아후아···.’

숨이 막히고 손이 떨려왔다.

그녀는 내 차차기 드라마에 출연함과 동시에 걸그룹으로 데뷔시킬 신규 멤버로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조용히 신인 걸그룹 포켓 리스트를 떠올렸다.

청량감을 주며 팬들의 눈에 확 들어오는 강력한 비주얼 장신 센터인 XM Ent.의 연습생인 장예원! (조용히 프로필을 슬쩍 찾아본 적 있음)

카이스트에 다니고 있는 뇌섹녀이자 다재다능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이지령!

정이든의 동생이자 영어, 일본어, 한국어까지 다 되는 언어 능력자 정유리!

이제 두 명만 더 찾으면 차차기 드라마에 딱 맞게 데뷔를 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 인재들을 내가 온전히 계약했다는 가정하에···.

그런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차기작인 뮤지컬 영화의 성패가 아주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시후가 시나리오를 끝장나게 손봐주면 좋겠는데···.’

그리고 생각해보니 곡이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 과연 작곡팀 쓰리콤보가 이런 뮤지컬용 곡을 제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우선 해보자!’

나는 일단 부딪혀보기로 했다. 뭐라도 시작하면 어떻게든 조금씩 풀린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으니까.

*  *  *

정이든의 외가 쪽은 대단한 집안이었다. 법대를 나온 엄마는 국제변호사로 일본 제2의 로펌인 Anderson Aki & Tomo의 이사라고 했다. 그녀는 유니버설 J의 법률 대리인이며 그들과 함께 투자한 파트너라고 했다.

이런 사실은 같이 온 유니버설의 다케시 상이 설명해줬다.

이든의 부모님이 이혼한 사유도 어머니가 일본으로 돌아가 가업을 이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정이든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헤어진 거라고 했다.

‘상당히 복잡하고 프리한 가족일세?’

유니버설 J가 테리우스를 과감히 밀어주는 이유가 이런 속사정이 있었던 걸까? 그들은 처음 계약할 때보다 더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그런데 테리우스는 XM Ent. 소속이라 일본에서 더 뜬다고 해서 나에게 콩고물이 더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 새끼들이니 잘되면 그뿐이었다.

‘어? 잠깐만···. 그게 아닐 수도···.’

만약 내가 유리를 걸그룹으로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면 일본에서는 빵빵한 유니버설 J의 지원과 마케팅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얕은 생각이 들었다.

‘잘하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는걸?’

정유리는 엄마의 옛날이야기가 이어지자 초반과는 달리 약간 지루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다가 대화에 껴들었다.

“어머님. 그런데 따님이 정말 미인이시네요. 어디서 연예인 하자는 제의 안 받으셨어요?“

“말해서 뭐해요. 하도 여기저기서 제의도 많이 오고 사촌 오빠도 자꾸 데뷔시키자고 하고···. 그런데 아직 학업에 집중을 해야죠.”

휴···. 다행이었다. 어디 계약이라도 돼 있는지 걱정했는데 아직 그런 건 없는 모양이었다.

“유리. 너 댄스 학원 다닌다고 하지 않았어?”

“응. 오빠. 도쿄에 있는 꽤 유명한 댄스 학원에 다니고 있어.”

“지, 진짜?”

“오빠처럼 한국에서 아이돌로 데뷔하고 싶은데 엄마가 자꾸 반대해. 저번에 학원에 온 한국 기획사 직원에게 제안도 받았는데···.”

“뭐?”

댄스도 배우고 있고 다른 기획사에서 제안이 왔다길래 충격을 받고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형···. 아까부터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아냐···.”

“유리! 댄스는 그냥 취미로 배우라고 했지? 오빠도 아이돌인데 넌 공부해서 도교 대학 법학부에 들어가야지.”

준코 씨가 굳은 얼굴로 딸을 노려보았다. 유리는 어머니의 얼굴의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이 모녀는 왠지 장래에 대해 의견이 다른 것 같았다.

유리가 정장을 입고 고객들과 법률 상담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자 숨이 콱 막혀왔다.

‘저 외모에 법대라고? 생각만 해도 말도 안 된다. 그런 건 국가적 손실이라고!’

어떻게 준코 씨를 설득해야 하나···. 앞으로 험난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으음···. 일단 능력도 확인했겠다 아직 어디에 소속돼있지도 않으니 한숨은 돌린 셈인가? 제발 내가 독립할 때까지 조용히 엄마 품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런 인재들의 출현은 내 퇴사 시점을 점점 앞당기는 요인이 되고 있었다.

내가 생각에 잠겨있자 한국말을 잘하는 것을 확인한 테리우스의 다른 멤버들이 유리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동생처럼 귀여워 해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벨이 울렸다.

‘음? 누구지?’

내가 걸어가서 현관 문을 열어보니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나유정이 얼굴을 드러냈다.

“준형 씨. 왜 나 안 불러요? 그냥 자는 분위기에요? 맥주 한잔 안 해요?”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런데 왜 추리닝 안 입었어요?”

그녀의 복장을 보니 평상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미쳤어요? 조용히 좀 해요. 그런 차림은 집에서나 하는 거죠.”

“하여간 호박씨하곤···.”

“후후···. 준형 씨. 여긴 일본이에요. 마포가 아니라고요.”

그녀는 나를 지나쳐 호텔 안으로 쑥 들어갔다.

“어···. 잠깐···. 지금 손님이···.”

“얘들아 나왔어. 우리 맥주 한 잔씩 해야지?”

“누나 왔어?”

나유정이 거실에 등장하자 테리우스 멤버들이 손을 흔들었다.

“꺄악!!”

“유, 유정···.”

두 모녀는 동시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굳은 자세로 멍하니 나유정을 바라보았다.

나유정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고개를 기웃거리며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보았다.

‘뭐에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나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정이 누나. 우리 엄마예요. 얘는 내 여동생이고···. 잘 모르겠는데 두 사람이 누나 팬인 거 같은데?”

“아···. 난 또 뭐라고···. 일본에 살고 계신다는 이든이 가족이시구나. 안녕하세요. 테리우스와 같은 소속사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나유정입니다.”

“흑···. 유정이 언니이···.”

너무나 격렬한 반응에 당황한 나유정이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고갯짓을 하자 그녀는 유리에게 다가가 그녀를 껴안아 주었다.

잠시 후 유리가 감정을 추스르자 전후 사정을 물어볼 수 있었다.

준코 씨와 유리는 정이든 때문에 슬기로운 덕질생활을 보고 유정 씨의 팬이 됐는데 최근 넷플릭에 올라온 나만의 세계를 시청하고 완전 열혈팬이 됐다고 고백했다.

“그거 19금 아니었나? 그걸 본 거야?”

“그게 무슨 19금이에요. 말도 안 돼요. 아무튼,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봤어요. 액션 연기도 너무 멋있었고 캐릭터들도 다들 인상적이었고···. 마지막에 언니 죽을 때 정말 엄마랑 저랑 펑펑 울었어요.”

“그랬구나. 고마워. 재미있게 봐줘서···.”

나유정은 유리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준형 씨. 뭐해요. 재미있게 봤다잖아요. 작가로서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거 아네요?”

유리가 갑자기 꺼낸 유정 씨의 말을 못 알아들은 것 같은지 그녀와 나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 그게 무슨···.”

“유리가 잘 모르나 보네. 여기 준형 씨가 그 드라마를 쓴 작가님이셔.”

아무래도 이든이가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긴 저 녀석이 그렇게 세심한 녀석은 아니지.

“아···. 제가 쓴 거 맞습니다. 슬기로운 덕질생활하고 나만의 세계 둘 다요.”

“에에??”

“정말로?”

두 모녀는 드라마 작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나 보다. 하긴 남의 나라 드라마 보는데 작가가 누구인지까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법이니까.

놀라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보니 신규 걸그룹 멤버 확보에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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