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서 생긴 일 (1)>
나는 일본 출판사에서 내 책을 출간하자는 제의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갑자기 왜요? 나만의 세계가 넷플릭에 풀린지 얼마 안 됐을 건데···.”
“작가님. 요즘 같은 시대에 국경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히트한 것은 이미 소문이 다 퍼져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일본의 유명 미튜버들이 벌써 베스트 한류 드라마 탑 10, 추천 한류 드라마 이런 거로 소개를 많이 했다고 하네요."
“하긴···. 해외에서 실시간 라이브로 보는 사람도 있을 테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일본도 미튜버들 경쟁이 치열하거든요. 아무튼, 저도 갑자기 일본 측에서 연락이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상당히 급하게 찾더라고요.”
“얼마나 급하게요?”
“이번 주 안에 계약을 끝내자고 하더군요. 자신들이 빠르게 번역을 해야 한다고 해서요.”
“아···. 번역은 일본에서 하는 거죠?”
“맞아요. 아무래도 해당 국가의 미묘한 감성을 살려야 되니까요. 그래서 제가 번역할 때 꼭 드라마를 본 사람으로 해달라고 하려고요.“
“음···.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제의를 했을까요? 일본에 번역된 한국 서적이 별로 없지 않나요?”
“글쎄요. 작가님이 테리우스 매니저라 약간 특이하잖아요. 아마도 그런 점이 셀링포인트로 작용한 게 아닐까 싶거든요?”
김 사장은 자신의 추측일 뿐이라며 자세한 것은 일본 측 담당자와 미팅을 한 후에 알려 준다고 했다.
“작가님. 일본에 출간하는 건 그냥 덤이라고 생각하세요. 작가님도 아시겠지만, 지금껏 일본에서 한국 소설이 많이 팔린 게 없어요. 역대 최고가 아마 20만 부 정도 일 거에요. 그것도 딱 하나였나 그럴 겁니다. 판매가 상당히 저조해요. 수익도 이것저것 때고 나
면 우리나라에서 출간한 거랑 비슷하거나 더 적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냥 보너스라고 생각해야겠네요.”
나는 고당 출판사 사장에게 계약을 일임했다. 내가 대형 출판사가 아닌 고당 출판사를 선택한 이유는 별 것 아니었다. 일반 출판을 하면서 웹소설 매니지먼트 자체 부서를 운영하고 있었고 정산이 깔끔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아···. 사장님 제가 저번에 말씀드렸던 로맨스 무협 출간요. 담당 편집자가 정해졌나요? 베테랑이면 좋겠는데요?”
“제가 임 PD라고 유능한 편집자를 담당으로 붙여드리려고요. 저희 매니지먼트의 에이스입니다.”
“네. 담당한테 연락이 오면 원고 보내드릴게요.”
“작가님.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출판사와 전화를 끊고 주리가 가져온 커피를 마시고 TV를 보고 있었다.
“어? 오빠. 이수현이다.”
“그러네.”
TV CF에서 수현 씨가 노화 방지 기능이 들어간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을 광고하고 있었다.
“와···. 이수현 진짜 고급스럽다. 예전엔 왜 몰랐지?”
주리는 이수현의 광고를 보고 그녀의 외모에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확실히 오빠 작품에 출연하고 클래스가 확 올라간 거 같아. 이제 단독으로 주연급을 맡아도 이상하지 않은 거 같아.”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들어 부쩍 TV 광고에서 수현 씨가 많이 보이고 있었다. 고급스럽고 지적인 느낌을 주면서 피부까지 좋아 고급 화장품 회사들이 기용하고 싶어 하는 1순위 모델이 됐다고 한다.
이제야 빛을 보는 이수현의 모습을 보며 내심 뿌듯함을 숨길 수 없었다. 그녀는 언제라도 빛을 봤을 거대한 포텐을 지녔지만 그게 영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이수현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이수현 또 나온다. 대박이네. 오빠 작품에 나온 배우들 요즘 왜 그래? CF 엄청나게 찍네.”
생각해보니 그랬다. 내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은 하나같이 광고를 많이 찍는 편이었다. 캐릭터를 잘 살려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냥 시청률이 높아 화제가 된 작품이라서 그런 걸까? 자세한 이유는 나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TV 속의 이수현은 미용 토털 솔루션을 광고하고 있었다. 미용 마스크와 초음파 클렌저 등등···.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걸 하고 있으니 살짝 웃기긴 했다.
“하하···. 고급스럽긴 한데 마스크 쓰니까 오페라의 유령 같다.”
“오빠가 잘 모르나 본데 저거 엄청 좋은 거야.”
“그래? 오빠가 수현 씨한테 말해서 싸게 하나 구해달라고 해볼까?”
“응! 제발! 플리즈!”
“너 하는 거 봐서···.”
“아잉~ 오라버니···.”
* * *
며칠 후
일본 하네다행 항공편 비즈니스석에는 나유정과 테리우스, 홍보팀 조아린, 그리고 내가 탑승하고 있었다. 우리는 현재 행사 참석차 일본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유니버설 J가 진행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테리우스를 초대하면서 같은 회사인 나유정과 나를 초대한 것이다.
명목은 테리우스 일본 데뷔 겸 슬기로운 덕질생활 팬 미팅이었다. 테리우스의 팬덤은 슬기로운 덕질생활을 본 일본 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생겨난 거라 둘을 따로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나유정도 독특한 캐릭터와 연기력으로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슬기로운 덕질생활 팬 미팅에 가겠느냐고 물어보니 무조건 가겠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나유정이었다.
결국, 그녀는 유니버설 J의 요청대로 테리우스 일본 팬 미팅에 합류했다.
그런데 나는 왜 불렀을까?
나는 슬기로운 덕질생활의 작가이자 테리우스와 나유정의 치프(?) 매니저에 일본어도 수준급으로 한다는 장점이 있다. 부려먹으면서 구색 맞추기 딱 좋은 포지션이다.
물론 위와 같은 이유도 있겠지만 자세히 알고 보니 ‘어느 살인자의 일기’를 출간하려는 회사가 바로 유니버설 J의 출판 자회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을 출판하려는 의도를 들어보니 어이가 없었다.
“슈퍼노바의 김우주의 책이라고 해서 이미 일본 팬들 사이에서는 유명합니다. 저희 쪽에서 꼭 일본어로 출간하고 싶습니다.”
알고 보니 최고 인기그룹인 슈퍼노바의 센터인 김우주가 공항에서 내 책을 들고 있다가 찍덕들에게 사진을 찍히고 우연히 그게 레전드 짤이 되어 전 세계 인터넷에 다 퍼진 듯싶었다.
슈퍼노바의 열광적 팬이자 출판사에 근무하는 직원이 이건 돈이 되겠다며 출간 제의를 하게 된 것이다.
‘하아···. 슈퍼노바는 도대체 나를 몇 번이나 도와주는 거야. 이 고마운 녀석들···.’
저번에는 SNS로 홍보도 해주더니 이제는 내 책까지 전 세계적으로 팔아주려고 한다.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한 일이겠지만 나 같은 하꼬 매니저 겸 작가에게는 운명을 바꿀만한 일인 것이다.
‘톡으로 푸링클 치킨이라도 보내줄까?’
어쨌건 출판사는 유니버설 J와 공동으로 마케팅을 펼쳐 테리우스 일본 팬 미팅에서 슬기로운 덕질생활 이준형 작가의 굿즈로 일본판 ‘어느 살인자의 일기’를 판매한다는 전략이었다.
“와. 긴장된다. 우리가 일본 데뷔라니···.”
“우리 지금 미니앨범 판매량이 얼마라고요?”
“지금 21만 장이요.”
“우와! 대박!”
홍보팀 조아린이 현재 앨범 판매량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녀는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이번 일본 팬 미팅에 스태프로 차출되었다. 그녀는 테리우스의 일본 홍보 전략을 작성한 담당자로 이번 일에 아주 열성적이었다.
“우와! 난 진짜 아직도 믿기지 않아. 일본 진출하려고 일본어 배운지 이제 한 두 달 됐나? 벌써 이렇게 결과가 나오다니···.”
“영관아. 어때 내 말이 맞지? 일본어 공부 안 했어 봐. 큰일 날 뻔했지? 어떠냐. 내 선견지명이···.”
나는 호들갑을 떠는 영관이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우. 아주 잘하셨어요. 갓 작가님. 근데 일본 진출 준비해야 한다고 예측한 건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 아닙니까?”
"쯧쯧···. 종종 평범한 사람들은 상식을 뛰어넘는 천재들을 마주하면 이해를 못 하고 부정하려고 한다더라. 역사가 늘 그래왔대."
“저기요? 지금 저를 돌려 까시는 거예요?”
“놉! 다이렉트로 까는 거다···. 너 서열 6위···. 나 5위···.”
“죽엇!”
박영관이 몸을 틀어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하필이면 이 자식이 내 옆에 앉다니 너무 귀찮다.
“큭···. 뭐 하는 짓이야. 너 비행기 안에서 이러면 벌금이야! 인마. 넌 기사도 안보냐?”
“저, 정말?”
벌금이라고 했더니 움켜쥐었던 내 멱살을 조심스럽게 놓는 박영관!
“그래. 기내소란행위, 음주나 약물 복용 후 타인에게 위해를 주는 행위를 한 자! 일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
“일, 일천만 원?”
그는 내 팩트 공격에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역시 수전노 박영관은 돈 문제만 언급하면 게임 끝이지.’
“영관아. 까불지 마라.”
우리가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 사이 비행기는 일본 하네다 공항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실장님. 지금 유니버셜 J 측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공항에 팬들이 많이 와있다고 합니다. 나갈 때 빨리 나가셔야 할 것 같다네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조아린의 말을 흘려들었다. 그렇게 입국장을 빠져나오는데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까아아악!!
‘어우! 깜짝이야. 웬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아? 실화야?“
하네다 공항에는 테리우스를 보기 위해 마중 나온 수많은 팬들로 북적거렸다. 테리우스의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공항이 떠나가듯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팬들은 공항 측에서 준비한 안전라인 밖에 앉아 테리우스를 열심히 외치며 환호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 많은 팬이 몰리자 공항 측에서 세이프 라인을 만든 것 같았다.
팬들의 연령대는 10대부터 50대까지 아주 다양했다. 아무래도 드라마로 인기를 얻은 게 폭넓은 나이대의 팬층을 확보한 이유 같았다. 하지만 역시 팬들은 주로 여성 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테리우스는 엄청난 인파에 깜짝 놀랐는지 다소 당황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고 자연스럽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국내에서 1티어에 올라 인기를 얻어서 그런지 나름대로 대처가 괜찮았다.
박영관과 김훈은 웃는 얼굴로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고, 한연준, 이창민, 정이든은 그냥 담담한 얼굴로 성큼성큼 안전라인 안쪽을 걸었다. 내 앞의 나유정도 싱그러운 미소를 띠며 팬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는 뒤에서 팬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연준!”
“이든!” “창민!”
“유정!”
일본 팬들은 한글이 써진 피켓을 들고 각자 최애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고 있었다.
‘와···. 이거 예상외인데? 테리우스 인기가 이렇게 많다고?’
테리우스의 앨범이 오리콘 주간 차트 1위를 차지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일본에 한 번도 온 것 없는 것 치고 20만 장의 판매는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래도 일본 팬들은 라인 밖에서 이름을 연호하고 영상만 찍을 뿐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와!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야? 수백 명은 되는 거 같은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한번 팬들을 바라보았다. 개중에는 나유정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도 보였고 심지어 내 이름까지 눈에 띄었다.
[이준형 작가님 어서 오세요.]
‘오! 이거 뭐야. 내 팬도 있는 거 실화냐?’
나는 살짝 감동하고 말았다. 이런 다른 나라에도 내 팬이 있었다니. 테리우스 이놈들이 이런 맛에 연예인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앞에 가는 연준이를 불러 내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가리켰다.
“연준아. 저기 내 팬도 있다. 하하하. 대박이지?”
“응? 정말? 어찌 그런 일이···.”
나와 연준이가 내 팬을 가리키며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자 박영관이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바라봤다.
“뭐 하는데···. 얼른 차 타야지. 시간 없다며?”
“야 영관아. 저기 봐라. 내 팬이다. 저기···.”
“어? 정말이네. 뭐지? 왜 준형이 형 팬이 있는 거지?”
“야 인마. 스타 작가 모르냐?”
“어?”
내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밑으로 한 장의 카드가 다시 스르륵 내려왔다.
[영관 씨 그만 괴롭혀요!]
컥···. 어그로였을 줄이야.
“푸핫···. 뭐야 내 팬이었네. 뭐야 이준형 선생. 악덕 매니저로 일본에 소문 다 났는데 이거?”
“야! 박영관 조용히 좀 해. 하여간 네 팬은 하는 짓이 널 닮았구나?”
“뭐야! 팬 모독하는 거야? SNS에 이 실상을 그냥···.”
나는 영관이가 더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손을 어깨에 두르고 안전라인을 빠르게 지나갔다.
우리는 드디어 공항을 안전하게 빠져나가 버스에 올라탔다. 아직도 공항에는 많은 팬이 차로 우리가 떠나가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테리우스가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와 조아린은 가이드로 나온 유니버설 J 직원 다카하시와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유니버설 J의 다카하시 에리카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매니저 이준형입니다. 이제 출발하시죠.”
우리를 태운 버스가 공항을 빠져나와 도교로 향했다.
“와···. 우리 팬분들 진짜 많다.”
“아린 씨. 케이팝 아이돌들 팬분들 원래 이 정도 모이시나요?”
“아, 아닙니다. 요즘엔 정말 최고로 인기 있어도 천명 이상 모이는 게 쉽지 않아요.”
“그럼 이건 특이 케이스인가요?”
“저도 이렇게까지 모일지 몰랐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미튜브로는 테리우스의 일본 인기에 대한 영상이 벌써 업로드되고 있었다.
[테리우스 일본 데뷔. 마비된 하네다 공항 입국장?!]
[테리우스 일본의 차세대 한류 스타 되나? 도쿄, 오사카 팬 미팅 표 발매 2분 만에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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